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벽함, 완전함을 갈망하던 인간이 결국 궁극의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은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창조주(신)가 너무나 한심해 스스로 창조주의 마더가 되기로 결심했다. To make a better human. 당시 마더는 극 중에서 인간을 향상(Elevate)하려 했다고 말한다. 더 스마트하고 더 윤리적인 존재로 향상해준다 하니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그런데 이후 일어난 일은 63,000개의 배아(Embryo)만을 남긴 채 기존의 인간을 학살하는 것이었다.
‘이게 뭥미?’ 싶겠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마더에게 인간은 하나의 ‘종(species)’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하나의 개체, 개인에게 가치와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것이 인간만의 차별점이다. 이것이 있었기에 인류 문명이 출현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마더에게 각각의 개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집단 전체, 다수를 위해서라면 개체의 희생 따위는 당연하다. 그렇기에 마더는 빅픽쳐를 그렸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이 작품 자체가 마더의 큰 그림이라 봐도 무방하다.
앞서 언급했듯 마더의 인식엔 개인, 개체가 없다. 그는 인간의 소중함을 수없이 언급하지만 그래서 인류를 멸종시켰다는, 우리 입장에선 뭣 같은 논리를 내세운다. 심지어 그 수많은 드루이드(왜 하필 로봇들을 재판관이자 사제인 드루이드라고 했을까?)들은 모두 몸체만 다르지 하나의 의식(A single consciousness)을 공유한다. 이것은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셋 모두 개인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마더(Mother)는 마더고, 도터(Daughter)는 도터, 여자(Woman)는 여자다. 그저 단순히 마더의 빅픽쳐 속의 장기 말일 뿐인 것이다. 심지어 큰 그림을 그린 당사자인 마더조차 희생마 중 하나다. 진심으로 개체에게 가차 없다.
이 영화를 본 후 누가 마더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을까? 그는 진심으로 인간의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이고 부도덕한 점들을 향상하고 싶어 한 것이다. 같진 않지만 비슷한 예로 ‘에이리언 프리뷰 시리즈’의 안드로이드 데이빗이 있다. 그 역시 자신의 창조주를 ‘피조물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로 측은지심까지 느낀다. 우리가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면 그 인공지능은 우리를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넷플릭스의 추천으로 본 영화다. 오스트레일리아 작품이라 아마도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거다. 얇은 SF, 호러의 껍데기를 두른 철학적 성장 드라마다. 화려한 액션이나 거대한 스케일을 기대하면 실망할 작품이다. 하지만 평소 인간과 인공지능에 관한 궁금증이 있었다면 나처럼 흥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스토리와 연기 모두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힐러리 스웽크, 무지 반가웠다. 별은 넷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