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3 《산성일기》를 기록한 이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통해 분명 관용없는 역사의 심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한산성 안에서 일어난 일을 오직 손으로 기록하였다.
이름도, 감정도, 판단도 남기지 않은 채. 그리고 그 기록은 400년가까이 전해져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역사를 두려워하라! 너희들의 탐욕과 무지를 결코 잊지 않을 테니, 너희 두 손에 움켜쥔 권력과 왜곡이 잊힐 거라 오해 마라. 역사는 반드시! 반드시 기억한 후 너희에게, 아니 너희 후손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2015년이 끝을 향해 달리는 오늘, 그 역사는 다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러나 귀가 없는 자들은 듣지 않을 것이니, 내가 두려운 것은 오직 역사의 차가운 피다. 감정의 조각 하나 없이 심판을 내릴 바로 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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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2 소설은 뜨거운 감정 속에 이 엄청난 물건들을 묻어 버릴 수 있으나, 역사는 눈 부릅뜨고 사실을 기록한다. 나는이 물건들 목록에서 지도층 잘못 만나 헛되이 죽어 간 조선 백성들의 흔적을 확인한다.
역사는 두려운 존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금언은 결코 위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악인의 이름을 더욱 깊이, 그리고 멀리 기억한다. 예수는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용서해 줄 것을 기도했으나, 역사는 무지한 자들조차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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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그러나 역사는 뜨거운 피를 용납하지 않는다. 소설이 살아남은 자의 감정을 기록한다면, 역사는 죽은 자의 행적을 기록한다. 그러하기에 역사에 흐르는 피는 차갑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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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내 취미는 책 읽기, 음악 듣기, 영화 보기, 딱 세가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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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들은 헐고 떨어져 있는데, 이는 책을 함부로 다루어서가 아니라 읽고 또 읽은 결과다. 공자가 말했던가? 위편삼절韋編三絶(고대 중국에서 대나무를 엮어 만든 책의 가죽 끈이 끊어지고 또 끊어져 세 번이나 다시 묶을 만큼 책을 읽었다는 데서 유래한 고 사성어)이라고. 아무리 줄여서 말해도 어떤 책은 100번 이상, 가장 적게 읽은 책도 수십 번은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니 모든 세간을 버리고 도망쳐야 하는 순간에도 이 책만큼은 챙겨 나오지 않았을까. 책은 독자의 역사를 넘어 독자 자신임을 알려 주는 내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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