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김호경 지음, 전철홍.김한민 각본 / 21세기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는 열강 틈에 있어 수 많은 외침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방어에 실패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방어에 성공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른 것이다. 외침을 받은 횟수가 1,000번이니 2,000번이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우 많은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훌륭한 장군들이 많았지만 근자에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을 꼽아 보면 당연 이순신 장군이다. 때문에 TV, 소설, 영화 등에서 셀 수 없을 만큼 회자되고 있다.

명량 개봉하던 날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초등학생 딸은 지루했다고 하고 중학생 딸은 전반부에 지루했지만 후반부에 재미 있다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생각과 같았다. 사실 명량대첩을 2시간 안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루한 부분이 없었어야 하는데 지루한 면이 존재한 것은 이순신의 내면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지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감지하였다. 책에서는 이순신의 내면에 대한 부분을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는데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짧은 시간에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영화와 책을 을 읽고 나니 그의 연기력이 뛰어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량은 해남 우수영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둘목이라는 곳이다. 섬과 섬 사이 간격 때문에 바다의 물살이 매우 센 곳이라 이순신은 이곳을 결사항쟁의 장소로 선정하였다. 12척으 배로 330척의 배를 막기 위해서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는데 이곳이 적절했던 것이다. 소싯적 태권도 배울 때 관장님이 하신 말씀이 여러 사람과 싸울 땐 벽에 등을 대고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처럼 삼백 척 보다 훨씬 많다 하더라도 울둘목이라는 통로를 통과하기 이해서는 많은 배가 한꺼번에 빠져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그것을 전술로 사용한 것이다.

12척의 배로 일본 배 31척을 격침시키고, 90척을 파손시켜, 8천여 명의 사상자의 내던 반면 우리는 4명의 사망자와 73명의 부상자만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큰 승전이었는지 가름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여전히 남아있는 배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계속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330척 중 해군 전투함은 백 여 척이었고 나머지 배는 보급품이나 병력을 수송하던 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십여 척에 불가한 조선수군에 대패한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첫째 선봉이던 구루지마의 함대가 파괴당하고 마다시의 목을 걸리자 일본군의 사기는 꺾이고 반대로 조선 수군은 사기는 올라갔기 때문이다.

둘째 일본의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는 조선의 판옥선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강도가 약했다.

셋째 일본 배는 삼나무로 조선 배는 소나무(12 cm)로 축조되어 조총이 판옥선을 뚫지 못했다.

넷째 일본 배는 쇠못을 쓴 대신 판옥선은 참나무 못을 사용하여 부식이나 단단함에 차이가 있었다.

다섯 일본은 조총(30~50m)과 칼을 썼지만 조선은 천자총통(2km)과 지자총통(1km)을 사용하여 무기에 차이가 있었다.

여섯 일본 배는 배의 바닥이 V자 모양으로 빠르긴 했지만 안정성이 떨어졌던 반면 조선 배는 평평한 평저형으로 대포를 쏘기에 적합하였다.

일곱 명량이 조선 바다였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자료를 찾아 보니 대략 이 정도가 조선수군이 우위에 있었던 점이다.

이순신이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랑 받는 이유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뛰어난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쳐들어 오자 맨 먼저 경상좌수사 박홍과 경상 병마사 김수가 도망을 쳤고, 이어 배설과 원균 심지어는 임금이었던 선조까지 도망을 갔다.

선조에게 배운 역사를 써 먹기라도 하듯 6.25때 이승만은 도망가면서 북한군이 못 따라오게 하려고 피난 길에 오르지도 못한 국민은 나 몰라라 하고 한강 다리 까지 폭파하고 도망쳤다.

이러한 리더들 밑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배웠겠는가? 2014 04 16일 명량 근처인 진도앞바다에 꽃을 피우지도 못한 어린 학생 300여명을 수장시키고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 나온 선장과 승무원들이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목숨이 귀한 줄 알면 남의 목숨도 귀한 줄 알아야 하건만 .......

이와 같은 부적절한 리더들이 지금까지 활개를 치고 있기에 우리는 이순신을 숭배하고 그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무능한 왕을 꼽으라고 하면 순서대로 인조와 선조, 고종을 꼽는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선조는 임진왜란을 고종은 조선을 아예 없앤 왕이다. 이 왕의 공통점이 무능한 리더라는 점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훌륭한 정책을 펼쳤을지라도 나라를 짓밟힌 책임은 결국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라이벌 관계로 묘사되어 서로 으르렁 거리는 사람이 원균인데 원균이 묘사된 것처럼 무능한 지휘관이었을까? 어쩌면 이순신과 소속당이 달라 둘이 서로 시기 하지 않았을까? 만약 원균이 묘사된 것처럼 무능한 지휘관이었다면 그를 그 자리에 앉힌 선조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칠천량해전에서 한산도에게 진을 치고 있던 원균에게 출전명령을 내려 수군을 몰살시킨 장본인 역시 선조다. 그렇게 명령한 세부적인 이유는 자세히 모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전문성이 떨어진 리더가 top-down식 명령은 내리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선조는 자신의 아들인 미래권력 광해군의 뛰어난 외교력를 견제했고, 이순신의 리더십에 까지 견제했다. 내가 선조를 무능한 왕으로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성들은 그다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일견의 정책들 때문이다.

단순하게 이순신 신드롬이 아닌 이순신 같은 리드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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