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세상은 참으로 믿고 따르는 세상이다. 새우 꼬리에 예수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경매에 올라와 비싼 값에 팔리고 과자의 모양이 예수를 닮았다하여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어떤 이는 신을 보았다 하여 텔레비전에 나오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종교의 세계를 픽션으로 써서 돈을 벌기도 한다.
실제로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신에 관한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많은 세상이다.

세계의 종교에서 신도의 수로만 따지자면 2위를 차지하는 기독교. 믿는 자가 많은 만큼 종교에 대한 관심은 신도들뿐만 아니라 비신도들에게도 있다. 그리고 그 신도들이 신의 사자(使者)라고도 믿는 성경.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바로 그 책은 참으로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성경이 없다면 유구한 세월 동안 어떻게 이 종교가 전파되었으며 교리가 생겼으며 그 유명한 동방박사들이 어떤 이인지, 골고다의 언덕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믿는 신이 어떻게 말했는지 조차도. 그만큼 성경이 기독교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고 또한 절대적인 위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경 왜곡의 역사』를 참 흥미 있는 책으로 생각했다.

제목을 읽고 나는 이 책이 성경에 대한 어떤 이단자나 무신론자가 펼치는 장광설들이 담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첫 장을 여는 순간 내 기대는 단박에 사라졌다. 책은 단순한 흥미위주의 성경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자체에 대한 심오한 본문비평가의 역설이 담겨져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목차를 따라가면서 읽다보면 서서히 의문들은 풀리고 지금까지의 본문비평학은 어째서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본문비평학의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출발한다. 우리가 왜 성경의 왜곡에 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축자영감설(逐字感說)이나 성서무오설(聖書無汚說) 등의 지침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고. 그 뒤의 내용은 그에 대한 타당한 반증을 서술하고 있다. 책의 종교인 기독교. 어째서 책의 종교인지. 어째서 성경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가? 성경은 언제 만들어 졌으며 언제부터 널리 읽히기 시작했는가? 지금의 성경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이 궁금증들은 책을 읽으면 말끔하게 해소된다.

허나 이 책의 주제는 성경 자체이기보다는 성경의 변개이다. 한창 기독교가 퍼져 나가는 시절의 고증을 통해서 성서는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어떻게 전승되었는가를 세심하게 설명하고는 그 중간에 벌어질 수 있는 본문의 변개를 상기시키며 중반 이후는 그 변개와 이문들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과 본문비평학의 일반적인 원문에 가까운 사본을 분류하는 방법이나 본문 변개의 시대적 종교적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실례를 들고 있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성경에서도 금새 찾을 수 있기에 더더욱 저자의 이야기에 심취하게 만든다.

대체적으로 작가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쉽게 설명을 하고 있으며 그 역시 역자를 통해서 쉽고 세세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분류와 주제 소주제의 정리가 잘 돼서 읽기에 편하고 자칫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읽고 나서도 헤맬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어떤 이는 성경에 대한 반박거리를 찾고 갈 것이며, 어떤 이는 종교에 대한 탄탄한 믿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허나 나는 온전히 인간들이 가꾸고 전승한 이 종교에 대한 찬탄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21세기이다. 2006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이 자리에 서게 된 종교. 이것은 철두철미한 신에 대한 종교가 아닌 실수도 있고 열정과 노력, 계략과 간계가 보이는 고스란히 인간의 종교라는 점을 상기 하게 되어서 좋았던 것 같다. 더불어 앞으로의 본문비평학의 발전과 점점 변모하게 될 미래의 성경이 궁금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내용은 이미 종결된 케이스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미래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종일관 특이한 캐릭터와 특이한 질병들로 우리는 정신없게 흔들고는 다 읽고 나면 유쾌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하는 책.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강점인 것 같다. 정신없이 웃다가도 거기서 나와 같은 처지를 상기하게 만들고, 다 웃고나면 나의 스트레스도 함께 흩어지게 해버리는 이라부의 명쾌한 진단.

