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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원이 소중한 분께 권해드리는 도서목록입니다.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썸데이 서울
김형민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6년 02월 08일에 저장
절판
낮은 곳에서 바라본 세상. 그 곳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살아숨쉬는 듯 합니다. 아주 평범하지만, 그래서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5년 01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법을 지키면 바보인 세상에서 꼬일대로 꼬인 이 나라 법조계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권위에 눌러죽지 않고 떳떳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보아야 할 책!
돌아온 자살토끼
앤디 라일리 지음 / 거름 / 2005년 2월
7,800원 → 7,020원(10%할인) / 마일리지 390원(5% 적립)
2006년 02월 08일에 저장
구판절판
고통은 때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토끼의 엽기적인 모습에서 한참을 웃기도 하고, "나는 왜 죽지 않고 살이있는거지?" 하는, 아주 무거운 질문을 가벼운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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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 - 상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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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 신문에서 이 소설의 출간을 알리는 소개글과 함께 곽경택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는 글을 읽고나서다. 출간과 동시에 곽경택 감독의 영화화 이야기가 겹쳐진 것으로 보아 내가 어느 정도 '작전'에 말린 게 아닌가 싶긴 하였지만, 어쨌든 일정한 흥행가도를 달려온 감독이 영화로 만들겠다면 읽어볼 만한 어떤 '코드'가 읽지 않겠냐 생각되었다. 게다가 작가도 '무라카미 류'라는 일정한 인지도의 보유자.

이 도서의 전반적인 홍보카피는 '북조선 VS 일본'의 대결국면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 작가가 의도한 바에서 그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즉 '북조선'은 이 소설의 어떤 핵심적인 키워드는 아니며, '허약해진 미래의 일본'의 실체를 벗겨내는데 필요한 '부분요소'로서 첨가되어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여러 바이러스가 침입하듯, 곪을대로 곪은 '일본'의 사회와 영토에 '북조선'이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함으로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가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어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 및 전개과정 등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기대하고 읽는 독자라면 다소 핀트를 잘못 잡았다고 해야 할까. 여튼, 한승진 이하 선발대원들이 후쿠오카돔을 점거한 이후부터의 스토리는 철저히 일본내적 문제에 국한된다. 이를테면,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세력에 의한 규슈 주민들에 대한 차별 문제 등, 일본인이 아닌 한 그닥 이해관계를 느낄 수 없는 화제들이 이 소설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과정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간혹 옛 흑백필름을 돌리듯, 침투한 고려원정군 대원들의 북조선내에서의 과거사도 소개되지만, 그건 이미 남한과 일본 등에 소개되어온 북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재현한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염려되는 것은, 무리카미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고려원정군 대원들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의 근원이, 그들 자신의 부모세대가 일제시대에 핍박받았던 것에 대한 반발에 있다고 묘사하는 듯한 뉘앙스이다. 오늘날 남북한 사람들이 일본에 갖고 있는 일종의 저항감 중 상당한 부분이 그러한 식민지 통치시절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나, 전후, 그리고 현재까지 일본 사회의 과거사 인식의 태도가 이 반작용을 몇배나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서 무라카미는 '규슈 VS 혼슈'의 대결국면은 자주 조명하면서도, 정작 고려원정군의 '한 핏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이니치'들이 받아온 억압과 차별의 문제는 전혀 제기되고 있지 않고 있다.

작가는, 자신은 이 소설을 어떤 정치적, 역사적 관점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고 하고 있다. 허나,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의 관점을 그리기에는 '북조선과 일본의 대결'이라는 명제의 스케쥴이 워낙에 커서, 정작 독자들은 작가의 그러한 '소박한' 바램을 들어줄 수 있을래나 모르겠다. 하긴 원한대로 읽힌다면 작가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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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l2002 2006-05-1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날아가서, 다시 씁니다만.

