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로 만든 집 시작시인선 163
정채원 지음 / 천년의시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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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記>

 

정채원

 

 

가는귀먹은 귀에 검은 이어폰을 꽂고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포장마차
오뎅 국물과 소주잔을 건너간다
얼얼한 목구멍으로 언 별을 잔뜩 삼키고
동짓달 그믐밤을 건너간다
은하수를 건너 건너
간신히 다시 밝은 아침
입안에 군별이 가득 들어 있다
밤새 타들어 가던 머리 풀어헤친 여인이
강을 건너간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운 채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신작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천년의 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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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記>는 시쓰기의 천형을 형상화한 시로, 그 안에는 세 가지 서사가 숨어있다. 아득한 고조선의 가요로 알려진 <공무도하가>의 고사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고 강으로 들어가 자살했던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가는귀먹은" 나이든 시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세 서사는 강을 매개로 전개된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1. <공무도하가>의 서사

 

시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알려진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를 시의 모티브로 삼으면서 살짝 변형을 주었다.

 

公無渡河歌

 

公無渡河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그예 그 강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하리.

 

이 시는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남편이 술에 취해 강에 빠져죽는 것을 목격한 아내가 부른 애통한 노래라는 드러난 내용을 넘어서서, 고대의 모든 설화가 그렇듯 은유적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강"은 모든 경계선의 총체를 담고 있는 은유어다. "강"은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 사랑과 이별, 이상과 현실, 욕망과 체념 등등의 경계선이며, 갈등의 영역이다. 시는 그 경계선에 아주 짧게 드러나는 깊은 갈등의 '표면'을 포착해서 들려주고 있다. 치명적인 경계임을 알면서도 걸어가야만 하는, 그럼에도 다 건너지 못하고 좌절해 가라앉아버리는 이의 깊은 좌절과 속수무책 그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이의 비통한 마음이 시를 통해 전해진다.

 

이런 <공무도하가>의 서사는 시 <공무도하記>에 바로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채원 시인의 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 전체의 시세계와도 교묘하게 만난다. 시집에 수록된 시 곳곳에 시공간의 중첩, 교차가 큰 대립된 세계, 아무리 해도 넘어서지 못하고 미끄러진 실존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2. <공무도하記>의 서사

 

가는귀먹은 귀에 검은 이어폰을 꽂고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포장마차
오뎅 국물과 소주잔을 건너간다
얼얼한 목구멍으로 언 별을 잔뜩 삼키고
동짓달 그믐밤을 건너간다
은하수를 건너 건너
간신히 다시 밝은 아침
입안에 군별이 가득 들어 있다

 

첫 연의 주체는 정황상 정채원 시인 자신이다. 그녀의 현재가 흐른다. 그녀는 아마 이어폰을 끼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공무도하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건너"는 행위가 그것을 연상시켰을 수도 있고 듣고 있던 노래가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였을 수도 있다. 문득 그녀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고통의 극한까지 다녀오는 일이 바로 <공무도하가>의 강물 건너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에 "건너간다"는 표현을 쓴다. 백수광부의 하얀 머리는 "모자"로 , 술병은 "소주잔"으로 변용된다. 술에 취한 백수광부가 소주를 마시고 얼큰해져 강을 건너듯 그녀도 그녀의 강을 건넌다. 그녀의 강,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시쓰는 일이다. 그녀는 동짓달 그믐밤을 새면서 "아직 시가 되지 못한 낱말들"을 잔뜩 끌어올리며 시를 쓴다. 밤새도록 애면글면 하는 숙고와 고통에 시달리며, 건너지 못할, 건너서는 안될 사선의 강을 건넌다. 심지어는 지상의 강을 넘어 하늘의 강인 은하수까지 건널 정도로 극한의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간신히 돌아온 아침에 그녀가 건진 시에는 냄새나는 시어, 즉 상투적인 낱말들만이 가득찼을 뿐, 결국 시쓰기는 실패하고 만다.