 당신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가? 뽀족한 것을 보면 몸서리가 쳐진달지, 직장의 신입 사원에게 믿음이 안가고 자꾸 나를 따돌린다는 생각이 든달지, 지나가는 아저씨의 가발이 벗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달지, 하고있는 일이 시원치 않고 자꾸 엇나간달지, 무엇인가 불만족하고 미련이 남는 일이 있달지.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당신은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

음침하고 습기 때문에 눅눅한 지하 1층. 똑똑똑ㅡ, 노크를 하면 문의 건너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한 마디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약간은 미심쩍은 느낌이 들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펼쳐진다. 

1인용 쇼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몸의 의사가 앉아 있고 그 뒤로는 쇼파에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한가한 눈으로 잡지책을 들추며 담배를 피우는 F컵의 간호사 한 명. 그리고 일단 비타민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다. 주사에 흠칫 놀라지만 이윽고 간호사 상의에 풀려진 단추 사이로 보이는 가슴 계곡에 침을 꼴깍ㅡ, 하고 넘기게 될 것이다.

 슬슬 안달이 난다. 과연 여기가 병원이 맞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게으치는 마라. 며칠 다니다 보면 주사에 익숙해질테고 당신의 이름모를 병은 치유될테니까.

그렇다. 여기는 이라부 종합병원 지하 1층 신경정신과. 당신은 환자다.

우리는 살면서 저도 모르게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안달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것들이 마음의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와 괴롭힌다. 보통은 그런 것들을 우리는 스트레스라고 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혹은 당신은 너무나도 과민한 현대인이기에 혹은 술자리에서도 여간해서는 안 풀리기에 신음한다.

 그럴 때 우리는 속으로 끙끙거리기 일쑤다. 창피해서 혹은 너무나도 개인적이라서 남들에게 말도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앓는 것이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라부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것은 아니다. 속시원하게 말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역시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당신의 고민에 귀기울여 줄 사람을 찾을 것이다.

 나의 너의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의 고민에는 따로 약이 없다.  맞아도 맞아도 소변으로 배출되어버리는 단순한 비타민 주사처럼 우리의 고민도 그날 그날 흘려 보내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갑자기 내가 불치병에 걸리게 된다면 어떻게할까. 물론 부질없는 상상이다. 사람이란 닥친 일이 아니면 그렇게는 진지해질 수 없으니까.

가끔 텔레비젼에서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모금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대수롭지 않다. 볼 때는 슬프고 잠깐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몸은 건강하기에 그런 것 따위 금새 잊는다.

이런 망각이 나에게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본인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도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도 큰 병이 찾아오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는 1리터의 눈물을 읽게 ‰榮?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일기라는 것. 최루성 소설이라는 것. 드라마나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 하지만 나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내 생이 이토록 축복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아야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또래들이 원하는 것처럼 친구들과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싶었고, 체육을 잘하고 싶었고, 국어와 영어에는 아주 자신이 있었고, 자신의 얼굴이 예쁘진 않지만 귀염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

그러나 아야는 병에 걸렸다. 그것도 불치병이다. 그래서 원하는 고등학교에서 계속 친구들과 다니고 싶었지만 자신의 병 때문에 양호학교로 전학을 가야했고, 마음것 뛰는 것은 꿈에서나 할 수 있었고, 밥을 먹는 것조차 일에 가깝게 느껴졌고, 평범하게 레코드 가게나 책 가게에 가서 쇼핑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우리의 삶에서 평범하게만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것들이 그녀에게는 한없이 부러운 것이었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야는 말했다, 사람은 다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하지만 왜 나는 이렇게 비참하기까지 해야하냐고. 하지만 실제로 비참하지 않은 삶이었다. 병마와 싸우기 위해서 하루하루 싸워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비참하기는 커녕 너무나도 숭고하기까지 한 것이라서 나는 놀랐다.