1) 이 소설이 기존에 국내에 알려져 있던 북한의 상황을 나열하는 식이고, 흑백필름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하셨습니다만, 북한의 상황이 알려져만 있지 거기에 대한 어떠한 감정적, 정서적 반응이 소설 등의 문학으로 표출된 적이 없습니다.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그런 것을 쓰니, 쓰리기도 하겠지만 현실은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북한의 상황을 다 아는 시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들 살아가느라 바쁘고, 아니면 아직 연륜이 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 안다'는 전지적 시점에 대한 묵시적 동의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아는 것 같은데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는 함정이 생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2) '자이니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 소설이 <남벌>과가 아니므로 그것까지 여기서 다루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너무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자이니치'의 문제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보면,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니 영역을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가네시로 소설 속의 '더 좀비스' 같은 친구들이 더 과격해지면, 이 소설의 이시하라 그룹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3) 그리고, 소설을 철저히 저편 세계의 이야기로만 보면 시간때우기 그 이상의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소설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나 계기 정도의 의의는 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사전 차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히 일본 이야기로서, 규슈 대 도쿄 구도라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군 병사도, "저런 식의 지역대립 구도는 공화국에도 있다"고 할 정도이니까요. 이 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저런 식의 구도가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며 이 책에 묘사된 재원분배, 파벌투쟁 등의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인정하기 껄끄러운 내용이라고 하여 이쪽에는 없는 '저쪽'만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판타지 소설에 다름 아니겠지요. (판타지도 나름대로 현실풍자가 있지만;;)

소설 속에는 같은 북한 군인들끼리도 미세한 분야에서는 관점과 입장이 다 틀리고, 북한군을 보는 일본인들도 자신의 지위와 입장과 분야에 따라서 현저히 서술 방식이 틀리게 나옵니다. 그것을 "사실은 작가가 전부 돌아가며 자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위장"이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순진한 시각, 짜증나는 시각, 논리적인 시각 등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일단 한 자리에 모아놓은 것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1단계라고 생각합니다. 100분 토론도 그래서 하지 않습니까.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마이클 무어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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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이클 무어'에 대한 소개는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올드보이'의 수상 덕분에 그의 얼굴까지 이미 덩달아 여러번 전파를 탔었고, 또 그 영화의 한국 개봉이 이미 코 앞에 다가왔으니 웬만한 이들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굳이 '화씨 911'이 아니더라도, 그가 만든 책이나 영화는 이미 우리 앞에 선보인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럼바인', 그리고 책 '멍청한 백인들' 등.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의 저작이 지닌 미덕이 '감추어진 진실들을 들춰내는 것'에 있다면, 마이클 무어의 그것이 지닌 미덕은 '밝혀진 진실들을 어떻게 행동으로 반영시켜야 할 것인가'에 있다. 하긴, 이 책과 '화씨 911'이라는 영화 자체가 마이클 무어의 '행동'이니까.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둔 상태에서 무어는 어떻게든 부시를 떨어뜨려볼 작정으로 이 두 저작물을 남긴 셈이다.

어떻게 '실용적'인가. 그는 '테러를 막을 생각을 하지 말고,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을 막을 생각을 하라'고 주문한다. 또 무어는, 이웃의 보수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부시를 낙선시키기 위한 각 개인들의 행동지침까지 나열하고 있다.

어떤 글이, 단순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는 주의, 주장까지 내포되어있을 경우 그것이 논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이를테면, 책의 말미에서 무어는 부시에 맞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토 총사령관 출신인 '웨슬리 클라크'를 내세우는데(이 사람은 결국 민주당 경선후보에서 낙선했다), 마이클 무어의 그간의 입장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의외인 셈이다. 무어 역시 이 '의외'라는 반응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 이 책을 통해 '왜 클라크인가'에 대한 여러 이유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렇게 외친다. "그 사람이 쿠시니치든 딘이든, 오프라든 행크스든, 아니면 훌륭한 장군이든, 나는 승리를 위해 뭐든 할 태세가 되어 있다."