 

밤새 타들어 가던 머리 풀어헤친 여인이
강을 건너간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운 채

 

이 부분의 주체는 둘로 볼 수 있다. 주체를 둘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겹겹의 은유를 가능케하고 시간을 확대했다. 먼저 주체를 시인으로 놓자. 이제 주체가 여자임이 명시되어, 모자를 쓴 이가 시인 자신임을 거꾸로 명시한다. 밤새도록 시를 쓰느라 애쓰던 그녀가 이번엔 죽음의 강으로 들어간다. 상투적인 언어의 세계에 머무는 것은 시인에게 '죽음'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강, 시의 강을 건너다가 죽고 만다. 이것이 현재의 죽음이다. 다음으로 주체를 버지니아 울프로 볼 수도 있다. 시인은 자신을 마찬가지로 여류 시인이었던 "버지니아 울프"와 동일시 한다. 그녀는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자살한 울프처럼 강으로 들어간다. 백수광부의 '술병'과 울프의 '돌멩이' 역시 죽음으로 가는 매개체이다. 그렇게 고조선과 영국과 한국의 공간과 고대와, 19세기와 현재의 시간은 만난다. 정채원의 시에서 이런 만남은 낯설지 않다. 그녀에겐 인생이 우로보로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주적인 환이다. 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에 수록된 <여우호수> <지난 60년동안> <검은 달> <통과> <우로보로스> <발굴>은 바로 현 존재와 시원적 존재의 맞닿음, 즉, 한 존재 안에 구현되는 시간의 중첩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오늘의 나는 저 먼 시원의 우주와 앞으로의 미래의 우주와 맞닿아 있는 순환 고리 중 한 점이다.

 

 

3.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의 해석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이 단 한 줄이 있음으로써 <공무도하記>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가 된다. 단순한 시에서 몇 겹의 해석이 가능한 공간이 넓은 시로 변모한다. 이 구절은 시의 주체, 발화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힌다. "그대"와 "강"은 몇 겹의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첫째, 그대를 '시인'으로 강을 "시" 혹은 "시인의 길"로 볼 수 있다. 여기선 시의 주체가 바뀐다. 전복의 구절이다. <공무도하가>의 "公無渡河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삼인칭의 대상이었던 "강"이 이제 명령어의 주체로 바뀌었다. 기존의 서정시를 하나의 주체가( 혹은 화자가) 일관성있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는 일군의 젊은 시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탈서정적" 서정시에 가깝다. 바뀐 주체인 "강"은 앞연의 주체인 시인에게 말한다. "시인이여, 이 길을 걷지 말라". 그것은 시인 자신의 내부에 있는 또 하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시인은 강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내부로부터 듣고 갈등한다. 시를 쓰려는 의지와 그 험한 길을 가지 않으려는 의지, 두 상반된 의지가 내부에서 갈등하고, 그것을 통합하고 넘어서려 시인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정채원 시인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서로 다른 격차가 큰 자아의 분열과 갈등, 그것을 넘어선 합일의 가능성을 찾는 일을 이번 시집 <<일교차로 만든 집>>에서 추구해왔는데, 이 또한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일교차란 것이 무엇인가? 하루에 교차가 큰 두 날씨를 말하는 것이고, 시인은 자기 내부의 일교차를 조화시키려 하나 끝내 좌절하고 미끄러지는 이야길 그녀의 시 <분열의 역사>, <조각그림 맞추기> <짝눈><에임즈 룸>< 일교차로 만든 집> 등등의 여러 편에 담고 있다. 이 모두가 어쩌면 <공무도하記>의 변주들일 수 있다.

 

그런데,"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의 "나"를 시인 자신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두 번째 관점이다. 삼인칭 "그녀"를 1인칭 "나"로 시점을 바꾸었을 뿐 발화자는 동일한 시인이다. 그러면 "그대여" 라고 불리워지는 호명의 대상은 누굴까? 시인이 "그대"라고 부르는 은밀한 연인, 바로 시인이 사랑하는 "시" 자체이다. "쓰지 않을 수 없는, 하지만 늘 고통을 주는 나의 시여, 제발 나를 이젠 그만 건너다오." 라고 시인은 시에 호소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전복이 일어난다. 강을 건너려는 사람인 시인이 이제 건넘의 대상인 '강'으로 바뀌어, 강의 이미지로 투영된다. 내 속의 어두운 물결, 혼돈,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삼킬 수 밖에 없는 그런 나의 어둠 속으로, 시를 쓰고 싶어하는 나의 욕망의 물결 속으로, 그대, 나의 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시인은 읍소한다. 이 역시 내부에서 들려오는 갈등의 목소리다. 그래서 이 구절은 강렬한 역설로 들린다. 백수광부가 아내의 말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 강에 들어갔듯, 그녀는 그 말리는 내부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막고 "검은 이어폰"을 낀다. 결국 시 쓰기는 정채원 시인에게는 <공무도하記>이다.

