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재지이 바벨의 도서관 24
포송령 지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김혜경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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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요재지이를 한 두 번 본게 아닌데 말이다.

두껍고 큰 책을 쌓아두고, 심심할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기 좋은 '요재지이'였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로 때깔나게 나온 <요재지이>에서는 보르헤스의 아우라가 덧씌워져, <요재지이>는 드디어 나에게 화장실책에서 환상소설로 그 제 위치를 찾았다. 동양문화권의 독자가 중남미 거장의 눈으로 본 중국의 이상한 이야기에 감탄한다는 건 좀 이상하지만, 보르헤스는 사실 그 앞에 '중남미' 라는 수식어도 '거장'이라는 호칭도 달 필요 없는 '보르헤스' 이지 않은가.

 

'바벨의 도서관' 이라는 때깔나는 세계문학 시리즈의 리뷰를 쓸 때마다 언급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첫 리뷰인 여기서는 얘기해두기로 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보르헤스의 해제가 달린 보르헤스가 고른 작가와 작품들이 있는 29권 시리즈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다.

 

 

'바벨의 도서관'이란 보르헤스가 찾고자 한 '총체적인' 책으로 가는 길인셈이다. 하늘 꼭대기에 닿으려고 했던 바벨의 탑 만큼이나 불가능한 여정에 도전하는 눈이 먼 노작가의 선집은 각각의 작품도 보석같지만, 보르헤스의 그와 같은 불가능한 도전 자체가 미학적이다.

 

포송령이 쓴 수많은 리얼리즘 소설들은 기이한 일들로 넘쳐난다. 기이한 일들은 실재하며 절대 불가능하거나 있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포송령을 에드거 앨런 포나 E.T.A. 호프만보다는 스위프트와 비교한다. '이야기의 환상적인 면 때문만이 아니라 비인칭으로 간결하게 보고하는 어조와 풍자적인 의도 때문에 그렇다.'

 

'처음에 텍스트는 진실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유머와 풍자, 강력한 환상이 물처럼 불안정하고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세계를 그리 어렵지 않게 엮어 낸다.(...) 이야기들의 배경은, 꿈의 왕국, 다시 말해 악몽의 갤러리, 악몽의 미로이다.'

 

해제가 이렇게 흥미진진하단 말이다.

 

리뷰 제목에 쓴 '중국 서재에서 나온 이상한 이야기'는 허버트 자일스가 번역한 ' Strange Stories from a Chinese Studio' 라는 제목에서 따왔다. 제목 그대로 '요재지이'는 '이상한 이야기'이다. 보르헤스의 아우라를 등에 지고 읽기에 지옥은 좀 더 지옥같고, 기이한 일은 더 기이하게 느껴진다.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틀린데, 이번에는 '저승도 유전무죄' 라는 현대판 블랙코미디 같은데, 중국 옛날 이야기에 부패한 귀신관리들과 염라대왕과 그에 맞서는 효자가 나온다.

 

이사씨는 말한다.

사람들마다 극락정토를 이야기하지만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의식이 까무룩하니 우리가 온 곳도 모르는데 어디로 가는지 또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다면 죽은 다음에 다시 죽고 태어난 뒤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보르헤스, 마르케스가 떠 올랐던 가장 기이한 상상이 나오는 단편은 '어깨밟기' 이다.

 

새 흉내를 잘내는 곽생과 어울리게 된 유생 차림새의 사람들은 말한다.

"손님에게 이런 기막힌 묘기가 있었구려. 그 답례로 우리도 손님께 '어깨 밟기 놀이'를 보여 드리면 어떻겠소?"

그 말에 모두들 시끌벅적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맨 앞의 한 사람이 등줄기를 펴고 꼿꼿이 서자 곧이어 또 한 사람이 그의 어깨 위로 날아올라가 역시 빳빳한 자세로 섰다. 계속해서 차곡차곡 네 사람이 그렇게 날아올라갔다. 하지만 날아오를 수 있는 높이를 넘어서자 그 다음 사람부터는 어깨와 팔뚝을 밟아 마치 사다리를 타듯 위쪽으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사람이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 속까지 뻗어 나간 것처럼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였다. 곽생이 놀라 쳐다보는 사이, 그들은 갑자기 일자형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지더니 잘 닦인 길로 변했다. 곽생은 놀란 나머지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다가 그 길을 따라 집으로돌아왔다.

 

'육판관의 수술' 은 일본이건 우리나라건 중국이건 어디서 나왔다해도 이상하지 않은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인데, 결말에 이르는 과정과 해석이 기묘하다.

 

이사씨는 말한다.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의 발에 갖다 붙이는 짓은 억지로 일을 꼬이게 하는 망령이다. 하지만 꽃가지를 잘라 다른 나무에 접목시킨다는 생각은 얼마나 참신하며 창조적인 발상인가? (..) 육판관은 진정 흉물스런 거죽에섬세한 심성을 지녔다고 말할 만한 분이다.

 

자꾸 자꾸 생각나는 이야기는 두 장 남짓의 짧은 '보옥의 꿈'

일장춘몽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그 뫼비우스의 띠가 몽환적이다.

 

보르헤스의 해제를 읽고 책을 읽는 순간, 이 책은 지금까지 읽던 '요재지이'가 아니라, '보르헤스'가 읽어주는 '요재지이' 가 된다는 것. 재미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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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0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우쉰(주신)이란 여배우가 엄청나게 이쁘게 나온 "화피"라는 영화가 원작이 요재지이의 한 에피소드였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