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7 - 5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7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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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경에 거주하던 홍이네 집에 형사가 들이닥쳐 금 밀수한 것을 압수 하고, 홍이와 보연을 구속되어 조선으로 압송 되었다. 이에 상의와 상근, 상조는 고모 임이를 밀고자로 지목하고 31 몸싸움까지 벌인다. 임이가 밀고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행실이 그렇다 보니 누구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었다. 전시에는 개인이 금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일본 정부가 포고 없이 집행하면서, 나라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고시한 가격으로 정부에 매각 했었어야 했고 그렇지 못한 자는 금 은닉한 반역자로 금 회수는 물론이고 처벌까지 받았다. IMF 때 정부에서 고시한 가격대로 팔았는데 우리 국민 모두가 애국자 였나?

찬하는 하얼빈 여행 중에 유인실을 만나 자신의 양자로 들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오가타에게 하라고 요청하자 인실은 자조하고 오가타를 만나 사실이야기를 한다. 오가타는 인실의 뺨까지 때리면서 너를 잊겠다고 절규한다. 하지만 인실을 미워한다기 보다는 인실과 연결고리를 찾은 듯한 기쁨으로 보인다.

일본으로 돌아온 찬하는 오가타와 아들 쇼짱과 하루를 보내게 한다. 오가타의 마음이 평소 쇼짱을 대했을 때하고 다를 것이다. 무의식 중에 아빠라고 했으니 눈물이 핑 돌만하다.

유인성의 아들은 결핵으로 마산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때문에 목재소까지 팔아 병원비에 보탰으나 부인 석씨는 다른 남자와 불륜에 빠져 도망갔다. 타인이 볼 땐 학벌 좋은 지식인에 애국지사라 하여 칭송 받을지 모르지만 정작 석씨는 경제적 무능력에 빠진 남편을 대신하여 가족을 위해 빚을 내고 친정에 손을 벌리는데 이골이 나다 보니 생각을 달리 한 것 같은데 결핵이 옮길까 봐 병원에도 가지 않는 걸 보면 근본이 그다지 있는 여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유인성도 반성해야 한다. 독립투사로 나설 거였으면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당시 남자들이 대체적으로 가정에 무심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석이, 관수, 두매, 이상현, 이동진, 유인성 등 그나마 이상현이나 이동진의 경우 서희가 도와줘서 살아가긴 했지만......

영광과 양현은 서로 아픈 상처가 있기에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복합적인 환경이 그 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가까워진 핵심적인 동기는 아니지만 환국의 아내 덕희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양현을 시누이로 인정하지 않고 천한 기생 소생의 딸이라 치부하고 대 놓고 무시하기 일수였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양현은 이럴수록 영광과 동질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악한 것인가? 자신과 다르면 가차 없이 배척하니 말이다. 피부 색이 다르다고 노예로 부리고, 성별이 다르다고 하여 선거권을 주지 않고, 심지어는 돈이 없다 하여 왕따를 시키고, 말이 어눌하다 하여 구타해서 죽이고 ....... 다른 동물이나 식물들도 이렇게 살아 가나?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인데 ........

부자와 가난뱅이, 의사와 악사, 정상인과 장애인 이런 면만 보면 이들은 절대 연결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국이나 길상같이 범인들 보다 좀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을 해준다면 가능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우가네 식구들이 한복이 딸 인호가 못 살고 집으로 돌아오자 바보 일동이와 엮어 줄려고 압박한다. 우가네의 횡포를 동네사람들이 다 아는 처지라 본인은 물론이고 동네사람들이 앞장서서 이 일을 말린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덤벼들자 인호는 야무한테 시집을 가버린다. 동네 사람들이 우가네를 무시 해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은데 혹시 생길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 하고자 소수가 그들 편에 서는 것 때문에 이들이 계속 악행을 일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면서기가 그렇게 파워가 좋았나?

