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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40가지 철학의 순간들
인생학교 지음, 정은주 옮김, 알랭 드 보통 기획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평점 :

알랭 드 보통은 들어봤는데 지은이가 인생학교라고? 그게 뭐지?
나도 정확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 살펴본 적이 없어 표지의 소개부터 읽었다.

인생 학교 The School of Life는 알랭 드 보통이 주축이 되어 만든 프로젝트 학교다. 2008년 런던에 처음 문을 연 이래 유럽 곳곳에 분교를 세웠고 삶의 본질과 연결된 다양한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공간이라는 게 이곳의 정체다.
유튜브 채널 주소가 있길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로 들어가 봤는데 인생학교를 소개하는 영상에는 다행히 한글 자막이 달려 있었다. 최근 영상순으로 확인해 보니 안타깝게도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영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인생학교 유튜브 채널에서 다루는 영상의 주제는 인생학교가 다루는 질문의 수만큼 다양했다. 알기 쉬운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상부터 분량이 좀 더 긴 강의 영상도 포함되어 있다.
인생학교의 활동을 번역한 책으로 접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책으로 엮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으니 좀 더 빨리 접하고 싶은 분들은 홈페이지나 유튜브 채널을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상당수의 콘텐츠가 영어로 제공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책 얘기를 해야 하는데 서두가 길었다.
철학을 주제로 삼는 책 치곤 꽤나 발랄한 느낌이 드는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힐링 에세이류 표지 같기도 하고, 심지어 187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다. 적은 지면에 무려 40가지 철학적 질문을 담았다고 하니 어떤 책일지 더 궁금해졌다.
채널을 먼저 살펴본 것이 책이 이렇게 나온 것을 이해하는 데에 의외의 도움을 주었는데 바로 인생학교가 심오한 질문을 무겁지 않은 톤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받으면 책장 전체를 휘리릭 훑어보고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나름의 의례인데 처음 이 책을 훑어보고는 텍스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파본을 받은 줄 알았다.
설마 그럴 리가, 이미지만으로 사유해 보라는 깊은 뜻인가? 혼자 별의별 추측을 하다 놀라서 다시 한 장 한 장 떼어서 살펴보니 사진과 사진 사이에 글이 놓여있었다.
책을 엮을 때 종이 방향의 영향인지, 아님 인쇄할 때부터 의도한 것인지, 모두 상관없이 내가 받은 책만 우연히 이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신기했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
2장.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법
3장.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법
4장.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법
각 장의 주제에 어울리는 질문을 제시하고 그 질문에 영감을 주는 철학 아이디어가 짧게 실려있다. 글보다 사진을 먼저 접했을 땐 특별한 의미 없이 어울리는 사진을 넣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글을 먼저 읽고 사진 페이지로 넘어가니 앞서 설명한 내용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미지였다.
왜 이렇게 많은 사진을 그것도 양 페이지 가득 채워 넣었을까? 주된 텍스트 한 켠에 첨부로 삽입한 이미지가 아니라 텍스트 분량과 정확히 동일한 분량을 이미지가 차지하는 데는 그만한 편집 의도가 있을 것이다. 책 전체를 읽고 나니 빼곡한 텍스트로는 느낄 수 없는 전면 이미지가 주는 낯선 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꿈틀거리는 질문을 곱씹은 후 책장을 넘겨 정적인 이미지와 마주하는 순간, 그 장면은 더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사유가 뿌리 내릴 수 있는 장면이 된다. 글을 읽고 골똘히 생각한 만큼 이미지를 오래 응시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장면, 내 일상에서도 만날 법한 익숙한 장면들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보통 철학이라하면 까다롭고 장황한 이론과 꼬리를 무는 문답이 연상되는데 이 책을 통해 글과 말을 넘어 이미지 사유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인문학 책은 골치가 아프고 따분할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에게 우선 추천하고 싶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