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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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과 ‘기쁨’을 일상의 남은 시간에 얹는 장식이 아니라, 삶을 깊이에서 떠받치는 뿌리로 바라보게 만드는 사색의 기록. 


작가는 쉼을 사치나 게으름으로 오해하는 시선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걷어내며, 그것이 곧 ‘영혼을 다시 숨 쉬게 하는 권리’임을 말한다.



책 속에서 유독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문장들이 있었다.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정신 차림이다.”

“게으름은 멈춘 몸이 아니라 멈춘 마음이다.”


이 두 문장은 멈춘다는 행위가 단순한 무위가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의식적 선택임을 일깨우고, 마음이 닫혀버린 상태야말로 진정한 무기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작가는 기쁨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새롭게 열어준다. 기쁨은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획일적인 감정이 아니라, 각자 다른 모양과 색을 지닌 수공예품과 같다. 특히 기쁨을 화려한 정원의 장미가 아닌 ‘갈라진 바위 틈새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피우는 야생화’에 비유한 표현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더불어 ‘깊은 기쁨’—긴 여정과 대가를 감내한 끝에 비로소 가슴 깊이 스며드는 감동—에 대한 묘사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그 울림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 책은 쉼과 기쁨이 결코 무기력한 정박이 아니라, 다시 돛을 올리고 항해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자 용기임을 거듭 상기시킨다.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고, 기쁨을 발견하는 힘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모든 것에 연습이 필요하듯 기쁨을 모으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기쁨은 일확천금처럼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순간을 ‘바른 열심’으로 가꾸어 얻은 성취감과 소박한 행복을 하나씩 모아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모은 행복들을 또 다른 삶의 버팀목으로 세워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쉼과 기쁨의 완성임을 깨달았다.


쉬는 동안 늘 따라붙던 죄책감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책.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너무나 고맙다.


▪︎


p.082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라 '정신 차림'이다.


*


p.099

쉼은 사치가 아니라 권리다. 죄책감을 버리자. 나를 돌보는 시간은 잘못이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


p.157

삶이라는 배를 항구에 묶어두지 말자. 배를 묶은 밧줄을 풀어내고 항해를 시작하자. 무의미에서 해방되어 더 나은 내일의 삶으로 향하는 것이다. 편안한 일상에서 벗어나자.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해보자. 의미 있는 순간을 찾아 부둥켜안아야 한다. 좀 더 모험적으로 말이다. 이와 같은 건강한 욕망, 깊은 열망, 큰 야망은 만연한 스트레스와 탈진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준다. 탈진은 만족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진실로 만족하는 것에는 탈진이 찾아오지 않는다. 집중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만족스러운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p.176

마지막으로 소개할 기쁨은 '깊은 기쁨'이다. 힘든 과정을 거치고 많은 대가를 치른 뒤 얻어낸 기쁨이다. 특정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기쁨으로,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을 하거나 업적을 이루었을 때 온다. 깊은 기쁨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얻은 결과이기에 '기쁨'보다는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


p.179

기쁨을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피어나는 화사한 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갈라진 바위 같은 삶의 틈새에 피어나는 생명력 넘기는 야생화와 같다.


*


p.185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작은 기쁨들을 하나씩 모아가고, 기쁨을 누리는 것을 방해하는 장벽들을 넘어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

 
p.199

게으름의 다른 표현, 나쁜 느긋함 게으름은 '멈춘 몸'이 아니라 '멈춘 마음'이다.


*

 
p.202

좋은 느긋함은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속력이란 무엇인가? 중요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소비하는 시간은 제거하는 것이다. _톰 피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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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달리기 - 되어 가는 삶, 멈추어 묻고 답하다
김지영 지음 / 파지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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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법을 가르쳐준다. 빠르게 달려야만 살아남을 것 같은 시대 속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용기 있게 멈출 것을 권한다. 멈춤은 후퇴도, 도망도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재정렬하고 더 나다운 길로 들어서게 하는 가장 능동적인 선택이다. “방향을 바꾸려면 반드시 걸음을 멈춰야 한다” 는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울린다. 



인생에서 종종 막다른 길에 설 때가 있다.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를 때, 또는 방향을 틀어야 함을 알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다. 작가는 이런 순간마다 좋은 질문이 자신을 다시 길 위로 세워주었다고 말하며, 이 책을 통해 그 ‘모퉁이 질문’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에서 침묵의 축적은 내적 만족감과 삶의 깊이를 만드는 힘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검색되지 않는 나만의 시선, 복제할 수 없는 해석"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고유한 가치다. 이러한 고요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주변과 깊이 연결될 수 있는데, 다정함에 관한 대목이 그 연결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다정함은 타인을 향해 흐르는 에너지이면서도, 나 자신의 샘을 먼저 맑히는 행위다. 나를 가꾸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해서이자, 타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것을 또 한번 일깨워주었다.


