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 소설집의 제목은 담겨있는 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의 제목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김연수의 소설집에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단편이 없다.

전체적으로 다른 얘기들이 춤을 추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령작가ghost writer/ 대필작가를 자처하는

이야기들이 묶여 있다.

 

아마 작가는 역사의 한 장면, 과거의 기억 등을 다시 구성하고 창조해 내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유령작가를 자처한 것이 아닐까?

 

어제 c친구가 다니는 광고회사에서 칸느 광고필름 페스티벌 프리뷰를 했다.
전 세계에서 선별된 50개의 광고를 같이 보았는데, 나중에는 눈이 벌게 지고 피곤이 몰려오긴 했지만...
수상작을 가늠해 보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HBO(미국의 방송 채널, Sex and the City같은 드라마를 주로 방영한다) 광고가 참 인상적이었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다른 스토리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

설명은 부족하지만 상상해 보시라.

-------------------------------------------------------------------------------------

#scene 1

 

같은 식탁에서 노부부가 식사를 한다. 남편이 갑자기 심장을 움켜 쥐고 쓰러진다.

부인은 얼른 전화기로 달려가서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그녀는 말한다.

 "911이죠. 제 남편이 쓰러졌어요. 집주소는 ...."

 

<같은 장면 다시보기>

같은 식탁에서 노부부가 식사를 한다. 남편이 갑자기 심장을 움켜 쥐고 쓰러진다.

부인은 얼른 전화기로 달려가서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실은 다른 손으로 몰래 전화기 연결 버튼을 누르고 있는 그녀. 전화는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한다.

"911이죠. 제 남편이 쓰러졌어요. 집주소는..."

 

#scene 2

 

한 남자가 귀가한다. 그는 먼저 우편물을 확인한다.  

집의 문을 연 순간.

Surprise! 10명의 친구들이 남자의 생일을 축하하며 왁자지껄 떠든다.

 

<같은 장면 다시보기>

한 남자가 귀가한다. 그는 먼저 우편물을 확인한다.

그동안 집에 숨어있는 친구들.

갑자기 전화가 오고 자동응답기가 작동한다.

"자네 말이야. 내일 나랑 얘기좀 하게. 회사 감시 카메라에 자네가 사무실에서 자위하는 장면이 잡혔어." 

집의 문을 연 순간.

Surprise! 친구들은 남자의 생일을 축하하며 왁자지껄 떠든다.

-------------------------------------------------------------------------------------------------

같은 얘기이지만, 배경을 알고 보니 얼마나 다른가.

내가 본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드라마 채널이라는 멋진 광고다.

 

그리하여 김연수의 소설집 역시 그러하다.

춘향전의 이야기, 외국의 이야기, 안중근의 이야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와 겹치며 과거를 회상하며

또 그것을 내 나름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HBO 채널 못지 않은 이야기꾼 김연수를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대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