우가네 횡포를 보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생각난다. 일어설 수 없게 짓 밟아 버리면 항거하지 못한다. 첫째는 자신이 짓 밟히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고 둘째는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 어찌 이같이 잔혹한 규칙들이 예외 없이 맞아 떨어 지는지 궁금하다. 작은 사회인 회사도 마찬가지다. 악랄한 자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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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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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격동의 시대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핏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핏줄보다 더 강함 유대감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홍이 인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로 모시는 공노인 부부, 어머니로 모시는 월선, 아버지로 모시는 주갑이, 친 형제의 우애를 가진 석이, 영광, 천일 등이 홍이의 끈이었다. 이외에도 서희 가족과 양현, 김훈장네와 한경, 찬하와 인실의 아들, 영산댁과 숙이, 해도사와 몽치 등이 가족 관계를 이루었고, 길상, 연학, 관수, 석이, 윤보, 이동진, 송장환, 두매, 서의돈등은 친형제와 같은 동지애를 구성하였다.   

홍이는 영광을 찾아가 아버지와 만나 화해할 것을 요청하지만 관수가 목단강에서 돌아오지 않아 영광이 길림으로 떠났는데, 천일이 관수의 죽음을 가지고 영광을 찾아 간다.

역시나 1권에서 16권까지 꽤 비중이 있었던 송관수조차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송씨 아재씨가 세상 버맀십니다.' "......." '호열자로 별안간 ' 간단 명료하다. 송관수가 호열자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관수의 죽음은 어수선한 영광의 가슴에 더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조금만 일찍 마음을 먹었더라면 죽기 전에 화해했을 텐데......

관수의 유골은 영선네와 영광, 영선이가 신경에서부터 도솔암까지 옮겨왔다. 소지감은 삭발을 하고 도솔암의 주지가 되었다.

영광은 아버지의 유골을 도솔암에 모신 후 환국을 만나기 위해 평사리에 왔다가 양현을 만난다. 

영광과 헤어진 후 혜숙은 환국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양재점을 하고, 양현이는 이 집의 단골로, 명희까지 소개한다.

환국은 법학도에서 전공을 미술로 바꿔 서울에서 미술 선생을 하고 있고, 황태수의 막내 딸과 결혼하여 아들 재영이를 보았다.

오서방의 낫에 찔러 죽은 우서방네는 막내아들을 징용에 보내고 둘째 아들 개동이 면소 서기로 들어가 동네사람에게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이것도 모자라 김훈장네 집에 가서 산청댁에게 행패를 부리고, 드디어 서희에게 까지 시비를 걸다 서희가 군수에게 따지겠다는 말에 꼬리를 내리고 사과한다.

민국은 농과대학을 마치고 경제과에 들어가 나이가 많았음에도 학업을 계속 하였고 비 현실적인 영광을 싫어했다. 특이한 점은 양현을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여자로 보는 것 같아 추후 청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병수는 통영에서 소목으로 이름나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하며 김강쇠의 아들 휘를 제자로 들였고, 첫딸은 출가시켰고, 막내 아들은 사범학교를 나와 사천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있고, 둘째 아들은 어구점을 차려 사업의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어 소목 일에 손을 떼었다. 그러나 쫄딱 망한 짐승보다 못한 아비 조준구가 내려와 온갖 악행을 저지르지만 병수는 '내가 불구자로 태아넌 것도 운명이며 저런 부친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운명을 어찌 거역하겠느냐.'며 봉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처지가 비슷한 숙이와 영선은 서로 의지하며 동기간처럼 살고 있는데 숙이 남편 영호가 어깃장을 놓는다. 이유는 배우지 못하고 근본도 모르는 숙이에 대한 열등감도 한 몫 했고, 배우지 못한 주제에 중학교까지 나온 영선과 사는 휘가 못마땅했고, 중학중퇴이긴 하지만 배운 자기와 못 배운 휘 사이에 자괴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복의 방문으로 영선이 관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영호는 태도가 돌변한다. 광주학생운동 때 농업학교 주모자로 영호가 퇴학당한 것이 송관수와 정석의 영향 때문이었기 때문에 관수에 대한 친애의 정이 영선에게 옮겨갔고, 그의 배우자 휘에게 까지 친분이 전해진 것이다.

숙이 누나, 영호 매형, 한복이 사돈, 지감스님, , 해도사가 몽치에게 장가들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안 하겠다는 걸 봐서는 뭉치와 사천집 모화와의 관계가 심상찮아 보인다.

