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왕모의 강림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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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9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노벨상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까불고 다녔는데. 미처 그 상을 이 작가가 탈 줄 몰랐기 때문이지, 그래서 세 권이나 모아두고 나머지도 마저 모으려다가 그만 노벨의 하수인 놈들이 이 작가에게 상을 줘버려서 난 이 년 쯤 기다리면 차마 읽으려다 못 읽고 새 책이나 다름 없는 중고로 팔려버린 작가의 책을 마저 모을 수 있을 거란 말이지. 그래서 읽기를 최대한 미루려고 했는데, 노승영 번역가의 콜렉션을 모아두려다가 이 책을 빼먹은 걸 알아차렸고, 그 뿐 아니라 ‘말레이제도’랑, ‘향모를 땋으며’도 여기저기 마구 흩어져 꽂혀 대체 좋아하는 번역가의 번역작품을 읽지는 않고 모으기만 하는 게으름은 뭐냐, 하고서 일부러 제일 이름이 많이 들리는 ‘사탄탱고’랑 ‘저항의 멜랑콜리’는 나중에, ‘서왕모의 강림’을 먼저 읽기로 했다.

해제랑 해설 같은 건 안 보지롱, 하고 까불던 평소와 달리 661쪽에 덧붙은 옮긴이의 말을 먼저 경건하게 읽었다. 먼저 읽으신 선생님이 작가 선생님께 이메일로 이거저거 여쭙고 본인이 읽으신 바대로 너가 못 알아 들을까 봐 간단하게 써 봤어, 친절을 베풀어주신 덕에 읽을 용기가 났다. 읽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만연체가 의식의 흐름체 같은 것도 아니고, 번역가 선생님이 그렇게 많이 쉼표를 지우셨다는데도 이 정도면 적절하게 쉴 자리도 만들어 주셨다. 챕터의 숫자가 1씩 늘지 않는 것도, 각 챕터의 숫자가 피보나치 수열이란 얘기를 해 주셨는데, 에이 그럼 챕터 1이 두 개여야지, 이건 뭔가 수학 잘 모르는 문돌이 작가가 적당히 가져다 썼구만……하면 노벨상 메달로 머리통 한 대 쥐어 박힐 것도 같고….
그래도 베네치아 뒷골목이나 미술관이나, 아테네 어느 거리나 아크로폴리스나, 페르시아 왕궁이나, 젠겐지의 불상 앞이나, 백로가 고기 잡는 가모가와나 (아직 여기까지만 읽음) 온갖 곳을 데려가 썰을 풀어주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200페이지를 후딱 넘겼다. 계속 봐야지. 그러고서 또 400여페이지를 종일 넘겨 이제 끝이 보이는 구나...

시흥 갯골에, 도림천 가에, 보라매공원 연못 위에 새들이 머무르는 걸 종종 본 적이 있다. ‘가모가와의 사냥꾼’을 읽으며 작가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거기 있는 백로에 대해 내내 말하는데, 적어도 내가 사는 도시 속 새는 제법 주목 받는다. 산책자들은 저 하얀 새, 뭐지? 한다. 어려서 백과사전을 열심히 읽은 덕인가 무심결에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청둥오리, 가마우지,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적당히 이름을 가져다 붙여 댄다. 곁의 사람 중에 나보다 새이름 잘 아는 이는 없어서 그냥 내가 부르면 그 이름의 새가 된다.

가을 연휴에 미리 계획하지 않던 송도 여행을 갑자기 갔을 때, 마지막 날 비가 내렸고, 그 빗속에서도 공원 정자에서 맥스봉 떡밥과 옷핀으로 만든 바늘을 꺾은 나뭇가지에 실로 매어 낚시질 하던 초등학교 3, 5학년 두 남자아이를 만났다. 공원 큰 호수로 이어지는 냇물에는 손바닥만한 잉어새끼들이 정말이지 바글거렸고, 아이들은 입질 올리는 재미에 신나서 양동이 한가득 고기를 낚고 있었다. 당장 풀어줘라 하고 싶지만 애들이 너무 천진하게 자기 소개를 하고(얘네 아빠랑 우리 아빠랑 직장동료라서 어려서부터 친해요) 고기가 산소가 부족해 팔딱거린다니까 당장 웅덩이로 달려가서 물을 새걸로 갈아오기까지 해서 그래라, 맘대로 해라, 하고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비까지 맞으며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어로 체험하는 것도 정성이지. 저게 도시 어부지. 어디가서 굶어죽진 않을 애들이다.

