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6 - 제2부 민족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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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주에서는 독립투사를 찾아내기 위해 양치성 같은 정보원들이 보수상으로 위장하여 만주 곳곳에 침투하고, 중국 관헌들 까지 매수하여 독립투사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잡아들여 독립운동 근거지를 말살하려 들었다.

조선에서는 뜻이 있는 지식인들이 만든 사회 단체와 종교단체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평화시위로 독립을 갈망하며 대한독립만세가 전국에서 일어났으나 침략자들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고 맨손의 군중에게 총칼을 휘둘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면장에서 물러나 라인이 끊긴 백종두는 친화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본인이 회장이 되어 젊은 건달패들을 이끌고 시위대 진압에 나섰으나 몰매를 맞아 죽는다.

또한 송수익의 아들 송중원도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모든 동물이 부모의 사냥법을 배우듯이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아버지를 따라 자식도 앞잡이를 하고 독립운동을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똑 같이 독립운동을 하였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이면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때는 타당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의견으로 절충되어야 한다. 자 그렇다면 나라를 잃었는데 무엇이 가장 먼저겠는가? 당연히 나라를 되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독립군 조차 공화주의, 복벽주의, 공산주의로의 계파로 나눠 분열한다. 호 불호를 떠나서 응당 우선과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인데 인간이란 이익 앞에서는 그런들 것도 다 무용지물인가 보다. 다행이 임시정부는 신채호 선생의 강력한 주장으로 공화주의를 채택하게 된다.

공화주의, 공산주의는 많이 들어 봤지만 복벽주의라는 말이 생소할 것이다. 이는 조선의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기존의 왕을 다시 옹립하자는 주의로 무능한 군주를 다시 한번 재 신임하자는 뜻인데 선뜩 동의를 얻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김좌진장군의 청산리 전투와 홍범도 장군의 완루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일본군의 기세를 꺾었으나 일본군은 이에 독립군을 고립시키는 작전으로 마을을 초토화 시켜 연결고리를 끊어 버렸다. 마을주민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다 죽여 버리고 처녀들은 병사들의 노리개로 쓴 다음 죽인 후 마을 전체에 불을 질러 버렸다. 그나마 총으로 죽은 사람은 행복(?)하게 죽은 것이다. 산 사람의 낯가죽을 벗기고 칼로 눈알을 노려내어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방대근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정의단원으로 활동을 개시하였으며, 대한정의단은 김좌진등이 합류하면서 군정부로 개편되었고 홍법도 장군의 대한 독립군은 대한 국민회와 연합하였다.

양치성은 방대근 친구이며 수국이를 좋아하는 김시국을 잡아 죽이고 의란구라는 독립군 부대가 은거했던 마을을 토벌하고 수국에게 마음이 있었던 탓에 임형사에게 부탁해서 수국이를 빼돌렸으나 미모에 반해 임형사는 그녀를 탐하고 양치성에게는 큰 선물까지 받고 넘겨준다. 수국의 미모가 대한 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을 한번 보면 푹 빠진 사내들을 보면 오영감, 하시모토, 백남일, 서무룡, 만주지주 추가아들, 김시국, 임형사, 양치성까지 인데 12권까지 몇 명이나 더 꼬일지 궁금하다.

 

독립군이 일본군을 제압할 때는 통쾌했으나 농민들이 수난을 당할 땐 정말로 가슴이 답답했다. 일본 놈들도 사람인데 정말로 이 정도까지 했을까? 소설이라 그렇겠지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일본 우익 정치인이나 단체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군사력, 경제력 등 국가의 힘을 길러 열강들로부터 국가를 지킬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도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 지도층 및 리더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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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5 - 제2부 민족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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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논농사를 짓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고 영리하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논농사가 주된 업이었다. 이렇다 보니 논을 빼앗기는 것은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목숨과도 같이 여겼다. 그런데 일제는 토지 조사를 마친 다음 신고하지 않는 토지는 주인이 없는 땅으로 간주하고 환수 하겠다는 계획하에 관공서와 농감을 시켜 취지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배포하여 글을 모르는 사람들과 그들의 훼방으로 기간이 경과한 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긴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목숨과도 같은 토지를 빼앗기다 보니 대항하다가 죽던지 아니면 화전민이나 만주로 이주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만주 땅에 건너가 척박한 땅을 엄청난 노력으로 기름지게 만들어 놓으면 만주 지주들이 그 땅을 돌려 달라고 하여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독립운동은 조선에서도 일어 났지만 감시가 너무 심하다 보니 만주, 상해, 하와이 등에서 은밀하게 일어났다. 방영근이 있던 하와이에는 국민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이는 뜻이 있는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기탁된 성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로 독립군 양성과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을 고취시키며 성장하는 도중 이승만과 박용만의 대립으로 이승만이 박용만이 만든 대조선국민단을 무력화 시켜 국민회를 장악한다. 이유야 있겠지만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힘을 합쳐도 독립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립하며 반목하다니, 더구나 안창호 선생까지 나서서 화해시키려 하였지만 결국 이승만의 고집은 꺾지 못하고 돌아 갔다.

