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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김하영 지음 / 책벌레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최근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를 놓고, 몇 년전까지 지겹게 들었던 용어 하나가 다시금 수중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NL'이란 단어죠. 거창하게 '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 다니실 때 데모 몇 번 나가보고, 세미나 몇 번 해보신 분들은 이 'NL'이란 말이 그다지 낯설게 들리시진 않을 겁니다.
NL과 좌파가 가장 대립적인 관점을 보이는 지점은, 바로 한반도 문제(북한, 남한, 그리고 미국)에 대한 각각의 입장에서입니다. NL 친구들이 미국의 '식민지'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압제 없는 통일조국'을 건설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좌파 친구들은 이들의 '민족주의'가 결국 '몰계급적'인 입장에 서있으므로, 오늘날 노동자계급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과제의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반동적' 이데올로기라고 공박하고 있죠.
그렇다면, 왜 NL 친구들은 이런 입장을 띠고 있을까요? 그들 스스로가 대체로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부분입니다만, 그들의 사상은 '김일성주의', '주체사상'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은(물론,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이 다르겠지만),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에다가 김일성이라는 한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를 결합한 '유사(pseudo) 사회주의'입니다. 주체를 중심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북쪽에서는 지배계급이, 그리고 남쪽에서는 NL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이 책의 저자는 따라서 이러한 편향된 민족주의적 시각으로서는 한반도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정치, 사상의 자유가 없으며, 노동자의 단결권이나 파업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오히려 남한보다 더 억압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와 같은 북한 내의 계급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편향된 민족주의적 시각을 버리고, 국제주의적 관점(사실 '계급적 관점'이란 말로 바꿔써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만)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것을 주장합니다.
저자는 우선 그간의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면서, 문제의 원인이 '미국'에 있음을 우선 명확히 합니다. 미국 자신은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사실상 가장 '위험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핵사찰을 강요한다거나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을 핵미사일로 둔갑시키는 등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대북 압박이 이라크나 기타 그들이 칭하는 '불량국가'에 가하는 압력과 동일선상에 놓인 문제임을 논증합니다.
그렇다면, NL 친구들의 주장처럼, 우리는 미국에 맞서는 북한 정권을 우리는 지지해야 할까요.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북한 정권 역시 인민들을 수탈하는 지배계급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남한의 좌파에게 있어서 이들 역시 '타도'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북한 정권은 그간 미국의 압력이나, 남한의 존재를 적대시함으로서 이를 자신들의 지배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남한 지배층과 암암리에 '교류'하면서 서로 필요할 경우에 '도와주는' 역할까지 해왔다는 점을 밝힙니다.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지배체제가 각기 공고해졌다는 점이나,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두고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이른바 '총풍' 사건 등은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NL 친구들이 내세우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남한 노동자와 북한 노동자간의 '계급적 연대'를 주장합니다. 남북 모두, 오늘날까지 공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강력한 노동자계급이 형성되었으며, 이들의 연대는 이러한 한반도의 위기상황 해소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결론으로 내세웁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에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혹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은, 이 책이 저자가 1997~2001년에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미리 고려하시구요. 또, 전체 6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5장은 맨 처음, 혹은 맨 나중에 읽으시기 바랍니다. 5장은 북한 사회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내용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여타의 장과는 구분해서 읽으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