최참판네 주치의 박효영의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서희는 길상 앞에서 까지 눈물을 보인다. 아마도 박의원의 자살이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양을례는 일본인 정부와 함께 운영하는 사가미라는 요정에 있으면서 성환할매 몰래 남희를 전학시켜 데려가 버린다. 이에 석이네와 성환이 요정에 찾아갔으나 불량배에게 몰매 맞고 쫓겨왔다.

서희는 시우 어머니를 찾아 갔는데 양현의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태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출가시킬 수 없다고 한다. 윤국이와 맺어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를 길상에게 얘기하지 길상은 아이를 놓아주라고 한다. 길상 자신이 억매이고 있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느낌이 든다.

길상은 도솔암에 들어가 스승과의 약속인 관음탱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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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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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삶을 산다고 하여 어찌 천륜을 거슬릴 수 있겠는가? 관수는 영광이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 하며 길상에게 영광을 부탁하고 이에 길상은 일본에서 영광을 찾아서 도와주라고 환국에게 당부한다. 환국은 수소문 끝에 영광을 찾았으나 영광은 일본놈들과 시비 끝에 죽도록 얻어 맞고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된다. 중학교 시절 좋아 했던 혜숙 또한 일본까지 영광을 찾아와 동거를 하다 이런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영광은 신분에 대한 절망,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제 멋대로 살 것을 희망하며 악사의 길을 택한다. 영광은 공연 차 간도에 와서 홍이를 만나 극장표를 주면서 아버지와 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부자는 만나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만 확인한 채 각자의 서운함을 가지고 다른 길로 떠난다.

아웃사이더일수록 고독함을 즐기고 고독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듯이 길상, 석이, 홍이, 정호, 두매, 관수, 인실 등은 독립운동에서 찾고자 하였고 영광은 음악에서 찾고자 하였다.

관수의 제안으로 길상 일행은 김두만네 집에서 삼천원과 이도형의 집에서 오천원의 군자금을 강탈해 갔다. 삼천원이면 면서기 십년 월급이라 하니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3억 정도는 될 것 같다. 김두만의 아버지 이평이 죽고 장례식에서 두만이 관수를 의심하며 억지소리를 하자 영팔노인, 어머니, 종학, 연학, 동생 영만까지 나서서 ' 성은 자기 한대만 살고 말 생각이오?' 라며 압박한다. 돈을 빼앗기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자기 대에서야 어떤 짓을 하던 떵떵거리며 살수 있다. 하지만 자식 대에 가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나라를 팔아 먹은 이완용이나 송병준이 매국을 하며 호위호식하며 잘 살았지만 그 자식이나 손자 대에 와서는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행여 큰 인물이 되고 싶어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인실은 오가타 지로와 사이에서 생긴 아들을 혼자서 출산하고 찬하에게 위탁한다. 이에 찬하는 아내 노리코에게 오가타와 인실의 아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입양한다 

한복의 아들 영호와 영산댁 시영 딸 숙이와 맺어주기 위해 천일어매와 아무네가 중매자로 나서 성사시킨다. 하지만 영호는 숙이와 윤국과 소문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며 숙이를 괴롭힌다.

주막을 정리하고 절에 들어간 영산댁이 숙이 동생 몽치를 데리고 한복이 집에 나타난다 

해도사는 소지감에게 몽치와 함께 산채를 넘겨주고, 휘는 통영의 조병수에게 소목일을 배운다.

조용하는 폐암선고를 받고 비관한 나머지 손목을 그어 자살하고, 명희는 조찬하의 도움으로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아 유치원을 운영한다.

기화와 이상현 사이에서 낳은 딸 양현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는데 길상은 양현을 데리고 시우 어머니를 만나 양현을 소개시킨다. 이상현의 딸이라 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보고 시우 어머니는 이상현의 딸임을 짐작한다.

홍이는 간도로 건너가 천일과 함께 자동차 서비스 공장을 운영하는데 김두수가 나타나 동업을 요청한다. 하지만 동업은 거부하고 수량에 따라 와리 주는 것에 동의 한다.

