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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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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작가다. 그리고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내가 작가상 수상작들과 멀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작품을 쓴 작가다. 하나의 작품으로 멀어지게 된 건 아니지만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니까. 아무런 정보 없이, 기대 없이 책을 들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함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12년 전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민성. 이후 소설을 쓰고,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실종된 여동생을 찾고 싶다며 접근해 온 여자에게서 하나의 문서를 받게 된다. 민성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박형사. 약수터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된 여성의 시체에 대한 단서를 모으던 중 피해자의 과외 선생이었던 인물에 주목하다. 민성과 박형사가 전혀 다른 사건의 단서를 모았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게 되는데...
형사가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발견되는 증거들로 실마리를 유추해내는 실력은 직감 좋은 형사라고 치자. 하지만 신화에 능통하고 종말론에 해박한 형사라니 너무 억지스럽다. 물론 교수를 찾아가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척척박사 형사가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초보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다. ‘나 이만큼 아는 척 하고 싶은데 사건의 단서들로 어떻게 끼워 맞추지?’하는 느낌이랄까.
척하면 알아듣는 형사라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도 소설이니까 그렇다 치자. 이해를 못해도 분명 따라 가야할 큰 줄기는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1999년이 아닌 ‘천구백구십구 년’, 24세가 아닌 ‘이십 사 세’라고 한글로 표기한 아라비아 숫자들은 이해불가. 내내 거슬리기만 하고. 쭉 뻗은 도로를 달리다가 방지 턱 넘어가는 것 같다.
과유불급. 국내 장르소설에만 유독 예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 미안하다. 조금만 힘을 뺐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아쉽다. 참 아쉽다. 등단한지도 오래 되었고 상도 받은 실력이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다. 이런 장르소설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독자들이 즐길 만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드>를 읽고 느꼈던 아쉬운 마음은 다음에 만날 작품으로 말끔히 없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