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의 당신
이화 지음 / 신영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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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날, 강준은 커피를 사러 들렸던 1층 커피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실수로 엎어진 커피에 대한 보상으로 그녀는 엉뚱한 걸 요구했다. 봉변을 당하고도 태연한 그녀의 태도가 당혹스러웠다. 그녀와 두 번째 만난 건 회사 사무실에서였다. 월드 컨설팅 전략 기획 3팀의 팀장으로 출근한 회사에서 아침의 그녀와 만날 줄이야. 벽을 세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묘하게 신경 쓰인다.

 

강 연조. 기획 3팀의 막내로서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하고, 1년 동안 회사 선배, 윤준과 평온하고 고요한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 이 남자와 함께하는 평범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부모님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상처가 많았던 연조. 최선을 다해 윤준을 사랑했다고 믿었는데 이제 와보니 그게 사랑이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가시만 잔뜩 세웠던 연조였다. 그런 연조에게 사랑은 답이 없는 문제와 같았다. 미온했던 윤준과의 연애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시점에 자신을 좋아한다는 강준의 고백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허세와 느물로 무장한 채 작정하고 들이대는 강준의 진심을 외면하기엔 힘들었을 거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남자의 진심은 순수하다. 순수한 만큼 무척이나 저돌적인 강준의 모습에 연조는 어느새 무장해제 되어 버린다. 강준의 마음은 마하의 속도로 연조에게 달려가기 시작한지 오래. 성격 급한 이 남자의 들이댐이 오글거려도 파이팅을 외치게 되는 건 열정을 다해 내비치는 진심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점도 달랐고 크기도 달랐지만 연조만을 믿으며 굳건하게 인내하는 이 남자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여자가 아마 없지 싶다.

 

살짝 무거웠던 초반의 분위기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달달하게 바뀐다. 연조가 잔뜩 세운 가시를 강준이 애달파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뾰족했던 가시는 끝을 동그랗게 밀어내며 생김을 달리하게 되었으니까.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를 낫게 하는 방법은 잊는 것뿐이다. 기억 속에서 흐려지면 깊었던 상처도 어느새 작은 흉터로 변하기 마련이다. 강준의 진심에 뿌리째 흔들려 버린 연조의 상처도 언젠가는 희미해질 거라 굳게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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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과 개
공은주 지음 / 청어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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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든 타의든 서문고등학교 공식 왕따 이자경. 복잡한 가정환경에 바람 잘 날이 없는 집. 자경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가끔씩 찾던 음악실에서 계승서를 마주한다. 범상치 않은 성격으로 인해 종종 개지랄, 개차반 등으로 불리는 승서. 자경과 무엇 하나 접점이 없는 승서라서 말을 나누는 것조차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실에서의 우연한 만남 후 조금씩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자경과 승서는 점점 가까워진다.

 

우선 자경의 부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자경의 복잡한 가정환경을 보고 있노라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지 싶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 같은 느낌. 사실 화를 내면서 보긴 했지만 아무튼. 자경과 승서 중 누가 더 불행한지 시합이라도 하듯 승서의 가정환경도 만만치 않다.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나날들을 버티는 이유가 자경에게는 승서가, 승서에게는 자경이 있어서일 거다.

 

킹과 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경과 승서의 고등학교 이야기와 어떤 계기로 헤어진 후 다시 재회하고 나서의 이야기. 솔직히 로맨스보다는 복수물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한 눈 파는 법 없이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는 자경과 승서만 아니었다면 책을 읽다 덮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권선징악에 가깝다고는 하나 꼭 이렇게까지 주인공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야 했는지 좀 아쉽다.

 

개차반 계승서가 보여주는 사랑이 어떤 색깔인지 참 궁금했었다. 캐릭터가 캐릭터이다 보니 평범할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애초에 승서에 대한 기대가 제일 컸었고. 뚜껑을 열어보니 재미보다는 아쉬운 점이 더 많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워낙 막장 가족이다 보니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조금 지난하기도 했고. 그래도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준 승서와 자경이 덕에 무난하게 읽었지 싶다. 전작들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 부족했지만 부디 건필해서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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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제국
이토 게이카쿠.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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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토 게이카쿠가 프롤로그를 썼고 그의 절친인 엔도 조가 이어 썼다고 한다. 두 천재 작가의 조합이 호기심을 끌기엔 충분했고 본격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에 기대감이 폭발! 나에겐 어렵게 읽히던 <어릿광대의 나비>의 작가 엔도 조.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던 수작이라지만 아무튼. 그래서 슬쩍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19세기 말, 런던 대학 의학부에 다니고 있는 존 H. 왓슨. 죽은 자를 소생 시키는 실험 수업에 드디어 참석하게 된다. 죽은 자를 소생시켜 값싼 노동 인력으로 쓰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꼭 배워야 할 수업이다. 표준화된 가짜 영혼을 주입시켜 죽은 자를 소생시킨다. 반 헬싱 교수의 추천으로 첩보기관 월싱엄의 일원이 된 왓슨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게 되는데...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 낸 창조물 더 원’. 왓슨이 종국에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굉장히 장황하게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왓슨이 빅터의 수기더 원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모험담이라고 하고 싶다. 좀비는 아닌데 좀비 같은 죽은 자라는 존재와 영혼의 정의에 대해 말하려던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가늠해 본다. 솔직히 나의 초라하고 얕은 문학적 소양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익숙했지만 낯설었고. 패러디도 아니고 인용도 아닌 이름들의 정체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반가운 이름들이 등장하니 분위기가 조금은 말랑해지는 것 같긴 했지만.

