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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 - 상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평점 :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 신문에서 이 소설의 출간을 알리는 소개글과 함께 곽경택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는 글을 읽고나서다. 출간과 동시에 곽경택 감독의 영화화 이야기가 겹쳐진 것으로 보아 내가 어느 정도 '작전'에 말린 게 아닌가 싶긴 하였지만, 어쨌든 일정한 흥행가도를 달려온 감독이 영화로 만들겠다면 읽어볼 만한 어떤 '코드'가 읽지 않겠냐 생각되었다. 게다가 작가도 '무라카미 류'라는 일정한 인지도의 보유자.
이 도서의 전반적인 홍보카피는 '북조선 VS 일본'의 대결국면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 작가가 의도한 바에서 그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즉 '북조선'은 이 소설의 어떤 핵심적인 키워드는 아니며, '허약해진 미래의 일본'의 실체를 벗겨내는데 필요한 '부분요소'로서 첨가되어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여러 바이러스가 침입하듯, 곪을대로 곪은 '일본'의 사회와 영토에 '북조선'이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함으로서 벌어지는 각종 에피소드가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어떤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 및 전개과정 등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기대하고 읽는 독자라면 다소 핀트를 잘못 잡았다고 해야 할까. 여튼, 한승진 이하 선발대원들이 후쿠오카돔을 점거한 이후부터의 스토리는 철저히 일본내적 문제에 국한된다. 이를테면,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세력에 의한 규슈 주민들에 대한 차별 문제 등, 일본인이 아닌 한 그닥 이해관계를 느낄 수 없는 화제들이 이 소설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과정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간혹 옛 흑백필름을 돌리듯, 침투한 고려원정군 대원들의 북조선내에서의 과거사도 소개되지만, 그건 이미 남한과 일본 등에 소개되어온 북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재현한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염려되는 것은, 무리카미가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고려원정군 대원들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의 근원이, 그들 자신의 부모세대가 일제시대에 핍박받았던 것에 대한 반발에 있다고 묘사하는 듯한 뉘앙스이다. 오늘날 남북한 사람들이 일본에 갖고 있는 일종의 저항감 중 상당한 부분이 그러한 식민지 통치시절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나, 전후, 그리고 현재까지 일본 사회의 과거사 인식의 태도가 이 반작용을 몇배나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서 무라카미는 '규슈 VS 혼슈'의 대결국면은 자주 조명하면서도, 정작 고려원정군의 '한 핏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이니치'들이 받아온 억압과 차별의 문제는 전혀 제기되고 있지 않고 있다.
작가는, 자신은 이 소설을 어떤 정치적, 역사적 관점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고 하고 있다. 허나,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의 관점을 그리기에는 '북조선과 일본의 대결'이라는 명제의 스케쥴이 워낙에 커서, 정작 독자들은 작가의 그러한 '소박한' 바램을 들어줄 수 있을래나 모르겠다. 하긴 원한대로 읽힌다면 작가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