홍이의 이복 누나 임이는 홍이에게 상당한 돈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떨어지자 홍이 집에 무작정 밀고 들어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두매는 옥이와 결혼하여 연우와 난우 두 딸을 두었는데 쫓기는 몸으로 독립운동에 전념한다.

15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대목은 간도협약과 난징 대 학살이다. 먼저 간도협약이다.

조선 말에도 조선은 간도를 포기 하지 않았는데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해에 청일간 간도협약을 맺음으로 간도가 중국에 넘어갔다. 간도를 중국에게 넘겨 주고 일본은 일본 영사관과 분관을 설치하는 일과 길장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하여 회령의 조선철도와 연결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영사관설치는 조선 독립군 색출과  탄압하는데 쓰일 본거지였고, 철도는 병력과 군수품을 이동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전의 간도는 병자호란 때 청 태종과 인조 사이에 간도를 간광(비워놓는)하는 불평등 조약을 맺어 간광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청의 힘이 약해질 때 조선 백성들이 거주 하며 우리의 땅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소수의 청국민들은 청의 세를 믿고 조석 백성들이 핍박을 받자 러일정쟁 때 이범윤이 러시아에 가담하여 간도를 되 찾고자 노력하였는데 러시아가 패전하는 바람에 허사로 끝나고, 간도협약 이후 중국과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협약내용은 첫째 한. 청 양국의 국경은 토문강으로 경계를 이루되 일본 정부는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하는 동시에 청나라 도문강 이북의 간지를 한국민의 잡거 구역으로 인정한다. 둘째 잡거구역 내에 거주하는 한국민은 청나라의 법률에 복종하고 생명, 재산의 보호와 납세, 기타 일체의 행정상의 처우는 청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셋째 청나라는 간도 내에 외국인의 거주 또는 무역지 4개처를 개방하며, 넷째 장래 지린, 장춘 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하여 한국의 회령 철도와 연결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이 중국과 맺은 협약이 왜 지금까지 유효하며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힘이 약해서 그러는 것인가? 언제쯤 힘을 얻어 그건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다음은 남경대학살이다. 남경대학살은 노구교 사건(중국군과 일본군이 대치하던 중 일본군은 중국군이 사격하여 다는 구실로 주력부대를 출동시켜 노구교를 점령하였으나 협정을 맺어 사건이 일 단락 되었으나 이후 관동군 및 본토 3개 사단이 증파된다.) 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국민정부가 남경을 떠나고 일본이 점령하면서 2개월 동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잔혹행위가 자행된다. 이 때 살해된 사람이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동물들도 동족은 잡아 먹지 않는다는데 인간이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실리를 취해야 할지 리더들이 심사숙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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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김호경 지음, 전철홍.김한민 각본 / 21세기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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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열강 틈에 있어 수 많은 외침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방어에 실패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방어에 성공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른 것이다. 외침을 받은 횟수가 1,000번이니 2,000번이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우 많은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훌륭한 장군들이 많았지만 근자에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을 꼽아 보면 당연 이순신 장군이다. 때문에 TV, 소설, 영화 등에서 셀 수 없을 만큼 회자되고 있다.

명량 개봉하던 날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초등학생 딸은 지루했다고 하고 중학생 딸은 전반부에 지루했지만 후반부에 재미 있다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생각과 같았다. 사실 명량대첩을 2시간 안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루한 부분이 없었어야 하는데 지루한 면이 존재한 것은 이순신의 내면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지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감지하였다. 책에서는 이순신의 내면에 대한 부분을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는데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짧은 시간에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영화와 책을 을 읽고 나니 그의 연기력이 뛰어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량은 해남 우수영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둘목이라는 곳이다. 섬과 섬 사이 간격 때문에 바다의 물살이 매우 센 곳이라 이순신은 이곳을 결사항쟁의 장소로 선정하였다. 12척으 배로 330척의 배를 막기 위해서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는데 이곳이 적절했던 것이다. 소싯적 태권도 배울 때 관장님이 하신 말씀이 여러 사람과 싸울 땐 벽에 등을 대고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처럼 삼백 척 보다 훨씬 많다 하더라도 울둘목이라는 통로를 통과하기 이해서는 많은 배가 한꺼번에 빠져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그것을 전술로 사용한 것이다.

