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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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집의 제목이 ‘비행운’이란 걸 알았을 때, 수록 작품 가운데 표제를 고르지 않고 새로이 제목을 붙였다는 데 눈길이 갔다.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것이 김애란의 소설집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비행운. 구름의 이름이든 나쁜 운수를 가리키는 말이든 단어의 말맛이 착 감겨 왔다. 수록 작품 가운데 굳이 좋은 제목을 고르자면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서른’ 둘 중 하나를 꼽겠지만 아무래도 ‘비행운’이라는 단어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을 관통하기에 그야말로 제격이 아닌가 싶다. 모두 읽고 나니 수긍이 갔다. 제목이 ‘불행’은 아니어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 제목과는 별도로 여덟 편 가운데 이번 소설집의 중심에 놓일 작품이라면 단연 「서른」을 말하겠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이 소설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스물에서 서른이 된 주인공의 사연이 너무나 ‘현실밀착형’이다. 단편 「서른」은 ‘누군가 지금도 이 질곡에 빠져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일인데…… 이거 소설 맞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칫 잘못 빠질 수 있는 ‘끝장’을 차분한 편지글로 써 놓았는데 문득 내가 편지의 받는 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멍했다. 스물에서 서른이 된다는 건, 거기까지 간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구나. 생각보다 허망하구나.

 

# 그리고 그 질곡에서, 별반 다를 것 없는 다른 일곱 편 소설의 주인공들이 기어 나온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서 아내를 잃고 택시 운전을 하며 생활하는 주인공이나 「하루의 축」에 등장하는 공항 청소 노동자 주인공(그녀는 원형 탈모까지 겪고 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큐티클」, 「호텔 니약 따」에 나오는 젊은 여성들 모두 나이와 성별은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일종의 연대를 맺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연대라는 말을 이런 경우에 써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비행운의 연대’였다. 「벌레들」의 여자가 처한 상황이나 「물속 골리앗」의 소년이 구원의 기미 없이 물살에 떠밀리는 것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여덟 명 주인공을 두고 ‘가장 행복한 사람 선발대회’라도 열고 싶다. 아마 그 누구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거다.

(「벌레들」과 「물속 골리앗」은 그 분위기나 장면 들이 매우 흡사한데, 아마도 도시를 주제로 한 기획에 함께했던 소설들이어서일 것이다. 「벌레들」은 ‘서울’에 대한 테마소설집에, 「물속 골리앗」은 계간 자음과모음의 한중일 프로젝트 중 ‘도시’ 편에 발표되었다.)

 

# 『달려라, 아비』의 통통 튀는 발랄함도, 『침이 고인다』의 매력적인 냉소도 『비행운』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달려라, 아비』에도, 『침이 고인다』에도 없었던 무엇이 담겨 있다. 전작에 등장했던 그들도 계속 살다 보니 ‘비행운의 세계’를 겪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살아 본 사람만이 아는 무언가. 등단 10년, 서른을 넘긴 김애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 다음’이다. 이번에 너무 착 가라앉아서 겨울에 연재를 시작하는 두 번째 장편은 ‘활기 있고 유쾌’하게 쓰겠단다. 나는 늘 ‘이 다음’이 궁금하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애란의 문장은 이것이다.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비행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대답을 하겠지. “안녕은 개뿔, 운수도 드럽게 나쁘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날마다 비행운을 보며 산다. 비행기 타는 꿈을 꾸면서.” 꿈인들 어떠랴. 나는 그들이 꿈을 꾸며 살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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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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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지지 않는다는 말. 제목들만 보고 있어도 힘을 얻게 된다. 읽고 듣고 달리는, 소설 쓰는 김연수의 맛깔스러운 산문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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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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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네. (228, 229쪽)

 

0. 계간 《자음과모음》에 다섯 계절 동안 연재되었고 EBS 라디오 연재소설에서 한 달 동안 낭독되었던, 그 소설이 책으로 나왔다. 제목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으로 바뀌었다. 연재 당시의 제목은 ‘희재’였는데 바로 주인공인 카밀라 포트만의 한국 이름이기도 하다. 위의 인용한 부분은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엄마 정지은이 딸 정희재(카밀라 포트만)를 향해 하는 말, 아름답다.

