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망명지
유종호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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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글이나 일반 사람들이 쓴 쉬엄쉬엄 읽히는 글을 읽다보면 단단하고 탄탄하게 잘 짜여진 글이 그리울 때가 있다. 대개 수필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다르지만, 서점에서 유종호 선생님의 산문집을 집어들었을 때는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간 신문에 실었던 글들, 서평들 여러가지 잡문들이 뒤섞여 있어서 뒤로 가다보면 중복되는 부분도 여럿보이고 성의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유종호라는 사람의 책경험과 사고의 깊이가 단순이 이 책하나 보고 분석할 정도는 아니기에 읽을만한 책이다. 문장이다.

수업시간에 본 선생님은 글은 정말 잘 쓰시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 ' 시란 무엇인가?' 등의 저작들도 탄탄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하지만 수업은 본인의 훌륭한 저작을 지루하게 읽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답답한 공기가 가득한 강의실에서 책 보는 흉내를 내면서 꾸벅거린적도 여러번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때도 역시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또한 영문학을 한 선생님이 왜 국문학 교수일까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살아간 시기가 영어책만 한다고 영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아우름과 깊이 있는 독서와 연구가 당연스레 병행되었던 것. 그리고 본인 스스로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있었던 것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이드신 선생님의 문장은 녹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스승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피차간에 시퍼런 청춘이었다"
라며 젊은 시절 찍었던 한 장의 사진 속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대목이라던가.

"그리하여 내면적 행복의 권유자들이 즐겨 시사하는 것의 하나는 어떤 사람들을 열심히 좋아하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하면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
라는 대목에서 시작해서 나름 소시민적 삶을 옹호하는,

" 열심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과 산행을 한다든지 감동적인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는 세목의 구상으로 우리의 행복은 축소된다. 이른 바 소시민적 행복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빼고 남아나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삶은 조그마한 나날의 연속인 것이다" 라는 문장으로 맺는 생각의 흐름이 좋다.

대학시절은 나름으로 행복했고, 지금은 지금대로 그시절과는 다른 경험을 해서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문득 이 책을 읽고나서는 선생님이 저 멀리서 마이크에 대고 강독을 하던 느낌이 되살이나
강의실에서 꾸벅거리던 그때가 불현듯 그립다는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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