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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가가기 - 우정과 상실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후아 쉬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원제인 Stay True는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대강 번역기에 넣어보면 진실을 지키다, 진실을 유지하다 등으로 번역되는데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Stay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뜻이 있었다. 고어인 경우에만 통하는 부분도 있고 특정한 맥락에서 선택되는 표현도 있겠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사전에 제시된 어떤 의미에 True를 연결시켜도 미묘하게 맥락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저자는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함께 머무르고 망각을 멈추려 애쓰고 다른 이들이 모두 앞으로 나아갈 때조차 가만히 있는다. 때론 진실에서 파생되는 슬픔을 억제하기도 하고 사건에서 파생되는 다른 해석을 막아낸다. 이 책은 압도하는 상실에 멍하니 과거를 곱씹는 것 밖에는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던―아니 거부했던― 한 청년이 슬픔에 깊이 침잠했다 떠오르는 이야기다. 사실 떠오르는 순간의 비중은 극히 적고 그 정체된 시간, 고여있고 유예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True라는 단어도 처음 접했을 땐 ‘진실’이라는 명사가 즉각 떠올랐는데 이 외에도 정확한, 조금도 틀림없는, 참으로, 올바르게, 정확하게, 진리 등의 뜻이 있다. 이 역시 책의 내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확한 기억만을 남기고자―실패할 것이 자명한― 홀로 분투하는 여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올바르게 사건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모습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태―진실로 추모하는 사람의 태도라 믿었던―를 고집했던 이야기로 봐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많아 꽤나 고심하여 정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어판 제목을 『진실에 다가가기』라고 지은 것 또한 흥미로웠다. 번역자와 편집자의 판단을 모두 거친 정해진 제목일 텐데 어떤 의도에서 이런 제목을 택했을까? 번역자의 말이 실려있지 않아 의사 결정 과정은 알 수가 없다. 다만 Stay True 만큼 짧고 인상적이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책에서 저자가 고민한 부분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자로 옮기기 어려운 감정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에게 진실인 부분이 과연 모두의 진실일까 의심해 보는 부분도 떠올랐다.
작가 후아 쉬는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 아래 미국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대로 1977년 일리노이주 어배너 섐페인에서 태어났다. 현재 뉴욕의 예술대학인 바드 칼리지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진실에 다가가기』는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회고록으로 2023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회고록 부문, 23년 퓰리처상 전기·회고로 부문 최종 수상작이다.
책은 저자 후아 쉬의 대학생 시절 짧은 우정을 나눴던 친구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이어지는 오랜 회상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글로 적어 책으로 엮을 만큼 소중한 우정이라니 오래 사귄 친구일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심지어 처음부터 잘 통한다고 생각한 적 없는, 나와 너무 다르고, 달라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친구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읽을수록 ‘아니, 아무리 그래도 대학 시절에 잠깐 사귄 친구에게 이 정도로 과몰입을 한다고?’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과몰입 지점 그러니까 사건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 나만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자의식 과잉, 자기 파괴적이면서 자아도취적이기까지 한 죄책감의 발현 등에서 숭고한 느낌보다는 소위 중2병 감성, 손발 오그라드는 느낌에 괴로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그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이건 내가 더 이상 이 감정에 깊이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구나!’
왜 나는 가슴 절절한 우정의 회고록을 읽으면서조차 냉소적인 태도를 놓지 못할까. 내겐 이렇게 솔직하고 간절하게 감정을 쏟아 본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여전히 음악 취향으로 사람을 가려 사귀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런 감정의 유효기간은 짧다. 아니 어쩌면 끝나지 않는다. 저자와 비슷한 나이대에 문학과 예술에 조금씩 발을 담가보고 동일한 정도는 아니어도 비슷한 감정의 진폭을 헤쳐온 내게 이 글은 감추고픈 흑역사를 들추는 기분마저 자아냈다.
