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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배리 로페즈는 자연과 인간의 유대를 복원하기 위해 일평생 힘쓴 자연주의자다.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표현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극을 포함해 초원, 섬, 사막 등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다. 2020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집필한 마지막 에세이인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이후 북하우스에서 나온 두 번째 책이다. 앞서 언급한 책을 인상 깊게 읽은 터라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더없이 반가웠다.
원래 이 책은 2014년에 봄날의책을 통해 먼저 소개된 바 있는데 절판 상태였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출간 이후 북하우스에서 배리 하우스의 저서들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으로 보인다. 근간으로 호라이즌이 예정되어 있다. (역자가 정지인 님이라니 더욱 기대됨!)
『북극을 꿈꾸다』는 이전 판과 동일하게 신해경 역자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전에 나온 책과 비교해 보진 못했지만 각주에 2024년 기준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는 걸로 보아 내용을 새로 검토한 것 같았다. 생소한 용어나 개념, 인물의 이해를 돕는 옮긴이 주가 풍부한 것 또한 추천 포인트다.
사람들은 자신이 깃든 대지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가? 대지는 품 안에 든 인간의 상상력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어떻게 욕망, 이해하려는 욕망 자체가 지식을 빚어내는가?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23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대지 위에서 현명하게, 그리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답답한 무지를 깨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24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5장까지는 ‘전설만큼이나 먼 땅’에 살아온 동물을 중심으로, 5장부터 9장까지는 이 땅에 도전하는 인간과 압도하는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에 의존해 상상의 대지를 무대에 올리면 어느 순간 이 책의 문장들이 익숙한 성우 목소리의 자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읽힐 때도 있었다. 잘 알지 못했던 북극의 생태와 그곳의 빛과 어둠, 공간과 시간에 대한 원주민들의 다른 감각, 미지의 대륙을 향한 인간의 욕망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얼어붙은 땅과 생명을 조명한다.
저자의 던지는 질문에 나 또한 같은 궁금증을 품게 된다. 발 디딘 땅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 언제든 흘러가버릴 수 있다는 공포, 어제는 열려있던 길이 갑자기 얼음으로 가로막힐 수 있다는 공포, 어떤 묘사로도 감히 상상이 어려운 북극의 사계절, 매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늘 변화하는 땅에서 사냥하고 보금자리를 만들고 번식하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신비에 공감했다.
땅과 유리되며 점차 문화를 잃어가는 이누이트 부족들의 얘기를 읽으며 우리 땅에 대한 생각도 떠올랐다. 우리는 이 땅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잃어버린 시각, 외면했던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북극을 자원의 보고, 생태의 보고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풍경을 사유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대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해준다.
이색 여행지(?) 감상문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치면 금세 난처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 책은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예찬하지 않는다. 그 땅에 존재하는 인간과 생명의 순환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에 대해, 나아가 우리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 중 하나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존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바람 중 하나는 그런 존엄을 우리 각자의 꿈으로, 많든 적든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의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622
특정 집단의 영리 목적으로 파괴되는 산림, 과도한 어획과 오염된 바다, 당장의 이득만을 앞세워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 없이 폭주하는 무분별한 개발 행위에 안타까움과 죄책감 또는 막막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가슴에 와닿는 숱한 문장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단계가 있다면, 삶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존재하는 역설을 파악하고 그런 모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때일 것이다.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634
사람은 모순의 한가운데를 살아내야 한다. 모든 모순이 일거에 제거되는 순간, 삶도 붕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중요한 질문 중 몇 가지는 그냥 답이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야한다. 우리의 삶이 빛에 다가가려 한 하나의 고귀한 표현이 되도록 애쓰면서.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634
영구동토층이 녹아 수 세기 전의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지도 모른다는 뉴스로만 접하는 북극.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다급한 목소리들은 가끔 실존하지 않는 세계에서 전해 내려오는 때늦은 소문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극지방의 현실에 무심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024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추천하고픈 독자
이 책의 재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린 사람
색다른 여행기를 찾는 사람
유학, 이민 등 낯선 땅으로의 이주를 앞둔 사람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사람
북극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
흙길을 걸어본 적 있는 사람
풍성한 영감을 주는 텍스트를 찾는 창작자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