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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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청춘에게 속삭이다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p31

  지금, 내가 이겨내고 있는 시기, 청춘. 청춘은 궁금하다. 이 시기를 견디고 나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어떤 것들이 내 앞에 놓여질지. 조급함을 느끼지 말라고하지만 미래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이유없이 문득 불안해질 때, 막연함에 어쩔 줄 모를 때 펼쳐보면 좋은 책이다. 그 시기 그는 어떤 것을 느끼고 보았을까. 페이스북(문학동네 편집부 국내문학1팀 season2)을 통해 읽게 된 일화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연수의 일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청춘이었던 저자와 동지의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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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작가 김연수의 일화. 1993년 시로 등단했고, 다음 해 소설로 등단했다. 한때는 '아무도 원고를 의뢰하지 않는' 등단 작가의 '청춘의 시간들'을 두고 불안해했고, 눈에 띄는 소설들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점점 더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았고, 지금은 달리기를 하듯 매일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1991년의 김연수가 "<꾿빠이, 이상>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소설가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회고하는, 김연수 소설의 결정적 한 장면이었던 그 소설이 다시 독자를 찾았다. 2016년 4월 17일, 이상의 기일이기도 한 날의 일이다.

"오빠의 데드마스크는 동경대학 부속병원 유학생들이 떠놓은 것을 어떤 친구가 국내로 가져와 어머니께까지 보인 일이 있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라는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의 회상. 소설은 이 진술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이상의 데드마스크가 진실로 존재하는가? (<데드마스크>), 죽음까지 이상을 모방한 나의 삶은 진실한 삶인가? (<잃어버린 꽃>), 이상의 시 '오감도 시 제16호'의 진위 여부를 추적하는 학자인 나의 존재는 진실로 어디에 있는가? (<새)) 집요할 정도로 풍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소설가는 '진실'들 사이의 틈을 파고든다. 빼곡한 이야기의 밀도가 작가 이상에 대한 작가 김연수의 경외를 증명하는 듯하다. 

김연수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가 기다린 김연수의 소설이 함께 출간되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밤은 노래한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 소설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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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사람이 됐다. 내 생활을 뿌리째 흔드는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 무시무시한 공허 속으로 들어가고픈 욕구를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p125

  왠지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학생 때처럼 작은 일 하나하나에 놀라지 않게 됐다. 예를 들면 좋아했던 연예인이 추문에 휩쓸리게 되더라도. 이제는 그래, 그 사람도 사람이니까. 욕망을 조절 못한 대가겠지. 하며 넘어가게 된다. 신문 기사에 쏟아지는 정치적인 사건에도 예전에는 불끈! 하며 정의 의식에 불탔는데, 요즘은 에휴, 또 저러네. 언제 나아지지 하며 다른 기삿거리를 찾게 된다. 이처럼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되는 순간이 올 것 같다. 지금은 청춘이라서 괴롭고 불안한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청춘이 아니라서 벌어지는 일이 있겠지만. 여튼, 이미 지나 온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버틸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면 다시 돌아왔지만. 그래도 안에 무언가 쌓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어제 같이 취업 준비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우리는 중소기업에서 셀 수 없이 광탈 중이며, 어쩌다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눈치를 안준다고 해도 스스로 밥벌이도 못하는 가치없는 사람이라는 회의가 든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는 제사 때문에 친척 집에 가서 취업에 관해 시달려야 했고 나는 휴가 가는 일(5월 말부터 잡은 약속이었다. 7월 말 쯤이면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 것 같아서 친구들이 일찍 가자는 거, 내가 7월 말로 늦춰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그대로다. 발전없는 내 모습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돈을 빌려서까지 가야 하는 것일까)로 우울해졌다. 지금은 이 상황 자체가 걱정이지만 나중엔 이 걱정들이 별 게 아니었다고 더 큰 문제들이 산재할 때가 올 수도 있겠지.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직접적인 힘을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버티기 위해서다(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돈도 안 들고, 도서관까지 걷는 운동도 할 수 있다). 내 안에서 책을 통해 얻은 지식, 이야기, 즐거움 등이 언젠가는 발현되리라 믿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는 상당히 빛나는 책이다. 아무것도 풀리지 않고 답답하고 일탈을 하고 싶지만 마음이 걸리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출처

http://m.aladin.co.kr/weeklyeditorialmeeting/detail.aspx?wemid=721&isbn=895464015X#divNavigationArea