실제로 불치병에 걸려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아야 앞에서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생각인 듯 하다. 그저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포기하지 말고 살자. 라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극히 식상한 주제일지는 몰라도 이것이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처절한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이미 이것은 식상함을 넘어선 그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띄어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조금 보였다.

그리고 236페이지 셋째 줄의 '귀저기'라는 부분은 '기저귀'로 바꾸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미래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라서 사실은 책을 읽어보지 않았어도 내용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 바로 그 프랑켄슈타인을 읽었다. 이 소설은 메리 셸리라는 여성이 젊디젊은 20대에 쓴 소설이다. 그것도 당대의 유명 시인 바이런과 함께 한 자리에서 유령 이야기를 써보자는 말을 듣고 바로 써 내려간 소설이기도 하다.

  원래 내가 상상했던 원작은 미치광이 과학자와 조금은 불쌍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였다. 헌데 원작은 잠시 미쳤지만 유약하고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혀 살며 생각이 너무나 많아서 답답하기까지 한 과학자와 똑똑하고 불쌍하되 동정할 수 없게 만드는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아는 프랑켄슈타인은 뒤통수에 나사가 있고 잽싸진 못한 동작에 힘만 세고 조금은 멍청하다. 하지만 원작의 프랑켄슈타인은 흉하게는 생겼으나 잽싸고 강한 신체를 가졌고 2개 국어를 할 수 있으며 칸트를 아는 지식인이다.

 이야기는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북극탐험을 나선 월든이라는 선장은 우연히 어떤 병약한 남자를 배에 태우게 되고 곧 그에게서 정신적인 위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고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보낸다. 그 편지의 내용은 실로 경악할만하다. 우연히 태운 남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고금에 다시없을 광기 어린 과학자의 불행한 말로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것이다.

 빅터라는 과학자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나중에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탐미로 자신이 바로 창조주가 되는 꿈을 꾸게 되고 결국에는 피조물을 만들었다. 허나, 그에게 실수가 있었으니 처음에 만드는 피조물에 대한 성공에의 집념으로 하여금 디테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크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2미터 50센티의 인간을 만들자고 결심했다는 점이다. 괴물의 조직들은 어두운 밤에 묘지에서 파낸 것들이었고 얼기설기 얽어진 얼굴은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 그 피조물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크고 너무나 못생겼던 것이다. 거기에 더더욱 큰 그의 실수는 인간보다도 더 강력한 존재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강인한 육체와 공허한 머리. 이 얼마나 실로 괴상망칙한가.

 그 피조물에게는 이름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의 이름이 아니다. 그 피조물을 만든 장본인 바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인 것이다. 빅터는 실험에 성공하고 나서 일어난 피조물을 보자마자 그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면서 달아나 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기에 자식에게는 이름은 없고 고스란히 아버지의 성만이 내려온 것이다. 

 버림받은 피조물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단순한 본능에 따라서 산열매를 따먹으며 연명하지만 곧 자신은 보통의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고 절망한다. 처음에는 선량한 마음에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주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혐오 그리고 질시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피조물은 너무나 못생겼기에. 그의 강력한 힘도 그의 선량한 마음도 사람들은 모른다. 단순하게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고 판단한다. 결국 산으로 들어가 혼자서 생활을 하게 되는 피조물은 곧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한 가족을 보게되고 그 가족을 몰래 훔쳐보며 언어를 배우고 풍습을 배우고 인간을 배우게 된다. 그 가족은 너무나도 선량하고 착한 인간이었기에 그는 몰래 장작을 패다주는 등 선행을 베풀지만 자신의 외모에 대한 반응을 알기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결심을 하고 나선 바로 그 날. 그는 악마라는 말을 듣고 도망치기에 이른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에게 마저 버림받은 그는 자신을 창조한 빅터에게 한없는 증오를 갖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선량한 마음을 가진 못생긴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만들고 버린 빅터와 사회에 대한 복수심만이 남았다.

