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 신화 속에 감추어진 기이한 사랑의 이야기들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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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같은 저자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신화 그 중에서도 사랑이야기에 관한 책이었다. 이 책은 전의 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한 사랑이야기만을 묶었는데도 벌써 2권이 넘는다. 얼마나 시랑이야기가 많은가(제우스의 사랑이야기만 엮어도 책 2권은 가뿐하게 나오리라). 그만큼 신들의 세계에서도 사랑은 커다란 화두였던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들도 사랑에 안달복달하고 목메는 것이 한편으론 우습다. 하지만 신들의 이야기는 사실 사람의 이야기다. 정말로 올림포스의 12신이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신화를 엮고 만들고 다듬었을, 그리고 그것을 후대에 걸쳐 계속 전했던 것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결국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도 사랑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신화에서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언제나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고 병든 사람이 있다. 그러니 만물의 온 감정 중에서도 어찌 사랑이 가장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랑이야기가 한낱 우습게 여겨진다면 당장 이 책 덮어도 좋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가 또 사랑을 비웃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인간 역사의 근원에 있는 신화 그 중에서도 가장 근원의 이야기인 사랑이야기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럼 내용으로 좀 더 들어가서, 이 책에는 전의 책에서는 다 하지 못했던 사랑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총 열아홉 개의 이야기다. 이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오리온과 아르테미스’를 꼽을 것이다. 여기에서 읽기 전부터 좋아했던 이야기였다. 아름답고 강한 인간 오리온과 역시 아름답고 강했던 여신 아르테미스의 사랑이야기이다. 익히 아는 것과 같이 아폴론의 간계로 제 손으로 연인을 죽이고 마는 아르테미스. 어찌나 절절한 사랑이던지 나는 오리온이 나중에 별이 되었다고 해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자고로 옆에서 함께 하며 오래도록 있어야 더 행복하지 않은가. 처녀들의 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에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명부에까지 가서 아내를 구하려고 했던 오르페우스와 결국 돌이 된 에우리디케, 20년이라는 긴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돌아온 오디세우스와 그를 계속해서 기다린 페넬로페 등 연인들의 절절한 사랑들도 있다. 물론 에오스와 티토노스처럼 결국에는 파국으로 끝난 어이없는 사랑도 있고 말이다.

시대를 건너 아직까지도 익숙한 방식의 사랑이야기들. 물론 지금과 과정과 표현은 약간씩 다를 지라도 여전히 질투와 욕망들이 살아 숨 쉬는 신화를 읽으니 앞으로 또 다시 몇 천 년이 지나도 여전하겠구나 싶었다. 미래에도 연인과 사랑은 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가 사랑의 이야기이니 근원적으로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떠오른다. 신도 사람도 결국 혼자서는, 동굴에서만은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이 있을까. 갖가지 감정을 동시에 다 맛볼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좀 더 현명해지고 좀 더 인간답게, 신답게 되려고 사랑을 그토록 하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익숙하던 익숙하지 않던 사랑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모두가 얻어가는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전의 책인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와 같이 읽으면 더더욱 좋겠고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들의 어원이 되는 신들과 사랑이야기가 많으니 그걸 곱씹으며 읽어도 좋겠다. 단, 이 책들은 설명 위주로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으니 좀 더 신들의 관계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다른 책들을 찾아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사랑이야기들만 모두 읽고 신들의 관계만 세워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거의 다 읽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아, 신들의 사랑이 그렇게도 많은 것은 사람이 사랑을 그렇게나 받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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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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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때가 있었다. 하릴 없이 시를 뒤적이는 것이 인생의 낙인 때가 있었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좋은 시를 만나면 서슴없이 노트에 베끼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중 오롯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는 아주 늦은 밤뿐이었다. 모두 지치고 잠든 밤이 되면 그제야 나는 내 시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멀리서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때로는 분주하고 애가 닳듯이 그렇게 움직이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 작은 노트에 애써 시를 베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좀 더 밝은 스탠드를 켜놓고 덕지덕지 쪽지들이 붙어있는 책상 한 귀퉁이에 일기가 꽂혀있고 바로 옆에 베낀 시들이 빼곡하게 차있는 노트가 꽂혀있었다.

아직도 가지고 있다. 종이가 누렇고 글씨는 삐뚤다.

짧게 적은 감상들이 자못 심각한 것이 아, 나도 저 때에는 이미 시인이지 않았나 싶다. 남의 시를 베껴놓고 마치 제 시인 양 아주 멋들어지게 주절거린 걸 보면 나도 그땐 시인이었나.