이 글은 2016. 7. 1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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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들의 성공기 - 당당하게 직진하라
서수민.조선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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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게 버티기


  

  성공, 희망, 버티기 등의 단어가 우리에게 참 잔인하게 변했다. 나는 어느 시대든 청춘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제일 힘든 것 같다면 왜일까. 내가 이 집단에 속해 있다는 주관적인 입장 때문일까 아님 집, 결혼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N포 세대라는 객관적인 이유 때문일까. 어떠하던 간에 우리는 이 슬픈 현실 속에서도 성공이라는 단어에 대한 갈망이 있다. 저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이 이름들을 들으면 그 사람들 성공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개그콘서트로 유명한 서수민PD와 사진 작가 조선희. 그들이 서로 함께 살았던 대학 동창이었다는 사실은 내게 좀 다르게 다가왔다. 나도 어떤 한 분야에 성공을 꿈꾸며 서울에서 친구들과 살다가 접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고 이렇게 가다가 내가 점점 마르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지나와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과거를 더듬었다.

  서울, 서울이라는 단어는 내게 늘 꿈의 무대였다. 2015년 7월. 그 꿈의 무대에 올랐다. 서울 은평구, 오래된 빌라에서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잘 이겨낼 줄 알았다. 뜨거운 청춘이라서 모든 지 잘 버틸 줄 알았다. 그러나 멀리 있는 남자친구, 함께 사는 데에 따른 친구들과의 마찰, 지독한 외로움……. 생각보다 크게 와 닿았고 견디지 못했다. 우연히도 2015년 12월 31일자로 구했던 일자리에서 계약 종료가 됐고, 그와 동시에 고향으로 훌쩍 내려왔다. 반년도 안 되는 시간에 나는 꺾였다.

  내려왔지만 굳이 공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내 꿈을 계속 키울 수 있을거라 여겼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꿈을 꾸기 위한 마지노선을 정했다. 주5일, 월급 150만원. 되도록이면 정시 출근과 퇴근이 정해지는 곳. 현실은 가혹했다. 사회가 기본이라 생각했던 조건들이 너에게 분이 넘쳐라고 말해줬을 때. 나는 월급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계약직을 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또다시 깨달았다. 나는 지난 실패의 경험을 망각했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했구나.

  이렇게 시작된 생각에 나는 슬펐다.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삶을 살아야하고 여러 문제들을 견뎌야 하고 운이 좋은 시기가 오면 해결해야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유지했던 예민한 감각들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모르는 사이, 무뎌졌고 둔해졌다. 또다시 자괴감이 드는 순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촌년들의 성공기> 서평단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촌년'

  과거의 경험들이 되살아나면서 또다시 신청했다. 새로운 취직을 위해 한국사, 한국어 시험을 접수하여 준비하고 토익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 저것 찾으면서 당분간 책을 끊자고 여겼는데. 실패를 겪었던 촌년은 하나의 희망을 보고 싶었고 홀린 듯이 서평단에 신청했다.

  생각보다 좋은 글이었다. 힘을 얻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내 인생의 판을 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른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그녀들의 일화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다. 여러 글귀 중에서 추리고 추렸다. 많이 추렸는데도 많다.





   약하다는 걸 숨기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곤두세우며 보낸 그런 시절이 있었기 떄문이란 걸.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었지만, 이런 나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러니 우리는 너무 자신을 미워해서는 안 돼.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 서투르고 한심하고 못나 빠진 그 모습이 결국은 나를 분발하게 하는 힘이니까.



  본래의 나와 남들에게 보여주는 나. 누구나 이런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갈 거야. 하나의 자아는 커리어를 추구하고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강하게 몰고 간다면, 또 다른 자아는 일상의 소중함을 추구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을 요구하지. 두 자아가 모두 다 소중하고 잘 돌봐야 할 대상인데, 현실은 자꾸만 한쪽 자아, 즉 보여 주는 자아에만 치중하도록 우리를 다그쳐.