결국 '부시 낙선'이라는 명제의 완성을 위해 누구와든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인 셈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 팀 로빈스의 입장을 지지한다(지난번 '부시 vs 고어'의 경선 당시, 팀 로빈스는 고어가 아닌, 랄프 네이더를 지지한다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결국 부시가 당선되자 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인 숀 펜은 팀 로빈스를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들리는 소문에는, 최근에는 촘스키조차 '민주당에 표를 던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고 한다.

왜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지는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강화하고, 평양에 대한 폭격을 계획하였으며, 수단의 제약공장을 폭격한 것은 공화당 정권이 아니었으며,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이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닉슨이나 카터 역시, 친미정권에 대한 무기지원이나 제3세계 민중들에 대한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였다는 사실은 (다른 이가 아닌 촘스키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민주당일까? 그것은 혹, '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한계인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 '비판적 지지' 논쟁은 보수주의자들, 파시스트들이 집권해온 국가에서는 항상 다툼의 대상이 되어지는 듯 한다. 물론, 그 비판적 지지의 대상이 되는 '자유주의' 정당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비판적 지지론의 적용 여부가 결정되기는 하겠지만. 민주당에 대한 촘스키나 무어의 '관대함'은 좀 더 공부해 볼 '꺼리'임에는 틀림없다.

무어의 마지막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전반적인 책 내용이 유익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그가 인용한 몇 가지 '지침'들은 우리의 경우에도 적용가능한 부분이다. 미국에 반대할 수 있는 논리, 파병에 반대할 수 있는 논리,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들은 이 책 여러 곳에 잠재해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가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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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김하영 지음 / 책벌레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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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를 놓고, 몇 년전까지 지겹게 들었던 용어 하나가 다시금 수중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NL'이란 단어죠. 거창하게 '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 다니실 때 데모 몇 번 나가보고, 세미나 몇 번 해보신 분들은 이 'NL'이란 말이 그다지 낯설게 들리시진 않을 겁니다.
 
NL과 좌파가 가장 대립적인 관점을 보이는 지점은, 바로 한반도 문제(북한, 남한, 그리고 미국)에 대한 각각의 입장에서입니다. NL 친구들이 미국의 '식민지'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압제 없는 통일조국'을 건설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좌파 친구들은 이들의 '민족주의'가 결국 '몰계급적'인 입장에 서있으므로, 오늘날 노동자계급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과제의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반동적' 이데올로기라고 공박하고 있죠.
 
그렇다면, 왜 NL 친구들은 이런 입장을 띠고 있을까요? 그들 스스로가 대체로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부분입니다만, 그들의 사상은 '김일성주의', '주체사상'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은(물론, 보는 이에 따라 관점이 다르겠지만),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에다가 김일성이라는 한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를 결합한 '유사(pseudo) 사회주의'입니다. 주체를 중심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북쪽에서는 지배계급이, 그리고 남쪽에서는 NL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이 책의 저자는 따라서 이러한 편향된 민족주의적 시각으로서는 한반도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정치, 사상의 자유가 없으며, 노동자의 단결권이나 파업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오히려 남한보다 더 억압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와 같은 북한 내의 계급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편향된 민족주의적 시각을 버리고, 국제주의적 관점(사실 '계급적 관점'이란 말로 바꿔써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만)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것을 주장합니다.
 
저자는 우선 그간의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면서, 문제의 원인이 '미국'에 있음을 우선 명확히 합니다. 미국 자신은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사실상 가장 '위험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핵사찰을 강요한다거나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을 핵미사일로 둔갑시키는 등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대북 압박이 이라크나 기타 그들이 칭하는 '불량국가'에 가하는 압력과 동일선상에 놓인 문제임을 논증합니다.
 