그러고나서 몇 걸음 지나지 않은 곳에는 커다란 왜가리 한 마리가 같은 냇물의 상류 쯤에서 땅을 파서 지렁이를 낚아채고 그걸 씻어 먹는 건지, 그걸로 미끼 삼아 물고기를 낚는 건지, 하여간에 부지런히 땅에 주둥이 처박다, 물에 처박다 하는 걸 신기롭게 바라봤다. 같이 있던 아이들도 신이 나서 왜가리다, 하고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걸 그냥 여기서 보자 하고 물 건너에서 한참 같이 봤다. 가만보면 물고기 낚는 건 애나 새나 똑같은데 새는 혼나지 않는다. 인간은 평생 괜한 걸로 많이 혼난다.

와스디와 에스더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성경책을 제대로 안 읽어봐서 ’추방당한 왕후‘를 읽으면서 검색으로 알았다. 왕명에 불복종한 왕후 와스디는 그간 사랑받아왔음에도 추방 당한다. 읽다보니 고디바 부인이랑 생각이 겹치기도 했는데, 초콜릿 상표의 여인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려면 알몸으로 말을 타고 가 봐, 하는 영주의 말대로 정말 해냈고, 와스디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알몸으로 왕후관만 쓰고 뭇 신하들 사이로 걸어 봐, 하는 왕의 말에 끝내 거부하다가 쫓겨나고 에스더에게 왕후를 물려주게 된다. 옛 사람들은 사형보다 추방을 더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결국 둘다 죽음에 이르는데, 사형은 그래도 나의 죽음을 많은 이가 알고 내가 어디서 어느날어떻게 죽는지 알리고 알면서 죽지만, 추방은 내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시신도 못 추리는 불안감에 더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모든 이야기 끝에서 누군가는 죽는다. 이제 막 단편 두 권 읽었는데 벌써 죽으라, 죽음의 무도를 그치면, 하고 낮게 땅에 가깝게 엎어진 형체들이 그려진다. 한때는 아름다웠던 것들이 그렇게 철푸덕. 아이참 더 읽다보니 아름답지 않지만 고생깨나 한 가엾은 여행객도 객사. 내심 젠겐지 불상 보전(복원)할 때도 누구 하나 불상에 깔려 죽거나 불상 머리가 잘리거나 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거기에선 다들 불심으로 대동단결만하고 안 죽는다. 휴.

일본의 연극 노, 불상 보전 의식, 신궁 새로 짓는 나무 자르는 의식 등 일본의 이야기가 집요하고 잔잔하게 이어지는데, 이거 일본 아저씨 아니고 헝가리 아저씨가 쓴 거라고? 왜 우리 조선엔 관심 일도 없고 중간에 뭔 사기꾼 같은 20만엔짜리 물 팔아먹는 조선인 한의사만 나오냐… 한 가지 집요하게 파고들기로는 작가 아저씨 만큼이나 일본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많긴 한가 보다. 그래서 예술도 학문도 이런저런 성취를 이루고 상도 타고 서양애들마저 박수 짝짝 해주는 거겠지. 나는 한우물만 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었는데, 한가지만 완벽을 향해 반복반복반복하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안 산다, 못 산다, 난 얕고 넓게 호기심이 너무 많다, 뭐 그렇다. 그러니까 이 책도 만난 거겠죠.

마침표의 끝에는 대부분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서,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문장들 속에서도 얼른 마침표의 순간이 오길 바라는 건 쉽지 않았고, 삶이든 이야기든 사실 그렇게 길게 쉼없이, 아니면 잠시만 쉬고 또 이어지는 게 삶이고 이야기여서, 걱정했던 것보다 라슬로 선생님의 소설집은 계속 읽게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글자들을 꾸역꾸역 따라갈 필요는 없었고, 오히려 등떠밀리듯 쓸려나가며 강제로 읽고 있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도 있는 것… 그래서 아직 다른 작품들은 안 읽어봤지만 노벨상 수상작가 읽어 보겠어! 하는 각오를 다지시는 분들에게 ‘서왕모의 강림’이 시작하는 책이 되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내가 번역자의 문장을 편애하는 입장이라 공정하지는 못한 추천이고, 노벨상은 다 재미없다고 까불던 것도 사실 취소해야 할 것 같다. ‘백년의 고독’이랑 ‘파리대왕’이나 ‘양철북’ 같은 건 소설이랑 영화랑 같이 보면 무척 재미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선생의 영화화된 작품들도 같이 보면 재미있으려나...그치만 ‘사탄탱고’는 사탄도 탱고도 그닥 당기지 않아 한참 미뤄두려구요...

