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여러 매체에서 ‘휴가철 추천 도서’를 나름대로 선정해 발표한다. 여름에 많이 읽히는 소설은 추리, 미스터리 장르 위주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아직 기반이 약하기에 주로 외국 번역물이 소개되곤 한다. 최근 북유럽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것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模倣犯)』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이름을 대면 『모방범』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것은 『모방범』이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번역된 작품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 소설의 방대한 분량과 그에 비해 결코 방만하지 않고 섬세하게 파고드는 묘사가 잘 어우러져 압도적인 힘을 뿜어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6년 『모방범』이 번역 출간된 뒤 한 해에 6, 7권씩 꾸준히 번역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이름이 널리 그리고 깊이 인지되고 있고, 이에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 『모방범』이 아닌가 싶다.
일본에서 『모방범』은 5년 동안 연재된 뒤 2001년 두 권의 단행본으로 묶였다(문고본은 5권). 5년 동안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 그리고 5년 동안 그것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책으로 묶인 것은 역시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미스터리물의 특장(特長)은 바로 이 흡인력이 아닐까. 『모방범』은 여느 소설보다도 그 장점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이 다른 소설들과 대별되는 지점은 한국소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리고 『모방범』 이전의 다른 번역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것이다.
요즘은 다시 ‘본격물’이 인기를 끄는 모양이지만 단지 기이한 현상을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를 소재로 인간의 내면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는 새로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공교로운 일이지만 최근 T시 사건의 범인은 뻔뻔하게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전국의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U시 사건의 범인은 SNS를 통해 거짓말을 늘어놓는 치졸한 행태를 보였다. 『모방범』을 읽으면서 늘 그 생각이 따라다녔다. 인간은 어디까지 가면을 쓰고 뻔뻔해질 수 있는가, 인간은 얼마나 극악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쯤에서 『모방범』의 줄거리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더위에 지쳤다면 선풍기 바람을 쐬며 책장을 펼쳐 사건에 동참해 보는 것이다. 3권의 막바지를 읽을 때는 실제로 심박이 빨라져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덩달아 빨라지기도 했다. 처음부터 범인을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의외로 범인은 일찍 드러난다. 범인과, 경찰과, 피해자와, 그 주변 인물 모두를 두고 소설은 인물 각각을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그 과정에 일말의 지루함이 없다. 역시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모방범』은 그냥 읽어야 한다. 가볍게 읽고 무겁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의 전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