오늘의 작은 선택과 습관이 쌓여 미래의 나를 완성하고, 지금 무엇을 심어놓느냐가 훗날의 나를 결정한다. 이 흐름 속에서 쉬어 달리기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분명해진다. 그것은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함이다. 멈춤 속에서 우리는 속도가 아닌 방향을, 성취가 아닌 존재를, 답이 아닌 질문을 바라보게 될 것.


책을 덮는 순간, 마음 한편이 고요해졌다. 동시에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나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마음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바쁜 삶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재정비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게 만드는 책.


▪︎


p.6

방향을 바꾸려면 반드시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전환은 멈춤에서만 가능하다. 이 책은 삶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 잠시 멈춰 질문하고 답해보는 시간을 돕고자 쓰였다.


*


p.29

질문을 바꾸는 순간, 우리의 상태도 바뀌는 것이다. 좋은 질문은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


p.51

검색되거나 복제될 수 없는 나의 시선, 나만의 해석에 가치를 부여해보자. 지식의 축적이 아닌 이런 시간의 축적이야말로 우리에게 더 깊은 내적 만족감을 주고 삶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


p.107

나의 샘이 맑아야 그 샘을 타인에게 흐르게 할 수 있기에 내 샘을 가꾸는 일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자,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


p.169

"왜 나는 안될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자.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습관을 지니고 있는가? 작지만 의미 있는 습관들이 나다운 삶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심어야 할 습관의 씨앗을 무엇일까?


*


p.181

중요한 것은 운 자체가 아니라, 그 운을 어떻게 맞이했느냐이다.


*


p.188

지금의 작은 선택과 습관들이 쌓여 미래의 내가 만들어진다. 웰에이징이란 단순히 나이 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기 위한 삶의 설계다. 내가 적극적으로 디자인하지 않으면 그 모습은 시간의 흐름에 맡겨질 뿐이다. 그래서 그 설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이 든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어떤 말투를 가지고, 어떤 태도로 세상을 대할까?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한다. 나이든 나의 삶에 반드시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삶의 습관에 하나씩 심어보자. 


*


p.193

쉬어달리기의 긍극적인 목적은 끌려가는 삶이 아닌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함이다. 잠시 멈추는 일은 더 나답게 나아가기 위한 숨고르기 과정이다. 숨을 고르며 속도가 아닌 방향을, 성취가 아닌 존재를, 답이 아닌 질문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멈춤을 통해 다시 새롭게 달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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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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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엔트로피아』는 “미래에서 과거로 되살아온 한 선지자의 이야기”라는 놀라운 시간 설정을 통해, 인간 존재와 역사의 본질을 묻는 장편 SF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결단에 이르게 하는 서사의 힘을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노쇠한 선지자를 기대하던 로마 장군 앞에 아기의 모습으로 등장한 선지자는, 진리를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세 권의 책, 세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묻는다. “당신이 직접 판단해 보라”고.


그중에서도 두 번째 이야기인 <책이 된 남자>는 이 책의 백미다. 이 이야기의 설정은 충격적일 만큼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신박했다.


읽는 내내 불편함과 경탄이 교차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의 탁월함이 느껴졌다.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는 단지 한 권의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판단과 신념을 조우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엔트로피아』는 단순한 SF가 아니다. 이 책은 시간이라는 수단을 빌려, 인간이라는 존재의 중심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심을 향한 여정에서 결국 깨닫게 된다. 진실은, 듣는 이가 스스로 결단하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


p.370

"선지자여, 그대는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소. 그대의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그런 점 때문에 난 가슴이 뛸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전히 그대의 말을 전부 믿지 못하오. 그대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대만의 권능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소. 선지자께서는 주사위의 눈을 미리 말하고 그것을 던지는 식으로 아주 손쉽게 권능을 증명해 보일 수 있소. 하지만 선지자께서는 길고 긴 이야기를 통해 나를 설득하고 절대적이며 변화 불가능한 우주의 법칙을 이해시키려 하였소. 그 이유가 무엇이오? 선지자께서는 어째서 나에게 감명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를 감화시키고 설득하려 한 것이오?"


선지자가 답했다.


"장군처럼 현명한 인간에겐 길고 긴 변론만이 이 위대한 진실을 직접 마주하게 할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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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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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 이름부터 고요한 확신을 담고 있다.

유행에 기대지 않고,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스스로의 무게로 존재하는 예술. 쉽게 감상할 수 없어 더 깊이 스며드는 예술. 시간이 지나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될, 미술사의 계보를 잇는 현대미술.


이 책은 바로 그 ‘시간을 견디는 예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그 안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펼쳐낸다. 작품 안에는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생각, 그들이 지나온 내면의 풍경이 고요히 스며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완성한 고유한 세계.


예술이란,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 겪어낸 마음, 견뎌온 생이 고스란히 스민 흔적이나 다름없었다.

