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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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선물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하룻새에 읽어버렸다. 독서를 즐기지 않는 동생이 이 책을 어디서 알아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것도 '하느님의 섭리'일까? 나도 경우는 다르지만 아주 어렸을 때 성당과 인연을 맺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르고 얼마전에 영세를 받았다. 그래서 이 글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첫 장을 읽으며 느낀 것은 부러움이었다. '나도 누가 이런 거 시켜줄테니 갔다 와서 기행문 쓰라고 하면 하던 일 다 팽개치고 다녀올텐데'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복잡한 여름 한철의 파리도 그렇게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데, 한적한 철, 더 고즈넉할 수도원이라니.. 나도 그렇게 꿈같은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느낀 것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일상'이었다. 결국 내가 생각하고 있던 수도원은 그야말로 내 머릿속의 수도원이다. 고요함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신과 마주하는 일보다는 차라리 불안하고 번잡스런 내 현실이 견디기 쉬울 것만 같았다. 작가가 오랜 시간 방황하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신을 다시 찾았듯, 수도는 삶 속에서 계속 이루어진다.

나는 사람 만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에도 정말 수녀원에나 들어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작가가 겪었던 18년과 같은 세월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 더 많이 치열하게 부딪히고, 그런 다음에 다시 신에게 돌아가도 신은 작가를 받아 주었듯, 나도 받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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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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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2년전부터 읽으라고 했던 책. 해라해라 하면 더 하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려나. 나는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더 이 책을 멀리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야 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렇게 읽어보라고 권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점에 들렀다.

딱 50쪽까지 읽고나서, 나는 내 남자친구가 희안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든 일만 있으면 자기 동굴로 들어가버리는 그를 보고 '정말 유별나. 저런 성격은 못견디겠어'라고 생각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그도 그냥 평범한 한 남자였던 것이다. 오히려 잘못은 그를 이상성격의 소유자로 취급해버린 나에게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던 그의 권유는,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좀더 그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단, 이 책을 읽었다고 기고만장하여, '이 책대로 좀 해 보라구!' 하는 일은 없으시길. 저자가 자기 책이 그렇게 쓰이는 걸 알게되면 혀를 끌끌 찰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화성인이긴 하지만, 유일무이한 화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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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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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생이라면 한번은 읽어보아야 하는 책일까? 한때 나는 이 책이 사람을 '빨갛게' 만들려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그 말 뜻이 '젊어서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는 사람도 바보지만 사십이 넘어서도 공산주의자인 사람도 바보다' (맞나?) 라는 말과 같은 뜻인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것은 주인공이라는 사람 자체다.

우선 그는 아주 '무모한' 사람이다. 어떤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듯 오늘날 소위 '거대담론' 이란 것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 그렇게 막연하고도 엄청난 목표를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로서는 잘 그려지지도 않는 그 목표를 위해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치열한 삶을 만들어갔다. 주위 사람들이 증언하는 바 그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자신이 남긴 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는 말을 살면서 그대로 실천했다고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그는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의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새로운 인간상'을 꿈꾸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을 많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인간'에 대한 정의는 일단 내려 놓고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금 인간 자체를 파내려가는 것은 인문학의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무슨 공부를 하고 생각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사회과학 서적에 국한되지 않은 엄청나게 다양한 독서를 했다는 데에서 분명 사회 뿐만이 아닌 인간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바라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정의로우며 진실하고 이타적인 인간상을 꿈꾸었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 그 인간상이 그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었단 점이 문제였다면 문제일 수 있었으리라.

더불어 나에게는 프랑스 사람이 쓴 글을 읽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번역된 책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쪽 사람들이 쓴 글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하고 될수 있는 대로 그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장 코르미에 또한 대단한 사람이다.

확실히 '한번쯤을 읽어보아야 할 책'이었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 어떤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좀더 삶에 대해서 용기를 내자고 중얼거려 보았다. '인간은 꿈에 세계에서 내려'온다고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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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근대 여명기의 거인들 1:라블레
이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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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라블레라는 이름은 얼핏 들어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숙제로 읽게된 이 책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해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만일 내가 전공 공부를 계속한다면 그것이 무엇에 쓸모가 있나 하는 의문이었는데, 모든 일이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블레의 이력은 특이했다. 처음에는 수도사로 시작해서, 의사가 되고, 나중에는 소설가가 된다. 하지만 그다지 관계없어 보이는 직업들 사이에는 '위마니슴'이라는 일관된 정신이 깔려있다. 하지만 라블레가 자유롭게 그의 모든 생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6세기의 프랑스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라블레는 그저 침묵하고만 있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고자 했고, 소설이라는 장르, 풍자라는 방법을 택하였다고 보여진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라블레는 비겁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그는 그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한번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고 죽음을 택하는 것 보다, 살아남아서 어떤 식으로든 계속 비판하고 글을 남기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라블레는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젊은이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라블레는 중세의 잠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리고 있던 시대에, 새로운 인간상을 탐구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인간은 신에게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 다음 길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었다. 사실, 신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은 부자유스러울 지 모르지만, 대신 책임져 줄 대상도 있고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뇌하지 않아도 된다. 라블레는 외롭고 불안한 인간의 모습과 그가 가야할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지식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이환 선생님께서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던 것일까? 선생님께선, 라블레 연구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문제를 짚어내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소설을 쓴 라블레나, 라블레를 연구하신 이환 선생님이나, 그 연구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학생들이나 결국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개인의 학문적 호기심 충족을 넘어서, 인문학이 가야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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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 우리시대의 지성 5-011 (구) 문지 스펙트럼 11
주경철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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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는 자들은 지식과 사랑을 모두 망쳐놓는 놈들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은 이런 말로 시작되는 작고 얇은 책이다. 이런 책에 약 열 다섯 학자의 저서가 소개되어 있으니 요약본이 분명한데, '책머리에' 가 이런 말로 시작되고 있어 대체 책을 읽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까지 끌어오지 않아도 요약된 텍스트들이 원래의 텍스트를 얼마나 빈약하게 만드는지는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사의 명저들에 대한 단순한 요약본이 아니다. 저자는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 어려운 논문과 책들을 읽고 나름대로 조리해서, 비전공자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었다.

저자가 선택한 재료들은 특히 두 가지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첫째로, 어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들에 대한 서양 역사학자들의 해석과 논쟁 자체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어떤 역사책을 읽든지 그 안에는 '객관'으로 가장한 저자의 주관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같은 사실을 놓고 벌어지는 학자들의 각기 다른 해석과 치열한 토론 - 때론 싸움에 가까운 - 들을 보여줌으로써, 역사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해 준다.

두 번째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역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배웠던 역사들에서는 주로 왕조의 이야기, 정치 세력이 바뀌는 이야기가 골격이 되고 그 외의 이야기들은 곁다리들처럼 자리했다. 그러나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이야기는 '빈민과 걸인의 역사'이다. 또한 저자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사회경제사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경제적인 요인이 어떻게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내용들도 찾아볼 수 있다.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연구들도 등장하고,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병균들이 인간사에 미친 영향들도 보여준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본래 학부 수업용으로 준비한 프린트물들이었다고 한다. 역사 속의 새로운 사실들과, 새로운 시각들, 역사학의 거장들의 저서를 간단하게나마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수업은 유익하고 재미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읽었다면 그가 한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기 적어도 한명이 요약서를 읽고 역사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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