+밑줄 긋기
-(…), 그의- 머리가, 등이, 팔이, 다리가, 온몸이 달아오른 것은 대수롭지 않아서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으나, 그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 것은-그 중대한 의미를 그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는데-햇빛이 석회암에 닿았을 때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가였으니, 그가 이 강렬하고 섬뜩한 광채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은, 왜, 어떤 안내 책자가, 어떤 종류의 미술사 논문이, 주의하십시오, 아크로폴리스는 햇빛이 무척 강해서 눈이 남달리 예민한 여행객은 반드시 사전에 대비해야 합니다, 같은 정보를 알려준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눈이 남달리 예민한 여행객 범주에 속하는 그는 어떤 종류의 사전 대비책도 취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제 어떤 예방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되었거니와, 어떻게 해야 하나-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여행 가방 하나가 전부였는데, (…)-이것만 봐도 그가 피로, 열기, 눈부심 때문에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는지가 이미 명백했던바, 여행 가방이 자신의 수중에 있지 않고 저 아래 시내에 마니오풀로스라는 청년에게 맡겨놓았음을 떠올린 것은, 어행 가방을 열어 옷가지 하나를 꺼내려고 신전 벽으로 물러났을 때였으니, 이 순간 태양은 그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고, 더위를 식힐 모퉁이도 틈새도 지붕도 구석도 어디에서고 찾을 수 없어, 바로 여기에도 없고 더 가도 없었던바, 빛은 방해받지 않고 화살처럼 곧장 수직으로 그에게 내리꽂혀, 아크로폴리스를 통틀어 그늘은 하나도 없었으나, 이 시점에 그는 그것을 알지도 못했기에, (199-200, ‘아크로폴리스’ 중. 아테네에 미리 가본 것 같은 작가님은 선바이저와 선글라스와 미네랄워터를 -가능하면 인공눈물도 꼭-준비하라고 이 대목에서 예민한 여행객을 불태워죽이면서 알려주는데, 택시 기사의 바가지와 내리쬐는 아폴론의 (무)자비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저긴 안 갈 것 같고, 라슬로 선생의 글에 밑줄을 치려면 결국 어느 마침표가 아닌 쉼표에서 잘려나갈 각오를 해야 하는 걸 함께 알았다. 친절한 동시에 불친절한 선생님)

-그런데, 울 수밖에 없다고 그가 생각한 것은,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서도 전혀 이곳에 있지 않았기 떄문이요, 그가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이 꿈꾼 것을 이루었으면서도 전혀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204, 아크로폴리스에 갔지만 간 게 아니었다. 엉엉엉엉 그냥 높은 언덕이 아니라 황량한 높은 언덕이라고 꼭 좀 알려주자. 그리고 마저 읽고나면 아휴 진짜 자비 없기론 아테네 여름 햇볕 뺨치는 라슬로 선생)

-(…), 이미 나는 올라가고 있어서, 마을과 도시, 땅과 바다, 골짜기와 봉우리의 근심스러운 혼돈과, 나를 그토록 감싼 찰나가 끝나는 것을 여전히 보고 있으며, 내가 올라가면서 모든 것이 나와 함께 올라가니, 장엄함이 저곳에서 올라가 천상의 순수로, 가늠할 수 없는 영역으로 돌아가며, 그 자체의 형상으로 눈부시고 앞으로 흐르고 부풀어 오르는 저 장엄함은, 무가 있는 그 장소로, 찬란한 빛의 제국으로, 천상의 한없는 들판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즉, 저곳은 내가, 나로서가 아닐지언정 존재하는 장소인바, 이곳에서 나는 왕관을 머리에 쓰며, 스스로 생각하길, 서왕모가 저 아래에 갔었다. (309, ‘이노우에 가즈유키 명인의 삶과 일’ 중)

-(…), 그건 제가 오늘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내일은 없으니까요, 제게 미래는 없으니까요, 그것은 모든 날이 마지막 날이요, 모든 날이 온전하고 충만하며, 제가 어느 날에든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그가 방 끝에서 맞은편에 앉은 손님을 바라보며-그 의미는 하나의 전체가 끝나고, 머나먼 곳에서 또 다른 전체가 시작되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한결같은 미소를 띠며 말하길,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죽음은 언제나 제 곁에 있고, 저는 죽어도 잃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제겐 현재만이 모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이 시간, 이 순간-제가 죽어가는 이 순간 말입니다. (322, 뭔가 이 부분은 마침표 쓸 부분에 어거지로 쉼표를 넣은 기분이다. 이노우에 선생은 문장 끝마다 왠지 쉼표를 세 개씩은 넣어서 마침표나 비슷한 여백이 있을 것 같거든.)