  세상은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묵묵히 열심히 하다 보면 위에서 다 알아줄 거라고 말하지.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그 말을 믿지 않았어. 나 자신이 나를 열심히 팔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려고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거든. 학점이나 토익·토플 성격이 높으면 뭐해. 그건 다들 하는 거잖아. 중요한 건 기회를 잡는 거야. 내가 있다는 걸 알리는 거야. "누가 할래?"라고 물을 때 "제가 할게요, 제가 잘해요!"라고 계속 말해야 해. 



  중요한 건 떠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일감이 많지 않아서 생계가 힘들더라도, 스튜디오를 차렸다가 망했더라도, 명함도 돌리고 홍보도 하고, 심지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라도 계속 기회를 찾아야 하지. 그렇게 버티다 보면 정말 기회가 올 거야. 



  현실이 매정할수록 우리에겐 판타지가 필요하니까. 그 판타지가 결국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인생이 짧다고 말하지만 결코 짧지 않아. 지금 당장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설계해야 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5년 뒤, 10년 뒤에도 여전히 소중할까? 그때가 되어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 반복하며 살고 싶을까? 이런 질문에 '노'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면, 준비를 해야 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해. 하나를 버리고 새로우 하나를 얻기 위한 준비 기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몰라. 



  웃기고 싶다는 것. 그건 곧 남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거야. 내 말과 행동에 상대방이 웃어주면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왔다고 느끼지. 타인의 마음을 가져서 나를 채우는 기쁨. 그걸 느끼면 계속 웃기고 싶어져. PD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야. 시청자의 마음을 얻는 것. 쉽지 않지만 바로 그 기쁨으로 계속하는 거지.



  세상 모든 직업들이 그렇듯,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오히려 힘들고 고단한 길의 연속이 될 거라는 것을. 세상은 보이는 그림이 다가 아니며 그 이면에 피와 땀이 있다는 것을. 그때도 후회 안 할 자신이 거침없이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해야겠지. 



  오히려 가난 속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개념도 익히고 생활력도 기르게 되지. 나는 내 청춘을 가난하게 보낸 덕분에 적은 돈을 쪼개서 쓰는 경제관념도 배웠고 저축도 할 줄 알게 되었어. 며칠 동안 라면만 먹어가며 돈을 아껴 정말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장만했을 때의 희열, 낡은 코트 한 벌로 겨울을 보내고 무지 보고 싶은 연극 공연 표를 사는 인내, 그런 걸 체득했어.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를 위해 뭔가 근사한 것을 하고 싶을 때면 뭔가 하나를 포기하는 습성이 있어. 좋은 것은 쉽게 가져서는 안 되는 거니까. 꿈꾸고 노력하여 가까스로 손에 넣어야 그 소중함을 사무치게 기억할테니까. 



  단, 뭔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어. 세상에 빠르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어.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려면 적어도 3년, 길게는 5년에서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해. 설사 시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잘 견뎌야 해. 거기서 박차고 나오면 그거야말로 시간 낭비가 되고 말 테니까. 세상의 모든 전문가들은 바로 그 시간을 잘 견디고 올라선 사람들이야. 올라가면 알게 될 거야. 그 시간이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몸에 스며들 듯이 필요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흡수했다는 것을.


지금, 바로 여기, 나는 깨달았고, 그래서 행복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는 점점 나를 사랑할 수 있겠지.


  서울이라는 곳을 떠나오고 난 뒤, 1년 남짓. 생각보다 서울에서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다.

  그 공간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버티는 것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핑계를 댔다.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사실은 내부적인 요인 때문이 더 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서울에서 살았던 그 짧은 시간보다 배로 걸렸다. 그러자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다시 부정하려는 순간, 저 위의 글귀들이 마음에 참 와 닿았다. 어디에 있든 나는 떠나지 않았고 어디로 가려는가에 대해 명확했다.