 

이런 다층적인 전복과 역설의 기교가 주는 호소력이 이 짧은 시를 좋은 시로 만들었다.

 

주:
공무도하가:
이 노래는 고조선의 것으로 추정되나, 일찍이 중국에 전해져 중국문헌에 먼저 기록이 되었다. 진(晋)의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기록된 설화에 따르면, 백수광부(白首狂夫)인 남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에 취해 물을 건너고 있는 것을 본 아내가 강을 건너지 말라고 소리질렀지만, 남편은 기어코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 아내가 비통해하면서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부른 후,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 때 배를 젓고 있던 조선(朝鮮)의 진졸(津卒)인 곽리자고(霍里子高)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인 여옥 (麗玉)에게 그 소리와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옥이 그대로 공후를 타며 따라하니 사람들이 다 슬퍼하였다. 그래서 <공무도하가>의 저자는 백수광부의 아내, 악곡인 <공후인>의 저자는 여옥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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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을 한 운명 - 릴케의 고통의 해석과 인문학
김재혁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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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을 한 운명˝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사는 우리에게 보내는 릴케의 메세지! 글쓰는 이, 특히 시인에게는 훌륭한 글쓰기 입문서이자 시론이지만, 일반인에겐 고통의 순간에 펼쳐보는 인생의 지침서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일반인들에게 더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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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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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를 세계적인 작가로 출세시킨 작품집 <<대성당>>의 대표 단편 <대성당>을 보면,

소설 속 화자의 아내는 한 맹인친구-남자-와 만나진 않고 서로의 일상의 얘기를 담은 녹음테이프를

10년째 교환한다. 그 테이프 속엔 결혼과 이혼 재혼 등 아내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그대로 들어 있다.

 

아내는 10년 전 그 맹인친구의 사무실에서 잠시 일하면서 그를 알게 되었는데,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둘 때 그는 아내의 얼굴을 한 번 만져보길 원했고 그녀는 그것을 허락한다. 그 뿐이었다.

아내에겐 그 때 사랑하는 약혼자가 있어서 그와 결혼했고, 그 맹인 역시 그 사무실의 새직원과 결혼해 행복하게 각자 살아왔다. 각자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도 녹음테이프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친구의 끈을 놓진 않았다.

 

 어느날 이 맹인친구가 부부의 일상 속으로 하루 들어 온다. 맹인의 아내가 죽어서 장례차 이 부부가 살고 있던 곳과 가까운 곳에 맹인이 왔고, 아내가 그 맹인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이 친구에 대한 얘기는 아내에게 들어서 알고 있지만, 남편에겐 이런 교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찜찜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남편은 그 하루 저녁을 맹인과 같이 지내면서 이들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맹인이 아내의 얼굴을 만지면서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면서 느꼈던 느낌을 다른 방법으로 간접체험하게 되면서.

남편은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성당을 맹인친구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가 시킨대로 맹인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개고, 또 눈을 감고 대성당을 그린다. 그러면서 대성당-하필이면 다른 건물이 아니라 대성당을 그리게 된 것 역시 복선이다-의 진정한 의미도 알게 되고, 얼굴을 만질 때의 아내의 느낌, 맹인의 느낌도 알게 된다. 무념한 성스러움!! 어떤 경건함!!

 

당연히 그는 그들의 교유를 이해했을 것이다.

 

*카버의 간결, 생략, 침묵이 많은 글쓰기상 이런 감정에 대한 해석은 없다. 그는 단지 손을 잡고 대성당을 그린다. 고요하다. 그것으로 끝이다. 단지 단순한 문장으로 독자의 해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여기서 해석 부분은 내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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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의 미카엘도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를 보내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 몇 년간인지는 잊어버렸다.