 허나 프랑켄슈타인은 여기서 바로 복수를 하지 않는다. 그는 빅터를 찾아가 단 한 가지의 청을 한다. 자신과 같은 여인을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녀와 함께 영영 사람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둘이서 살겠다고. 하지만 빅터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피조물의 창조주에 대한 복수극.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만은 그 복수극에는 어린아이 여자 노인 가족 할 것 없이 다 죽어나간다.

 또한 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빅터는 자신과 같은 프랑켄슈타인을 좇다가 북극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마지막까지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사실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말이니 말이다.

 구조는 그렇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도 사람 구실을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괴물의 형상을 하고도 사람의 구실을 하는 괴물이 있다. 보통의 말로 개보다도 못한 놈. 이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는데 딱 그런 경우다. 물론 나중에는 둘 다 미치고 복수에만 연연해서 불모지의 북극까지 가게되지만 말이다.

 다 읽고 결말을 내리기가 참으로 미묘했다. 단순한 복수극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고 그렇다고 다른 거창한 이름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시종일관 우리에게 주입하는 하나의 사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외모지상주의 척결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복수극의 시작도 바로 그 못생긴 외모로부터 시작됐고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배척했던 이유도 그 외모 때문이 아니던가.

 고전을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외모지상주의 척결이라고 하니 좀 우습기도 하지만 이것말고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원작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릴러가 넘치고 박진감이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빅터의 고뇌와 프랑켄슈타인의 음울함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고전에 대해서 약간은 딱딱한 느낌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이 프랑켄슈타인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릭의 심리학 -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는 마법의 테크닉
간바 와타루 지음, 손문생 외 옮김 / 에이지21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문뜩 물건을 집어들면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 이거 지난 번에 홈쇼핑 광고에서 보던 건데 10만개나 팔렸었다지?'

 단순하게 떠오는 생각을 말한 것일지라도 심리학에서는 전혀 간단하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샀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집어드는 바로 그 것. 심리학에서는 동조행동 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속한 준거집단의 의식의 대열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상의 작은 면들에서 우리는 몰랐던 무의식 중에 했던 많은 행동들이 모두 트릭이라면? 그리고 대답을 할 때 작은 눈짓이나 손짓 하나에 사람들이 넘어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면?

 이것에 대한 대답을 명쾌하게 해줄 수 있는 책이 바로 트릭의 심리학이다.

 언뜻보면 비지니스 맨을 위한 책처럼 느껴져서 세일즈와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필요성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열어 보면 그렇지 않다. 물론 사람을 대하고 설득을 해야하는 세일즈 맨에게 있어서 더 필요한 책이기는 하겠지만.

 당신이 내일 소개팅이 있다거나 중요한 회의를 한다거나 결혼을 위한 어른들을 만나는 상견례자리가 있다거나. 여하튼 일상에서의 모든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필요할 수 있는 책이다. 위에서도 말했든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리 큰지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나는 미쳐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버릇이 하나가 있는데, 서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š 팔짱을 끼고 이야기 하는 버릇이다. 그 버릇에 대해서 나는 미처 인지 하지도 못 했었고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큰 관심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그 안에는 내가 사전에 거부하는 제스츄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에게 자신의 영역에 침입하지 못 하도록 바리케이트를 친 것과도 같은 자세가 바로 그 자세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책에서는 이와 반대로 개방적인 자세는 무엇일까? 개방 자세란 정면을 보고  양발을 약간 벌린 채,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자세다.

 이 작은 행동 하나로 계약이 날아가고 첫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지 아니한가. 인간의 내면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나는 상대의 말과 행동만을 보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오감을 총동원해서 상황과 목소리와 어투와 작은 행동과 시선과 표정 그리고 장소와 시간에 이르기 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일괄 정리해서 단순하게 하나의 좋다 안 좋다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작은 버릇들은 무엇인가? 당신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이제까지 있었던 작은 오해들과 계약 실패와 대인관계 트러블들이 모두 이런 오감의 총동원에 의한 것이 라는것을 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면서 갱생의 의지를 보임과 동시에 나아가서는 간단한 심리학에 대한 정보도 습득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