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 숲
권여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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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지난날의 기억을 가만두지 못할까? 일곱 편의 소설을 읽으면 이 질문 때문에 한참을 머뭇거리게 된다. 왜 지난날 그대로,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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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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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활자만 읽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읽는 이에게 ‘왜 이 소설을 썼냐’는 물음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은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 질문 없이, 단순히 읽는 재미만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전작이 한 수 위. 전작은 활자를 좇는 재미만으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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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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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농간에 이 좋은 소설이 절판되다니 어이가 없다. 앞으로 자음과모음 출판사와 얽힌 도서는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뜻깊게 읽은 책을 서점에서 만날 수 없게 만들다니 너무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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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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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을 읽는 일은 일종의 사소한 도전이다. 글쓴이는 온 힘을 다해 하나의 장편소설을 탈고했고, 출품했고, 당선되었겠지만 읽는이의 입장에서 그 수고를 모두 헤아리기란 사실 어렵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사소한 도전 삼아 책을 펼친다. 당선작을 통해 등단한 작가의 경우 심사평 외에는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과연 읽을 만한 책인가’ 하는 의심을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거두기가 쉽지 않다. 제17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인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 역시 그 의심을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 초반의 익살과 중반을 이끌어나가는 각 인물의 사연(앤, 조풍년, 만딩고)에 비해 후반은 지나치게 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 ‘황급한 결말’은 요즘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들이 대개 지니고 있는 문제 같다. 가령 ‘너무나 흥미진진하던 사건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해결된다든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며 끝이 난다든지, 『굿바이 동물원』처럼 신 나게 잘 읽고 있었는데 너무 짧게 뒷마무리를 해 버린다든지‘와 같은 것이다. 제목의 ‘굿바이’를 너무 ‘심플’하게 처리해 버린 건 아닌지 우려가 든다. 앤과 조풍년, 만딩고가 동물원을 떠나는 이야기가 보다 풍성하게 그려졌다면 좋았겠지만 정작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은 다른 인물들이어서 개연성은 둘째 치고 그때까지 소설을 붙잡고 있었던 주요한 힘을 잃은 듯한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내의 이야기라도 조금 더 했으면 어땠을까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굿바이 동물원』의 매력은 ‘말도 안 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재치 있게 소설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에 있다. 또 취업준비생, 실직자, 남파 간첩 캐릭터를 통해 “사람답게 살고 싶다!”의 메시지를 전달한 점도 흥미롭다. 읽는이에 따라 설정이 억지스럽게 느껴질지도, 공감의 지점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잘 읽히는 소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점들은 여느 소설들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니 크게 문제 삼을 수는 없겠으나, 앞으로 작가가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면 문장을 잘 썼으면 좋겠다. 문체가 아니라 문장의 문제이다. 재미있는 소설도 좋지만 재미있는 문장으로 만들어진 소설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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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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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집의 제목이 ‘비행운’이란 걸 알았을 때, 수록 작품 가운데 표제를 고르지 않고 새로이 제목을 붙였다는 데 눈길이 갔다.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것이 김애란의 소설집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비행운. 구름의 이름이든 나쁜 운수를 가리키는 말이든 단어의 말맛이 착 감겨 왔다. 수록 작품 가운데 굳이 좋은 제목을 고르자면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서른’ 둘 중 하나를 꼽겠지만 아무래도 ‘비행운’이라는 단어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을 관통하기에 그야말로 제격이 아닌가 싶다. 모두 읽고 나니 수긍이 갔다. 제목이 ‘불행’은 아니어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 제목과는 별도로 여덟 편 가운데 이번 소설집의 중심에 놓일 작품이라면 단연 「서른」을 말하겠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이 소설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스물에서 서른이 된 주인공의 사연이 너무나 ‘현실밀착형’이다. 단편 「서른」은 ‘누군가 지금도 이 질곡에 빠져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일인데…… 이거 소설 맞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칫 잘못 빠질 수 있는 ‘끝장’을 차분한 편지글로 써 놓았는데 문득 내가 편지의 받는 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멍했다. 스물에서 서른이 된다는 건, 거기까지 간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구나. 생각보다 허망하구나.

 

# 그리고 그 질곡에서, 별반 다를 것 없는 다른 일곱 편 소설의 주인공들이 기어 나온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서 아내를 잃고 택시 운전을 하며 생활하는 주인공이나 「하루의 축」에 등장하는 공항 청소 노동자 주인공(그녀는 원형 탈모까지 겪고 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큐티클」, 「호텔 니약 따」에 나오는 젊은 여성들 모두 나이와 성별은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일종의 연대를 맺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연대라는 말을 이런 경우에 써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비행운의 연대’였다. 「벌레들」의 여자가 처한 상황이나 「물속 골리앗」의 소년이 구원의 기미 없이 물살에 떠밀리는 것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여덟 명 주인공을 두고 ‘가장 행복한 사람 선발대회’라도 열고 싶다. 아마 그 누구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거다.

(「벌레들」과 「물속 골리앗」은 그 분위기나 장면 들이 매우 흡사한데, 아마도 도시를 주제로 한 기획에 함께했던 소설들이어서일 것이다. 「벌레들」은 ‘서울’에 대한 테마소설집에, 「물속 골리앗」은 계간 자음과모음의 한중일 프로젝트 중 ‘도시’ 편에 발표되었다.)

 

# 『달려라, 아비』의 통통 튀는 발랄함도, 『침이 고인다』의 매력적인 냉소도 『비행운』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달려라, 아비』에도, 『침이 고인다』에도 없었던 무엇이 담겨 있다. 전작에 등장했던 그들도 계속 살다 보니 ‘비행운의 세계’를 겪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살아 본 사람만이 아는 무언가. 등단 10년, 서른을 넘긴 김애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 다음’이다. 이번에 너무 착 가라앉아서 겨울에 연재를 시작하는 두 번째 장편은 ‘활기 있고 유쾌’하게 쓰겠단다. 나는 늘 ‘이 다음’이 궁금하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애란의 문장은 이것이다.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비행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대답을 하겠지. “안녕은 개뿔, 운수도 드럽게 나쁘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날마다 비행운을 보며 산다. 비행기 타는 꿈을 꾸면서.” 꿈인들 어떠랴. 나는 그들이 꿈을 꾸며 살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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