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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생경영론
데일 카네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2월
평점 :

자기 계발서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독자가 처음 이 장르에(?) 입문하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추천되는 저자는 과연 누구일까? 아마 데일 카네기이지 않을까. 『인간관계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 책으로 데일 카네기를 만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후 현대지성에서 나온 데일 카네기 시리즈로 『자기관리론』, 『성공대화론』도 읽어보았다. 『인간관계론』 만큼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자기 계발서라는 것의 속성을 맛보고 싶다면 한 번씩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인생경영론』은 앞서 세 권의 책에 이은 국내 유일 1937년 초판 완역본이라고 한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5분 전기 Five Minute Biographies’이다. ‘누군가에게 5분의 시간을 주고서 당신의 인생을 한번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부터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라는 책 소개에 이끌렸다. 데일 카네기가 엄선한 인물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 소개가 책의 내용과 동떨어진 과대 포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이 궁금해서 이 리뷰를 찾아 읽게 될 분들에게 일단 한 마디 먼저 내뱉고 시작하고 싶다. ‘잘 오셨습니다. 이 책은 거르세요.’
바로 위에 한 마디 뱉고 시작하겠다고 썼지만 솔직히 시작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의 리뷰를 굳이 써야 하는가? 그렇다. 반드시 써야 한다. 서평 게시라는 의무에 임하고자 책을 증정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증정 도서에 이렇게까지 실망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적당히 좋은 점을 착즙해서 잠재 독자를 위한 추천의 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출판사에게도 나와 정반대로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에게도 이상적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지난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게 했지만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다른 분들이 이 책의 장점을 발굴하여 구원의 빛을 비춰주셨으리라 기대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60명의 인물 중엔 익숙한 이름도 있고 미국 문화계에서는 원로급 인사일 테지만 다소 생소한 이름도 많다. ‘역경과 고난을 헤쳐 나간 그들의 인생 태도는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성공 원리를 보여줄 것이’라고 소개하지만 주요 인물들의 사적 특징―타고난 기질, 성정, 때로는 기벽 등―을 묘사하는 부분이 많아 신변잡기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사실상 목차에 나열된 소제목이 각 글의 주제로 제시되지만 글 자체에서 뽑아낸 주제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의도로) 이런 내용으로 수렴되길 희망하는 주제’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읽으면서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쓰인 건지 궁금해서 서문을 다시 확인하려 했는데 이 책엔 서문이 없고 역자의 말만 실려 있을 뿐이다. 일러두기를 보니 1937년에 출간한 책과 1944년에 출간한 책 두 권의 내용을 합쳐 60명의 얘기를 실은 것이라고 한다. 어딘가 연재했던 이야기를 하나로 모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일화들이 중구난방이다. 작가, 배우, 기업인, 과학자, 발명가, 탐험가, 전쟁 영웅 등의 일화 간 연결성을 찾기 어렵고 각 장의 주제와도 적절하게 부합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들의 여담 모음집 같다.
‘뭐지? 어쩌라고? 여기에 무슨 교훈 포인트가 있는 거지?’ 싶은 어이없는 내용에서 의미를 쥐어짜는 역자의 인생경영 포인트 부분도 짚고 넘어가자. 처음엔 정신 없는 내용을 적절히 요약을 해주었나 보다 하고 읽어나갔는데 갈수록 역자의 의미 짜 맞추기에 거꾸로 주제가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데일 카네기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지 않고 사실상 데일 카네기의 허울을 쓴 역자표 자기 계발서 같다. (물론 그럼에도 각자에게 와 닿는 메시지를 찾아 삶에 반영하는 사례는 있을 수 있다. 나도 어떤 문장엔 밑줄을 그었다.)
역자가 선택한 번역어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23년도 출간 도서에서 처녀작 같은 단어를 보게 될 줄이야. 순화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지도 족히 10년은 넘은 듯 한데 역자가 성차별어 바로 잡기에는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사실 오랜 경력의 역자가 관성적으로 이런 번역어를 선택했어도 편집자가 수정을 제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이 책인 쓰인 시기와 저자의 한계―개신교 배경의 백인 남성―때문에 낡은 느낌이 드는 책이 다듬어지지 않은 번역 덕분에 더욱 고루해졌다. (설마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 의도적 선택이라면? 그런 심오한 의도가 있었다 한들 이런 단어는 정말 그만 보고 싶다.)
누군가 이 책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저는 현대지성에서 나온 훌륭한 고전과 양서가 많으니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할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가 제 인생의 5분 전기를 쓸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모릅니다. 그간 읽어온 데일 카네기의 책들과 확연히 다른 책입니다. 항상 사례를 토대로 구체적 실행법을 제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책은 다릅니다. 책을 다 읽고서 표지의 문구가 새삼 다르게 보입니다. 그간 번역이 되지 않았던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