 이 글들이 내게 다가온 것은 단순히 TV예능에서, 사진에서 유명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촌년들의 성공기>라는 책을 통해 가감없고 솔직하게 또한 진실되게 이야기를 해준 서수민, 조선희가 썼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촌년이라는 단어에서 이끌려 서평단을 신청에서 시작된 이 글. 오랜만에 슬픈 은평구가 아닌 희망에 부풀었던 나의 은평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뜨겁게 불타오를 줄만 알았던 청춘의 삶이 차가운 바람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이 시기. 나와 함께 살았던 우리들도 잘 버텨 각자가 품고 있는 꿈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더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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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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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첫 걸음

 


  우리는 길어야 100년 조금 넘게 살면서 많은 것을 궁금해 한다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무의식까지 낱낱이 파헤치려 한다하물며 흙바람 등 자연을 구성하는 물질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하해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펼친다그것들은 하나의 학문이 되고 삶의 규칙이 되며 일상 속에 녹아진다화산이 폭발해도 세계 대전이 일어나도 우리는 이와 같은 삶을 꾸려나갔다그리고 지금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여성다움은 무엇인가과연 여성성은 타고난 것인가만들어진 것인가이 질문의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우리는 인색하기만 하다진지한 태도와 다양한 의견을 듣기보다는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거나 심지어 비난하는 데 더 빠르게 행동한다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에머 오툴이 용기 있게(당연한 현상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슬프다고백한 여자다운 게 어딨어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전의 나는 친구 덕분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론과 그들이 던지는 질문 등에 대해 대략적 건 알고 있으나 깊지 못하고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잘 몰랐다일전에 독서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창비에서 발간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은 적이 있다제목에 대해서는 공감했지만 책 내용에 대해서는 지나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이렇듯 평소에 관심 있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겹치겠지만 페미니즘 자체와 나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내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꺼내겠다초등학생 때 다녔던 학교는 양성평등 시범학교였다양성평등 글짓기에서 상을 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해주는 정기적인 성교육을 통해 올바른 개념을 잡았다고 여겼다대학생 때는 누구보다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고 있다고 여겼다이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자라면서 성자유평등사회페미니즘 등에 대해 가치관을 성립했고 용납한 범위 내에서 스스로 공부 하며 조금씩 변화했다고 믿었다따라서 내가 여자다운 게 어딨어를 읽게 된 건 순전히 시크릿박스(창비·오마이뉴스 기사공모때문이었다애초에 페미니스트에 동조하지 않는 여성이었고 페미니즘을 수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내가 이처럼 변명 같은 말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한 번 쯤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물었다대체로 잘 모르는 분야라고 대답했다한 번도 생각 해 본 적 없다는 친구도 있었고 어렵다는 답변도 있었다굳이 여성을 따로 떼어놓고 봐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여자다운 게 어딨어를 읽기 전의 나도 이와 비슷했다헌법 제10조와 제11조가 보장하는 이 평등한 세상에서 여자를 소수나 약자로 칭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예민한 여자들의 ()’이 아닐까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대해 괜히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아닐까하며 걱정했었다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뒤스스로 정말 많은 반성을 했다같은 여성인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불편하고 거센 반항 속에서 우리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 책은 또한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이야기한다내 인생에 보편적 의미가 없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다만 나는 사회적 기대를 거스르는 장난을 좋아하고수치심 따위는 내다버린 지 오래이며소녀와 여성을 연기하는 데 따르는 쾌락과 위험과 모순에 대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온 여자로서 그동안 얻은 교육을 함께 나누려 한다부디 독자들에게도 내 이야기가 가치있기를 바란다.

p13~4(서문조명카메라액션)

 