후에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얼마나 제멋대로였을까? 어쩌면 제사보다는(독립운동) 젯밥(정권욕)에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해방 후 이승만은 국론분열과 민심혼란의 이유를 들어 친일파 청산에 반대 하였으며 반민특위를 탄압하고 방해 하였던 인물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 어찌하여 백성들의 탓인가? 나라를 다스리는 벼슬아치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위 아래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국고를 탕진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았기 때문이 아닌가?

조선백성들은 일본 침략자에게 핍박 받고, 조선백성 중 고위 관리자들은 일제와 결탁하여 백성을 핍박하고, 지방의 하급관리는 일본관청에 빌붙어 백성을 핍박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고, 하급관리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지주나 농감, 이장들 까지 허세를 부리며 농민들을 핍박하고 심지어는 독립운동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자발적인 참여가 좋겠지만 모든 백성이 힘들다 보니 그것 또한 쉽지 않아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직접 찾아 다니면서 자금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었는데 돈이 없다 보니 이들을 호랑이 보다 무섭게 생각했다고 하니 이 또한 핍박이었고 결국 고통 받는 것은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아리랑 속에는 여러 가지 인간의 심리가 들어 있다. 만석꾼 정재규 형제들의 재산다툼을 보면서 가진 자라 할지라도 욕심은 무한하면 오히려 탐욕스럽다는 사실과 보름이나 수국이를 탐내 하는 사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성이 본능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라 하여 경복궁 건물을 훼손하여 전국의 물품을 전시하는 박람회를 열었는데 산업, 교육, 위생, 토목, 교통, 경제, 시설, 통계를 망라한 모든 분야였고 목적은 강제병합 후 조선의 진보를 전시하고 과시하는 선전용이었으며 조선에서 생산된 물품은 소규모이고 일본의 생산품이나 조선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품목과 외국의 수입품 중에 판로 확장이 필요한 물건들 위주로 전시 하였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돈푼깨나 있는 자들은 모두 이곳 구경에 열중하였고 심지어는 고무신이 혼수품에 까지 들었다고 하니 조선의 낙후성과 국민들의 허영심을 엿볼 수 있다.

 

전라도 사투리로 쓰여진 책이라 뜻을 이해하는데 더디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맛이 나고 훨씬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스테디샐러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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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흥 2013-01-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유산 아리랑]

詩人/靑山 손병흥

한민족의 혼 얼이 깃든 정신을 이어받아
오랜 세월동안 구전되어온 민요가락으로
눈물 한속에 얼룩져 승화된 민족의 노래

우리문화의 우수성 문화국가 위상을 드높여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쾌거이룬 아리랑

이제 다시금 보다 슬기로운 우리들의 지혜모아
지구촌 세계무대에 더욱더 빛을 밝히고 보존하여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할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
 
아리랑 4 - 제2부 민족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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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리랑의 배경이 왜 전라북도 김제였을까? 어쩌면 타 지역에 비해 평야가 많고 지리적으로 일본으로 쌀 이동이 용이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예로부터 전라도 지역이 먹거리가 풍부했기 때문에 음식문화와 여유를 즐기는 풍류문화, 그리고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보면 그런 조건들이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상대적으로 평야가 적었던 경상도 지역은 공업화가 일찍 시작되다 보니 경제 발전과 동시에 인구 유입도 많아져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작년 통계를 보니 전라도와 경상도 인구가 약 2.5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배경이 궁금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동양척식회사를 앞 세워 조선의 토지를 가장 먼저 장악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군량미 조달도 시급했겠지만 사실은 급속한 공업화로 쌀이 부족하여 많은 양을 수입에 의존 하다 보니 조선의 기후나 토지가 일본에 훌륭하여 욕심이 났을 것이다. 또한 조선은 공업화가 늦어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의존하다 보니 소작할 인력 조달도 용이하였으니 대규모 지주제 농장을 건설하여 수탈을 일삼았던 것이다.