-(…), 여러분이 제게서 날짜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으로, 대체로 저는 날짜를 믿지 않습니다, 만물은 서로에게 흘러들고 서로에게서 흘러나오며 모든 것이 마치 촉수처럼 뻗어 나가기에, 어떤 분명한 시대라든가 그런 터무니없는 것은 결코 없으니, 그러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은 생각만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지 생각해보세요, 뻔하잖습니까, 날짜나 시대 구분을 들여다보는 것은 소용이 없으므로, (…) (504, ’사적인 열정‘ 중. 시간을 구획화한 건 인간의 커다란 발명품인데 뭐 안 믿을 수도 있는 거지 실재가 아니라 숫자이고 이름 뿐인 것들도 있겠지 숫자와 이름 덕에 있는 것처럼 된 것도 있겠지. 그래도 이놈의 바로크 광신자의 분노는 못 봐주겠다.)

-(…)오귀스틴과 발랑틴-그 생각이 뇌에서 고동쳐, 그는 이미 그들이 보이는데, 두 사람이 죽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 위에 길게 늘어진 채, 그의 캔버스 위 띠들처럼, 우주적 전체 속 존재의 시작과 끝처럼 두 몸뚱이는 눈이 움푹해지고 코가 뾰족해진 채 해골로 말라비틀어져, 물이 땅 위에 있고 드넓은 하늘이 물 위에 있듯 서로의 위로 누운 채 뻗어, 죽음의 푸르름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537, ’푸르름 속 메마른 띠 하나뿐‘ 중. 풍경화가가 떠올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풍경)

-(…), 이것에는 신성함이 전혀 없다느니 과거의 신성함을 짓밟는 짓이 단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느니 한 것은, 모든 것이 너무도 가식적이었고 무엇 하나 믿을 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동작 하나에서조차, 다이구지의, 또는 그의 뒤에서 무릎 꿇는 신관들의 몸짓 하나에서조차, 모든 것이 잘 될 것인지 반신반의하는 긴장된 조마조마함 말고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실수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니, 순전한 안간힘, 이것이 모든 동작과 제의적 몸짓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었고 의식 자체는 어디에도 없어서, 구경꾼들을, 내빈들을, 틀림없이 두둑한 후원 약정과 함께 왔을 저 후원자들을 특징지은 이 분위기 또한 긴장된 조마조마함이었던바, 따라서 동작과 몸짓들은 믿음과 헌신이 아니라 두려움의 동작과 몸짓이었으니, 이 두려움은 이곳에서 무엇 하나 참되지 않음을, 참되지 않고 진실하지 않고 개방적이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음을 드러내는 두려움으로, 여기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신도의 본질 바로 그것이었으며, (579, ‘이세신궁 식년천궁’ 중. 의식의 허위, 허상에 대한 건 ‘불상의 보전’에서 내부자 관점으로 그린다면 이 소설에서는 의식 참관 온 외부자의 눈으로 드러나는데, 그렇게 벌거벗은 임금님 행차를 외부에 공개하면 분명 놀리고 쑥덕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그렇게나 비공개로, 암암리에, 의식을 진행하려는 건 그리 자주 하지 않는-무려 20년 만에- 의식의 수행자들은 아무래도 떨릴 수 밖에 없고, 반대로 노의 가면을 만들거나 노에서 연기를 하는 장인들은 그보다는 훨씬 높은 빈도로 반복, 반복, 또 반복하며 집요하게 완벽을 향해가기 때문에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걸 그림, 가면, 연극, 조각상, 불상이나 궁의 보전 또는 신축 같은 예술의 온갖 분야와 온갖 나라를 넘나들며 라슬로 선생님이 보여주신다. 마침표는 아끼면서…이 소설도 이 의심의 순간이 지나면 오래된 예술이 드러나는 독특한 나무 자르기 의식을 그려준다.)

-(…), 아키오 상, 당신은 교토를 정말로 사랑하는군, 그렇지, 그러자 한순간에 가와모토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짙은 어둠 속으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고작 이만큼, 돌아와, 쉰 목소리로 간신히 이렇게만 말하길, 아니, 조금도, 난 이 도시가 혐오스러워. (616)

-(…), 그 공포는 어떤 싸구려 두려움의 한낱 잔재가 아니어서, 그곳에는 어떤 영토가, 죽음의 영토가 있는데, 사방에서 짓누르는 흙의 무지막지한 무게는, 그들을 매장했듯 시간이 지나면 우리 또한 집어삼키고, 가두고, 묻고, 우리의 기억마저도, 영원의 모든 시간 너머로 소멸케 할 것이다. (659, ‘땅밑에서 들려오는 비명’중. 그러니까 난 액화장 시켜서 하수구에 흘려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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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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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7 박현욱.

이 소설이 원작인 영화를 극장 개봉 당시에 보았다. 이후에도 두어번 더 보았다. 극장에서 갑자기 남자 하나가 식식 대며 이것도 영화라고! 소리지르고는 동의를 구하듯 극장 안을 잠시 둘러보다 뛰쳐나갔고, 그의 연인인듯한 여자가 뒤따라 나갔다. 혼자 엄청 진지하니까 꽤 우스운 광경이었는데, 그 때 그 분은 뭐가 그리 화가 났을까. 그렇게까지 과몰입할 건 없잖아. 영화이고 소설인걸.