  저자인 에머 오툴은 평범한 소녀에서 영국 지상파 채널인 ITV의 <디스 모닝>이라는 TV쇼에 출연하여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보여주기까지의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주고 있다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에 그동안 내가 애써 무시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10만 원을 줄 테니 볼 뽀뽀를 해달라며 성희롱을 당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어릴 적다리를 벌리고 자다가 부모님에게 여자답지 않다고 혼이 났던 적기차역 앞에서 통학(울산-부산)으로 지친 몸으로 크게 하품을 했다가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여자답지 않다고 혼이 났던 적손녀라는 이유만으로 할아버지의 팔베개를 하면 안 된다고 혼이 났던 적친구들에게 생일선물로 속옷을 받을 때남자친구는 이런 데 관심도 없다고 이야기 하는데도 불구하고 티를 내지 않는 거라며 원치 않은 레이스 팬티를 강요받은 적남동생과 같이 놀고 있는 데 나만 집안일을 도와드리지 않는다며 친척 어른들에게 혼이 났던 적이 모두가 안타깝게도 여성이라서 일어난 일이다그리고 더욱 나를 소름 돋게 하는 건 여성스럽지 못하다칠칠치 못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혼이 났다는 것이다어떻게 이런 일들을 나는 당연하다고 여겨왔는가그 답은 나 역시도 에머 오툴처럼 사회의 통용되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여자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과연 내가 사람다운 것이 아닌 여자다운 것으로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 있을까이 책을 읽고 난 뒤갑자기 쏟아지는 질문에 당황했다이 질문들은 짧은 시간으로 답변을 내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간혹 어떤 것은 내 근간을 뒤흔들기도 했다그때마다 불안했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그동안 비워져 있던 것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내가 여자다움을 강요받으며 소소한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얌전하고 조신한 자세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긴 머리붉은색 입술 등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가 아니었다차마 내가 인지 못했던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서부터 시작된 억압과 강요였다.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 여성성은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것이라고남성과의 차이를 과장하는 방향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성별화될 수 없다고여성성이라는 임의적 개념에 맞춰 스스로를 부호화하지 않으면 여성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그러면서 동시에 선택의 주체는 우리라고 세뇌시킨다나는 체모를 기르기 시작한 뒤에야몸의 문제에서 내게 조금도 선택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p227(7장 털 난 아가씨별 탈 없나요?)

 

  그렇다나는 이 구절에서 전율이 일어났다동시에 중국 여자들의 겨드랑이 털에 대해 민망하다고 생각한 나를 반성했다명확하지 않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사회 작동체계가 구석구석 숨어 있었다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말을 경험으로 통해 알 수 있었다우리의 몸은 미용이 목적이 아니다주변 환경에 맞게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왔고 그 흔적이 몸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몸의 털들은 주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2016년 10월 4일 세계일보 건강 부분에서는 <지금 당장 면도를 멈춰야 하는 이유 7가지>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은 흑백논리를 좋아한다분류와 정답단순한 진실을 좋아한다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기를 좋아한다그러니 우리에게 정상적으로 심지어는 불가피하게여겨지는 정체성들이 사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에도 종교나 유사과학을 들어 설명하려 드는 것도 당연하다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품지 않는 쪽을 택한다어떤 사람들은 젠더 규범이 지금과 같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화를 내고 코웃음을 친다.

p141(4장 현실 재현의 난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질문들에 대하여 우리는 왜 이렇게도 무심했는지 함께 하는 것보다도 먼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고민했다이미 에머 오툴이 지적하는 것처럼 언어가 지니는 상징과 더불어 다른 이유 때문에 남성중심사회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 다른 이유는 망각이라고 생각한다우리가 지닌 고유의 권리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잊혀 진 것이다망각으로 인해 생긴 공백을 상징들이 침범했고 남성중심사회를 더욱 공공하게 만들었다게다가 이미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다는 무책임한 핑계를 대며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인류가 시작된 이래에 우리는 계속해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는데 그 모든 것들이 잘못됐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언어가 주도적으로 등장한 것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에서 파생된 말이 주는 이질감 때문에 일어나는 편견과 혐오가 안타깝다그 이유는 이 현상이 우리가 얼마나 상징과 사회에 홀려 있는 상황인지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도 밝혔다시피페미니즘페미니스트 운동들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한다또한 알고 보니 그 누구보다도 사회 체계를 철저하게 따르며 살고 있었기에 혹여나 내가 쓰는 언어와 관점이 올바른 페미니스트와 다른 게 아닐까하고 걱정되기도 한다하지만 혹시나 예전의 나처럼 남성’, ‘여성이라는 단어에 홀려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이들과 함께 이 책을 나누고 싶다처음에 읽기 불편할지 몰라도 한 장 한 장 넘기다 주변을 에워싼 모든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을주체적인 줄 알았던 나의 삶이 따지고 보면 수동적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지금 이 사회가 너무도 공고하고 단단해 보이는 틀이고 구조이지만 함께 질문을 던지고 고민한다면 언젠가 무너져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말이다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끝으로 이 글귀를 공유하며 마무리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 페미니스트의 임무는 견고해 보이는 모든 범주를 발가벗겨 그 두서없는 구성을 드러내고범주 자체에 의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마그릿 실드릿Margrit Shildrick, 재닛 프라이스 Janet Price