 

사람은 어딘가 진실을 털어놓는-카버식 용어론 영혼의 사정- 배출구가 필요하다. 진정한 교환을 필요로 한다. 이런 교유를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까. 차원이 다른 사랑, 인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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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치하의 전제정치: 법의 탈을 쓰고 행해지는 전제정치/몽테스키외 

 

"로마에는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몇가지 불경죄에 관한 법이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이법을 교묘하게 잘 이용한 경우였다. 그는 이 법의 본래의 취지를 넘어서서, 자신의 증오심이나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면 우엇에나 적용했다. 비단 어떤 행위 뿐만 아니라 말이나 몸짓, 심지어 사상까지도 이 법의 적용범위에 포함되었다. 친구 사이의 대화에서 감정을 토로하는 데 뱉어진 말조차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향연의 자유는 물론 혈연 사이의 신뢰, 노예의 충성심마저 더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군주의 기만과 우울증이 모든 곳으로 확산되었고, 우정은 위험한 것으로, 솔직함은 무모함으로, 미덕은 민중의 마음 속에서 지난 시절의 행복을 상기시키는 애착쯤으로만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법의 탈을 쓰고 정의의 색을 입혀서 행해지는 전제정치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이는 뗏목 덕에 목숨을 건진 불쌍한 이들을 그 위에서 다시 밀쳐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몽테스키외, <<로마의 성공,로마제국의 실패 >>, 김미선 옮김, 사이, 2013, 199-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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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몽테스키외로 하여금 <<법의 정신>>을 쓰게 한 모티브가 된 책이다. 로마의 멸망에 대한 정치사상가의 총체적 보고서. 개별 사료보다는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으로, 역사가와는 다른 통찰의 눈으로 로마시대를 해석했다. 역사학자 뿐만 아니라 세정과 인정의 기미, 즉 인간을 해석하는 데도 훌륭한 책이다. 수상록을 읽는 기분.

 

몽테스키외는 로마제국의 멸망이 너무 이른 성공, 즉 번영에 있다고 보았다. 정복과 팽창의 속도가 빨라 관리와 지속의 체제로 미처 법을 바꾸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하였다. 정복의 법과 유지의 법은 달라야 한다!

 

오늘은 그가 쓴 <<로마의 성공,로마제국의 실패 >>를 읽다가 티베리우스의 전제정치를 설명한 부분이 그냥 읽혀지지 않아서 소개한다. 왜 멈추게 되었을까?  불경죄는 무슨 법과 닮아 있다.

 

전제정치를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장치는 "두려움의 조장"이다. 독재는 공포를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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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사랑이 싹트는 둥지(배경으로서의 공간) , 그리고 베껴쓰기

 

 

"사랑이 싹트는 둥지"(제가 임의적으로 붙인 제목)

 

원제: <알리는 말씀: 우리 모두 산림을 보호합시다> 중 일부

 

번역1

 

"사랑하는 남자는 연인의 '결점'에만, 여자의 변덕과 약점에만 애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얼굴의 주름, 기미, 낡아빠진 옷과 비뜰어진 걸음걸이가 모든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그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그렇다면 왜?

감각은 머릿속에 둥지를 트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창문, 구름, 나무를 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보는 장소에서 느낀다는 설이 있는데 , 그러한 주장이 옳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볼 때도 우리 외부에 있게 된다. 하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긴장하며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채, 현혹된 우리의 감각은

여자의 광휘를 새들 무리처럼 빙빙돈다.  그리고 새들이 잎이 무성한 나무의 은신처에서 보호처를 찾듯이 온갖 감각은 애인의 육체의 그늘진 주름 , 품위없는 동작, 눈에 잘 띄지않는 결점 속으로 도피해 그곳에서 안전하게 은신처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바로 이곳, 즉 결점이 있는 곳, 비난받을 만한 곳에 한 여자를 숭배하는 남자의 화살처럼 빠른 연정이 둥지를 튼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출처: <알리는 말씀: 우리 모두 산림을 보호합시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조형준 역, 새물결, 2007, 33쪽)