주인아 씨는 픽션 속 인물에서 본 많은 여성들 중에도 잘난 사람으로 분류할 만하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둘을 갖겠어!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물론 가부장제에 직접 맞서지도 않고, 시집 살이와 가사 노동을 이중으로 하면서도 그것도 자기가 선택한 것의 대가려니, 팔자려니, 소처럼 일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다만, 그래도 고집탱이 또는 소신을 밀고 가려고 십자가 지고 고행을 하면서도 난 행복해, 하는 것도 같고.

그래서 빼액 불만이다. 둘씩이나 주렁주렁 거기에 딸린 친족까지 인간 관계가 곁가지로 얼마나 뻗어가는지, 아이까지 생기면 더 복잡해지지. 인아 씨가 결혼 제도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더 난 년이었겠다 싶다. 개샹마웨 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않고 부모나 시부모들에겐 감추고 극진하고, 첫 남편 덕훈에게만 다 들어줘, 받아들여줘, 아니면 네가 하자는대로 이혼이든 뭐든 할게, 둘째 남편 재경이는 나랑 살 수 있으면 다 좋대, 하여간에 결혼 두 번 하고 싶어… 결혼을 두 번 하겠다는 건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빈곤한 건지 모르겠다.

작가는 축구를 잘 알지 못한다는데 나야말로 2002년 고3때 보던 월드컵 본선들 말고는 메가커피 광고하던 손흥민이 축구 선수라는 걸 아는 정도라서, 일관되게 서사를 축구 역사와 축구 선수, 감독, 관련 인물들이랑 인아, 덕훈, 재경의 관계랑 연관지으며 이야기 끌어나가는게 완전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뭐,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고서는 손예진을 조금 좋아하게 됐고, 고 김주혁 아저씨도 덕훈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5년 전에 천원주고 산 소설이니까 나쁘지 않아, 했는데 세상에 알라딘 판매자 중고 뒤져보시면 90원에도 구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시간 죽이고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가능성도 넓혀볼 수 있는데 90원이라면 거저 아닙니까. 이 소설이 세계문학상 타던 시절 심사평에는 다들 문제작이다, 하는데 20년 후인 지금 나와도 여전히 문제작이다. 트라이어드에 관해 이만큼 집요하게 썼던 픽션은 이후로 나왔는데 내가 몰랐을지, 선뜻 꼽아볼 수 있는 게 없다. 얘가 너무 집요했고 영화로 많이 알려져서 그런 건지 더 잘 쓰고 재미난 건 없나 궁금해졌다.

그냥,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게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유교 이슬람 수준에 밀도 높고 좁은 한국 땅에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다. 사랑이 두 개든 세 개든 네 개든 그것 때문에 인간 아닌 취급 받고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만… 누구도 아프지 않은 사링이란 독점적 연애든 다자연애든 어려운 일이다.

+밑줄 긋기
-“우리가 사랑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해 국경과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서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30)

-아내야말로 전복자이다. 실재하지 않고 실재할 수도 없는 일을 게임 같은 가상 현실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해 냈다.
전복자와 함께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187)

-그리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해서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인데. (199)

-누구나 조금씩 그러하듯이 내 삶도 어딘가는 찌그러졌다. 아내의 두번째 결혼은 내 삶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랗게 찌그러뜨렸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찌그러진 부분을 다시 동그랗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혹은 찌그러진 부분은 더 크게 찌그러뜨릴지, 그것도 아니면 이곳저곳 마구 눌러 대서 도저히 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체로 만들어 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대와 불안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날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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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 받은 이달의 적립금... 내 돈 주곤 왠지 안 살 벽돌 같은 거 사면 뿌듯한 법인데...

첫번째 후보작은 사드 전집2, 3권 중 하나 ㅋㅋㅋ(1권은 벌써 왜 저기에 꽂혀 있냐)

두번째 후보작은 엄마가 사놨지만 집안 누구도 읽을 엄두 못낸 율리시스... 종이로 된 벽돌이 있지만, 전자책 또 사면 안 무거워서 들고 다니면서 읽을지도?! 이게 다 나보코프가 다이제스트로다가 해치지 않아요- 거 읽어보면 재밌다니까! 하고 영업한 탓이다... 나보코프 문학강의랑 러시아문학강의랑 단편전집도 이렇게 샀으나 셋 중 하나만 읽은 게 함정...팔지도 못하고 저장된 채 잊혀짐...