12척의 배로 일본 배 31척을 격침시키고, 90척을 파손시켜, 8천여 명의 사상자의 내던 반면 우리는 4명의 사망자와 73명의 부상자만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큰 승전이었는지 가름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여전히 남아있는 배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계속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330척 중 해군 전투함은 백 여 척이었고 나머지 배는 보급품이나 병력을 수송하던 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십여 척에 불가한 조선수군에 대패한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첫째 선봉이던 구루지마의 함대가 파괴당하고 마다시의 목을 걸리자 일본군의 사기는 꺾이고 반대로 조선 수군은 사기는 올라갔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의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는 조선의 판옥선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강도가 약했다.

셋째 일본 배는 삼나무로 조선 배는 소나무(12 cm)로 축조되어 조총이 판옥선을 뚫지 못했다.

넷째 일본 배는 쇠못을 쓴 대신 판옥선은 참나무 못을 사용하여 부식이나 단단함에 차이가 있었다.

다섯 일본은 조총(30~50m)과 칼을 썼지만 조선은 천자총통(2km)과 지자총통(1km)을 사용하여 무기에 차이가 있었다.

여섯 일본 배는 배의 바닥이 V자 모양으로 빠르긴 했지만 안정성이 떨어졌던 반면 조선 배는 평평한 평저형으로 대포를 쏘기에 적합하였다.

일곱 명량이 조선 바다였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자료를 찾아 보니 대략 이 정도가 조선수군이 우위에 있었던 점이다.

이순신이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랑 받는 이유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뛰어난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쳐들어 오자 맨 먼저 경상좌수사 박홍과 경상 병마사 김수가 도망을 쳤고, 이어 배설과 원균 심지어는 임금이었던 선조까지 도망을 갔다.

선조에게 배운 역사를 써 먹기라도 하듯 6.25때 이승만은 도망가면서 북한군이 못 따라오게 하려고 피난 길에 오르지도 못한 국민은 나 몰라라 하고 한강 다리 까지 폭파하고 도망쳤다.

이러한 리더들 밑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배웠겠는가? 2014 04 16일 명량 근처인 진도앞바다에 꽃을 피우지도 못한 어린 학생 300여명을 수장시키고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 나온 선장과 승무원들이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목숨이 귀한 줄 알면 남의 목숨도 귀한 줄 알아야 하건만 .......

이와 같은 부적절한 리더들이 지금까지 활개를 치고 있기에 우리는 이순신을 숭배하고 그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무능한 왕을 꼽으라고 하면 순서대로 인조와 선조, 고종을 꼽는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선조는 임진왜란을 고종은 조선을 아예 없앤 왕이다. 이 왕의 공통점이 무능한 리더라는 점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훌륭한 정책을 펼쳤을지라도 나라를 짓밟힌 책임은 결국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라이벌 관계로 묘사되어 서로 으르렁 거리는 사람이 원균인데 원균이 묘사된 것처럼 무능한 지휘관이었을까? 어쩌면 이순신과 소속당이 달라 둘이 서로 시기 하지 않았을까? 만약 원균이 묘사된 것처럼 무능한 지휘관이었다면 그를 그 자리에 앉힌 선조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칠천량해전에서 한산도에게 진을 치고 있던 원균에게 출전명령을 내려 수군을 몰살시킨 장본인 역시 선조다. 그렇게 명령한 세부적인 이유는 자세히 모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전문성이 떨어진 리더가 top-down식 명령은 내리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선조는 자신의 아들인 미래권력 광해군의 뛰어난 외교력를 견제했고, 이순신의 리더십에 까지 견제했다. 내가 선조를 무능한 왕으로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성들은 그다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일견의 정책들 때문이다.