저자는 직접 발로 전시장을 누비며 그곳에서 마주한 작품들과, 그 안에 깃든 삶을 기록해 놓았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삶을 뚫고 나온 언어로서의 예술을 대면하며 예술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기억의 조각, 기쁨과 아픔, 희망과 상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화려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예술. 그것은 속절없이 흐르는 인생을 붙잡는 치열한 애씀의 흔적이었다. 진지함과 섬세함이 어우러진 저자의 시선은 작품과 전시를 통해 결국 인간과 삶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충만한 감상의 시간과 진심 어린 몰입의 순간을 지나 결국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예술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


p.23

"시인 폴 발레리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예술가 한 명의 가치는 천 세기의 시간과 맞먹는다.' 말하자면 위대함의 척도를 측정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초월성인 겁니다." 박선민 작가의 영상 작품 <버섯의 건축>(2019)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문장이다.


*


p.77

사교계의 장인 비엔날레가 그 권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생소한 나라의 이름 없는 예술가들 덕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


p.78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인 것'이라는 진리와 함께 흥행과 수상의 독립적인 관계를 증명했다.


*


p 182

빛이 나를 한자리에 영원히 머물고 싶게 한다면, 소리는 나를 일으켜 세워 움직이게 만든다. 


*


p.195

작가의 흔적이 사라진 예술 작품이 더욱 위대하게 다가오는 건 그 빈자리를 관람객에게 내어 주고는 기꺼이 삶의 일부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인간에게 여백을 내어주었듯 이제는 현대미술이 그 역할을 자처한다. 


*


p.385

1935년생 예술가 김윤신은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예술가의 나이는 그들 스스로가 치열하게 일구어 온 혁신적인 삶의 이정표가 된다. 


*
 

p.475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 가는 것" 같은 문장은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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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되고 싶어 - 읽고 옮기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개정판
이윤정 지음 / 동글디자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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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번역이라는 일에 대한 낭만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담긴 치열함, 고요한 고독, 언어와 씨름하는
매일의 고된 리듬도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한 문장을 고르고, 수십 번 곱씹고, 가장 어울리는 말의 결을 찾아내는 일. 
그 섬세한 고뇌와 기쁨이 이 책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출판이라는 세계에,
그리고 그 세계를 떠받치는 번역가라는 존재에 묘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 그 미묘한 어조와 결을 온전히 옮겨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번역가였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로망에 단단한 뿌리를 내려주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번역이란 결국 ‘사람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들어 종종 드는 의문이 있었다. AI가 점점 더 정교한 번역을 해내는 시대에,
과연 번역가라는 직업은 지속될 수 있을까? 기계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번역은 단순히 문자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 언어가 지닌 문화의 결, 말 너머에 흐르는 감정의 온도까지도
함께 옮겨야 하는 섬세한 여정이었다.


문맥 속에 조용히 스며든 작가의 숨결을 포착해,
그것을 또 다른 언어로 다시 숨 쉬게 하는 일.
그것은 단순한 전달을 넘어, 번역 그 자체가 하나의 창작이며,
진심을 다해 재탄생시키는 예술이라는 것.


그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작업이었다.


기계는 문장을 옮길 수는 있지만, ‘의도’와 ‘온기’는 번역하지 못한다.
한 문장을 선택할 때 느껴지는 떨림, 그 미묘한 뉘앙스를 다듬는
손끝의 감각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번역가가 되고 싶어』는
번역이라는 작업에 내재된 숭고함을(그 고된 여정까지도)
숨김없이 펼쳐보이는 책이다.


▪︎


p.43

영어라는 외국어를 배운 보람과 재미는 영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때 가장 크게 와닿는다. 그래서 번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한 거 아닐까? 누구나 다 외국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는 없으니, 우리말로 번역된 자막을 보면서도 외국어로 볼 때와 똑같은, 혹은 최대한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도록 중간 역할을 해 주는 게 번역가니까 말이다.


*


p.77

출판사에서 샘플을 볼 때는 원문과 일대일로 비교하며 채점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글만 읽었을 때도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으로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p.96

저자가 어떤 정보를 주려고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으면 그 내용의 배경지식을 찾아서 읽어보고 저자가 하려는 말을 정확히 이해한 다음에 한국어로 옮겨야 한다.


*


p.132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꼭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에 아주 신선한 대답을 내놓았다. "귀. 음감이 나쁘면 번역을 못 합니다"라고. 회고록을 번역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굳이 그 문장을 소리 내서 읽지 않아도 눈으로 읽으면 귀에 들리잖아요"라는 그의 대답에 나는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라고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


p.192

행복이란 게 별건가? 한 단어, 한 문장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다 마침내 번역한 문장이 마음에 쏙 들 때, 몇 달간 붙들고 있던 역서가 출간돼 증정본이 도착하면 오탈자가 보일까 실눈을 뜨고 책장을 펼치다가도 이내 촤라락 종이 냄새를 맡으며 결과물의 물성을 느낄 때, 표지나 책날개에 찍힌 내 이름 석 자와 프로필을 확인할 때, '살다 나온' 작품의 장면들을 회고하고 인상 깊은 문장들을 훗날 곱씹을 때,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집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는 순간 번역가로서의 자아를 만날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하고 싶고 잘하고 싶던 일을 하면서 '고맙다', '멋지다'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런 작지만 소소한 보람과 재미들을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알 때,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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