짧은 우정 뒤에도, 죽음 이후에도 우정은 이어질 수 있을까. 상호 호혜가 사라진 상태에서도 선물은 유효할까. 저자는 대학 생활을 끝내지 못한 친구를 위해 자신의 남은 대학 생활을 공유하기도 한다. 자기가 인상 깊게 읽은 책과 논문들, 직접 찾아가 들은 강의, 새롭게 듣기 시작한 음악들을 알려준다. 일방적으로 정보만 전하는 게 아니라 친구와 함께 읽기도 했던 책, 함께 쓴 시나리오, 기약 없는 약속과 담배를 태우며 나눴던 대화들과 연결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부모님 얘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 거지 의아하기도 했다. ‘이민 1세대는 생존을 고민하고 이민 2세대는 부모가 겪어 온 삶을 이야기한다.’ (p.35)라는 문장에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이 정체성을 빼놓고서는 우정의 시작과 그가 겪은 불안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부인들은 생김새로 아시안 아메리칸을 같은 부류로 뭉뚱그리지만 부모 혹은 조부모의 이주와 정착 시기에 따라 아시안 아메리칸들 사이에도 미묘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출신 국가에 따른 문화적 차이, 부모와의 문화적 괴리가 여타 미국인들과는 다른 특질을 형성하도록 영향을 준다는 것. 그 배경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내가 ‘그걸 굳이 왜 언급하지’라며 따질 주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이 국가에서 나고 자라 내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나고 자라 그 나라말을 쓰면서도 완전히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감각을 이해할 수조차 없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의 일원이자 소수자인 입장에서 어쩌면 자신의 뿌리와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혼란을 정의하며 글을 써나가는 것은 ―나처럼 그 감각에 무지한 독자를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일견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인해 미래가 창창한 젊은 친구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학자의 말을 인용하는 부분에서도 이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과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과거의 메시지를 참고하려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가 넌지시 암시하듯, 이 논문은 이렇게 전사한 동료들에게 우리가 진 빚이다. 논문에서 전 세계의 선물들을 잇달아 추적하며 역사적 사실로 과거를 깊이 있게 파헤쳐 가는 것은 지금 서 있는 현재의 가능성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진실에 다가가기』 (후아 쉬, RHK코리아, 2023) p.157
<사회학 연보> 특별판에 실린 모스의 <증여론>을 읽고 ‘일련의 불가능한 가능성을 꿰뚫어 보며 잃어버린 세계를 구하려 했다.’(p.157)는 해석을 이끌어 낸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인용하는 몇몇 책들은 저자가 제시하는 해석 덕분에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도 그중 하나다.
진실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침울하기보다 큰 기쁨을 주게 될 테고 기쁨에 굴복하는 게 내가 너를 버린다는 뜻은 아닐 거야. 단지 분노와 증오의 이야기가 아닌 사랑과 의무의 이야기가 되고, 꿈, 한때 미래를 기대했던 기억, 다시 꿈꾸고픈 갈망이 가득할 거야. 지루할지도 몰라. 네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테니까. 그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시가 될 거야.
『진실에 다가가기』 (후아 쉬, RHK코리아, 2023) p.278
처음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는 뭐야 좀 시시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밑줄 친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서 이상하게 질문이 점점 늘어났다. 이를테면 역사의 편찬 행위와 자신의 강박적인 기록 행위를 겹쳐 보며 이것이 단 하나의 진실일 수 있는가 돌이켜보는 부분, 지나간 일화를 반복해서 떠올릴수록 점점 흐릿해지고 더 불분명해지는 기억의 불완전성 같은 것에서 대해 나도 덩달아 물음표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슬픔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동시대의 역사적인 비극을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왜 누구는 진실을 외면하려고만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글 쓰는 행위가 결국 그를 데리고 가는 곳은 어디인지, 피해자들에게 좀 더 수월하게 감정을 언어로 받아쓸 수 있는 사람이 친구로, 가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서술된 슬픔과 문자로 옮겨지지 못하고 사라진 슬픔에 대해서도 나아가 이런 글을 읽으며 나는 희생자와 생존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추천하고픈 사람
때이른 죽음과 갑작스러운 상실에 슬퍼하고 있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슬픔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불안과 기대로 뒤엉킨 20대를 지나고 있는 사람
이민 2세대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혼란을 이해해 보고 싶은 사람
90년대 미국 대학생이 즐겨듣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찾는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