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 불야성 시리즈 1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가끔 말로만 들어 보는 희귀한 책들이 있다. 너무 재미있는 책인데 절판되어 구할 수 없거나 몸값만 비싼 책들. <불야성>도 그랬다. 90년대에 출판되었지만 너무 빨리 절판되버려 소문만 무성했던 책. 그런 책이 북홀릭에서 새로 나왔다. 재출간 되는 책들을 될 수 있으면 챙겨보려고 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솔직히 후속작인 <진혼가>가 더 궁금한 이유도 있었다.

 

화려한 유흥가의 거리 가부키초. 여러 개의 중국계 마피아가 지배하고 있는 거리에서 장물을 사고 팔며 지내는 류젠이. 어느 날 위안청구이의 심복을 죽이고 달아났던 류젠이의 절친 우푸춘이 돌아온다. 상하이 마피아의 보스 위안청구이는 류젠이에게 우푸춘을 데려오라며 협박을 하고 자신의 보호막이었던 양웨이민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물건을 팔고 싶다며 접근해 온 나츠미라는 여자의 비밀이 드러나고 류젠이는 그녀와 함께 우푸춘을 찾는다.

 

원초적인 생존 본능에 충실한 인간의 비열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비열함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물론 여주인공도 만만치 않은 대담함과 비열함을 보여준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며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씁쓸했지만 나쁜 놈 투성인게 <불야성>의 제일 큰 매력인 것 같다.

 

하드보일드 느와르라는 장르가 익숙하지 않았다. 거친 남자들의 세계, 비열한 암흑가 조직들의 암투같은 것들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복수에서 시작해 복수로 끝나는 막장 드라마같은 전개들이 너무 뻔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렇다.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하드보일드 느와르라는 장르에 완벽하게 딱 맞아 떨어진다. 성별을 떠나 이런 종류의 책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일뿐이었고, 착한 놈이 하나도 없어 감정이입까지는 힘들었지만 시간 가는줄 모르고 푹 빠져 읽었다. 순전히 후속작이 궁금해서 읽은 책이었지만 의외의 재미 덕분에 <진혼가>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부디 <진혼가>는 기대하고 읽으면 재미없어지는 소설이 되지 않길 바래 보면서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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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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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때 절판되어 스릴러 매니아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던 <차일드 44>. 너무 빨리 절판되어 구하지 못하던 책이었는데 재밌다는 입소문만 들리니 입맛만 다시던 때가 있었다.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 덕분이었는지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 개정판이라는 게 무색한 오타들과 표지에 인쇄된 오글거리는 문구들은 정말 정말 안타깝지만. 재출간 되자마자 산 책이었는데 책장에 고이 모셔두다가 요즘 이 책에 관한 얘기가 들리길래 꺼내봤다.  

 

사회적인 이념상 절대로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 스탈린 체제의 소비에트 연방.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이었던 레오는 국가 안보부 요원으로 지내며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 레오가 스파이 용의자를 감시하던 중 처참하게 살해된 소년의 시체가 발견되지만 완벽한 국가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반사회적인 범죄이기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감시하던 용의자가 도망치게 되자 레오도 국가로부터 의심을 사게 되고 참혹한 어린아이의 시체가 처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른 스릴러 소설들과 차이점이 여러 개 눈에 띈다. 우선 사회적인 배경이 되는 독재자 체제의 국가와 주인공 레오가 제일 독특하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충성하며 국가 안보부 요원으로서의 표본인듯한 레오에게선 비겁함이나 속물근성을 볼 수 없었다. 이런 장치들이 살인 사건들과 묘하게 맞물리며 살아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범인을 쫓고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단순한 스릴러나 추리 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묵직한 소설이다. 스탈린 독재 체제에 대한 공포, 당장 내 옆의 가족조차 믿을 수 없는 불신이 일상적인 삶, 끊임없이 느끼게 되는 부끄러운 자신의 양심. 충성했던 국가에 반하여 살인 사건을 수사할수록 점점 변하게 되는 레오의 내면을 탁월한 필력으로 잘 풀어냈다. 작가가 29세에 쓴 데뷔작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 <차일드 44>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다. 책을 읽은 사람마다 강력추천이라며 망설임 없이 꼽던 책. 편견 없이, 기대 없이 읽고 싶었지만 좋다는 입소문을 너무 넘치게 들었나 보다. 그런 것만 아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책이었을 텐데 살짝 아쉽다. 하지만 묵직함으로 만족스러운 여운을 준 소설이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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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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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영하 작가의 책은 <퀴즈쇼>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어 봤다. 이 작가의 책은 꼭 읽어야돼라던지 닥치고 찬양할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챙겨 보고 싶은 작가중에 하나이긴 하다. 책장에 꽂혀 있기만 한 작가의 책도 두권쯤 있는 것 같고...; 이 책은 2005년에 나왔던 <랄랄라 하우스>의 개정판이다.