그래서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라는 제목을 보고 마음이 혹했나보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고 시를 베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분명 아련하게 떠올릴 것이다. 시인과 베낀 시인. 그 둘 사이에 말린꽃처럼 끼어있는 촘촘한 추억이.

읽어보니 분명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 같은 종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진 시를 보고나면 애가 닳고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분명 같을 것이다. 그러기에 베끼기도 하고 아래 짧게 한 수 적기도 할게다. 어두운 밤 시를 손에 그러모으고 붙잡고 읽으며 가졌던 정서가 같다. 분명히 같은 종족이다.

차곡차곡 안도현의 누런 노트를 읽어 내려갔다. 한장 한장 읽어갈 때마다 역시나 같이 감탄했다. 함께 느낀 감탄, 슬픔, 환희, 절정, 절망. 시인을 시기하기도 하고 무릎을 탁 치면서 시를 맛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으면서 그렇게 다시 노트를 덮었다. 떠올려보니 내가 노트에 적었던 시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싶어 괜스레 기분이 좋다. 한편으로 내가 몰랐던 시들도 많아, 옳지! 하고 좋아했다.

안도현이 뽑은 시들을 되새기며 나의 시, 내가 사랑했던 풍경들도 함께 돌아왔다. 시가 가지고 있는 힘. 찰나를 잡아채 글줄로 남긴 그 힘을 비로소 다시 대한다. 시가 살아있는 책이고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시를 읽으며 안도현도 나도 살아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시들을 과포화로 다 넘기고 보니 밤이 지나있었다. 문뜩 내 노트가 보고 싶어졌다. 내가 베낀 시인이 되어 노트를 채운 바로 그 광포한 감정들이 담긴 누런 노트가 보고 싶어졌다. 그 노트에는 언젠가부터 멈춰있었다. 눈앞에 떡하니 있는 데도 없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어느 때부터 시를 잘 읽지 않았다. 물론 그때엔 이미 내 마음에 시보다 소설이 더 깊숙이 들어온 후였다. 그래도 소설만이 아니라 시에도 조금 애정을 남겼을 법 한데, 시를 잊고 살았다. 그래서 그 노트가 더 그립고 안도현이 부럽다.

나의 시간이 멈춘 노트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그때 빼곡하게 써내려갔던 바로 그 나는 이제 없다. 이제 다시 노트를 드니, 어쩌면 내 안에서 시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금 가려져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 책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해도 좋겠다. 서서히 잊힌 시들이 다시금 내 앞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누런 노트와 시, 그리고 베낀 시인. 이 모두가 어우러진 감정으로 나는 다시금 회귀했다. 돌아왔다. 어물쩍 다짐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시 베끼기를 시작할 마음이 생겼다. 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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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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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고 햇살이 서서히 커튼을 물들여 갈 때쯤. 여전히 침대에 웅크리며 보드라운 온기를 맛보고 있을 때쯤. 무엇도 간섭하지 않고 그저 혼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그때쯤. 바로 이 책을 읽으며 그 한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른하면서도 간섭받지 않고 무엇에 쫓기는 것 같지만 온전히 제 시간인 때. 색깔로 표현하자면 미색 햇살이고 빛바랜 핑크빛과 같은 커튼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과 엽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평온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지할 수 없는 불안한 한때가 숨겨져 있다. 아직은 불완전한 상황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금기시하는 성적 판타지와 비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마치 막 오븐에서 꺼낸 빵처럼 부드럽고 쫄깃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빵 자체는 위험하지만 맛은 순전히 좋아서 자꾸 먹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해야 할까. 오빠가 누이를 강간하고 남자가 아이를 살해하는 그 순간에도 분위기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봄날의 바람처럼 포근하며 감히 아름답고 비일상적인 것에서 일상적인 것으로까지 둔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두가 표면에 딱딱하게 싸여진 금기라는 타이틀 이면의 말랑한 속살을 들춰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 제목과도 같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처음 혹은 그 마지막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는 딱 맞아떨어진다. 첫사랑은 처음인 사랑이지만 첫사랑이기 때문에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불구자, 부적응자, 소년 등 아직 온전히 제 힘으로 설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 같이 들어있는 코드는 전체적으로 책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와 같다. 나른하면서도 얇은 막에 둘러싸여 아직은 밖과 단절되어 있는 이미지. 그 안은 한없이 고요하지만 들끓는 밖이 조금은 비치는 세계이다. 그러한 밖과 안, 처음과 끝, 시도와 좌절들이 은밀하게 여기는 부드러운 핑크빛이라는 색을 띄고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그들의 세계는 아직도 고요하고 색은 부드러울 수밖에 없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세계는 미완의 세계이며 그들의 정신세계와 같이 한없이 미약하고 어쩌면 순수하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가지고 싶다는 욕망, 자라고 싶다는 욕망, 알고 싶다는 욕망, 가지고 싶다는 욕망, 욕망. 이들은 에둘러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 손으로 잡고 만지고 맛보고 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욕망을 풀 수 있는 아이와도 같은 단순한 방법만을 알고 있다. 그것이 다 자란 후의 사람이라면 언감생심 꿈에서나 한 번 나올 법 하지만, 이들은 말했듯 아직 외부와는 소통되지 않은 미완의 세계에 살고 있다. 고로 그들의 세계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울 대상을 기다리는 끈기도 참는 인내도 없다.

