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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에 읽은 책 가운데 이 책을 '올해 최악의 책'으로 선정하는 바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인문학 서적들에서는 볼 수 없는 분노의 감정으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의 오랜 '강사' 경험에서 얻어진 분노의 표출을 통한 텍스트(강의)에 대한 집중도를 높혀보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나 역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빠져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다보니 책의 이곳 저곳에 놓여져있는 자기 모순을 주체하지 못하는 작가(저자라고 말하기에 이 책은 저작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기 부족하다. 단지 텍스트로서의 작품성을 그나마 인정하는 바이다.)의 어눌함이 느껴진다.
물론 나 역시 오래전부터 비슷한 말을 해 왔다. "장유유서가 나라 망친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장유유서가 아무 상황에서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고, 수직적 조직체계에 까지 미치는 영향이 커서,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해도 천 보좌관이 말 한마디 뻥끗하지 않는 겉만 민주주의고, 속은 독재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 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은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서두의 약장사 같은 문체에 '혹'해서 챙겨왔는데, 읽어내려가다보니 나이값 못하는 아무개 목사와 아무개 정치인, 그리고 아무개 언론인 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는 내용들로 가득채워져있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사실 작가의 사상이라기 보다는 중국인들의 주장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표현한 수준이다. 물론 나는 중국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공자라는 인물이 저평가(우리나라에 비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몇몇 부분들에 나타나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작가는 유교의 태생이 통치를 위한 것이었음을 언급하며,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들어보면 달변이다. 그래서 '통치 이념을 없애자'는 것이 작가의 주장인가? 유교라는 통치 이념이 과연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한 나라의 법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들이 가지는 보편적 가치 기준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표현한다. '보편적 가치 기준'이란 단어를 작가가 이해할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하는 나로서는 사전적 설명을 넘어가고 보편적 가치 기준의 폭을 넓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채용신선생께서 샘골에 학교를 세우고 농민을 개혁하기 위해 교육에 몸바치신 이유가 바로 '보편적 가치 기준'을 넓리 보급하기 위함이었다 할 수 있다. 또한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게 하여 관에서 정한 규정을 알지 못하여 따르지 못하고 죄인이 되는 수많은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한글을 만드신 것도 또한 '보편적 가치 기준'을 알리려 하였던 것이다.
얼마전 '루저녀'로 잠시 소동이 있었다. 어제 기사에 보니 일본의 아무개 신문사에서 '루저녀 소동'은 한국인들의 남말하기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라는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절대 공감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오랜 습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예근성, 기회주의, 무한경쟁, 약육강식...
안타깝게도 이 책의 작가 또한 이런 단어들을 가지고 이 책을 써내려갔다고 나는 단언할수 있다.
아테네 신전 기둥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다고 한다.
"네 자신을 알라"(이 말은 흔히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알려져있지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한국인의 습성으로 길러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자 앞에서 쉽게 비굴해지고, 얻을 것이 있으면 굽신거리고, 이익이 보이면 의를 잊고(공자:이가 보이거든 의를 생각하라), 승자만이 선하고, 가진자만 살아남을 수 있고, 약자는 강해지기 전에 짓밟아야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에서 길러지고 살아 왔던 것이다.
친일이나 친미가 나쁜 것인가? 친러는 어떤가?
일본과 친하게 지내려고 지금도 일본에 한국 대사관이 있다. 미국, 일본, 러시아도 친하게 지내고 각국 정부와의 소통을 위해 대사관, 대사, 영사가 파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우리가 표현하는 친일, 친미는 기회주의를 의미한다. 나라의 것을 팔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사람(결코 나는 현직 대통령을 언급할 의도는 없었다)이 문제인 것이다.
'아싸~ 기회야~ 나라 팔아 내 주머니 좀 채울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쓰여진 이 책을 나는 용서하고 싶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에 대해 대체로 반감을 나타낸다, 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이나,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강사, 목사)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수긍하고 받아들여지는 습성이 있다. 나는 나를 '김경일'이라는 사람과 동등한 입장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바르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를 교수니 저자니 하는 타이틀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습성으로는 이 책은 매우 고마운(?)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주고 자신의 나아갈 바를 일깨워주는 그런 부류로 생각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공자를 알지 못한다. 한자도 모른다. '대학'에서 말하는 도덕이니 인륜이니 하는 것도 아이들의 네권짜리 만화책을 통해서 접했을 뿐이다. 작가가 말하려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내가 바르게 해석 했다면 '나는 당신을 나의 사회적 웃사람으로 대우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당신의 한심한 작품에 환멸을 느낌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하고, 나의 이런 표현에 당신이 어떤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면, '자신 안의 공자부터 죽여라'고 충고 하고 싶다. 작가가 책 후미에서 언급한것처럼 나는 단지 생각이 다름을 표현하는 것 뿐이고, '그런 행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책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은 인문서적으로 분류되며 어떤 지혜를 담고 있을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지혜는 거의 담겨져있지 않다. 몇몇 단편적인 지식을 느슨하고 끊어지기 쉬운 논리로 억측을 부리며 엮어 놓았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이런 글을 적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이다.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자신의 위엄을 넓리 떨치려는 작가의 의도는 20년전 이문열의 사색을 읽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내게 중국인 친구가 몇명 있었다면, 그리고 한국의 세태를 한탄하며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기회가 많았고, 그들이 한국인들의 습성에 대한 불만을 적잖게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 정도는 거의 모두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술자리 안주꺼리를 텍스트로 바꾼 수준이다.
그리고 그 술자리에 한국인은 없었다.
(몇일 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나마 마무리가 '한국인이여 성찰하라'로 끝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어지는 남북의 통일 얘기나 여러 사건들에 대한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장들에 대한 해석으로 책이 마무리 되는 것은 조금 어이없지 않았나 싶다.
좌우지당간...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국
'장유유서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유교의 허울로 포장된 집단적 기득권이 나라 망친다'
등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런 기득권 집단을 나열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울대(단연 1위 - 1위 아니면 섭하단다), 법조인(전관예우), 정치인(이기주의), 언론인(밤의 대통령), 지역주의, 연고주의, 당동벌이...
결론적으로... 이 책은 답답하다.
등대지기 황상범
※번외 - 위에서 언급한 책들의 점수로 이 책의 점수를 평하고 싶다
한국적 사고의 원형 : 100점
코리아니티 : 80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4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