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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평점 :
《디어 올리버》는 한 인간의 시선과 또 다른 인간의 응답이 만나 빚어낸 기적 같은 서사다. 수전과 올리버가 보여 준 포기하지 않는 탐구심, 고통마저 연구의 대상으로 전환한 집요한 몰두,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나누려는 끈기는 결국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기적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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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으로만 생활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어떤 어려움을 동반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쪽 눈만 사용할 때, 세상은 입체감 없이 단면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수전 배리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심한 사시를 앓았다. 두 눈이 한곳을 향하지 못해 양쪽 눈에 맺히는 상이 달랐고, 그로 인해 일상에서 큰 불편을 겪었다. 결국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는 한쪽 눈에만 의지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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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수시로 한쪽 눈을 감으며 그녀가 묘사한 부분을 직접 따라해 보았다. 이미 입체시를 경험한 사람은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해서 그녀가 살던 ‘납작한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쪽 눈만 뜨고 물건을 집으려 하면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 있는 물건을 향해 ‘이쯤이겠지’ 하고 손을 뻗었지만, 전혀 다른 곳에 닿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쪽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양쪽 눈으로 보는 것과 비교해 보니, 수잔 박사의 말처럼 같은 물체가 양쪽 눈으로 볼 때 훨씬 더 ‘튀어나와’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잠깐의 체험만으로도 불편함이 느껴졌는데, 평생을 그 제약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의 고충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실제로 수전 박사는 바느질, 운전 등 일상 전반에서 크나큰 제약을 겪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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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러한 경험들을 신경학자 올리버에게 편지로 전했다. 인간의 지각과 뇌의 작용에 깊은 관심을 두었던 그는 수전의 편지에 즉시 매료되었고, 기꺼이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서신 교류는 올리버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디어 올리버》는 바로 그들의 특별한 우정이 담긴 10년간의 기록이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1부는 수전 배리 박사가 겪은 어린 시절의 어려움과, 성인이 되어 처음 입체시를 경험한 경이로운 순간을 담고 있다.
• 2부는 단순한 시각 경험을 넘어, 두 사람이 나눈 편지 속에서 드러나는 우정과 삶,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올리버와 수전의 상황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 3부에서는 두 사람의 진심 어린 대화가 차곡차곡 쌓이며, 마침내 이 책의 정수를 드러내는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를 선사한다.
올리버와 수전은 아플 때조차 고통의 순간을 학문의 재료로 삼으며 치밀하게 기록했다. 아픔을 단순히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탐구와 이해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그들의 태도는 연구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집요한 몰입과 긴장을 드러냈다. 특히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여생을 기록한 부분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정과 태도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삶에 대한 경이로움과 우정의 의미를 깊이 느껴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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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누구나 살면서 중요한 갈림길을 만난다.
...그러나 어떤 것은 저 멀리서 꺾이는 우회로처럼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다가 나중에야 인생을 바꾼 중요한 결정이었음이 드러난다.
p.81
게다가 올리버와 나의 공통점은 집요한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글을 쓸 때 생각이 가장 잘 풀렸다. 올리버가 나를 주인공으로 글을 써서 발표한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올리버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이야기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결국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올리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p.257
물론 제가 쓰는 이 전략은 박사님 책에서 배운 것이랍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만큼 좋은 교수법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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