단순하게 이순신 신드롬이 아닌 이순신 같은 리드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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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 -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호기심
존 헨드릭스 지음, 이지연 옮김 / 레디셋고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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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TV가 없기 때문에 디스커버리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몇 번 본적은 있다. 일반 프로그램에 비해 진지한 탓인지 상당한 공력이 들어간 프로그램이라고 느껴졌다. 책 제목만 봤을 땐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일이나 이슈가 될만한 사건들로 내용이 구성될 것으로 예측 했는데 완전히 빗나간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을 만든 헨드릭스 회장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일생을 책으로 엮은 자서전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시골에서 땅을 파고 나무를 깎는 목수 아버지 밑에서 자라 도심에서 경쟁하던 친구들에 비해 정신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생활했기에 자연과 친근감을 느꼈고, 천재지변을 경험하면서 왜라는 호기심이 디스커버리의 출발점이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때 양복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비즈니스와 동업자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기업가의 자질을 키워 나갔다. 델 컴퓨터를 창업한 마이클 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업한 빌 게이츠,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 등 도 그랬듯이 기업가 기질은 타고나는 모양이다. 여러 사람이 같은 물건을 보고 있지만 생각하는 바가 다르듯 헨드릭스는 단순한 호기심을 사업영역으로 삼았다. 보통사람들은 다큐멘터리가 없더라도 대체 프로그림을 보면서 만족하는 반면 저자는 '왜 다큐 채널이 없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관심을 갖는 바람에 세계 최대의 논픽션 텔레비전 공급자가 되어 4,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고, 23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글로벌 회사가 탄생된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 졸업 후 컨설팅 사업을 하다 아내 모린 도너휴를 만났고, 아내의 지원아래 본격적으로 과학과 역사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회사를 설립하였다. 하지만 투자자의 투자 거절로 부도 위기를 맞았으나 여러 인맥을 동원하여 출자자를 찾는데 성공하고 해외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 현재는 디스커버리채널, 애니멀 플래닛, 오프라 원프리 네트워크 등을 소유하고 있고, 공격적으로 해외 마케팅을 통해 210개국으로 방송을 내 보내고 있다.

문명이 발전하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트형제의 호기심으로 비행기가 만들어 졌고, 에디슨의 호기심으로 전구가 만들어 졌고, 이외에도 새로운 것의 탄생에는 예외 없이 호기심이 등장한다. 호기심은 문명의 발전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또한 발전시킨다. 매슬로우 박사에 따르면 인간 최상의 욕구는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자아실현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 즉 호기심인 것이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고 현재를 보면 질문을 많이 했던 친구들이 대체적으로 정체성을 확립이 빠른 것 같았다. 헨드릭스 역시 기업가로서도 뛰어난 경영을 보여 줬지만, 사회적 책임기업으로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감동스럽다.

글로벌 경영자 대부분이 훌륭하지만 핸드릭스가 가진 장점은 소외한 국가 어린이들에게 까지 GET 프로젝트 세계통신위성 인프라를 활용하여 교육사업(역사, 과학, 의학, 기술, 언어 등 학습 콘텐츠)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가에 114만개 학교가 있는데 향후 100 만개 학교에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돈 벌이에만 열을 올리는 기업이 많은데 소외계층에게도 관심을 갖는 기업가가 많아 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자서전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거나 지식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헨리포드가 제시한 기업가들의 7가지 내적 특징을 소개하려 한다.

첫째 원동력이 되는 강렬한 호기심을 가져라. 모든 기업의 탄생이 여기서 비롯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둘째 공상에 정말로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을 가져라. 경쟁을 하는 것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면 허를 찌르는 공상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셋째 불타는 열정을 창조적 집착의 시기로 이끌 것. 초심을 잃지 않고 열정을 가져라.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생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넷째 성공을 그려보는 능력을 길러라. 자신감과 낙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어 긍정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다섯 논리에 굴하지 않는 낙관주의와 자신감을 가져라. 비관주의자는 위대한 기업가가 될 수 없다. 과거의 논리는 새로운 비전을 통해 새롭게 바꾸면 되는 것이다.

여섯 자기의존,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겠다는 열망을 가져라. 나 만이 내 꿈을 이룰 수 있다. 내 꿈을 절대 남이 이루어주지 않는다.

일곱 목적을 가져라. 모든 일에 기본이 되는 것으로 기업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실패를 하기 위한 목적을 세우는 것과 같다.

이 일곱 가지 교훈이 1권의 책보다 독자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아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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