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화가 무서운 사람들을 위한 책 - 불안 전문 심리치료사가 알려주는 스트레스 없는 대화법
리처드 S. 갤러거 지음, 박여진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의 원제부터 확인하자.
Stress-Free Small Talk : How to Master the Art of Conversation and Take Control Your Social Anxiety
한국어판 제목은 좀 더 광범위한 '대화'를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은 스몰 톡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우리는 왜 대화를 해야 할까?
책은 대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안전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신호다.
- 자신과 상대가 비슷한 성향이나 성격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 공통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돈독한 인간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대화가 필요한 순간들】
- 네트워킹
- 비즈니스
- 명절, 기념일 등 특별한 행사
- 지역, 취미 등 공동체
- 개인 생활
네트워킹 부분은 IT업계에선 활발한 것으로 아는데 다른 직종에도 이런 기회가 많은지 모르겠다.
북미의 스몰 톡 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실상 한국인 입장에선 적용하기 애매하다 느낀 부분도 많았다. 피곤한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와 대화하기? 산책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대뜸 말 걸기? 이웃과도 대화할 일이 드문 곳에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는 타인과 부담 없이 가볍게 대화할 기회 자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우린 낯선 이들과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지 않는다 뿐이지 SNS을 통해 대화하는 경우가 요샌 훨씬 많지 않은가? 댓글 소통도 대화라고 친다면 말이다. 물론 책에선 그런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책 표지에는 전화도 언급하고 있는데 정작 전화 통화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모든 내용은 사람과 직접 대면해서 대화하는 상황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원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대화를 할 때 종종 잊곤 하는 부분도 환기시켜 준다.
"대화를 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라는 점"(39쪽) 과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가 더 중요"(39쪽) 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추가로 참고하면 좋은 부분은 적극적 경청의 4단계였다.
【적극적 경청 active listening 4단계】
- 바꿔 말하기
- 감정 짚어주기
- 타당성
- 동일시
저자는 수줍음, 내향성, 사회불안을 분류하고 불안으로 인해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돕는 방법도 제시한다.
【수줍음과 내향성, 사회불안은 다르다!】
■ 수줍음
주로 불편해하는 태도로 드러남.
대체로 상황에 따라 단기간 나타남.
그 자리를 벗어나면 괜찮아지는 경우 많음.
■ 내향성
주로 에너지 고갈로 드러남.
아무리 즐겁게 대화를 나눠도 마지막에는
온몸에 힘이 쏙 빠진다.
■ 사회불안
주로 공포로 드러남.
사회적 상황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애쓴다.
수줍음이 과도해져 사회불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첫 단계"(73쪽)이며 감정, 신체 변화 등 영향을 받는 요소들을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회불안장애로 대화가 어렵다면】
- 마음 알아차림
- 감정 적어보기
- 천천히 호흡하기
- 세분화하기 (몸과 마음의 감각을 상세히 기록)
- 목표를 시각화하기
"인지행동치료의 목적은 현실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93쪽)이라고 강조하며 수집한 케이스를 바탕으로 인지 재조정을 시도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인지 재조정 cognitive restructuring’ 시도하기】
1단계
두려운 생각을 떠올려보고 기록하기
(반드시 손으로 기록한다!)
2단계
떠올린 생각에 담긴 오류 찾아내기
(인지 왜곡 cognitive distortions 찾기 - 과장, 예측, 기대 등)
3단계
왜곡되지 않은 생각으로 다시 써보기
(왜곡된 사고에 반박하기)
【대화는 기술이다!】
저자는 걸음걸이를 배우고 피아노를 익히듯이 대화 또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장 중간에 등장하는 [연습해보기] 는 앞에서 이해한 내용을 적용할 수 있는 실천 사항들이 적혀있다. 대화의 ‘기술’에 숙달되는 방법은 꾸준한 연습과 반복뿐이라고 하니 바로 시작해도 좋다.
어떤 상황에 떨어져도 곧장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과 요령이 없다면 준비가 필수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만남의 목적을 고려하여 미리 적절한 대화 소재를 준비하라고 일러준다.
【의외라고 느낀 점】
스몰 톡에서 가장 무난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주제인 날씨를 지루하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대화 주제로 분류한 것이 의외였다.
스몰 톡이 워낙 빈번한 북미 문화에선 판에 박힌 따분한 대화 주제가 될진 몰라도 낯선 이와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는 문화권이라면 날씨 주제는 여전히 대화 소재로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상대방의 인간관계, 이를테면 아내는 잘 지내시냐 자녀들은 잘 지내냐 같은 질문이 상대에 따라 난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혼했거나 사별했을 수도 있고 자녀와의 관계가 나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표하고 싶다면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의외로 관성적으로 내뱉기 쉬운 질문이라 실수하기 쉬운데 이렇게 한 번 짚어준 게 좋았다.
반드시 피해야 할 주제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듯이)
정치, 종교, 비난, 불평이다.
【티 안 나게 대화에서 빠지는 방법】
나에게 유용했던 부분은 적당히 예의를 갖춰 말을 마무리 지은 후 대화에서 빠지는 법이었다. 나는 거절을 못 해서 원치 않는 회식 뒤풀이에까지 억지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한 번도 빠짐없이 항상 후회했다.
후회는 '왜 그때 나는 거절을 하지 못했을까'에서 '그러게 왜 나를 끌고 간 거야'라는 원망으로 곧잘 이어졌다. 내가 거절하지 못해 생긴 불편한 감정이 부끄러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남 탓으로 이어졌다. 회피를 방치하면 이런 왜곡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정말 피곤한 사고방식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나를 힘든 상황에서 제때 구출하지 않으면 애먼 사람들만 원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적당히 맺고 끊을 수 있다면 상대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나 또한 만족스럽게 만남을 마무리할 수 있다. 나와 상대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찾아온다. 역시 모든 문제의 시초는 나라는 진리로(?) 돌아온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따라 하라】
잘 모르겠으면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배우라는 것도 유용한 팁이었다.
사실 나는 이것을 댓글 쓸 때 활용하고 있다. 워낙 무플로 정보 취득만 해 온 인생이라 이웃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게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바로 앞선 사람의 댓글을 참고하는 것!
소통 초보자인 나는 어떤 식으로 댓글을 남겨야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하는데 그럴 때 베테랑 블로거들의 댓글 대화가 도움이 된다. 저 정도의 거리와 예의를 갖춰 댓글을 달아야 하는구나라는 걸 배운다. 어디서든 배움의 기회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지구에 처음 오셨나요?
인간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하고 외계의 방문자에게 매뉴얼로 내밀면 좋을 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한 성인이라면 딱히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란 말이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두라.
상황을 통제하려는 압박에서 벗어나라.
완벽주의를 버려라.
실수에 관대해져라.
인간적인 면은 호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걱정 마라)
마주하는 상황들에서 항상 배우는 태도를 가져라.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나 멘토가 있다면
접할 수 있는 수준의 조언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찾을 수 있는 조언들이다.
너무 당연해서 '이걸 굳이 책으로?'라는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때론 너무 힘들어서 이런 삶의 기술을 잠시 잊게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화의 감각을 상실한 사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추천하고픈 독자
지구에 처음 방문한 외계인
회화와는 평생 담을 쌓은 탓에 입이 안 떨어지는 분
사회성 없다는 소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분
데이트 후 애프터를 항상 거절당하는 분
북미 스몰 톡 문화에 이골이 난 해외 교민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