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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나에게도 때가 있었다. 하릴 없이 시를 뒤적이는 것이 인생의 낙인 때가 있었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좋은 시를 만나면 서슴없이 노트에 베끼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중 오롯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는 아주 늦은 밤뿐이었다. 모두 지치고 잠든 밤이 되면 그제야 나는 내 시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멀리서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때로는 분주하고 애가 닳듯이 그렇게 움직이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서 작은 노트에 애써 시를 베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좀 더 밝은 스탠드를 켜놓고 덕지덕지 쪽지들이 붙어있는 책상 한 귀퉁이에 일기가 꽂혀있고 바로 옆에 베낀 시들이 빼곡하게 차있는 노트가 꽂혀있었다.
아직도 가지고 있다. 종이가 누렇고 글씨는 삐뚤다.
짧게 적은 감상들이 자못 심각한 것이 아, 나도 저 때에는 이미 시인이지 않았나 싶다. 남의 시를 베껴놓고 마치 제 시인 양 아주 멋들어지게 주절거린 걸 보면 나도 그땐 시인이었나.
그래서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라는 제목을 보고 마음이 혹했나보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고 시를 베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분명 아련하게 떠올릴 것이다. 시인과 베낀 시인. 그 둘 사이에 말린꽃처럼 끼어있는 촘촘한 추억이.
읽어보니 분명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 같은 종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진 시를 보고나면 애가 닳고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분명 같을 것이다. 그러기에 베끼기도 하고 아래 짧게 한 수 적기도 할게다. 어두운 밤 시를 손에 그러모으고 붙잡고 읽으며 가졌던 정서가 같다. 분명히 같은 종족이다.
차곡차곡 안도현의 누런 노트를 읽어 내려갔다. 한장 한장 읽어갈 때마다 역시나 같이 감탄했다. 함께 느낀 감탄, 슬픔, 환희, 절정, 절망. 시인을 시기하기도 하고 무릎을 탁 치면서 시를 맛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으면서 그렇게 다시 노트를 덮었다. 떠올려보니 내가 노트에 적었던 시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싶어 괜스레 기분이 좋다. 한편으로 내가 몰랐던 시들도 많아, 옳지! 하고 좋아했다.
안도현이 뽑은 시들을 되새기며 나의 시, 내가 사랑했던 풍경들도 함께 돌아왔다. 시가 가지고 있는 힘. 찰나를 잡아채 글줄로 남긴 그 힘을 비로소 다시 대한다. 시가 살아있는 책이고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시를 읽으며 안도현도 나도 살아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시들을 과포화로 다 넘기고 보니 밤이 지나있었다. 문뜩 내 노트가 보고 싶어졌다. 내가 베낀 시인이 되어 노트를 채운 바로 그 광포한 감정들이 담긴 누런 노트가 보고 싶어졌다. 그 노트에는 언젠가부터 멈춰있었다. 눈앞에 떡하니 있는 데도 없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어느 때부터 시를 잘 읽지 않았다. 물론 그때엔 이미 내 마음에 시보다 소설이 더 깊숙이 들어온 후였다. 그래도 소설만이 아니라 시에도 조금 애정을 남겼을 법 한데, 시를 잊고 살았다. 그래서 그 노트가 더 그립고 안도현이 부럽다.
나의 시간이 멈춘 노트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그때 빼곡하게 써내려갔던 바로 그 나는 이제 없다. 이제 다시 노트를 드니, 어쩌면 내 안에서 시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금 가려져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 책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해도 좋겠다. 서서히 잊힌 시들이 다시금 내 앞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누런 노트와 시, 그리고 베낀 시인. 이 모두가 어우러진 감정으로 나는 다시금 회귀했다. 돌아왔다. 어물쩍 다짐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다시 베끼기를 시작할 마음이 생겼다. 밤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