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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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에서 이 책의 서평단을 구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너무 억울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세상을 리셋하고 싶을 만큼 억울하다. 이 억울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 가장 기본권이라고 일컫는 선거. 그 선거에서부터 왔다. 올해로 25세 대한국민인 나는 만 19세가 된 이후로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권리를 행사해왔다. 투표를 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되어 무시당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이라는 틀 안에서 말이다. 이는 라는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2012년 대선, 20대 투표율 67.8%, 20164·13 총선, 20대 투표율 49.45%에 포함되는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개인 중심의 사회가 되었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는 곳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되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세대가 되지 않는 것이 슬펐다. 그러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이 모욕의 피라미드는 사람을 나이, 성별, 장애 등에 따라 상투적으로 판단하고 대하는 것으로 작동한다. 한국은 나이에 따른 서열화가 매우 심하다. ‘나이는 누군가를 모욕할 수 있는 자격증처럼 사용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 항의하는 상황에서 나이는 그 항의, 아니오를 일거에 묵살할 수 있는 까방권이 된다. 나이도 어린 놈이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대드냐는 말 한마디면 자신의 모든 잘못을 한 방에 무마할 수 있다. 나이든 사람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자체가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인 일로 비춰진다.

<p112~3>

   이 대목에서 너무 큰 공감을 했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깨고 용기를 내어 주장을 펼치기엔 소심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나라의 대표가 됐다는 사실에 끝까지 부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수의 국민이 지지한 우리나라의 대표이니까 말이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거라 하면서. 하지만 그녀는 한 나라의 수장으로 보여야 할 일련의 사건들에서 실망만 안겨줬고 이 나라에 대해 더는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와 더불어 다시 기성세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정말 미래를 생각했을까. 그런데 내게는 왜 불쌍해서, 아버지를 봐서, 같은 여성이라서라는 이유로 대표를 뽑았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일까.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암담했다. 과거와 현재에 얽매여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욕을 선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부정성의 운명을 만난다. 부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대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사람들이 지분지족하는 것이다. 그 사회에 만족하고 그 이상을 꿈꾸거나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팽창할 수 없다. 자본주의 자체가 잉여, 즉 초과를 먹고 자라는 체제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근대자본주의는 자신에 대한 부정을 에너지로 삼아 성장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p119>


   삼시세끼 배곯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으며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기성세대들에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들은 더욱더 팽창하고 자라나야 하는 데 그것을 기존의 사회 제도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장을 넘기면서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리셋이 되어야 한다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생활방식이 지배하는 이 시대, 법과 제도도 그에 맞게 다시 수립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하다가 풀지 않으면 판을 엎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판도 다 엎어졌으면 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다고 해서 이 사회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쉽게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제3부 리셋을 넘어서의 2장 다시 리셋에서 전환으로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잊어버려서 잃어온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나도 그동안 외면하거나 착각했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공터와 놀이방이라는 비유는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갖춰줘야지만 행복할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 구조를 깨트리는 발상이었다. 또한 경제학자 홍기빈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1987년 민주주의가 멈췄다는 그의 언급은 소름 돋았다. 학교 교육에 눈이 멀었던 것이었다. 흔하게 언급되는 민주주의이니까. 우리 삶에도 당연히 녹아있는 줄 알았는데.

 

대의제 앞에서 멈춰버린 민주주의를 그 너머로 밀어붙여야 한다. 왕을 뽑고 그 왕에게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뒤 다시 삶의 자리에서는 노예로 내려오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왕의 머리를 잘라버림으로써 왕의 부재 이후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p212>


   숙연해졌다. 투표를 하나 했다고 해서, 한 순간 의견을 표출했다고 해서 내가 가진 힘을 모두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주의, 자유…….생각해보면 세상에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외에 당연한 것은 없다. 어렵게 쟁취해 온 민주주의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최소한으로 해야 될 일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촛불시위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중요하고 그 이후보다 앞으로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 누구보다 평화적이고 정당적인 권리를 행사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 삶의 고단함의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때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협력의 기술로'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면 어떨까하고 제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참 공부가 필요한 나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한 것, 그냥 지나쳐버린 것들을 짚어주어 좋았다. 시간이 흐르면 이 책에서 접했던 것들을 잊을 지도 모른다. 나의 의무, 내가 가진 힘에 대해 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우울함에 빠졌을 때, 책장에 꽂혀진 이 책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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