 

번역 2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의 '실수', 여성스러운 변덕이나 약점에만 연연해하지 않는다. 어떠한 아름다움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 더 오래, 더욱 더 사정 없이 붙잡는 것은 얼굴의 주름살, 기미, 낡은 옷, 그리고 기울어진 걸음걸이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다. 어째서인가? 감정은 머리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이 맞는다면, 또한 창문, 구름, 나무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머릿속이 아니라 그것들을 본 장소에 깃들어 있다는 학설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애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 자신을 벗어난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긴장과 환희를 느낀다. 감정은 여인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새떼처럼 푸드득거린다. 그리고 잎으로 가려진 나무의 우묵한 곳에 은신처를 찾는 새처럼 감정은 사랑하는 육체의 그늘진 주름살, 투박한 몸짓,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결점을 찾아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안전하게 은신처 안에서 몸을 움츠린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랑의 떨림은 바로 거기, 결점이 되고 비난거리가 될 만한 것 안에 둥우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일방통행로>>,최성만 외 역,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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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짧은 단상의 제목이 왜 '산림을 보호하자'일까요.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곳이 우리 내부의 뇌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며, 타인을 바라볼 때조차도 본래의 모습보다 외부적 요소와 결합된 배경 속 모습에 더 현혹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듯이 '산림을 보호하는 것'도 우리가 무언가를 더 잘 느끼게 하는 그런 배경 공간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일 수 있지요. 같은 사람도  상이한 공간적 배경 속에서는 다르게 느껴지니까요? 연인의 옷도 걸음걸이도 주름도 기미도 다 일종의 그녀 바깥의 공간적 배경이지요. 우리는 주관적인 것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습관에 물들어있지만 진정성이 발휘하는 곳이 꼭 내면공간만은 아니란 이야길 벤야민은 하고 싶었나 봅니다.

 

사랑이 싹트는 둥지가 결점이 있는 곳, 비난받을 만한 곳이란 말은 참 시사적입니다. 어쩌면 관계 속에서 내가 작용할 공간이 확보되는 곳을 원하는지도 모르지요. 또 대저 약점이 있는 곳에 바로 그 장점이 숨겨져 있는 법이기도 하고요!! 아무도 모르는, 세밀히 들여다 보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그녀  혹은 그의 고유성!

 

2. 발터 벤야민은 텍스트를 베껴쓰는 일을 강조했어요. 그는 텍스트를 그냥 읽는 것과 베껴쓰는 것의 차이는 시골길을 비행기를 타고 풍경의 일부로 보느냐 아니면 걸어가면서 굽이굽이 펼쳐진 길의 멋진 조망을 세세히 맛보느냐의 차이와 같다는 것이죠. "베껴 슨 텍스트만이 그것에 몰두한 사람의 영혼에게 호령할 수 있는 반면, (텍스트에 의해 열린) 단순한 독자는 자기 내면의 새로운 광경들, 계속 다시 빽빽해지는 내면의 원시림 사이로 나 있는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은 몽상의 자유로운 하늘을 떠돌며자아의 움직임을 따르지만 베껴적는 사람은 그러한 움직임에 호령하기 때문이다."(같은 책,27쪽) . 그런 맥락에서 벤야민은 중국 서적의 필사전통을 중국 문예문화에 공헌한, 중국 문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 보았고, 그 필사본들을 '중국의 공예품'이라 보았죠.

 

3.

저 역시 베껴 써보았어요!! 벤야민의 뜻에 따라, 그의 글에 대한 경의로!!

작가 김훈은 훌륭한 문장을 쓰려면 좋은 문장을 많이 외워야 한다고 하였어요. '문장을 외우는 것', 이 역시 '입으로 베껴쓰기' 이죠. 외우면서 되새김질 하는 것! 텍스트 원저자의 생각 속을 걸어서 갖고 나온 글들을 다시 내 생각 속으로 넣어 굴리는 일. 어쩌면 "번역"도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서 베껴쓰기를 좋아한  벤야민이  그의 번역이론에서 수용자인 독자보다 원저자의 의도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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