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의 표현법 - 1초 만에 생각을 언어화하는 표현력 트레이닝
아라키 슌야 지음, 신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아라키 슌야는 일본 1위의 광고 회사 ‘덴츠’의 20년 경력의 카피라이터이자 지금까지 20개국에서 1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숱한 광고상을 수상한 베테랑이다. 광고 분야 외에도 이벤트 콘셉트 기획과 기업 브랜딩을 지원하고 매년 대학에서 카피 라이팅 및 아이디어 발상 강의도 하고 있다. 



카피라이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결정적 한 문장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잘 만든 카피 하나가 매출 증진뿐만 아니라 혁신을 꾀하는 기업의 이미지 변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인도 각 세대별로 속담처럼 각인된 광고 카피들이 하나쯤은 있으리라.



한국의 카피라이터들이 쓴 책도 읽어본 적 있다. 그중엔 아이디어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생 책을 다룬 에세이, 영감을 주는 사물, 장소 등을 다룬 에세이가 많았다. 일본의 네임드 카피라이터가 쓴 이 책은 아이디어 창고 대공개 에세이가 아니라 제목처럼 표현법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1초 만에 생각을 언어화하는 표현력 트레이닝'이라는 부제처럼 표현력을 향상시키길 원하는 독자를 위한 워크북에 가깝다. 저자는 화술에 관한 책을 읽어도 표현력은 향상되지 않는다는 말로 서문을 시작한다. 시중에 나와있는 자기계발서 중 화술,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책들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며 자신의 언어로 '전달법'과 '표현법'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저자가 1단계라고 명시한 '무엇을 말할 것인가'이다. 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는 둘째치고 일단 독창적인 아이디어부터 나오지 않는 막막함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한 책이다. 막연한 계획, 머릿속을 맴도는 인상들은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설득해야 하는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프레젠테이션을 마쳐 본 흑역사가 있는 분들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아이디어 정리 노하우가 정리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간결하고 오로지 책의 집필 의도에 부합하는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먼저 표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히고 어떻게 하면 언어화를 잘할 수 있는지, 이때 순간적인 영감을 포착한 메모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어 아이디어 확장의 원천이 되는 메모를 이용하는 '표현력 트레이닝'의 실천 방법을 소개하고 상황별 활용 사례도 살펴본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의 습관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 부록엔 '표현력을 기르기 위한 500가지 질문'을 실었다.



생성형 AI가 알아서 원고를 만들어 주는 시대지만 내 언어를 스스로 발견하고 단련하는데 소홀히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끄럽고 그럴싸하게 정리하는 건 인공지능이 월등히 앞서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독특한 창작의 영역은 늘 남아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더 공고해졌다. 평생 접한 주변 환경, 문화적 배경, 주요 관심사, 호기심의 반경, 인간관계 등 개인의 경험은 저마다 특별하고 여전히 그들 각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문장이 간결하고 큼지막한 도표가 예시가 이해를 돕는다. 책 자체를 완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더 좋다. 당장 급한 해결책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분명 단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책에 실린 의사 전달 방식을 보며 저자가 정말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잘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잠재된 영감을 내가 원하는 순간에 언제든지 끌어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추천하고픈 독자

학교나 직장 등 프레젠테이션 상황에 흑역사가 있는 사람

머릿속 생각을 내 언어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

메모의 중요성은 알지만 효과적으로 메모하는 법은 모르는 사람

강제로 쓰기 연습에 돌입할 수 있는 질문을 찾는 사람

늘 생각이 많지만 정리할 엄두는 나지 않는 사람

독창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무엇이든 도전할 준비가 된 사람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화내고 늘 후회하고 있다면 지금당장 2
매튜 맥케이 외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도서출판 푸른숲의 인문 심리 전문 출판 브랜드인 심심에서 나온 ‘지금 당장’ 시리즈 제2탄!

『또 화내고 늘 후회하고 있다면』을 읽었다.



23년에 출간된 시리즈 첫 번째 책 『우울에서 벗어나는 46가지 방법』도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기대가 되었다. 마치 매뉴얼처럼 참고할 수 있는 구성이어서 도움이 필요할 때 집어 들기 좋은 책이었다. 



제목을 보고 바로 나를 위한 책이라고 집어 들었을 독자를 위해 들어가는 말에서 ‘분노’의 정체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활용 방법에 대해서도 안내하고 있다.