전자책 두 권으로 당첨. 심지어 전자책 사니 잔돈이 남아 어린이 문제집까지 한 권 더 사고 흐뭇하게 마무리. 다운로드 받아서 한 줄만 읽어봐야지... (그러고나서 한 십년 뒤에 다시 읽을지도...)

+구석탱이에 처박혀 이젠 전자책에게 밀리게 생긴 벽돌 율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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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07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는 그을린 벽돌 느낌입니다. 질감이 느껴져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5-11-07 22:25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구들장 기왓장 그런 느낌으로 그을린 것 같아요 ㅎㅎㅎ소외된 책의 타들어가는 속인가...
 
셀붕이의 도 위픽
이미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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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 이미상.

제목만 보고는 펨붕이 뭐 이런 남초 사이트의 호칭을 떠올렸는데 비슷했다. 인셀의 셀이란다. 선언문 갤러리 라는 가상의 게시판 이용자들끼리 오손도손 선언문 올리고 살았고 중수도 그 중 하나였다. 였는데, 앞뒤 안 재고 세게 질러버린 셀프로 뒤지고 그러고 남들도 죽여, 뭐 그런 말도 개도 새도 안 되는 글때문에 중수는 신상 다 털리고 도망자처럼 활녀 할머니댁으로 숨는다.

제목의 도는 길이기도 하겠지만 칼이기도 하다. 중수는 문구멍으로 자기 글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몸을 칼로 난자하는 어린이를 보고 말았다. 아마도 PTSD인지 질질 짠다. 그래서 그렇게 누구도 해치지 않는 예리한 면도날 동호회에서 위안을 받는 것 같다.

미히는 유학 갔다 예술가병만 얻어 돌아온 중수의 사촌 누나인데, 이전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긁어모아 소설 써서 대박난 작가들을 좇듯(그래서 전쟁같은 맛을 싫어했어) 아픈 할아버지에게 월남 파병 이야기 같은 거 해달라고 조르다가 의절당했다. 지난 주에 월남 다녀온 큰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인생의 가장 큰 공이 파병가서 외화 벌어오고 보훈자가 된 젊었을 삼촌은 술만 먹으면 부모에게 주정을 하는 패륜아가 되어 중년과 노년을 보내고 할머니 떠나보내고 4년차에 별세하셨다. 엄마는 장지인 현충원 납골묘에 다녀오면서 “죽어서야 좋은 데 간 것 같아. 위치도 딱 정가운데 눈높이이고 현충원 경치는 어찌나 좋은지” 현충원을 공원 삼아 걸어 돌아다니던 수험생활 망해본 아이는 잘 알지요. 암.암.

활녀 할머니는 아파 죽어가는 친구를 떨궈버리려고, 쓸데없이 미리 온 죽음의 공포를 떨치려고 시도하지만 약 몇 알 술 몇 잔에 금세 가책을 느끼고 이산상봉의 드라마를 펼친다. 부모를 유기하는 자식이 미워 ‘디아스포라, 장송’ 소나무든 핏줄 아닌 간병인이든 남에게 돈을 쏟아 버리고 죽어버리는 노인 세대 이야기도 비극이긴 마찬가지였다. 신이 나서 알약 러시안룰렛 돌리던 정선생도 겉 보기엔 지극정성 환자를 돌보는듯했지만 어쩜 아무 약이나 먹고 너든 나든 죽어버렸으면, 하고 지쳐버린 간병인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영포티 하고 소개하는 작가와 유사한 세대는 소설에 안 나온다. 좀 더 어리고 희망 없거나, 좀 많이 늙고 역시 희망 없거나. 중년배에게는 그럼 희망이란 게 있을까. 내 얘기든 남 얘기든 쓴다고 다 써지나… 내 엄마도 할머니도 이야기 욕심은 많아서 자꾸 했던 옛날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난 맨날 지랄염병을 떨었는데, 그때 난 소재거리를 다 차냈던 것이냐?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어떤 부분은 그저 묻어두고 잊히고 싶은 것도 인간이다. 이번 소설도 정신 없었는데 재미있었으면 됐다. 이미상 작가의 소설은 아마도 조금 더 읽을 것 같다. 위픽 시리즈 1권 ‘파쇄’ 읽고 내내 하나도 안 보다가 이 책이 100권째라고 그 사이 많은 소설이 나왔구나 감개 무량한데 또 게으른 마음이라 시리즈를 다 파고들고 싶진 않다. 일단 단편 한 편에 한 권이라 가성비가 안 나와… 그래도 이미상 소설가라 내돈내산 했다오…아 그리고 피를 부르는 턱 쳐든 글쓰기보다는 역시 배꼽 냄새나 맡는 소소한 짓이 무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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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곧 돌아가실 텐데. 죽은 후에 자신이 어떻게 쓰이든 알지 못할 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 나는. 구정의 세뱃돈처럼 할아버지에게 비밀을 받아내려 한 적이 있어. 우리 할머니가 왜 입을 열지 않는 거죠?” 미히가 냉장고에 기대앉은 정 선생에게 물었다.
“누나 참 개 같은 년이다.” 중수가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미히가 말했다.(60-61, 인정할 건 인정하는 개 같은 년 미히)