 

김영하 작가가 권하는 방에서 보내는 휴가법 세가지중 해보고 싶었던 한가지. 노트를 한 권 준비하고 가고 싶었던 나라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물 리스트를 빠짐없이 써내려 가는 거다. 지금 당장 떠날 순 없지만 훗날 떠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준비물을 하나씩 하나씩 메모 하다 보면 두근두근 설레이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는건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니 이렇게 준비물 리스트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은 좋은 방법 같다. 메모를 다 끝내고 나서의 진짜 여행이 아님에 허무함은 부작용으로 남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사생활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건 헌책방에서 발견되는 작가의 사인본들 이야기. 나도 작가들의 사인된 책들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중고책으로 내다 팔 엄두는 안나던데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가 보다. 작가들에게는 자식같은 책들중에 하나일텐데 싸인까지 된 책이 중고책 서점에서 발견될 때의 씁쓸한 마음이 느껴져 작가들에게 짠한 마음도 생기더라. 그리고 작가가 서점에서 우연히 자기 책 사는 사람을 보면 그 책이 대박 난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진짜 '우연히' 발견해야만 이뤄진다는 꿈같은 이야기.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훔쳐 보는 일은 비밀스럽지만 즐거운 일임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생활들을 엮은 에세이들이 있지만 특정 직업의 사람이 쓴 글들이 주는 즐거움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영하 작가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조금 놀랬다.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김영하 작가와 고양이랑은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건 책 속의 글들뿐이니 한계가 있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

 

p. 65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상상 속의 존재들과 이별하는 것이다. 

 

p. 104 

스크린 속의 요정이 사실은 피와 살과 뼈를 가진 존재이고 다치거나 죽으면 119 구조대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놓고 상상하고 비난하고 숭배한다. 그러나 바로 그 무책임의 전력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양심 안에서,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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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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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무너지는 가족 관계에 대해 유쾌하지만 씁쓸한 이야기였던 <불량 가족 레시피>, 세 소년의 용감무쌍한 모험담을 그린 <검은 개들의 왕>까지 다 읽어 보고 나니 문학동네 청소년 수상작에 대한 신뢰감은 쑥쑥 커졌다. 차근차근 쌓아 올린 신뢰감과 칭찬 일색인 심사위원들의 평들은 기대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나'는 형과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열아홉 살이지만 수염이 자라지 않고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엔 여행이 아닌 가출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가는 곳마다 오해를 받아 가출이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여행을 결심하고 탔던 버스에서 가방을 털어 도망갔던 소녀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때 짝꿍이었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19번까지... 주인공이 여행길에 만났던 사람들 덕분에 아버지와 형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비로소 진심으로 그리워하게 된다.

 

읽다 보면 형의 존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여행길에 늘 붙어 다니며 티격태격 대는 형이건만 다른 사람과 있을 때의 형은 조용하기만 하다.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막상 형의 존재가 밝혀지고 나니 그런 형이기에 주인공에게 좀 더 특별한 여행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딱 잘라 여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지만, 주인공에게 진정한 여행이 되기 위한 조건은 떠나기 전에 이미 갖춰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이 없어도 감동을 주기에는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우산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잔잔한 보슬비처럼 잠시 멈춰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 무엇이 나를 망설이고 생각하게 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세상의 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쏟아지던 빗방울을 한참이나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랬던 게 바로 이 이야기가 나에게 주는 위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 남편과 1박 2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마침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책은 오문세의 <그치지 않는 비>였다. 여행 중 이만큼 어울리는 소설도 없는 것 같다. 바쁘고 정신없던 일상에서 한 템포 쉬기 위한 여행이라 소설 속의 '나'처럼 여행 중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어지는 풍족한 마음은 없었지만, 이 책이 곁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밤새 겨울비치고 많이 내리던 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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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술래잡기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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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명의 전화'에서 자원 봉사를 하던 누마타 야에는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인생의 실패와 친구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부러움으로 자살을 결심한 다몬 에이스케라는 사람의 전화였다. 자살 결심을 하고 전화를 건 사람들의 푸념을 듣고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주게끔 하는 보통 일상적인 전화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의 전화라는 것을 감지한다. 급히 보건센터에 알려 다몬 에이스케의 자살을 막고자 하지만 현장에 달려갔을 때는 이미 실종되어버린 상태였다. 한편, 다몬 에이스케의 어릴적 친구인 호러 미스터리 소설 작가 고이치는 친구의 실종에 의심을 품고 홀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아무런 근거 없는 공포로 오싹하게 만들기 보다는 좀 더 과학적이고 이유 있는 민속학적인 요소들을 등장 시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작가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피가 난무한 살인이나 엽기적인 살인이 없어도 특유의 사위스런 분위기 조성엔 확실히 일가견이 있다. 집안의 모든 불을 켜놓고도 등 뒤가 무서워 책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몰입도가 너무 좋아 책장은 쉽게 잘 넘어가는데 소설 속에 등장 인물들이 등 뒤가 무섭다 할때마다 덩달아 나까지 오싹해졌기 때문이다. 

 

반전의 묘미도 괜찮았지만 역시나 압권이었던 주인공의 빈틈없는 추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조 겐야를 언급하던 고이치의 대화는 정말 깨알같았고... 간혹 눈에 띄던 오타들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여태 나왔던 작품들이 복잡하게 꼬인 인물들과 특유의 민속적인 분위기로 책을 읽기에 조금 난해했다면 이번에 나온 <일곱명의 술래잡기>는 어렸을적 친구들과 하던 놀이를 배경으로 보다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놀이라는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너무 똑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작가 특유의 공포스런 작풍과 더불어 대중성까지 갖춰 내놓은 책이니 재미가 있고 없음을 말해 무엇하랴. 여러 출판사에서 미쓰다 신조의 책들이 나오는걸 보니 기대가 되는 작가임은 분명하다. 아무런 기대 없이 읽어도 확실히 중박은 하는 작가이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호러 장르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이유가 너무 뜬금없을 때가 많아서다. 하지만 추리 소설에 근거 있는 호러를 접목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미쓰다 신조의 책들은 앞으로도 계속 챙겨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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