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모먼트
권김현영 외 지음 / 그린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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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여성학이 인기 있었던건지 여성학 도서관이 크고 깔끔하게 지어져서 도서관보다 여성학 도서관을 더 들락거렸던 것 같다. 이론 공부 이런거 아니고, 그냥 인문학 사회학 책 읽듯이 여성학 책들을 읽었었고, '이갈리아의 딸들' 이나 크리스타 볼프의 책들도 그 당시 읽었던 책들이 다시 나온 것이다. 졸업 논문도 '벽'의 작가를 인용하여 로빈슨 크루소와 비교하며 '에코 페미니즘'을 주제로 했었다. '여성학'과 현실을 밀접하게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고 가부장제에 절여져 살아 오다가 어느 순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해쉬태그가 뜨고, 그 무렵부터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라.가 나오고, 페미니즘 도서들이 많이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 같다. 


느슨한 연대로 트위터에서 알라딘 서재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폭발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모먼트'라고 할 만한 것은 그것을 오프에 연결시켰을 때인 것 같다. 비슷하게 눈 뜬 애인과 친구들 덕분에 여성학 강의를 찾아 다니기도 하고, 많은 것들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좌절감과 무력감도 함께 왔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수록,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뭘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계속 이야기하자. 책을 읽고 공부하자, 말할 수 있을 때 말하자. 라는 얘기 정도를 계속 했다. 새삼 활동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거나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공부해서 필자가 될 것이라던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했으니, 일상에서 더욱 타이트하게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것? 정도일까. '페미니스트 모먼트'의 '모먼트'가 어떤 모먼트를 이야기하는 걸까. 알고 나면 더 이상 뒤돌아 갈 수 없는 그 모먼트인 것일까? '모먼트'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 타자였던 전희경 선생님의 글이 어떻게 잘 죽을지 생각하는 마음에 계속 남는다. 


40대가 되었다. 이런저런 질병들이 찾아오고, 체력이 떨어지고, 노안이 왔다. 그리고 나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나서야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전까지는 손가락 관절이 아프지 않았기에 워커홀릭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기요양이 필요해지자 그간 불화해 왔던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갔던 페미니스트 친구의 선택을 보며 대안은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몸의 유한성과 죽음의 확실성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몸이(몸에) 있는 존재이고 누구나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 


20대 때와는 달리, 40대가 되는 나에게는 '독립'보다 '의존'이 더 중요한 이슈다. 아프면 '페미니즘을 쉬는'게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그 현실을 마주하고 분석하고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비혼 페미니스트들이 시작하고 마을 운동으로 확장 중인 살림의료협동조합은 나에게 페미니즘의 의제뿐 아니라 방법과 조직론에 있어서도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무엇이 문제인가' 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기도 하다. 

 

한채윤 선생님이 책 말미의 대담에서 말했듯 '선언'보다 그 이후가 중요하다. '선언 이후의 삶', '선언 이후의 실천' 


페미니즘은 너무 재미있다.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고, 그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일상에 체화시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페미니스트 모먼트 이후 나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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