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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하나 잊지 말자는 것이다 - 만화로 읽는 나혜석
유승하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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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羅蕙錫, 1896~1948).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소설가, 시인.
그녀는 한국 여성사와 예술사에 있어 하나의 별빛 같은 존재였다.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귀국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작품을 내며 화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유화뿐 아니라 수채화, 삽화, 서예까지 손을 뻗으며, 자신의 재능을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 나갔다. 동시에 그녀는 소설과 시, 수필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여성도 사랑할 자유가 있다.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 인격적 주체로 당당히 설 권리가 있다.” 그녀는 이 당연한 진리를, 아무도 말하지 못하던 시대에, 당당하게 외쳤다. 아이 넷을 낳고도 시댁에 맡겨둔 채, 남편과 함께 파리로 유학을 떠나 그림을 공부하고 세계를 여행한 일은 당시 여성에게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늘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시대와 충돌했다. 세상은 그녀의 진심과 갈망을 외면했다. 돌아온 것은 이해가 아닌 조롱과 낙인이었고, ‘타락한 여성’이라는 굴레였다. 결국 그녀의 예술 활동은 위축되었고, 마지막은 쓸쓸함 속에서 닫혀 버렸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도 정말 이런 여성이 있었단 말인가?
결혼과 가정이라는 틀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믿으며,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한 여성. 그녀는 당당했고, 솔직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거대한 물줄기 같았다. 만약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면, 자녀들의 고통도, 그녀의 가슴 속 아픔도 덜하지 않았을까.
더 훨훨, 더 멀리 날아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만화를 통해 처음 접한 화가 나혜석의 이야기는 나에게 오래도록 울림을 남겼다. 그 시대에도 이토록 거침없이 자기 삶을 주도한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갈고닦으며 예술을 이어간 동시에,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던 그녀는 그저 한 명의 화가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 산 혁명가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꺼내 든 목소리는, 그 시절에는 너무 이르렀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에게는 더욱 값진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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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1921년 경성일보 내청각에서 열린 나혜석 개인전은 경성에서 열린 최초의 유화 전시회이자 우리나라 여성의 첫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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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9
연이은 불행에도 나혜석은 다시 시작했다. 의미 없는 풍경 같지만 그림 속 만상정에는 화재로 그림을 잃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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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0
"지금은 불안할 수도 있어. 좌절하는 날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들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