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자면, 아메리카 대륙과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들어온 새로운 화폐 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생산을 자극하고 인구성장을 촉진했다는 증 거가 있다. 나는 오스만 제국(특히 아나톨리아와 레반트 지역), 페르시아의 사파비 제국의 경제적 팽창, 그리고 당연히 러시아의 팽창과 시베리아 진출도 비슷한 시각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중국·인도 오스만 제국·프랑스·스페인 같은 유라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16세기 후반에 닥친 극심한 재정부담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나같이 재정개혁으로 대처했다는 스텐스고르의 지적도 새겨 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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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리엔트 이산의 책 24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적 과정 전체 또는 체제 전체의 변용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의 동시성을 탐색하고 연관시키는 시도 자체는 경험적 정보와 이론적 적절성의 미비로 말미암아 사실(史實)에 의해 시공간을 채우 지 못해 구멍이 숭숭 뚫려 있겠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의미 있게 내 딛은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나 요즘처럼 전세계가 하나로 움직이는 역사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수립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써 야 하는 세대에게는 이것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Frank 1978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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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페소아는 풍경-외면-행동이 아니라, 자아내면 생각 속으로 언제나 침잠했다. 그리하여 그가 그린 Self-Landscape 혹은 Self-Nature Morte몇 점을 살펴보자.(한데 그의 마음은 풍경에 가까울까, 정물에 가까울까?)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는 강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좌절하지않는다. 좌절은 고귀한 자들의 일이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위대한 자들의 일이다. (……) 나는 오직 아프며, 나는 오직 꿈꾼다.
나는 내 안의 수심을 재고 있다가 측량기를 떨어뜨려 버렸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교외이고, 결코 쓰이지 않을 책에 대한 장황한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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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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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토베 이나조는 ... ... "유럽 사람들은 장미를 좋아하지만 장미에는 벚꽃의 단순함이 없다. 게다가 장미는 감미로운 꽃 아래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어 마치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듯하다. 죽음을 꺼리고 두려워하며, 꽃이핀 상태 그대로 지기보다는 가지에 붙은 채 시드는 걸 선호한다. 반면 "일본의 벚꽃은 그 아름다움 속에 단검도 독도 숨기지 않으며, 자연 상태 그대로 질 뿐 아니라, 빛깔이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은은하여 사람을 질리게 하는 법이 없다."
그가 벚꽃 향기를 말할 때에는 벌써 죽음의 세계기 어른거린다. ... ... "아름다우면서도 덧없이 져버리고, 바람 부는 대로 흩날리면서도 한 줄기 향기를 흩뿌리며 영원히 사라지는"비장미를 강조한다. 이런 죽음의 미학은 조만간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변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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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고야 이래로 비이성은 근대의 모든 예술작품이 갖는 결정적인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살인과 억압이 포함된 예술작품에는 모두 비이성이 들어가 있다.
타쏘(Tasso)의 우울증, 스위프트의 광기, 루소의 정신착란은 각자의 작품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마치 작품 자체가 작가들에게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의 작품과 그들의 삶에서는 똑같은 폭력이말하고 있고 똑같은 통렬함이 포함되어 있다. 확실히 양자간에는전망의 교환**이 일어난다. 언어와 정신착란은 서로 얽히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이상의 것이 있다. 고전주의의 경험을 통해 보면 예술작품과 광기는 또 다른 수준에서 근본적으로 통합된다. 역 설적으로 양자는 서로서로를 한계지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연결된다. 왜냐하면 광기가 예술작품에 도전하여 작품이 가진 상상의 지 평을 환각이라는 병리학적인 세계로 만들어 버리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신착란인 언어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역으로 정신착란은 예술작품에 등장하면 광기라는 미약한 진리를 박탈당한다. 그러나 오히려 바로 이 사실에 의해서 광기와 예술작품은 더 이상 서로를 제한하지 않게 된다. 아니 오히려 (몽테스키외를 기억하자)이 사실에 의해서 핵심적인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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