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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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책을 읽기 전에  (2007.12.15)

연극으로 히트한 이 작품을 '부조리극'이라 하였다. 그래서 먼저 부조리극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부조리극 : 1950년대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극 및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연극, 사실주의 극의 반대로 1950년대 유행.

부조리극 작가(베케트 등)들의 공통된 입장 : 인간이 어떤 목적을 발견하고 자신의 운명을 제어하려는 몸부림이 헛될 뿐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 견해에서 볼 때 인간은 절망과 혼동, 불안을 느끼고 있는 버려진 존재이다.

책 소개에서는 고도(Godot)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을 주 골자로 안내하고 있다. 이 희곡이자 시나리오는 1950년대 공연되고 유명세로 프랑스 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이 고도의 의미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많은 유명한 평론가를 비롯해 이 부조리극을 본 관람객들은 자신의 현 상황에 맞추어 의미를 해석하였고,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유명해진 후 아직도 이 고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학인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고도의 의미를 찾아서 자신의 현실에서 목표 또는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 또한 나쁘진 않겠다.

하지만 어떤 서평을 한 독자가 표현한 단어를 빌리자면, 이 '미친놈' 베케트를 볼 때, 그리고 맨 위에 적어 놓은 부조리극 작가들의 공통된 사고의 전제를 보아도 그렇듯이, 또한 "이 작품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 라고 말한 베케트의 말을 볼 때도,

이 희곡과 책을 보고 나서 웃으며 적당히 그리고 가볍게 생각해 보면 그만이지, 구지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어떠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베케트의 인간에게의 비관주의적 관점을 지지해 주면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뭐, 벌써 완독을 하기도 전에 겨우 20 페이지 읽어보고서, 그리고 책 소개나 서평 만을 보고 벌써 다 읽었다는 듯한, 이건 이거야! 라는 결론을 너무 내보인가 하는 섣부른 감이 있다. 그래도 한 권의 책을 읽기 전에 프리뷰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미에서 나름 짱구를 굴려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이제 베케트, 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본다.

 

Ⅱ. 책을 덮고 나서  (2007.1.10)

 

●「고도」의 흐름

  ☞ 배경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이 책을 펴게 되었다. 빨리 읽고 싶었지만 다른 계획과 이런저런 변명으로 인해 근 4주가 다 지나고 나서야 펴게 된 것이다.

우선 표지에는 작가 사뮤엘 베케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있다. 얼굴에선 카리스마, 익살, 괴짜의 이미지가 풍긴다. 눈가의 거북이 등딱지 같은 주름에서 그의 인생사와 애환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나무 한 그루만 있는 어느 황량한 시골 길 옆에서「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과 중간에 지나가는 다른 두 사람, 그리고 소년까지 총 5명이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전체 2막으로 구성된다.

  ☞ 1막

먼저 1막에서「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이름은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이다. 둘이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동안에 수 없이 지껄이는 말들은 그냥 엉뚱하게만 생각하고 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통해 고고와 디디의 성격이 드러났기에 정리해본다.

고고는 어두운 현실을 잘 깨닫고 있으며, 수동적이고, 기다림에 조금 경계, 불안함을 보인다. 그리고 포조와 럭키가 등장할 때는 소극적, 자존심 없고, 소인배 기질의 성품이 드러난다.

디디는 능동적이고, 강직하며, 기다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다. 포조와 럭키의 등장 후에도 계속해서 적극적이며, 자존심 있고, 정직하여 나름대로 정의를 외칠 줄 아는 인물이다.

이제 단 둘이서 고도를 기다리면서 하는 쉼없는 '말'은 포조와 럭키가 등장하면서 이들에게 전이되고 같이 동화된다. 작품에서 포조는 주인, 럭키는 하인으로 묘사된다.

포조는 지배자, 탐욕스럽고 비인간적이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인물이다.

럭키는 노예, 아무런 자유가 없으며 소외된 자이다.

