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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923/pimg_7883271081071941.jpg)
기억에서 잊지 말라고 하는 듯 잊을만하면 새 작품을 들고 나오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소설 집필 속도는 가히 마하급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책 출간에 언제나 미적지근한 작가로 남아있기도 한다. 그래도 꾸준히 찾아 읽고 작품마다 중간은 하는 완성도를 보이는 걸 보면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작가도 아닌 것 같다. 국내에 처음 소개될 즈음 나왔던 작품들이 워낙 대박이었던 책들이 많아 그 기대가 날로 줄어드는 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오랜만에 기대에 부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엔젤 보트’라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카하라. 그에게는 11년 전 아내와 딸이 있었다. 집을 잠깐 비운 사이 들어온 강도에 의해 딸이 살해되고 그 후폭풍에 아내와는 이혼을 했다. 이혼 후 각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연락도 거의 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나카하라에게 찾아온 형사는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11년 전에는 소중했던 딸이, 지금은 아내였던 사람이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손에 무참히 잘려나간 생명에 나카하라의 마음은 비통하기만 하다. 소중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원하지만 현실은 무기징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살인자에게는 사형만이 죗값을 치르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나카하라. 이혼 후 잡지사에서 일하던 죽은 아내의 취재 내용을 알게 된 나카하라는 뜻밖의 내용에 놀라고 만다.
p.201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
책 속에 글 한 줄이 ‘공허한 십자가’를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이번에는 제법 굵직한 ‘사형제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애초에 다루는 소재의 무게가 무게인지라 쉬이 가볍게 볼 수가 없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살인처럼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을 때는 그에 걸 맞는(?) 죗값은 사형뿐일까. ‘사형은 무력하다’는 한마디가 머릿속을 둥둥 울려댄다. 진정한 의미의 반성이 과연 무엇인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 복수를 꿈꾸는 피해자들에게 ‘공허한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될까.
사형제도에 대해 딱히 어떤 의견을 내놓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물음에도 쉽게 대답을 못했었다. 그 대답을 찾을 길은 더 요원해 보인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이 답답해져서 작가가 미워진다. 예전보다 좀 가벼워진 그의 작품에 다소 실망을 했던 독자라면 ‘공허한 십자가’를 읽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애증 아닌 애증으로 버텨왔던 독자들에게 숨이 죽었던 애정의 싹이 솟아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