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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현암사)
그의 모습은 체념일까, 아니면 작고 조용한 움직임일까?
두께는 얇고 글씨는 큼직큼직한 책이 괜히 어른들이 보는 ‘큰글 성경책’이 떠오른다.
약간 삐딱한 성격 탓에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책은 보고 싶지 않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와의 만남은 WOW 번개가 아니었다면 영영 이루어지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아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내일 모조리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경험한 셈이 되었다.
책의 도입 테이프를 끊으며
신경림씨가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전우익씨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적어 두었다.
서너 장 정도 되는 짧은 소개 아닌 소개인데,
이 글을 읽으며 책을 접하게 되면 풋풋한 내음을 맡으며
다음에 나올 글들을 썼을 저자에 대한 친밀감이 밀려온다.
무공해 농사를 지으며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지만
당신의 그런 기준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스스로 지켜 나가는 전우익씨는
과연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시골에 묻혀 사는 초월한 지식인 또는 체념해버린 지식인?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의 영역을 묵묵히 지키며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지식인인가?
농사꾼인가?
전우익인데 맨날 좌익만 한다는 이 분. 그가 한 장 한 장 정성 들여 써 내려가 편지들을 살짝 엿봐야겠다.
나는 약 2년 정도 농사를 지었다.
물론 전업이 아니라 취미 삼아 때로는 이미 시작해서 마지 못해서.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나름대로 땅을 계획적으로 배분해서 써야 했다.
작물 별로 필요로 하는 땅이 다 다르다.
심어야 할 때도 다르다. 그래서 땅은 쉴 틈도 없다.
그리고 그도 이렇게 말한다.
‘땅 위에 빈터는 없어요. 음지를 좋아하는 놈, 양지에서 잘 자라는 것, 반음반양에서 잘 되는 것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리네 삶도 이렇다. 각자가 만들어 낼 모습들은 모두 다양하고 그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알고 맞춰가야 행복하게, 적절하게 살 수 있는데 자주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괴로워한다.
때로는 가만히 서서,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이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인지 살펴보는 것을 제안한다.
다른 사람들이 세워 놓은 기준을 따르다가 바람이 필요한 나를 햇빛 쨍쨍한 곳에 세워두지 않았나 돌아보면 좋겠다.
‘반사체는 아무리 커 봤자 생명이 없고 열이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린 비록 작을지라도 발광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나름대로 빛과 열을 내어 세상을 덥히고 밝히는 발광체가 되어, 서로 어울려 세상도 밝히고 스스로와 세상 안에 있는 몹쓸 것들을 녹여 버렸으면 싶습니다.’
나는 동화 피터팬에 등장하는 ‘팅커벨’이 되고 싶다.
누군가 ‘왜’라고 묻는다면 생각해둔 대답은 꽤 된다.
고여있는 물이나 거울처럼 또는 달처럼 빛을 받아서 아름다움을 주는 삶 역시 박수 갈채를 주고 싶지만,
작아서 힘도 별로 없지만
빛을 내고 자신의 가루를 나눠주어서 함께 날아오를 수 있게 하는 그런 팅커벨이 되고 싶다.
이 책 외의 3권이 덧붙여져서 4권이 전우익씨 책의 세트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 책에 실릴 사진임에도 단추도 다 잠그지 않은 남방과 벨트가 바지 위로 제멋대로 올라간 채로,
주름살 가득 매운 얼굴로 사진을 찍힌 전우익씨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진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만약 나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라는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서점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