 

계속 나오는 떡밥에 심심할 틈은 없었지만 쉬운 것만 읽으려는 요즘의 독서 습관이 발목을 붙잡은 것 같다. 제일 기대했던 본격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고. 요즘 만나보기 힘든 하드SF 같아서 반가운 마음은 가득이지만 글쎄.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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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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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벌써 1년이다. 아무에게도 그냥 흘러가지 못했던 일상 중에 하루. 꽃 같이 어여쁘던 생명들이 따뜻한 손길 한 번 못 받아보고 차디찬 바닷물 깊은 곳에 영면한지 1. 세월호, 아프고 시리게만 느껴지는 그 이름에 누군가는 절망을, 누군가는 분노를, 누군가는 슬픔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귀한 내 아이를 먼저 보내고 유가족이란 이름으로 남은 부모 열세명의 인터뷰가 담긴 책이다. 금요일에 돌아오겠다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하는 절절한 후회와 좀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남기고 떠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 뭉텅이져 가슴을 할퀴고 눈시울을 적신다.

 

남들보다 먼저 수습된 내 아이의 주검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 축하한다니... 죽음을 먼저 확인한 부모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니. 이런 참혹한 현실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픔을 어루만질 시간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뛰쳐나갔던 사람들이었다. 믿었던 국가는 이들에게 통렬한 분노만을 남겼다. 이들은 분노를 삭일 시간도 없이 거리로 나갔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싸움의 끝이 있긴 한 걸까.

 

우리에겐 분명 남겨진 숙제가 있다. ‘라는 물음만 가득했던 그 날의 사고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명확한 해답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게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무참히 뺐긴 아이들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원인만 있고 정작 결론은 없는 비겁한 지금 이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 밝혀져야 할 거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될지도 알고. 소중한 생명들을 잃고 나니 절실해져오는 일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잊어진다는 말이 있다.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품고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조금 옅어질 수는 있겠지. 단지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란한 말빨에 속아 넘어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 날의 진실을 비로소 마주한다. 뉴스와 기사를 통해 전해져 오는 소식들을 모두 믿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렸던 건 사실이니까. 유가족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눈물 듬뿍 담긴 기록이어서 가슴 아프지만 꼭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날의 아픔을 마주하기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책상에 다른 책들이랑 올려놓고 바라보기만 며칠.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부터 먼저. 한장 한장 허투루 넘기지 못하게끔 쏟아지는 눈물. 휴지 뭉치들이 수두룩하게 쌓여갈수록 답답해져만 가는 마음. 잊지 않겠다라는 말로 위로가 되지 않음을, 결코 위안이 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던 시간. 그래도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기억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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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폴인러브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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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에메랄드 궁>을 재미있게 읽어서 작가의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좀 높았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져서 이번 신작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 최근 커피에 관심 갖기 시작한 내남자 덕분에 얻어 마신 몇 잔이 전부. 커피가 굉장히 예민한 음료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믹스커피만 알던 내게는 그야말로 신세계.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카페 폴인러브>는 커피처럼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카페의 원래 주인이었던 효정이 갑작스럽게 뇌종양 진단을 받자 효정의 남편 경재는 친구인 정수에게 가게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정수의 아내인 세희는 급하게 바리스타 공부를 했고 얼떨결에 맡게 된 카페였다. 그 카페의 이름은 폴인러브’. 그 카페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제호를 만난다. 세희는 커피를 좋아하는 제호와 급속도로 친밀한 관계가 된다. 정수와의 결혼생활에 불만은 없었지만 애정이 식었는지도 모른다.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정수와의 관계가 살얼음 위를 걷듯 불안해지기 시작한 건 제호 때문도 아닌 새벽에 정수의 핸드폰에서 울리던 문자 알림음이었다.

 

단순히 한 커플의 이야기가 아닌 카페 폴인러브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희와 정수, 세희와 제호, 카페 폴인러브의 원래 주인인 효정과 경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은 흉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오래 전 가슴 깊게 새겨졌던 상처가 흉터가 되었고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변해버렸다.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하게 하는 방법이 사랑이었다고 하지만 불륜이 사랑은 아니라고 본다. 세희의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해도 납득은 못 하겠더라.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감당하기에 조금 벅차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는 아닌데 남들은 그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카페를 배경으로 했고 여러 가지의 맛이 있다는 커피가 생각나는 글이어서 그런 걸까. 다른 맛보다는 커피의 쓴맛만이 진하게 풍겨오는 글이었다. 세희와 정수 때문에 내심 불편해지는 마음도 있었고, 아픈 효정을 보고 있으니 짠해지는 마음도 있었고. 커피의 다양한 맛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사랑에 달콤함보다는 씁쓸함이 더 깊게 닿았던 글이 아니었나 싶다. 전작에서는 모텔, 이번에는 카페, 다음에는 어디일까. 문득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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