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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 책을 선택하는 데는 사실 서문을 쓴 리베카 솔닛의 이름이 좀 더 결정적이었다. 어떤 이의 책이길래 그가 서문을 써주었을까 하고 흥미가 생겼다. 배리 로페즈의 책 중 한국어로 출간된 것은 2014년에 봄날의책에서 나온 『북극을 꿈꾸다』가 유일한데 그마저도 현재는 품절이다. (다행히 이 책이 나온 북하우스에서 『북극을 꿈꾸다』와 『호라이즌』이 나올 예정이다.)
지명도 생소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서 생활하고 심지어 여행을 가도 타국의 도시만을 경유하는 현대인이라면 접하기 어려운 지역, 낯선 국가의 더 낯선 강과 시내의 이름들, 숲과 평원과 사막의 이름을 읽을 땐 어렴풋하게나마 연상되는 이미지가 없어서 언젠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재현된 자연에 의지해 읽어 나가야 했다. 내가 직접 볼 수 없을 숱한 생명체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독서 초반엔 이 낯섦 때문에 미로 중간에 놓인 기분이었다. 어떤 독자에겐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배리 로페즈가 2020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출간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표지의 부제처럼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각 글이 쓰인 시기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시간 순으로 실은 것인지 분명하진 않다. 의도한 배치인지, 4개의 주제별로 나눈 글들의 순서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마지막 글에 다다랐을 때는 벅찬 기분마저 들었다.
그는 자기 시련이 이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구원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더 넓은 인식을 직조해냈다. 그런 관대함은 회고록이 어떤 글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사적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한 호흡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 어느 장편 회고록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시사했다.
배리 로페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2023, 북하우스) p.11 서문 중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사적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한 호흡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에 밑줄을 그었다. 그 부분이 이 책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볼 요량으로.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보니 저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실린 글 들 중 <초대>(p.192~p198)가 가장 인상 깊었다.
어떤 글을 ‘자연 에세이’라고 부를 때 자연의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단순히 야생 동물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만을 상상할 수도 있다. 자연환경을 외부의 대상으로, 그것을 경험하는 나는 관찰자로 상정하고 쓴 글도 어색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펼치는 이야기는 그보다 더 확장된 자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연을 통해 얻은 가르침이 결국 그것을 감각하는 신체, 곧 나의 몸 얘기로 연결되는 것이 놀라웠다.
현대인의 피상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선주민과 보낸 대화가 필요 없는 시간에서 알게 된 깨달음. 왜 우리는 점점 더 빠른 피드백에, 더 빠른 정보의 공유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 부산함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앎이란 종종 얼마나 얄팍한가. 그와 대비되는 기나긴 침묵과 오로지 누적된 경험과 감각으로 체득하는 지식의 존재. 우리는 그런 것을 기다릴 인내심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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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