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단어는 어떤 말과 결합할지라도 신선하고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첫 직장, 첫 월급 등의 단어가 안겨주는 시작이라는 설레임도 과히 나쁘지 않다. 첫사랑은 어떤가. 첫사랑을 돌이켜보면 문득 수줍어지기도, 어색해지기도, 그리고 지금의 내가 초라해지기도 한다. 첫사랑과 함께 가졌던 꿈과 희망의 부피는 첫사랑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차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제 크기를 찾아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난 지금도 첫사랑을 주제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면 박완서 씨의 '그 남자네 집' 소설 속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박완서씨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인데, 잦은 세탁으로 옷 색깔이 바래질 정도로 그녀의 문학에서 자주 등장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녀의 이야기 속 첫사랑이 아주 멋있지도, 그들의 사랑이 아주 로맨틱한 것도 아니었는데, 무지하고 바보 같고 아무 맛도 없을 것 같은 것이 또 오히려 첫사랑을 지극히 잘 표현한 것 같아서이다. 무채색 같은 사랑도 첫사랑이라 명명되는 순간 도리어 총천연색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닌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에게나 소설 같은 첫사랑의 순간들이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요즘 내 또래의 세대는 첫사랑 찾는 것이 너무나 쉽고 우스워서 오히려 감추고 싶고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욕망을 지키기 어려운 때이다. 게다가 메일 계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년 전 쯤의 아이러브스쿨이나 다모임 등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서 동창 찾기 등의 서비스를 통해 첫사랑과 이미 연락해 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세대에게 '맘마미아'나 '레터스 투 줄리엣'과 같은 영화의 감동이 예전만큼 크지 못한 것 같다. 첫사랑을 찾는데 드는 노력이나 감동이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김종욱 찾기'는 조금 특별하다. 첫사랑 찾기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앞서 소개한 두 영화와 달리 첫사랑과 다시 해피엔딩이 아닌 첫사랑과의 완전한 매듭을,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한 여자와 그녀에게 '끝장'을 보게 하는 용기를 주는 남자와의 이야기인데, 인도라는 배경과 공유, 임수정 두 배우가 썩 잘 어울린다.

우리는 종종 '과거' 혹은 '추억'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특히 그 사람이 이전 사랑의 그늘에 얽매인 내 연인이라면 부아가 치밀어 올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약점이라 여기고 화내기보다는 그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당당히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영원히 현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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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오고 또 한 편의 미국 가족 드라마가 또 우리를 찾아왔다.   

골드 미스에서 정자 기증을 받고 싱글맘으로 거듭나는 미스(미세스?) 뉴요커를 그린 영화인데 전형적인 미국식 훈훈한 가족 드라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고, 용기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 보다는 귀찮은 것이 더 두려운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는 기증 받은 정자가 뒤바뀌면서 자신의 아들과 함께 돌아온 옛 친구이자 엑스 걸 프렌드와의 우정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뭐 어쨌든 해피엔드니까 잘 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이렇게 될 거면 왜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어야 됐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한 남자 때문에 한 여자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에! 조금 부아도 치밀었다. 좀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 등의 다른 버전의 결말을 기대해 보았어도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연말을 앞 둔 가족 영화라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각설하고 과거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던 한 순간의 실수가 어엿한 인간의 실체를 하고 (그것도 자신과 닮은!) 자신의 인생에 끼여든 영화를 우리는 이미 몇 편 알고 있다. 최근작으로 뽑아보면 이나영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와 차태현의 '과속스캔들'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오히려 이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다시 사랑하게 되고, 다시 만나게 된다는 안일한 설정에서 벗어나 있어서 스위치 보다는 도전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드라마 보다 좋은 이유는 감춰둔 2세의 진실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한결같은 불륜 때문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2세의 등장으로 재산 다툼이 일어나거나, 같은 핏줄의 남매가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손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드라마 보다 한 편 한 편의 영화가 나에겐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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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2주

초능력자를 외국어로 하면 뭐라고 할까?  이미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Superman일 수도 있고, 나의 전공 언어로 이야기 하자면 超人 chaoren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굳이 외국어로 다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초능력자라고 하면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대의를 위해 쓰는 사람을 그동안 일컬어왔던 것 같다. 만화가 강풀 역시 그의 만화 '어게인'에서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앞서 위기를 예측하고 막기 위해 노력함을 그렸고, 박민규도 그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죽기 싫은 주인공이 슈퍼맨 흉내라도 내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왜냐하면 초능력자는 한 마디로 '영웅'이므로.  

그런데 이 영화 초능력자의 초능력을 가진 강동원과 고수는 새로운 초능력자의 전형을 창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심으로 자신의 능력을 쓰는 강동원과 물불 안 가리고 머리를 쓰지 않고 '몸'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또 다른 초능력자 고수. 이들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대의 및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영웅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개인적인 원한 및 복수 역시 워낙 시시하여 어떻게 두 시간이나 영화를 찍었나 싶었다. 차라리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처럼 착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영웅의 개인화 및 정의파의 단조로운 전형을 깨어보겠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나처럼 지극히 평범하여 초능력자에 대한 선망을 가진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나 황당한 초능력자가 등장하여 우리의 이상에 먹칠을 했다는 분노를 일게 했다. 그보다 두 청년을 황당한 캐릭터로 망쳐 놓은 것에 대한 분노가 더 크려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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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를 외국어로 하면 뭐라고 할까?  이미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Superman일 수도 있고, 나의 전공 언어로 이야기 하자면 超人 chaoren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굳이 외국어로 다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초능력자라고 하면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대의를 위해 쓰는 사람을 그동안 일컬어왔던 것 같다. 만화가 강풀 역시 그의 만화 '어게인'에서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앞서 위기를 예측하고 막기 위해 노력함을 그렸고, 박민규도 그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죽기 싫은 주인공이 슈퍼맨 흉내라도 내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왜냐하면 초능력자는 한 마디로 '영웅'이므로.  

그런데 이 영화 초능력자의 초능력을 가진 강동원과 고수는 새로운 초능력자의 전형을 창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심으로 자신의 능력을 쓰는 강동원과 물불 안 가리고 머리를 쓰지 않고 '몸'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또 다른 초능력자 고수. 이들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대의 및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영웅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개인적인 원한 및 복수 역시 워낙 시시하여 어떻게 두 시간이나 영화를 찍었나 싶었다. 차라리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처럼 착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영웅의 개인화 및 정의파의 단조로운 전형을 깨어보겠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나처럼 지극히 평범하여 초능력자에 대한 선망을 가진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나 황당한 초능력자가 등장하여 우리의 이상에 먹칠을 했다는 분노를 일게 했다. 그보다 두 청년을 황당한 캐릭터로 망쳐 놓은 것에 대한 분노가 더 크려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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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는 무자본, 독립 밴드의 상징적인 공간이고, 젊음과 외국인이 낯설지 않은 공간이다.
성하의 국내 단독 공연을 홍대에서 한다는 것은 앞으로 성하가 가야 갈 길을 은유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유투브 등에서 스타가 된 만큼 국내 팬들 못지 않게 외국인들의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새삼 성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팬층은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었는데, 성하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자녀들과 동시대에 성장하는 또 다른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의 갈채를 보내주었다. 이미 동요를 잃어버리고 맹목적으로 대중가요, 성인가요를 쫓는 아이들에게 성하와 같은 젊은 뮤지션의 출현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됨과 동시에 하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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