 

1.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카밀라 포트만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카밀라’라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태생지인 한국 진남으로 향한 그녀는 그곳에서 ‘희재’라는 이름을 찾게 된다. 하지만 진남의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녀는 혼란스러워진다. 희재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24년 전 정지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탐색하는, 정희재와 정지은 두 여자의 이야기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2. 1부 카밀라, 2부 지은에 이어 3부에는 ‘우리’가 등장한다. 정지은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윤경, 미옥, 유진, 그리고 이희재. 앞서 등장했던 신혜숙, 최성식이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했다면 3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는 하나씩 단추를 끼워볼 수 있다. 소설의 말미까지 “과연 정희재의 친부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지만, 진남의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숨기려 들지만, 그럼에도 진실은 하나로 존재하고 희망의 날개는 꺾이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동안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에서 ‘말하면 할수록 모르는’의 상태가 되었다가, 희미하나마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의 마음으로 끝낼 수 있었다.

 

3.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중심에 이해와 오해, 소통 등이 놓여 있었다면 그 이후의 김연수 소설의 화두는 ‘고통’으로 조준점을 바꾼 것 같다. 이전의 소설들에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부쩍 그쪽으로(?) 하는 말들이 많아졌달까. 최근의 단편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에서 타인의 고통과 그 보편성의 짐작을 엿보았다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는 타인에게로 건너가 그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 가능할까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 터. 그러고 보면 이번 ‘작가의 말’에서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이라는 것은 ‘푸른색으로 쓴 것’을 읽어 달라는 당부 아닐까.

 

0. 더 많은 말은, 책을 다시 한 번 읽은 다음에 겨우 몇 마디 덧붙일 수 있을 듯하다. ① 군데군데 다른 곳이 있겠지만 라디오 연재소설의 낭독으로 들어보는 것도 추천. ② 그리고 작가의 책 가운데 초판에서 가장 많은 오자를 발견했는데, 재쇄 들어가면서 수정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막바지에는 한 장 걸러 하나씩 오자가 눈에 띄어 마음에 걸렸는데, 2쇄를 한번 읽어봐야겠다. ③ 번역서는 대개 양장으로 나왔지만, 작가의 책 가운데 양장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함께 꽂아두면 살짝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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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면 여러 매체에서 ‘휴가철 추천 도서’를 나름대로 선정해 발표한다. 여름에 많이 읽히는 소설은 추리, 미스터리 장르 위주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아직 기반이 약하기에 주로 외국 번역물이 소개되곤 한다. 최근 북유럽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것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模倣犯)』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이름을 대면 『모방범』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것은 『모방범』이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번역된 작품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 소설의 방대한 분량과 그에 비해 결코 방만하지 않고 섬세하게 파고드는 묘사가 잘 어우러져 압도적인 힘을 뿜어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6년 『모방범』이 번역 출간된 뒤 한 해에 6, 7권씩 꾸준히 번역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이름이 널리 그리고 깊이 인지되고 있고, 이에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 『모방범』이 아닌가 싶다.

 

일본에서 『모방범』은 5년 동안 연재된 뒤 2001년 두 권의 단행본으로 묶였다(문고본은 5권). 5년 동안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 그리고 5년 동안 그것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책으로 묶인 것은 역시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미스터리물의 특장(特長)은 바로 이 흡인력이 아닐까. 『모방범』은 여느 소설보다도 그 장점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이 다른 소설들과 대별되는 지점은 한국소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리고 『모방범』 이전의 다른 번역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것이다.

 

요즘은 다시 ‘본격물’이 인기를 끄는 모양이지만 단지 기이한 현상을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를 소재로 인간의 내면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는 새로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공교로운 일이지만 최근 T시 사건의 범인은 뻔뻔하게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전국의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U시 사건의 범인은 SNS를 통해 거짓말을 늘어놓는 치졸한 행태를 보였다. 『모방범』을 읽으면서 늘 그 생각이 따라다녔다. 인간은 어디까지 가면을 쓰고 뻔뻔해질 수 있는가, 인간은 얼마나 극악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쯤에서 『모방범』의 줄거리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더위에 지쳤다면 선풍기 바람을 쐬며 책장을 펼쳐 사건에 동참해 보는 것이다. 3권의 막바지를 읽을 때는 실제로 심박이 빨라져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덩달아 빨라지기도 했다. 처음부터 범인을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의외로 범인은 일찍 드러난다. 범인과, 경찰과, 피해자와, 그 주변 인물 모두를 두고 소설은 인물 각각을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그 과정에 일말의 지루함이 없다. 역시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모방범』은 그냥 읽어야 한다. 가볍게 읽고 무겁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의 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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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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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반쯤 읽다 포기해야 했고, 두 번째엔 끝까지 읽었지만 대체 이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더랬다. 세 번째, 조금 감이라는 게 잡혔다. 이 소설은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그거 하나는 제대로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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