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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ㅣ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1995년 3월 20일 아침. 샌드위치 휴일임에도 출근길에 올랐던 사람들은 원인 모를 고통을 호소하며 지하철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옴진리교가 벌인 희대미문의 ‘집단 살상’은 무고한 피해자 수천 명을 낳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사린 사건이 주는 충격이 그 첫째 이유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르포’라는 점이 둘째 이유이다. 근간 『1Q84』와의 연관성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1995년의 나는 나이도 어렸을 뿐더러 ‘삼풍’의 충격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사린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자랐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살포 이전에 마쓰모토 사린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몰랐다. (1994년 우리나라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양국 모두 사건사고로 인해 침울한 시기였던 것이다.) 하루키가 1년씩이나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러 다닌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그가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이 직접 취재를 해야만 했던 이유를 책의 처음과 끝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 가련한 젊은 샐러리맨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이중의 심각한 폭력에 대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건 이상한 세계에서 온 것’ ‘저건 정상적인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들 당사자에게 그것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그들에게는 그 두 종류의 폭력을 여기와 저기로 구별하여 생각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보이는 겉모습이야 다를지언정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둘은 같은 지하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동질적인 것 같아 보인다.
나는 그 편지를 쓴 여성(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또한 그 남편(들)의 사정을 알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이렇게 가혹한 이중의 상처를 생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좀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머리말> 중에서, 13쪽)
범행을 일으킨 자들은 ‘옴진리교’라는 신흥 종교의 일원이다. 옴진리교는 이전에도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 마쓰모토 사린 사건 등을 일으켰으나 그들에 대한 당국의 수사 또는 제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종교 법인이 될 수 있었으며 아무렇지 않게 세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분노한다. 이러한 경찰(과 공공기관)의 과오는 사건 당일과 사건 발생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살포된 사린이 담겨 있던 봉투는 모두 다섯 개. 다섯 곳의 차량 안에서 살포된 사린은 총 12명 사망 5,500여명 중경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운행을 지속했던 지하철과 동시다발적인 상황 발생에 갈피를 잡지 못했던 구급대, 사건 소식이 보도되지 않은 시점 초기 대응에 미흡했던 병원들로 인해 피해는 더 커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분노는 이들보다도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를 저지른 옴진리교를 향해 있고, 분노를 넘어 혐오의 감정까지 드러난다. (각 인터뷰의 말미에 피해자들이 ‘옴’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아마 하루키가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에 질문한 것인 듯하다. 취재에 응한 피해자들은 대개 분노·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체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체념적이라고 해서 ‘옴’을 살려두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키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60여명은 전체 피해자의 수를 생각해 볼 때 극히 일부일 뿐이다.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었던 사람들 외에도 쓰러져 있던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다. 피해자들은 호흡 곤란, 시야 협착, 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겪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 시력과 기억력의 감퇴를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신체적 피해는 우연히 사고를 당한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샌드위치 휴일이었음에도 출근을 했던 사람들, 월요일 회의가 있어 평소보다 이른 시간의 차를 택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날따라 2분 늦은 버스 때문에 다음 차를 탈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고 우유를 사러 가는 날이어서 다른 노선의 지하철을 탔다가 변을 당한 사람도 있다. ‘하필이면’ 그 시각, 그 노선의 지하철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국가는 어떻게 책임져 줄 것인가,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2차 피해, 매스컴의 그릇된 보도 행위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라고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 아닌 이상 그들이 보이는 증상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때로는 삐뚠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는 것인데(물론 깊은 이해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해를 사고 만다는 점이 억울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 사린 사건에 대한 분노, 혐오를 일깨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스컴의 보도 행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스컴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옴’의 행각, 피해자 통계, 수사 과정 등등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에만 집착, 사건을 편집·재생산하여 내보냈다. 흔한 말로 사람을 두 번 죽인다는 얘기가 있는데, 매스컴의 행태로 인해 피해자들은 몇 번이고 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야 했던 것이다.
옴진리교의 사린 살포 사건은 우리에게도 일깨우는 바가 많다. 시기상으로 본다면 앞에서도 말했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사건의 배경을 본다면 지하철 참사 등을 떠오릴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의 경우 ‘눈에 보이는’ 참사였다는 점, 일본의 경우 ‘보이지 않는’ 피해를 유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가 겪은 붕괴·지하철 사고는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애도했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위로했다. 공공기관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시민들이 힘을 모아 그들을 도왔다.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들도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내가 그 현장에 있지 않았어도 그 고통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어요,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쿄의 지하철 사린 사건은 어떠한가. 그것은 현장에 있지 않고서는 혹은 사린 가스를 들이마셔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진술에서 ‘사람이 쓰러져 있었지만 간질 발작인 줄 알았다’ ‘오늘따라 그런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선이 조금 일찍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을 지연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자들, 그러니까 사건의 방관자들은 이보다 더 협소한 시선으로 생각하고 만다. 단적으로 직장에서 피로를 호소하면 ‘꾀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선을 던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는 타인의 이해를 얻기 힘들고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마치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추리와도 같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배려의 마음을 갖는 것,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내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건사고의 주체 또한 차이를 보이지만,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끔찍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그에게 있어서 그리고 일본 사회에 있어서도 중요한 저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키는 일본 사회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시도했고, 그 결과물로서의 『언더그라운드』는 다시 일본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흉악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사린의 경우처럼 ‘집단’에 의한 계획적인 ‘집단 공격’, 즉 테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살인, 성범죄, 방화 등은 물론 ‘힘의 논리’에 따른 피해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을, 기억 속에 놔두었다가 언젠가 잊히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것 또한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르포’가 보다 접하기 쉬운 분야가 되어 더 많은 결과물을 낳고 또한 그것이 널리 읽혀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분노하기를, 그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서의 분노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간절한 것은 끔찍한 사건 사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 하루키에 대한 편견 혹은 불만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언더그라운드』의 앞뒤에 있는 <머리말>과 <지표 없는 악몽>만이라도 일독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