동양척식회사는 주식회사로 일본지분 70%와 조선의 토지를 물납으로 한 지분 30%로 설립된 회사였다. 그 회사가 보유한 토지가 2 700만평 정도 된다고 하니 현재 서울시 땅 보다 더 큰 규모였다. 일부는 정상적인 거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강매를 종용하고 불합리는 요구하면 입법, 사법, 행정이 나서 제재 하였으니 소작농으로 전락한 것도 서러운데 4할 정도 부담하던 소작료를 7~8할까지 소작료를 수탈 당하다 보니 더 이상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만주로 연해주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동양척식회사 다음으로 경상북도에 진출한 회사는 조성흥업이라는 회사로 5 200만평 가량의 토지를 소유하였다고 하니 조선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상상이 간다.

 

지주들은 자기네들 재산을 지키기 급급해 친일파가 되어 가고 있었고 승려들은 승려들대로 눈앞의 잇속과 편안을 따라 넋을 팔고 있었고, 끝내는 독립의 군부 같은 조직까지 깨져 나가고 있었으니 민초들은 더 이상 조선 땅에서는 살수가 없었다.

 

한편 동학운동과 의병활동에 지삼출과 참가했던 손판석은 중국 부두노동자와의 패싸움에서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었으나 양치성이의 끄나풀 서무룡의 도움으로 부두 창고지기 십장으로 들어가 정보를 얻어 공허에 전달 한다. 서무룡 또한 손판석을 끈 삼아 송수익 일당의 정보를 얻으려고 활용한 것이다.

공허일당은 독립자금 조달을 위해 지주들 집을 털어 충당 했는데 만석꾼 정재규의 집을 털고, 손판석에게 정보를 얻어 하시모토 집을 털다 함정에 빠져 대원 한사람이 총에 맞아 죽자 홍씨 집으로 피신했는데 여기서 이성이 본능을 넘을 수 없는 사실을 증명 시켰다. 심리학에 보면 일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홍씨는 송수익을 사모했는데 공허와 하루 밤을 지내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허를 사모하였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백종두의 아들 백남일은 수국이를 범하는 바람에 대근에게 맞아 한쪽 눈이 명씨박이가 되어 헌병보조원에서 쫓겨나고 백종두 일가의 위기가 찾아오는 반면에 장덕풍은 순사인 아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여 백종두와 맞먹는 재산을 쌓아 가며 새로운 재력가로 떠 올랐다.

 

토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항을 하면 순사에게 잡혀가 쇠좆매 곤장을 맞았는데 쇠좆매는 소 자지로 만든 채찍이었다. 소를 잡을 때 소 자지의 굵고 긴 뿌리까지 뽑아내 그늘에서 바짝 말려 채찍으로 사용하면 생살이 뜯기고 속살이 파헤쳐져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모든 것이 나라 잃은 국민의 서러움 이었다. 이 설움을 누가 보듬어 줘야 하는가? 서로가 보듬어 줘야 하고 지도자가 보듬어 줘야 하고 우리 후손들이 알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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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2 - 제1부 아, 한반도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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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추구하는 바르고 곧은 것을 말한다. 개념이 다양하여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고 규정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 정의라는 것이 존재는 하였던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서 아니면 대의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  일제 강점기를 과거의 역사라고 치부해 버리면 미래의 설계가 올바를 수 없다. 그 당시 일본 놈들을 등에 업고 민초들을 핍박하며 호의호식했던 자들의 기득권은 회수되어야 한다. 그것을 회수되지 않는 한 우리들의 미래 또한 과거의 역사처럼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조선사람 입장에서 가장 못된 짓은 일본 앞잡이 노릇이다.

행동하는 지식인 의병대장 송수익,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 위에 상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신세호와의 긴장감, 머슴살이 하면서 불의에 공분할 줄 하는 지삼출과 손판석, 스님이지만 의병활동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공허스님, 멀리 하와이 땅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힘든 노동을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고 동료들의 중재자인 방영근

일본 침략자들은 나열할 필요도 없지만 그 놈들 보다 더 나쁜 놈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동족의 피를 빠는 일진회 회장인 인간말종 백종두, 그의 아들 보조헌병 백남일, 돈이 되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은 장덕풍, 아들을 백종두 밑에 넣어 보조 헌병이라도 시킬 요량으로 일진회에 가입한 정칠문, 만석꾼이자 송수익의 친구이지만 나라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놀이에만 열중하는 정재규