과격하고 사회와 도덕의 잣대로는 용인될 수 없는 파괴적인 힘. 바로 이것들이 우리의 이면 혹은 사회의 이면에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속살은 더더욱 말랑하다. 가지지 못하면 부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어야만 하는 원초적인 욕구들 사이에서 우리는 인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더더욱 순수하다.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욕망에서 눈을 돌리는 교육을 받았다면 아직은 그 무엇도 침범하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럭 겁이 난다. 사회적 금기와 룰, 법칙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는 그 모습에 우리는 우리가 지탱하고 있는 사회와 그 기반이 흔들릴까 두렵다. 우리가 믿는 하나의 법칙 통용되는 습관들은 모두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격자와도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염되고 병들고 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대로 생각해보면 순수하고 온전히 제 모습을 지긴 가치 있는 것으로도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아직 그들은 따듯한 온기에 젖어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나른한 한때를 사는 것과 같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막은 머지않아 사회와 집단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칠 것이고 찢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한때이며 고귀한 마지막 의식을 치루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과도기의 광기가 잠잠해지기까지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홍역을 앓듯 한 번씩 지나쳤던 첫사랑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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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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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리에 한 번쯤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로트렉과 같은 보헤미안들의 고향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 바로 파리니까. 파리, 그 하나를 엄연한 단어로 보아야 하고 거기에는 예술과 자유라는 뜻을 포함한다고 명명해도 어색할 것이 없는 도시. 그런 파리 여행담이라니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금 책장을 열었다. 이제까지 나는 많은 여행기를 읽어왔다. 일신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지독한 방향치에 길치인 탓에 여행을 부러워만 했고 정작 스스로는 못 가는 나인지라, 특히나 여행기를 좋아했다. 내가 가진 않은 곳이고 나야 아무리 상상을 한다고 해도 그곳의 정취를 온전히 떠올리진 못할 터, 그래도 여행기는 나에게 하나의 멋들어진 환상과도 같았다. 그런데 파리라니. 이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내가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열었을 때 거기에 펼쳐져 있는 것은 파리가 아닌, 한 여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파리로 여행을 떠났고 나 역시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파리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내 마음도 편치는 않지만, 60년대에 각혈하며 골방에서 죽어가는 그러한 정취를 그녀는 지니고 있었다. 진부하기도 하거니와 어찌나 세상이나 자신이 슬픈지 책장을 넘기는 내가 울컥 화를 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봐요! 파리까지 와서도 서울에서와 다를 바가 없군요.