P123(4장 현실 재현의 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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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서평은 오마이뉴스에서 12월 5일자로 실린 것이며,

창비오마이뉴스 기사공모에 응모했던 기사의 원본임을 밝혀드립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66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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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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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에서 이 책의 서평단을 구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너무 억울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세상을 리셋하고 싶을 만큼 억울하다. 이 억울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 가장 기본권이라고 일컫는 선거. 그 선거에서부터 왔다. 올해로 25세 대한국민인 나는 만 19세가 된 이후로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권리를 행사해왔다. 투표를 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되어 무시당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이라는 틀 안에서 말이다. 이는 라는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2012년 대선, 20대 투표율 67.8%, 20164·13 총선, 20대 투표율 49.45%에 포함되는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개인 중심의 사회가 되었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는 곳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되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세대가 되지 않는 것이 슬펐다. 그러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이 모욕의 피라미드는 사람을 나이, 성별, 장애 등에 따라 상투적으로 판단하고 대하는 것으로 작동한다. 한국은 나이에 따른 서열화가 매우 심하다. ‘나이는 누군가를 모욕할 수 있는 자격증처럼 사용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 항의하는 상황에서 나이는 그 항의, 아니오를 일거에 묵살할 수 있는 까방권이 된다. 나이도 어린 놈이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대드냐는 말 한마디면 자신의 모든 잘못을 한 방에 무마할 수 있다. 나이든 사람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자체가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인 일로 비춰진다.

<p112~3>

   이 대목에서 너무 큰 공감을 했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깨고 용기를 내어 주장을 펼치기엔 소심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나라의 대표가 됐다는 사실에 끝까지 부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수의 국민이 지지한 우리나라의 대표이니까 말이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거라 하면서. 하지만 그녀는 한 나라의 수장으로 보여야 할 일련의 사건들에서 실망만 안겨줬고 이 나라에 대해 더는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와 더불어 다시 기성세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정말 미래를 생각했을까. 그런데 내게는 왜 불쌍해서, 아버지를 봐서, 같은 여성이라서라는 이유로 대표를 뽑았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일까.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암담했다. 과거와 현재에 얽매여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욕을 선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부정성의 운명을 만난다. 부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대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사람들이 지분지족하는 것이다. 그 사회에 만족하고 그 이상을 꿈꾸거나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팽창할 수 없다. 자본주의 자체가 잉여, 즉 초과를 먹고 자라는 체제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근대자본주의는 자신에 대한 부정을 에너지로 삼아 성장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p119>


   삼시세끼 배곯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으며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기성세대들에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들은 더욱더 팽창하고 자라나야 하는 데 그것을 기존의 사회 제도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장을 넘기면서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리셋이 되어야 한다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생활방식이 지배하는 이 시대, 법과 제도도 그에 맞게 다시 수립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하다가 풀지 않으면 판을 엎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판도 다 엎어졌으면 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다고 해서 이 사회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쉽게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제3부 리셋을 넘어서의 2장 다시 리셋에서 전환으로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잊어버려서 잃어온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나도 그동안 외면하거나 착각했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공터와 놀이방이라는 비유는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갖춰줘야지만 행복할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 구조를 깨트리는 발상이었다. 또한 경제학자 홍기빈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1987년 민주주의가 멈췄다는 그의 언급은 소름 돋았다. 학교 교육에 눈이 멀었던 것이었다. 흔하게 언급되는 민주주의이니까. 우리 삶에도 당연히 녹아있는 줄 알았는데.

 

대의제 앞에서 멈춰버린 민주주의를 그 너머로 밀어붙여야 한다. 왕을 뽑고 그 왕에게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뒤 다시 삶의 자리에서는 노예로 내려오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왕의 머리를 잘라버림으로써 왕의 부재 이후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p212>