-(…) 정 선생이, 신비롭고 지혜로운 자의 역할을 맡은 그가 손바닥으로 교자상을 탁 쳐서 알약들을 튕겨 올리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알약 러시안룰렛을 합시다.”
그러곤 눈을 감고 상위의 약들을 마구 흩었다. 미히가 미국에서 가져온 알 수 없는 약들을 쏟아부어 총알을 추가했다. 먹지 않고 모아둔 약들 같다고 중수는 생각했다. (71, 이쯤 오니 내게도 정선생에 대한 호감이 생기고…)

-왕 큰 자아를 가진 사람이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소설이 쓰는 사람에게 자기중심성을 강제,강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쓰는 일은 언제나 약간이라도 죄를 짓는 일이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포티의 삶이라면저 아래 영의 삶도 흐른다. (90, ‘내가 그것이오’ 하고 영포티 고백을 먼저 날리는 작가라서 나 혼자 몰래 내적 친밀감을 키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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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와 시대착오
전하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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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2 전하영.


벌써 4년, 5년 전에 소설보다 시리즈와 젊은작가상수상집에서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었다. 영화 쪽 일을 했던 소설가라는 정도만 알았다. 단 한 편이었지만 작가의 소설이 좀 더 궁금했다. 그래서 이 소설집을 한 해 전에 사 놓고는 이제야 읽었다.

소설집 속 여성들은 예술 공부하러 유학 다녀왔지만 대개는 이것도 저것도 못되어 방황하는 중년 여성들이다. 예술가적 자의식은 있지만, 그게 밥도 명성도 못 벌어다주고 스스로 늙음을 자각하며 위기의식과 불안을 느낀다. 영화나, 미술이나, 소설에 삶을 바친 것 같지만 또 딱히 바친 것 같지도 않고 이렇게 되어 버렸군, 그래도 살아야지 별 수 있나, 이런 변주만으로 한 권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나와는 접점이랄 부분이 거의 없어서, 그나마 연배가 등장인물들보다 내 쪽이 약간 어릴 뿐 이쪽도 이제는 늙을 일만 남은 중년배인데, 나는 너무 가진 게 많은가, 속물인가, 공부하다 나 모르는 사이 훅 늙어서 청년에서 중년으로 스위칭 되는 걸 잘 못 느껴서 그런가, 나이에 대한 인식마저 결국 겹치거나 공감되는 부분을 못 찾았다.

이건 내가 이 소설을 사 놓고 일년만에 펼친 시차 탓도 아니고, 작가가 시대착오적인 이상을 품어서도 아니고, 오히려 어느 시기의 마스크 빼고는 대부분 소설이 시대성을 담고 있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좋게 말하면 아무 시대에나 들어맞을 수도 있겠지만 이 시대에도 다음 시대에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소설…
그냥 책을 잘 못 고른 나의 착오일 뿐이다.

밴드를 한다고 깝치고 다닌 적도 있고, 소설을 쓴다고 또 한참 습작하며 좋은 글을 이뤄보고 싶은 꿈도 꿨던 적이 있지만, 대학에 다시 가겠다고 녹슨 머리 굴려가며 지키던 책상머리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회한 같은 건 없다. 그냥 딱히 뭘 한 게 없는데 무언가 되어 있는 느낌이고 독감에 걸린 것 빼면 대체로 삶에 만족한다. 내 시간과 노동을 갈아 돈을 조금이라도 계속 받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예술은 품이 들지만 그게 돈이 되고 남들의 관심을 받고 사랑받고 계속해 나갈 만큼 동력을 얻기가 정말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일들을 오늘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거 어쩔 수 없죠. 힘내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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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것이 적당한 장소에 제대로 존재해주지 않는 것인지, 언제나 의문이었고, 대개 인생은 그렇게 흘러갔다. (93, ‘영향’ 중)

-“언니, 제 목표가 뭐냐면요. 약까지만 가는 거예요. 만약 미쳐서 약을 먹더라도, 남들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살려고요. 그게 제 목표예요.”
“아까는 결혼이라며?”
난희는 주방 찬장에 얌전히 포개져 있을 자나팜정을 생각하며 물었다. 자나팜은 마음이 너무 불안해질 때마다 하나씩 먹으라며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었다.
“그건 단기 목표고요. 결혼도 하고 미치지도 않기.” (101, 그게 목표로 삼는다고 되는 건 아니란다...당신 옆의 미친년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아니 뭐 저 정도야 실례 정도일까, 하여간에 약은 나쁜게 아니란다. 남들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수단이기도 하단다.)

