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쳐든다. 한 남자가 걸어간다. 그는 고민을 한다. 두 여자 중에서 어떤 여자를 골라야 할 것인가. 두 여자를 떠올린다. 결론은 미뤄진다. 생각한다. 둘 다 사랑하고 둘 다 소중해.
나는 기대를 했었다. 삼각관계의 그 팽팽한 스릴, 비윤리적인 고뇌, 화려한 종말를. 허나 금새 나는 그 기대를 접었다. 주인공 남자는 52세의 아저씨다.
나는 아저씨의 불륜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이건 분명 내 의식의 저변에 깔린 관음증이 발동한 것이리라. 다른 이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관음증 말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두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두 여자 중에서 한 여자를 고르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52세의 노후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종말론'을 강연하는 남자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만 한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알맞은 죽음을 기대한다.
어느 날 그는 고민에 빠진다. 두 여자 중에 한 여자를 골라야 한다는 고민. 왜 이런 고민에 빠졌는가 하면 그가 설파하고 다니는 그 종말론이 자신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랄까. 윤리적인 도덕심도 한몫했지만.
그는 과민한 남자다. 그리고 자기 삶의 종말을 두려워 하고 있다. 간간이 일어나는 다리의 발작, 손에 난 작은 습진, 붉은 끼가 도는 흑갈색 소변, 사정을 참지 못하는 섹스. 등등. 그는 건강상의 작은 변화들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남들에게 말했던 그 종말이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두 여자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까지 지니고 있다.
P.176) 질서있는 삶(여자 한명, 사랑 하나, 집 한 채, 하나의 명확함)을 향한 나의 소망이 지금의 질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질서까지 전부 파괴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이렇게 두려워만 하고 있는 이 남자의 친구(그나마 친구라고 쳐 줄 수 있는데까지 쳐서)들은 더더욱 그를 파국으로 모는데 일조한다.
우체국의 적인 바우스 바크, 그는 언제나 우체국의 만행을 잡아서 증거를 내놓고 그들을 조롱하기 위해서 살고있다. 실패한 화가 모르겐탈러, 그는 말 그대로 화가의 인생에 실패를 하고 결국 분노 관리사가 된다. 역시 실패한 인문학자 블라울 박사, 그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역겨움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언제나 이런 역겨움 저런 역겨움을 외치면서.
이렇게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역시 정상적이지 않은 우리의 주인공. 우리는 이쯤되면 묻고 싶다. 그렇게 불안하면서도 왜 한 여자를 선택하지 못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P.118) 내게는 언제나 갈망하는 어떤 것이, 채울 수 없는 갈증 같은 것이 있는 듯싶다.
P.119) 술기운과 돌연한 두려움이 뒤섞인 어떤 갈망이 나를 엄습한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잔드라와 유디트에 대한 사랑이 이미 오래 전에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갈망과 두려움 때문에 내가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P.120) 내가 갈망하는 것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다소 정상스럽지 못한 사람들과 어두운 이야기는 정점을 향해서 달리고 있다.
그는 점점 자신의 노쇠함과 아날로그가 점점 없어져 가는 사회문화에 더불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인생이 두렵다. 벌이도 시원치 않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잔드라와 유디트 모두 다 포기할 수가 없다. 게다가 자신의 전처는 새로운 결혼 생활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P.218) 정적만이 가득한 작업실에서 마침내 나는 나누어 갖기를 싫어하는 내 오랜 동경의 막강한 힘을 인정한다.
그는 고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민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거 고민만 하고 있다. 다른 이에게 조언을 받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혼자서는 결정하지 못한다. 그가 말했던 사회와 인류의 종말은 개인의 작은 종말로 점점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고민하는 작은 남자일 뿐이다.
P.236) 바깥 거리에는 차에 치여 납작해진 비둘기가 너부러져 있다. 차가 한 대씩 올 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번 그쪽을 본다. ‥‥‥죽은 비둘기는 어느새 아스팔트의 일부가 되어 있다. 나는 화를 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피곤하다.
그는 한없이 유예한다, 모든 결정을. 단순히 두 여자를 놓고 고민하는 사내의 일상이라고 하기엔 그 무게가 깊다. 어쩌면 우리는 강요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의 고민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망상의 세계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쉽게 해버리는 판단에 대한 냉소이기도 하다. 흑과 백의 명확한 세계. 너와 나의 구분법. 시작 혹은 종말. 아이 혹은 노인. 여기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사회와 개인의 판단에 대한 작은 종말을 예고한다.
그는 과연 잔드라와 유디트, 두 여자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는가. 답은 이미 시작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기는 종말에 대한 작은 감상을 들어보자.
P.226) 우리 모두는 불가능한 진실의 종말 속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