그렇다면, NL 친구들의 주장처럼, 우리는 미국에 맞서는 북한 정권을 우리는 지지해야 할까요.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북한 정권 역시 인민들을 수탈하는 지배계급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남한의 좌파에게 있어서 이들 역시 '타도'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북한 정권은 그간 미국의 압력이나, 남한의 존재를 적대시함으로서 이를 자신들의 지배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남한 지배층과 암암리에 '교류'하면서 서로 필요할 경우에 '도와주는' 역할까지 해왔다는 점을 밝힙니다. 7.4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지배체제가 각기 공고해졌다는 점이나,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두고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이른바 '총풍' 사건 등은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NL 친구들이 내세우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남한 노동자와 북한 노동자간의 '계급적 연대'를 주장합니다. 남북 모두, 오늘날까지 공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강력한 노동자계급이 형성되었으며, 이들의 연대는 이러한 한반도의 위기상황 해소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결론으로 내세웁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에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혹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은, 이 책이 저자가 1997~2001년에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미리 고려하시구요. 또, 전체 6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5장은 맨 처음, 혹은 맨 나중에 읽으시기 바랍니다. 5장은 북한 사회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내용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여타의 장과는 구분해서 읽으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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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지승호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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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인터뷰'의 차이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다음 두 가지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글'은 문자중심적 체계인데 반해, '인터뷰'는 언어중심적 체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역할적인 측면에서, '글'은 한 개인이 혼자서 수행하는 작업이고, '인터뷰'는 두 명 이상이 질문과 대답을 각각 담당하는 복합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자의 본질을 보다 비판적으로 검토할 때, 인터뷰는 글이 갖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측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머리와 글 속에 존재하는 지식이 자신의 입을 통해 터져나왔을 때,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적용력을 갖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며, 글로 표현된 글쓴이의 생각이 인터뷰어라는 '도전자'를 만나 공개적인 장에서 검증받는 장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책을 쓰면서도 인터뷰나 공적인 토론의 장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물론 어떤 특별한 이유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수의 경우는 자신의 사상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검증'받는다는 사실이 꽤나 불편하게(혹은 불쾌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우리는 늘상 신문, 잡지, 각종 출판물 등에서 수많은 인터뷰 기사를 보지만, 제대로 된 인터뷰를 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보여지는 인터뷰어의 질문은 '인터뷰이'(interviewee)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입맛에 맞는 질문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인터뷰이의 답변 속에서 논리적 모순이 보이는 부분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엮어내는 것이 인터뷰어의 역할임에도, 그저 미리 준비해 간 질문만 딱딱 물어보느라 질문/답변 사이의 유기적 연결성은커녕 계속된 단절만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식의 인터뷰라면, 그냥 이메일이나 서면, 아니면 인터뷰이의 글 속에서 유추해서 답을 달면 될 것을, 일부러 그 사람과 대면하여 묻고 답을 할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사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인터뷰어가 없다는 데서 기인하는 부분이 클 것이다. 신문/방송/출판물 등등을 보라. 대부분의 인터뷰는 '기자'가 수행한다. 기자는 기자 개인의 주의/주장보다 팩트에 더 시선을 기울이기 때문에 분명 인터뷰어와는 그 역할이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몇년째, 인터뷰만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지승호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승호의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우선 그가 참 성실하다는 점이다. 인터뷰이를 만나기 전에 앞서 그들의 글을 일일히 읽고, 검토하며 다소나마 논쟁적인 요소가 될 부분을 인터뷰의 장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는 앞서 말한 기존의 인터뷰의 문제점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그의 인터뷰 과정에서 엿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터뷰이에 대한 지승호의 질문이 상당히 '예의'를 갖추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승호를 만난 인터뷰이들의 공통적인 평가가 '그와 이야기하는게 편하다'는 것이라는데, 바로 그 때문일까. 나는 그의 질문이 보다 '공세적'(?)이었으면 좋겠다. 책 뒷표지에 적힌 추천글에서 진중권은 지승호의 인터뷰가 '주관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나는 때때로 그의 질문이 '의도적인 주관성'을 띨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뷰어 개인의 편향에서 인터뷰를 취하자는 게 아니라,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상대진영의 시각에 서서 인터뷰를 진행해보는 것도 논쟁의 공공적인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간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나와 같은 불만을 가졌던 독자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또, 이 책의 인터뷰이로 선정된 사람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논객들이기에, 그들의 글에서 미처 확인할 수 없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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