-그들은 어딜 가나 눈길을 끄는 커플이었다. 매번 호기심어린 시선이 따라다녔다. 그들의 일반적이지 않은 나이 차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곤혹스러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편협함은 늙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팔짱을 기고 가다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그 눈길이 때때로 위협적일 만큼 집요하다고 느껴질 때면 숙희는 마치 찬영의 친누이, 혹은 막내 이모라도 되는 것처럼 그에게서 반걸음 떨어져 성적인 뉘앙스를 탈락시킨 채 무감하게 서 있곤 했다. 숙희는 나뭇 조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선을 끌지 않으려 노력했다. (137,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중, 편협함은 늙은이보다 늙지 않은 이들이 더 강력하게 발휘한다는 것... 적어도 난 그랬다)

-숙희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산과 육아의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그런 꿈을 꾸고 앉아 있었을까. 인간이라면 마땅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도 되는 듯이. 엄마가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으로서의 한 여성이 이전에 누렸던 거의 모든 삶의 지분을 빼앗기는 그런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140, 빼앗기는 것도 많지만 쥐콩만큼 쥐어주는 것도 있긴 함. 저걸 언제 다 키우냐 하는 측은한 눈빛 같은 거. 나한테 주는 건 아닌데 애한테 주는 호의 같은 거. 예전엔 다들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부모가 되라고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뭐라도 알려주면 대부분 부모가 되는 걸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안 알랴줌 이었던 걸 뒤늦게 알았다. 인류가 이만큼 번성했던 건 대부분의 인류가 무지했기 때문이고, 만약 인류가 쇠락 멸종한다면 이젠 다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일 것이다.)

-잃은 것은 석 달 치 월급. 그녀는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주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 둘째, 예술 너머에는 거대한 ‘진짜’ 세상이 존재하며 대다수의 인간은 예술이 아닌 돈에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사실은, 그런 속물적인 욕망에 관한 한 자기 자신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 더이상 예술만으로 만족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없어졌다는 것. (189, ’시차와 시대착오‘ 중. 돈은 힘이 세다. 미친 예술을 이길 만큼. 예술이 이기고 돈이 될 즈음 우린 이미 다 죽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억한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엄마가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재차 상기하며 기뻐하는 자신을. 그 여자가 집에 없어. 그 여자는, 이제 정말 집에 없다! 엄마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척, 무척 슬펐지만 안도했다. 그리고 미루는 죄책감을 느꼈다. 할부로 슬픔을 나눠 갚듯이 천천히, 차곡차곡, 그것은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희생으로부터 현재의 삶을 얻어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빛나는 삶, 자유로운 삶, 먼 곳에서의 삶. 엄마가 살고 싶었던 그 삶을 자신이 대신 누리는 것. 엄마가 동경했던 어느 외국영화 속의 젊은 서양 여자처럼. (204, 미루보다 조금 더 일찍 자랐던 나는 아빠가 집을 떠난 뒤에도 늘 불안했다. 언제 이 사람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 불길. 죄책감 없이 슬픔 없이 남은 삶을 잘 살 자신이 있지만 부고는 들리지 않고… 미루에게 야 넌 사장님이 최저시급도 안 주다가 최저시급으로 올려줬다고 사장님 어떡해 망하면...할 사람이로구나 하고 정신차리라고 하고 싶다.)

-우습게도 그 순간 미루는 자신이 준회와의 관계를 더 이어갈 수 없었던 이유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때, 평범하고 행복했던 어느 날들에, 작은 다툼을 끝낼 때마다 그가 미루에게 장난삼아, 작은 동물을 대하듯 그녀를 귀여워하며 “정신 나간 여자 같으니”라고 말했던 것. 아무런 악의 없이 반복되었던 그 말. 그녀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던 그것. 바로 어머니의 세계에 속해버리는 것.

망상.
미루는 일생에 한 번은 환청을 듣거나 환각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예감을 안고 살아왔다. 그것은 몸안에 흐르는 잠재된 가능성으로서 항상 그녀를 괴롭혀왔다.
(205, 그래, 나 미친년이다 끼야야악- 이런 나라도 계속 사랑해 줘. 나라면 뉴욕으로 숨는 대신 그랬을 거다.)

-아버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는 건…...아무 느낌도 아니군요. (237, ‘경로 이탈’ 중. 별 거 있을 줄 알았냐)

(오 밑줄 긋기 다시 읽고 보니 ‘미친년’이라는 주요한 교차점을 놓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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