   숙연해졌다. 투표를 하나 했다고 해서, 한 순간 의견을 표출했다고 해서 내가 가진 힘을 모두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주의, 자유…….생각해보면 세상에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외에 당연한 것은 없다. 어렵게 쟁취해 온 민주주의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최소한으로 해야 될 일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촛불시위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중요하고 그 이후보다 앞으로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 누구보다 평화적이고 정당적인 권리를 행사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 삶의 고단함의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때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협력의 기술로'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면 어떨까하고 제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참 공부가 필요한 나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한 것, 그냥 지나쳐버린 것들을 짚어주어 좋았다. 시간이 흐르면 이 책에서 접했던 것들을 잊을 지도 모른다. 나의 의무, 내가 가진 힘에 대해 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우울함에 빠졌을 때, 책장에 꽂혀진 이 책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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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족의 영웅 아스테릭스 아스테릭스 1
르네 고시니 글, 알베르 우데르조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외로운 둘리가 아스테릭스였다면



  쏘오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내 방울~ 내 방울!

  쏘오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무지개~!

  8·90년대생이라면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귀여운 내 친구 둘리의 OST, 비눗방울이다. 그 외에도 한치두치세치네치 뿌꾸 빰! 뿌꾸 빰! 으로 시작되는 두치와 뿌꾸, 꼬비꼬비, 날아라 슈퍼보드, 달려라 하니, 무도사 배추도사가 나왔던 옛날 옛적에, 머털도사 등 상당히 많은 만화가 어릴 적 함께 했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있고,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도 가끔 우연찮게 TV 방영할 때면 재밌게 봤었는데,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간혹 리메이크가 된 아기공룡 둘리와 머털도사가 보이긴 하지만 그 외 나머지 추억의 만화들은 어디로 갔을까?

  1961년부터 아직까지도 연재되는 유명한 프랑스 만화가 있다. 먼저 먼나라 이웃나라를 쓴 이원복 저자가 쓴 이 책의 추천글을 보자. '전세계 대중문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 문화의 상징’은 바로 ‘미키 마우스’다. 그러나 이 막강한 미키 마우스도 프랑스에서는 한참 뒤편으로 물러서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아무리 미국의 소비 대중 문화가 거세게 밀려와도 프랑스인들은 미소를 띠며 자신있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과연 이러한 문화가 있을까.

  한류, 한류하지만 가끔씩 이게 정말 한류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껍데기 뿐만인 문화가 아닐까. 언제까지 이 한류가 지속될까. 1920년대 태어난 미키마우스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콘텐츠가 있을까. 그 역사는 짧지만 우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들이 있다.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라바 등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둘리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예전과는 달리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제도적으로도 뒷받침 될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콘텐츠의 질 높은 구성이다. 우리는 좋은 예로서 아스테릭스를 참조할 수 있다.

  르네 고시니와 알베르토 우데르조가  쓴 아스테릭스는 물약을 먹고 힘이 쎄지는 골족 아스테릭스와 어릴 때 물약 통에 빠져 힘이 쎈 오벨릭스가 보여주는 이야기다. 프랑스 특유의 재치와 코미디 덕분에 어른들이 읽어도 유치하지 않다. 또한 예술의 중심, 프랑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프랑스 등 유럽 역사와도 접하게 된다. 물론 이야기 흐름상 조금 변화된 것들도 있지만, 중간에 달린 각주나 책 뒷편에 실린 옮긴이 글을 통해 사건의 왜곡된 부분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싶어서 혼자 찾아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역사에 대한 지식과 나름의 가치관을 설정할 수 있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도 아이가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역사와 문화가 녹여진 만화가 있었다면... 이라는 아쉬움도 있었다(개인적으로 네이버 웹툰 <호랑이 형님>이 아이가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만화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랜 세월동안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 해 온 호랑이, 구미호 등 여러 소재와 배경이 한국의 전통 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여긴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인물들의 대사들이다. 무심하면서도 개그 요소가 다분히 버무러져 있는 구절들을 몇 개 들고왔다.

  음.... 좀 평범하지만 그래도 맘에 들어. 평범한 것이 항상 사람들을 웃게 하니까. -아스테릭스, 고트족 국경을 넘다 편에서

  관중은 저마다 해설가가 된다. -아스테릭스, 올림픽에 나가다 편에서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두려움을 지배하고 이겨내는 거야. -아스테릭스, 바이킹을 물리치다 편에서

  삶에서 묻어나는 인물들의 대화들. 이 속에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눈여겨 볼 수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만화, 아스테릭스. 이제 다시 시작하는 둘리와 머털도사도 이 만화처럼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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