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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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제목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만 보고 엄마와 딸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요즘 페미니즘 서적을 너무나 많이 읽는 거지. 전혀 아니었다. 


저자의 마음을 천분의 일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읽는 내내 저자의 상황에 이입되고, 상상되어 괴롭고 힘들었다. 

1975년 남아공에서 태어났고, 열두 살이 되던 해 원인 모를 병으로 의식불명에 빠진다. 시한부 선고를 받지만 4년 뒤 열여섯살 무렵 의식이 돌아온다. 전신마비 상태로 누구도 그의 의식이 돌아온줄 모르는 상태로 13년간을 보내는 중에 한 간병인이 그가 의식을 찾았음을 발견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알게 되어 점차 건강이 좋아지고, 언어를 배우게 되고, 컴퓨터를 배워 의사소통을 하고, 대학에도 입학, 직업을 가지고, 강의도 하게 된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울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테드 강연을 찾아 보았다. 그가 처음 강의를 할 때 8분 강의를 위해 40시간동안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강의 원고를 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테드 강의 15분 동안을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을 썼을까. 컴퓨터 목소리로 나오는데, 정말 사람이 말하는 것 같고, 마틴의 표정이나 눈빛, 제스춰들이 들어가면서 '의사소통'이 된다. 


번역 제목인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그가 의식을 찾았지만, 전신마비 상태였던 그를 돌보면서 가족이 파괴되었고, 우울증을 앓고, 자살 시도까지 했던 엄마가 했던 말이고, 그가 의식을 찾은 상태에서 들었던 말이다. 그는 상황을 이해하고, 엄마를 용서했지만, 엄마가 언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참을성으로 그 자신의 몸에 갇혀서 주변인들에게 '유령 소년'으로 짐이나 물체 취급을 당했고, 그 상황에서 시설에서 성폭행도 당했다. 


엄청 똑똑한 사람이다. 직관적으로 컴퓨터를 이해하고, 배우고, 공부하고, 컴퓨터 관련 일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검사를 하게 되는데, 그는 생각한다. 


샤킬라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네가 피곤하다거나 목이 마르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빨간 점퍼 대신에 파란 점퍼를 입고 싶다고, 아니면 잠을 자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 


잘 모르겠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내 입에 빨대를 물릴 때,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뭔가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알기에 뜨거운 차를 황급히 들이켜는 대신 차가 좀 식을 때까지 놓아두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등등. 사람들은 날마다 수천 가지 결정을 한다. 그런데 내가 단 한 가지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더러 뭔가를 결정하라는 것은 마치 사막에서 자란 아이에게 바다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의 테드 강연은 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핵심 주제는 '의사 소통'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의사 소통'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의사 소통의 중요성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이야기하는, 혹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소통해요'의 소통과는 그 무게가 현격히 다르다. 


그를 시설로 보내고자 했던 엄마와 망가지는 가족들을 보면서도 꿋꿋이 그를 옆에 두어야 한다고, 그를 돌보는 일을 자처했던건 아빠였다. 두시간 마다 일어나서 전신마비인 마틴을 돌보고, 일을 더 많이 하지만, 좌천되고, 가족들과 싸우면서 마틴을 지켜낸다. 그런 아빠의 절망을 지켜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희망도 없이 시간과 싸워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마틴의 아빠가 어떤 힘으로 버텨냈는지 알고 싶다. 


아빠와 처음으로 바다에 가게 된다.  

놀랍고 무서워 하는데, 아빠가 큰 소리로 파도에 맞서 외친다. 


" 아빠가 네가 떠내려가도록 놔둘 것 같니? " 

"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데 내가 여기서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둘 것 같아? 아빠 여기 있다. 마틴, 내가 널 붙잡고 있어. 아무 일도 생기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인간은 어떤 순간에 이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그런 아빠의 마음은 마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생의 소원 두 가지를 이룬다. 

자신의 개를 가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이룬다. 


잘 모르겠다. 공간, 장소가 가진 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자란 마틴의 반려인 조앤나가 남아공에서 보냈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보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와는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된다. 

몸에 갇혀 전신마비의 상태로 13년이란 시간을 보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마틴을 세상으로 끌어내 준 간병인, 마틴과 함께 했던 가족들, 그리고, 사람들의 손을 잡고 기꺼이 선뜻 열렬히 세상으로 나온 마틴(그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대단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인간승리, 기적의 이야기보다는 마틴을 지키고, 세상에 나오게 만들 수 있게 한 그 힘, 가족과 타인의 힘, 그리고 마틴이 얻게 된 가장 큰 힘 '의사 소통' 에 대한 이야기로 그 부분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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