분노는 고통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느끼거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낄 때 이를 극복하려고 화를 내는 것이다.


매튜 맥케이 외  6인  『또 화내고 늘 후회하고 있다면』 (2024, 심심) p.5~6



먼저 화를 덜 내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동을 자제하는 몇 가지 기법을 설명한 다음, 더 어려운 단계인 분노 뒤에 숨어 있는 고통을 관리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가능하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실천해보길 권한다.


매튜 맥케이 외  6인  『또 화내고 늘 후회하고 있다면』 (2024, 심심) p.7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감정을 가라앉히는 응급처치 기술

2부 내 안에 숨은 진짜 분노 찾기

3부 현재에 집중하기 위한 분노 관리법

4부 자기돌봄 기술



1부와 2부에서 분노를 속속들이 들춰보고 3부와 4부에서는 실제로 다스리는 방법을 전달한다.



분노는 화내는 사람이 전부 책임져야 하는 감정이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만들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분노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문제이므로 남을 비난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중요한 건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할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매튜 맥케이 외  6인  『또 화내고 늘 후회하고 있다면』 (2024, 심심) p.25




이 책을 읽고 분노를 다스리는데 독서와 일기 쓰기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들끓는 감정을 잠시 가라앉히고 분노와 거리를 두고 감정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도구다. 다만 현실 도피 구실로 이용해선 기대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상황 파악이 끝났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라는 점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나는 1시간 반 만에 완독했다. 사실 이 책은 완독보다 삶에 적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불쑥 화가 치밀고 불안이 깊은 독자가 두껍고 전문적인 심리학 서적을 독파한 후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고로 당장 급한 사람에게 적절한 분량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천 방법들이 단계별로 정리되어 있다. 저자들이 권장한 대로 순서대로 독서한다면 분노라는 감정의 속성과 기저의 진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보기 쉽게 나열하고 있다. 전부 다 실천하려고 욕심부리기 보다 여러 방법 중 시도해 볼만한 것 몇 개를 골라 시작해 보길 추천한다.



더 읽을거리에 국내 번역 도서와 해외도서 목록이 실려 있다. 국내 번역 도서 중에 『필링 굿』을 가지고 있는데 두꺼워서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오신화 (컬러 일러스트 수록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5
김시습 지음, 한동훈 그림, 김풍기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나 평생 방랑객의 삶을 산 비운의 천재 김시습이 남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는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를 엮은 단편 소설집이다.



수록 작품으로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이 있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활용했고,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했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책은 고전 문학을 대중에서 소개하는데 힘쓰고 있는 강원대 김풍기 교수가 번역했다. 한시 원문과 이야기의 결정적 장면을 담은 컬러 일러스트, 김시습의 일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필독 문헌 6편을 추가로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금오신화』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돌려 읽을 정도로 유명했으나 임진왜란 이후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육당 최남선 선생이 일본에서 발견하여 다시 한국에 소개되었다.



김시습은 세 살 때 시를 지을 수 있었고 다섯 살에 이미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를 이름이 아닌 김오세(金五歳)라고 불러도 모두가 그인 줄 알았다니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만하다.



신동으로 주목받은 것과 달리 이후 김시습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과거에 낙방하고 단종의 양위 소식을 듣는다. 이어 사육신 사건이 일어난 뒤 길고 긴 방랑길에 오른다.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했다 다시 속세를 떠나길 반복한다.



전국을 떠돌다 경주 금오산(지금의 경주 남산) 용장사에 터를 잡고 금오산실을 지어 은거하며 글을 썼는데 바로 『금오신화』가 이 시기에 쓰였다고 한다.



책이 쓰인 시기에도 이미 장안의 화제였고 일본으로 전해지기까지 했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조선 제일의 판타지 문학’이라는 표지의 소개 문구가 기대에 부채질을 했는데 읽은 후의 소감은 오랜만에 전래 동화를 읽은 것 같다는 것이다. 기구한 등장인물들의 사연 때문인지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기도 했다.



왜란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곤 했던 민중들이 이입할 만한 인물들과 그들의 못 푼 한을 달래주는 내용이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을 것 같다. 상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중 「남염부주지」는 김시습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듯 느껴지기도 했다. 