이들이 등장한 이후, 기존의 익살스러웠던 분위기가 굉장히 어둡고 슬퍼진다. 특히 포조가 계속해서 럭키를 학대함으로 이는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럭키를 버리고 싶다며 포조는 "솔직히 말해서 이런 녀석은 쫓아버릴 것도 없이 그대로 죽여버려야 하는데."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럭키는 운다. 이 대목에서 이 작품을 읽기 전의 내 생각이 역시 섣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허무주의라고 평가받는 무엇을 뛰어넘는 희극이라 느껴졌다.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시각으로는 절대 볼수 없는 작품인 것이다.

해가 질 무렵, 소년이 와서 고도 아저씨는 내일은 꼭 올 것이라며 말하고 그들은 또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가 가고, 이렇게 1막이 끝난다.

  ☞ 2막

2막에서도 기존의 시간 장소 모든 것이 똑같다. 똑같이 그저 고도를 기다리는 막연한 기다림이 반복되며 이들은 시간과 공허함을 때우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들은 이 말을 통해서 둘은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어서 포조와 럭키가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1막과는 상황이 달라진다. 포조가 장님이 되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고고와 디디가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여 태도가 전혀 반대로 바뀌게 된다. 특히 어제까지만 해도 포조에게 꼼짝 못하던 고고가 오늘은 먼저 나서서 포조에게 막말을 하는 것 등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또 포조는 더 늙었고 그래서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떠나고, 또 다시 둘의 어제와 같은 말장난이 반복된다. 오늘은 어제 만났던 포조와 럭키 이야기, 순무이야기, 구두이야기, 모자교환 놀이, 흉내놀이, 망보기 놀이, 체조운동과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화제는 이렇게 말로써 끊임없이 뒤바뀐다.

그러다 또 소년이 등장한다. 역시 하는 말은 내일 온다고 한다. 디디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으며 고고는 역시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디디는 내일도 고도가 오지 않으면 목을 매는 것이고, 그가 오면 살게 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작품은 끝난다.

 

● 그놈의「고도」가 뭐야?!

  희극 그대로의 고도

이 작품 내내 도대체 궁금한 이「고도」에 대한 기다림은 디디가 주도한다. 고고는 그냥 막연하고 이에 대한 집착은 디디보다 덜하다. 아래와 같이 10번 이상 나오는 대사에서 항상 디디가 먼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일깨우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그리고 작품 속에서 작가는 간헐적으로 고도에 대한 힌트를 조금씩 알려준다. '고도에 대한 기다림은 그들에게 일종의 기도, 막연한 탄원, 장차 닥쳐올 미래가 달려있는 사람이다' 와 같은 것이 그 힌트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그 시절 사람들도 그렇게 궁금해 했던「고도」의 의미가 무엇일까?

  ☞ 작가의 고도

먼저 작가의 생각은 무엇일지 작품해설을 통해 한 번 생각해본다.

역자는 작가에게 있어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작가의 상황을 고도의 의미로 말할 수 있다 한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2막 끝에 고도가 안 오면 목을 매고, 오면 살게 되는 것이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한다. 즉, 작가에게「고도」의 의미는「종전」인 것이다. 또 이런 관점으로 포조와 럭키도 재조명 해볼 수 있다. 포조는 전쟁의 승자, 럭키는 전쟁의 패자인 포로이다. 그리고 1막에서의 포조의 의기양양함이 2막에서 럭키와 다름없는 상황으로 반전되는 것은 전쟁에 있어서 그 누구도 진정한 승자란 없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가「고도」의 의미를 위와 같이 생각하여 썼든 안썼든지 결과적으로「고도」란 정해진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을 읽는, 연극을 관람했던 사람들, 그리고 때와 상황에 따라 각각 고도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또한 이것을 베케트가 예상했을 수도 있고, 그다지 기대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다. 고도의 의미에 대해 베케트가 대답한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란 말을 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 나의 고도

이제 내가 생각한「고도」는 두 가지로 해석해보겠다.

