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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4 - 제2부 민족혼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리랑의 배경이 왜 전라북도 김제였을까? 어쩌면 타 지역에 비해 평야가 많고 지리적으로 일본으로 쌀 이동이 용이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예로부터 전라도 지역이 먹거리가 풍부했기 때문에 음식문화와 여유를 즐기는 풍류문화, 그리고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보면 그런 조건들이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상대적으로 평야가 적었던 경상도 지역은 공업화가 일찍 시작되다 보니 경제 발전과 동시에 인구 유입도 많아져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작년 통계를 보니 전라도와 경상도 인구가 약 2.5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배경이 궁금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동양척식회사를 앞 세워 조선의 토지를 가장 먼저 장악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군량미 조달도 시급했겠지만 사실은 급속한 공업화로 쌀이 부족하여 많은 양을 수입에 의존 하다 보니 조선의 기후나 토지가 일본에 훌륭하여 욕심이 났을 것이다. 또한 조선은 공업화가 늦어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의존하다 보니 소작할 인력 조달도 용이하였으니 대규모 지주제 농장을 건설하여 수탈을 일삼았던 것이다.
동양척식회사는 주식회사로 일본지분 70%와 조선의 토지를 물납으로 한 지분 30%로 설립된 회사였다. 그 회사가 보유한 토지가 2억 700만평 정도 된다고 하니 현재 서울시 땅 보다 더 큰 규모였다. 일부는 정상적인 거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강매를 종용하고 불합리는 요구하면 입법, 사법, 행정이 나서 제재 하였으니 소작농으로 전락한 것도 서러운데 4할 정도 부담하던 소작료를 7~8할까지 소작료를 수탈 당하다 보니 더 이상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만주로 연해주로 이주하였던 것이다. 동양척식회사 다음으로 경상북도에 진출한 회사는 조성흥업이라는 회사로 5천 200만평 가량의 토지를 소유하였다고 하니 조선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상상이 간다.
지주들은 자기네들 재산을 지키기 급급해 친일파가 되어 가고 있었고 승려들은 승려들대로 눈앞의 잇속과 편안을 따라 넋을 팔고 있었고, 끝내는 독립의 군부 같은 조직까지 깨져 나가고 있었으니 민초들은 더 이상 조선 땅에서는 살수가 없었다.
한편 동학운동과 의병활동에 지삼출과 참가했던 손판석은 중국 부두노동자와의 패싸움에서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었으나 양치성이의 끄나풀 서무룡의 도움으로 부두 창고지기 십장으로 들어가 정보를 얻어 공허에 전달 한다. 서무룡 또한 손판석을 끈 삼아 송수익 일당의 정보를 얻으려고 활용한 것이다.
공허일당은 독립자금 조달을 위해 지주들 집을 털어 충당 했는데 만석꾼 정재규의 집을 털고, 손판석에게 정보를 얻어 하시모토 집을 털다 함정에 빠져 대원 한사람이 총에 맞아 죽자 홍씨 집으로 피신했는데 여기서 이성이 본능을 넘을 수 없는 사실을 증명 시켰다. 심리학에 보면 일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홍씨는 송수익을 사모했는데 공허와 하루 밤을 지내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허를 사모하였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백종두의 아들 백남일은 수국이를 범하는 바람에 대근에게 맞아 한쪽 눈이 명씨박이가 되어 헌병보조원에서 쫓겨나고 백종두 일가의 위기가 찾아오는 반면에 장덕풍은 순사인 아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여 백종두와 맞먹는 재산을 쌓아 가며 새로운 재력가로 떠 올랐다.
토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항을 하면 순사에게 잡혀가 쇠좆매 곤장을 맞았는데 쇠좆매는 소 자지로 만든 채찍이었다. 소를 잡을 때 소 자지의 굵고 긴 뿌리까지 뽑아내 그늘에서 바짝 말려 채찍으로 사용하면 생살이 뜯기고 속살이 파헤쳐져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모든 것이 나라 잃은 국민의 서러움 이었다. 이 설움을 누가 보듬어 줘야 하는가? 서로가 보듬어 줘야 하고 지도자가 보듬어 줘야 하고 우리 후손들이 알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