고전을 읽을 때 작가의 일생과 시대 배경을 이해하면 당시에 작품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김시습 깊이 읽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6편의 문헌과 옮긴이 해제가 오랜만에 고전을 읽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까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배리 로페즈는 자연과 인간의 유대를 복원하기 위해 일평생 힘쓴 자연주의자다.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표현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극을 포함해 초원, 섬, 사막 등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다. 2020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집필한 마지막 에세이인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이후 북하우스에서 나온 두 번째 책이다. 앞서 언급한 책을 인상 깊게 읽은 터라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더없이 반가웠다.



원래 이 책은 2014년에 봄날의책을 통해 먼저 소개된 바 있는데 절판 상태였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출간 이후 북하우스에서 배리 하우스의 저서들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으로 보인다. 근간으로 호라이즌이 예정되어 있다. (역자가 정지인 님이라니 더욱 기대됨!)



『북극을 꿈꾸다』는 이전 판과 동일하게 신해경 역자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전에 나온 책과 비교해 보진 못했지만 각주에 2024년 기준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는 걸로 보아 내용을 새로 검토한 것 같았다. 생소한 용어나 개념, 인물의 이해를 돕는 옮긴이 주가 풍부한 것 또한 추천 포인트다.



사람들은 자신이 깃든 대지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가? 대지는 품 안에 든 인간의 상상력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어떻게 욕망, 이해하려는 욕망 자체가 지식을 빚어내는가?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23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대지 위에서 현명하게, 그리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답답한 무지를 깨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24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5장까지는 ‘전설만큼이나 먼 땅’에 살아온 동물을 중심으로, 5장부터 9장까지는 이 땅에 도전하는 인간과 압도하는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에 의존해 상상의 대지를 무대에 올리면 어느 순간 이 책의 문장들이 익숙한 성우 목소리의 자연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읽힐 때도 있었다. 잘 알지 못했던 북극의 생태와 그곳의 빛과 어둠, 공간과 시간에 대한 원주민들의 다른 감각, 미지의 대륙을 향한 인간의 욕망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얼어붙은 땅과 생명을 조명한다.



저자의 던지는 질문에 나 또한 같은 궁금증을 품게 된다. 발 디딘 땅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 언제든 흘러가버릴 수 있다는 공포, 어제는 열려있던 길이 갑자기 얼음으로 가로막힐 수 있다는 공포, 어떤 묘사로도 감히 상상이 어려운 북극의 사계절, 매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늘 변화하는 땅에서 사냥하고 보금자리를 만들고 번식하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신비에 공감했다.



땅과 유리되며 점차 문화를 잃어가는 이누이트 부족들의 얘기를 읽으며 우리 땅에 대한 생각도 떠올랐다. 우리는 이 땅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잃어버린 시각, 외면했던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북극을 자원의 보고, 생태의 보고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풍경을 사유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대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해준다.



이색 여행지(?) 감상문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치면 금세 난처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 책은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예찬하지 않는다. 그 땅에 존재하는 인간과 생명의 순환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에 대해, 나아가 우리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 중 하나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존엄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바람 중 하나는 그런 존엄을 우리 각자의 꿈으로, 많든 적든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각자의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622


특정 집단의 영리 목적으로 파괴되는 산림, 과도한 어획과 오염된 바다, 당장의 이득만을 앞세워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 없이 폭주하는 무분별한 개발 행위에 안타까움과 죄책감 또는 막막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가슴에 와닿는 숱한 문장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단계가 있다면, 삶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존재하는 역설을 파악하고 그런 모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때일 것이다.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634


사람은 모순의 한가운데를 살아내야 한다. 모든 모순이 일거에 제거되는 순간, 삶도 붕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중요한 질문 중 몇 가지는 그냥 답이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야한다. 우리의 삶이 빛에 다가가려 한 하나의 고귀한 표현이 되도록 애쓰면서.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북하우스, 2024) p.634


영구동토층이 녹아 수 세기 전의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지도 모른다는 뉴스로만 접하는 북극.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다급한 목소리들은 가끔 실존하지 않는 세계에서 전해 내려오는 때늦은 소문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극지방의 현실에 무심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2024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추천하고픈 독자

이 책의 재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린 사람

색다른 여행기를 찾는 사람

유학, 이민 등 낯선 땅으로의 이주를 앞둔 사람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사람

북극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

흙길을 걸어본 적 있는 사람

풍성한 영감을 주는 텍스트를 찾는 창작자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안인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쨍한 초록색 표지로 눈길을 끄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54번째 책 파우스트가 나왔다.

