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우리나라 참 좋아졌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약 30년 전만 하더라도 군부독재니 유신정치니 항쟁이니 사회주의니 말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해보자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참으로 살만해졌다. 아직도 비전향 장기수니 국정원이니 말이 많지만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행복에 겹다. 왜 행복에 겨운 거냐고 물으신다면 그 때는 '빨갱이'의 '빨'자만 꺼내도 사람을 마구 잡아가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버젓이 민주노동당이 의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않은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 처녀일 시절의 얘기다. 그 때 우리 어머니는 한창인 처녀였다. 그리고 전남 광주에 사셨다. 흉흉한 분위기라 밤만 되면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고, 어떤 때는 더 섬뜩한 총소리가 들리기도 했단다. 당신은 운동에는 참여하지 않으셨지만 광주에서 살았기에 그 분위기와 그 참혹을 겪었다. 언제 한 번은 공원 앞을지나가는데 군인들 한 무리가 있었다고 했다. 무서워서 걸음을 빨리 해서 한창 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만삭이 다 된 임산부가 걸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평생에 못 잊을 장면을 보셨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걸어가는 임산부에게 한 군인이 일어나서 총의 끝에 끼우는 대검으로 등을 쑤셨단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것도 만삭인 임산부를. 어머니는 경황도 없이 그저 도망가기만 바빴는데 더 못잊을 공포는 당신의 생명에 대한 공포가 아닌, 도망가는 등 뒤로 들리는 군인들의 웃음소리 였다고 하셨다.    

 그렇게도 시대가 흉흉했다. 아무나 죽어나가고 아무나 잡아들이고 아무나 고문했다. 이제 그 시대는 지나가버렸지만 아직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떳떳하게 살아있고, 북을 바라보던 양심수들은 감방에서 작은 새를 바라본다. 그렇다. 사실은 그 시절은 영원히 가실 수 없다. 그 때 죽은 이들의 묘비가 영영 남아 있을 것이기에.

 왜 이런 끔찍한 얘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의 내용은 한 남자의 어쩌면 처철한 운동기를 담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 정도는 어쩌면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한 혹은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담고 있다. 허나 가장 나에게 다가왔던 이야기는 더이상 조국으로 갈 수 없는, 이른 바 코레 이외에는 어느 세상에라도 갈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대의 위세는 대단하다. 소위 말하는 '인텔리'이기 때문이다. 졸업 타이틀은 성공 타이틀과 비슷하다. (물론 청년 실업이 심각하긴 하다지만) 이 남자는 그런 대단한 서울대를 나왔지만 나누자면, 프롤레타리아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 우습지 않은가. 서울대생 택시운전기사라니.

 거기에는 긴 사연들이 있다. 구구절절하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왔던 운동가의 삶이 참으로 처절하게 다가온다. 고문을 받고 도망가고 삐라를 뿌리고. 그의 운동의 생활은 곧 우리나라 근대의 인권없던 그 시절을 대변한다. 위에서 말했듯 끔찍한 한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이른바 똘레랑스이며 모든 보헤미안의 고향이기도 한 프랑스. 그 프랑스에서 이야기는 쓰여지고 있다. 평등하고도 외국인에게 모든 사회보장을 해주는 나라 프랑스.

 우리나라와 프랑스. 인텔리와 택시운전사. 이 두가지의 크로스 오버는 자못 심각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지금 현재의 한국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한다. 역사는 흐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과연 그 역사를 벗어던졌는가? 위에서 말했듯 아니다.

 코레에는 필요치 않은 똘레랑스의 노래를 들어보자.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밤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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