조선이 나라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가지를 꼽자면 주자학이 골수에 박인 유생들은 나라가 빼앗기던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말든 오로지 충효가 으뜸이고 양반 지체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 리더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목숨을 걸고 봉기한 의병을 해산하라는 고종황제도 정신이 빠졌고, 을사오적 상소와 힘들게 봉기하고 리더를 맡아달라는 임병찬의 요청으로 의병장 된 최익현은 우리측 진위대와 맞싸울 수 없으니 의병을 해산하라고 명하고 본인은 서울로 압송되어 일제의 재판을 받고 대마도 감금 3년에 생을 마감한 최익현 대감, 양반장수 안승우의 잘못으로 많은 부하를 잃어 평민장수 김백선이 유인석을 처벌하려 하자 오히려 평민이 양반에게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김백선을 처형해 버린 유인석 도대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 보다 양반의 명분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정말 한심하다. 양반만 한심한 것이 아니라 현상금에 눈이 멀어 의병장 신돌석의 목을 잘라 일본군에게 넘긴 고종사촌들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놈들이다.

나라를 위한 일에 양반, 천민이 어디 있으며 사리사욕이 웬 말이냐 말인가?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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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흥 2013-01-1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유산 아리랑]

詩人/靑山 손병흥

한민족의 혼 얼이 깃든 정신을 이어받아
오랜 세월동안 구전되어온 민요가락으로
눈물 한속에 얼룩져 승화된 민족의 노래

우리문화의 우수성 문화국가 위상을 드높여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쾌거이룬 아리랑

이제 다시금 보다 슬기로운 우리들의 지혜모아
지구촌 세계무대에 더욱더 빛을 밝히고 보존하여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할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
 
아리랑 3 - 제1부 아, 한반도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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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양반이라 하면 조선시대 리더 그룹을 말하고 그들은 이론적으로 선비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선비정신이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대쪽 같은 정신을 말한다. 송수익 같은 사람이 양반이며 선비정신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권에 등장하는 이동만이라는 인물은 동양척식회사의 앞잡이로 소작인들의 토지를 빼앗고 소작료 인상을 주도 하는 등 악행을 일삼아 소작인들의 원성을 사 그들의 기습으로 다리 병신이 되었지만 뉘우치지 않고 더욱 소작인들을 못 살게 굴었다.

 

기구한 운명의 감골댁 동학동민운동에 남편을 잃고 큰 아들 방영근은 하와이로 팔려나갔고 큰 딸 보름이는 늙어빠진 영감탱이 김참봉이 침을 흘리는 통에 무랴부랴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보내고, 둘째 딸 수국이는 언니를 탐냈던 김참봉이 동생까지 넘 보고, 일본인 하시모토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백종두의 아들 백남일이가 강제로 겁탈해 버린다. 막내아들 방대근은 그의 누나를 겁탈한 백남일을 린치하고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난다. 수국이의 겁탈 장면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침략당한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여 가슴이 아팠고 방대근이의 린치는 주권을 찾고자 의병활동에 나선 의병의 모습이었다.

 

장덕풍에게 물건을 받아가는 보부상 김봉구가 나온다. 보부상은 잡화를 지방으로 돌아 다니며 행상하는 자들로써 대부분이 천민출신이었지만 관에서 허가한 관허 상인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일정한 보호를 받고 유사시 동원되어 정치적인 활동을 했다. 또한 그들의 단체는 황국중앙총상회에 소속되다가 나중에 황국협회로 바뀐 다음 독립협회 해산시키는데 일조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소멸되었다. 그들이 행동강령과 윤리 강령이 있었는데 첫째 망언을 하지 마라. 둘째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셋째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마라. 넷째 도둑질을 하지 마라 였다.

그런데 이들이 동민운동과 일제 강점기에 관군과 일본군의 길잡이 노릇을 하였다. 물론 자발적인 참여는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모든 것이 나오므로 그들을 배신하는 것 보다 도움도 안 되는 농민을 배신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또한 수고비까지 챙겨 준다고 하니 거부할 명분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위 국가 지도자인 왕과 리더 그룹인 양반들도 목숨을 아까워하고 사리사욕을 탐하는데 하물며 못 배우고 가난한 그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었다.

 

이것을 교훈 삼아 재발방지를 위해 지도자나 리더 그룹에서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여당은 탁상공론에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목메고 있으니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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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흥 2013-01-1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유산 아리랑]

詩人/靑山 손병흥

한민족의 혼 얼이 깃든 정신을 이어받아
오랜 세월동안 구전되어온 민요가락으로
눈물 한속에 얼룩져 승화된 민족의 노래

우리문화의 우수성 문화국가 위상을 드높여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쾌거이룬 아리랑

이제 다시금 보다 슬기로운 우리들의 지혜모아
지구촌 세계무대에 더욱더 빛을 밝히고 보존하여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할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