파리에서 그녀의 우울이 도진 것인지, 파리가 그녀를 우울하게 만든 것인지 나는 분간할 재량은 없지만 여하튼 시종일관 슬픈 정조로 그녀는 파리보다는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그녀의 우울증이 중심이다. 딱히 파리라고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나. 아니다. 그녀의 심정은 아이들을 남편을 두고 집밖으로 나오면서도 우울했다.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자신이 슬픈 이유들과 감정에의 토로로 채우기 쉽지 않았을 것을 감안 한다면 정말 어느 의미에서 이 책은 대단하다. 읽는 내내 카운슬링이 주특기인 나조차도 짜증이 날 정도로 그녀의 우울은 병이었다. 게다가 난 도무지 이 슬픈 심정을 얼마의 돈을 주고 사서 읽어야 한다는 이유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온전히 자신만의 슬픔이라, 공감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가 거닐었던 파리는 그녀의 우울과 시기로 뒤덮여 블루보다도 더 깊은 암흑 속에 있었다. 내 눈에는 파리는 보이지 않고 그저 슬픈 여자의 청승맞은 트로트 한 자락 길게 읽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짜증을 유발했던 그 슬픔은 나중에 가서는 도무지 이 여자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본인에겐 본인의 일이라 힘들고 떨쳐낼 수 없겠지만 주위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그녀의 깊은 곳까지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은 별 일이 아닌 것을 크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감수성이 지나쳐도 너무나 지나칠 정도였으니까. 내가 과연 시간을 들여서 이 여자의 한탄을 들어줘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책장을 다 덮고 제목을 들여다보았다. 파리블루. 파리가 블루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블루한 것이다. 그녀는 결국 파리까지 블루하게 만들고 돌아왔을 것이다. 나는 되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옆에 눈을 감을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블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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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 메타포 1
미하엘 엔데 지음, 에드가 엔데 그림, 이병서 옮김 / 메타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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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나니, 굳이 중요한 글귀를 새기고 기억하는 것이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잘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하나의 색채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는 비즈이기 때문이고 그 비즈들을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의미 하나의 글귀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어우러지는 흐름을 읽거나 각각의 색채를 주목하거나 마지막으로 비즈들을 재구성해서 또 다른 목걸이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첫 장에는 차례가 없다. 게다가 한 작품마다 따로 소제목도 붙어있지 않다. 오로지 우리에게 남겨진 하나의 명제는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거대한 제목뿐이다. 거울 속에 거울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4차원의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것은 무한하게 반복 또는 복제된다. 어떤 것이 시작이었는지 처음이었는지 원본이었는지는 무의미하다. 무수한 거울 속에서 단 하나의 가치란 지금 그 거울을 무엇을 비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울은 실체가 없다. 거울 자체는 오로지 자신의 매끈한 겉면에 무엇인가를 비추는 역할을 할뿐이다. 고로, 거울이 비추고 있는 것이 나라면 그 거울은 끊임없이 나를 복제 해내고 창조해낸다.

남미의 소설가 보르헤스를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우스 떼르띠우스」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거울과 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아니러니 하게도 이 책은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책이다. 거울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양 하고 있다면 아버지 역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울은 표면적인 적을 카피하는 것에 그치지만 아버지는 미하엘 엔데의 근간을 세우고 엄숙하면서도 다정하게 창조적 열정을 불태우게 해주었다(이 책의 두 번째 단편에서 나오는 스승이자 아버지가 아마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울과 아버지의 관계를 보르헤스를 열쇠로 내가 풀어냈다면(혹은 풀어냈다고 믿는다면) 이 책의 다른 여러 가지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물론 답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고 다녔다는 세계 여행가도 결국에 가서는 아무 것도 아닌 자의 안내를 받아서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는 정말 아무도 아닌 것이 아니라 딱히 규정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통칭이다. 내 생각에는 여기에는 독자도 미하엘 엔데도 그리고 미하엘과 엔데도 포함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의 미로와 같지만 그 미로를 풀어내는 열쇠는 아무도 아닌 자들에 맞춰서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처음에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면(처음에 나오는 부분은 모호하게 의도된 바대로 시점과 인칭이 바뀐다) 한 번에 통독으로 훑고 구성이 눈에 조금 잡은 다음에 정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읽을 때마다 그 의미와 맛과 형태가 바뀌리라 장담한다. 이 책은 이러한 열린 구조와 모호하지만 통일된 색채로 언제고 다시 읽어도 그 재미가 반감하지 않을 작품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보르헤스의 작품과도 같이 말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작품의 열려있는 구조 그리고 하나의 끝이 없는 미로를 보고 있는 느낌, 거기에 정해진 하나의 답이 없다는 것까지. 실마리를 잡으려고 하면 무수한 갈래 속에서 어떠한 것도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하게 되지만 그것 또한 맛인, 그런 작품 말이다. 참고로 읽다가 분에 번뜩하는 느낌이라서 기억을 해두었는데, 어쩌면 미하엘 엔데 본인도 이 글을 쓰면서 보르헤스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22번째 단편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에 있는 장님 신사와 운명의 본질에 대해 토론도 했다.’ 여기서 나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서관에 있는 장님 신사는 분명히 보르헤스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여담을 넘어, 이 서평에는 전체적인 감상만 에둘러 썼다. 하나의 열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계속 말했던 차였고, 책을 읽기 전에 이 서평만 먼저 읽는다면 자유로운 유영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열쇠 또한 한 번의 읽음에 그저 치기어린 단평을 넘어서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함께 읽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열쇠를 푸는 시간을 가지면 더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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