괴테와 『파우스트』 모두 널리 알려진 이름이기에 익숙했지만 ‘들어는 봤다’ 이상의 지식은 없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로 접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것도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하지만 『파우스트』를 완독했다는 사람은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다. 악마와 계약한 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큰 틀만 알고 내용은 모르고 살았다. 작품명을 언급하면 모르는 이가 없지만 의외로 완독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파우스트』가 워낙 유명한 고전인 만큼 이미 충분히 많은 번역본들이 경쟁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저명한 독문학 전문가들이 번역한 버전이 여러 문학 전문 출판사들을 통해 나와있다. 이 고전 격전지에 후발주자로 나선 현대지성이 야심 차게 내세운 부분은 '가장 희곡다운 번역', '거장들의 컬러 명화와 함께 읽는 완역본'이라는 부분이었다.



■ 역자의 의욕을 엿볼 수 있었던 일러두기

온라인 도서사이트 미리보기로 본 페이지 중 일러두기부터 인상적이었다. 표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대부분인 일러두기는 기껏해야 6줄을 넘지 않는데 이 책에선 무려 2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판본을 완역한 것인지, 시행의 번호는 무엇을 따른 것인지, 발화자 구분을 위해 어떻게 표시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주석을 달았는지 등은 당연한 안내 사항으로 보인다.



번역가의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띄는 부분은 8번부터 10번까지였다. 문장부호 '―'(Gedankenstrich)의 쓰임이 한국어 줄표와 어떻게 다른지 밝히며 독자가 어떤 호흡으로 읽으면 좋을지, 시의 운율과 호흡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으니 그 부분을 염두에 두 길 당부한다든지, 책에 쓰인 시각 자료의 출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역자의 의욕이 엿보였다.

다른 판본을 먼저 읽어보고 이 책과 비교를 한다면 더 매력적인 서평이 되겠지만 나는 이번에 작품을 처음 읽은 독자이므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의 입장에서 좋았던 점 위주로 적어보고자 한다.



■ 책의 첫인상과 명화의 매력

일단 어마어마한 분량에 놀랐다. 하지만 의외로 인물 간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실제로 읽는 분량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한 500페이지는 될 것 같지만) 대화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줄거리 파악이 조금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읽으면서 이해가 어렵다면 뒤에 실린 옮긴이 해제의 줄거리 부분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작품을 다 읽은 후 12장 분량의 줄거리를 읽으니 전체적인 그림이 좀 더 선명하게 잡히는 느낌이었다.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 책에 실린 다수의 시각자료들이 큰 힘을 발휘했다. 1부는 저명한 서양화가들의 컬러 명화가 실려 있는데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크고 멋있는 회화를 만나면 잠시 숨을 돌리고 그림들을 감상했다. 실제로 볼 기회가 생기면 미술관에 가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2부에 실려 있는 작품은 프란츠 크사버 짐의 작품인데 흑백임에도 인물과 배경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섬세한 표현들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번역서들도 삽화가 실려있을까 궁금해서 도서관에 가서 몇 개 출판사의 판본을 훑어보았는데 현대지성에 실린 시각자료의 양과 품질이 압도적이었다.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양질의 시각자료가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난해한 작품을 읽고 혼란 속에 헤맬 때 읽는 해제만큼 속이 뻥 뚫리는 게 없다. 역자는 작품 해설, 작업 과정, 줄거리 3부분으로 나눠 상세한 해설과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배경을 전달한다. 역자가 맛깔나게 요약한 줄거리만 읽어도 어디 가서 이 작품에 대해 술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연보도 무려 7페이지에 달한다. (괴테 관련 컬러 이미지 포함) 정말 다방면으로 꼼꼼하게 채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현대지성 클래식을 통한 파우스트라는 작품과의 첫 만남은 단연 만족스러웠다. 1부와 2부를 나눠서 출간한 곳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합본 형태로 나온 게 좋았다. 만약 1부만 읽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그럴 확률은 낮을 것 같지만) 2부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 묶여 있어서 1부의 여운을 안고 곧장 2부로 뛰어들 수 있어서 좋았다. 주변에서 이 고전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이 서평은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