하나는 단순하게 생각한「고도」로써, 의미는「인생의 목표 성취」이다. 때문에 고고와 디디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웃기기만 한 말과 행동을 계속하는 것도 이 '고도를 성취' 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고고와 디디의 태도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인간의 각기 다른 성격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눈 것이 고고와 디디 캐릭터라고 생각함). 그리고 포조와 럭키는「인생의 목표 성취」는 없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 늙고 병들어, 남에게 당하기만 하여 소외되다가 세상을 떠나는 '고도가 뭔지도 모르고, 기다리지도 않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렇게 고고, 디디, 포조, 럭키를 세상을 사는 인간의 4가지 유형으로 분리해본다. 그래서 사람마다 그리고 처한 상황마다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며, 이것을 규정해 봄으로써 지금 내 인생을 살펴보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고도」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고도는 어쨌든 이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그 어떤 것'이며, '이것'이 없으면 이제 이들이 계속 기다리고 살아야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은 고도 하나만을 기다리며, 주어진 시간에서 거의 대부분을 의미없이 보낸다. 여기서 또다시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대부분의 의미없는 시간 때우기에 중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현실을 어느정도 파악하고는 있으며(주로 고고) 아주 가끔씩은 진지한 '생각같은 생각'을 해본다는 것이다(거의 디디).  

먼저 '시간 때우기'에 중점을 맞추면, 이들은 그저「고도」만을 기다리고 아무것도 하려들지 않는 멍청이, 인생포기자 일 뿐이다. 오직 그것만 있으면 된다는 핑계에 확실하지도 않고 어쩌면 오지도 않을 기다림만을 계속하며, 이들에게 인생의 3막 4막이 계속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역시 기다리며 쓸모없는 시간만 보내다 죽어버릴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을 해본다'는 것에 중점을 두면, 그들의 기다림은 막상의 의미없는 기다림으로 볼 수 없다. 어느 '끝' 또는 '해소'가 있는 의미있는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 끝나기 전까지, 그들 나름대로 서로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무언가 소일거리를 만들어보고, 어떨 때는 진지한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들의 '기다림'을 나 또는 독자들에게 비추어 생각하게 하여 교훈을 줄 수 있다. 그것은 '내 인생은 어떠한 기다림과 끝을 보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정도 일 것이다.

 

● 문학이란 (내가 생각한 문학에 대한 가치관 정의)

내 머릿속에선 오늘 이 연극이 초연되었다. 하지만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이 작품의 다양한 해석, 의미부여, 사고의 확장, 그리고 이를 통한 삶의 태도변화 이끌기가 무한해진다. 아직 내 생각의 수준이 높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이, 그리고 문학작품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만드는 걸까.

나는 아직 문학을 잘 모른다. 지식인이라면 꼭 읽었어야 할 유명한 문학 소설도 아직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여기에는 내가 먹고 살 방법에서 이 '문학'이라는 것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아니 거의 쓸데없는 것으로 지금까지 치부해 왔던 것이 큰 변명 아닌 변명이겠다.

하지만 책에 열정을 가지고, 이어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본 나는 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첫걸음으로 문학이라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이라는 것을 "좋은 문학은 많은 생각할 거리, 다양한 사고와 가치의 확장이 가능해야 한다. 그것이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든, 아니면 다른 그 어떤 것이든지 말이다. 또한 시대에 맞춘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것도 문학이 읽히고 읽어야 하는 이유다." 라고 나름대로 정의함으로써 가치관을 정립해 보았다. 

이「고도를 기다리며」는 문학에 대해 눈뜨게 만든 첫 번째 작품으로 낙인찍혔다. 이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많은 문학작품을 접해볼 것이다. 즉, 나만의 방식대로 의미있게「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근데 지금까지 뭘 지껄였던 것일까?"   "그럼 가자."   "갈 수 없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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