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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2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0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평점 :
-20261108 저자: 제임스 조이스.
몇 달 끌며 읽다 놨다 하던 율리시스 두 번째 권을 빨리 떠나보내겠답시고 오늘만 5시간 30분을 붙들고 있었다. 전자책이라서 스크린타임이 그렇다고 알려줬다. 휴.
읽거나 못 읽거나 시간 태우거나 말거나 나는 다 써 갈겼으니 이제 알아서 해라, 하고 대형 벽돌 같은 걸 툭 던져주고 간 걸 웬 미친놈이 헛소리만 써 놨네, 하고 묻어버리지 않고 걸작이라고 치켜세워준 (나보코프 같은) 선배 독서가들 때문에 왠지 이거 안 읽으면 책깨나 읽었다 소리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수많은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라서 종이책 있는대도 번역 별로라니까 새 번역 전자책을 사고 그걸 틈나는 대로 꾸역꾸역 보았다.
제일 환장 대잔치였던 건 키르케라고 이름 붙은 길고 긴 장인데, 뭔 악몽처럼 매음굴에서 록키호러픽쳐쇼를 찍고 앉았다. 채찍질도 하고 지배도 복종도 하고 양성을 오가고 난리가 났다.
그 다음에는 블룸과 스티븐을 둘러싼 끝없는 질문과 답변, 그리고나서 블룸의 부인 몰리의 긴 넋두리로 마무리된다. 그래 그럴게 그래. 하고 끝나버려서, 아 끝난 건가? 하고 어리둥절했다. 1914~1921 7년 간 썼다고, 아 그래, 난 사 놓고 7년 만에 보는 건 아니니까(전자책 산 지 딱 1년 만에 다 읽었으니) 내가 이겼다.
1904년 6월 16일 하루와 자정 넘긴 새벽까지 더블린을 쏘다니는 남자를 쫓아다니며, 그날 일어난 사건 같은 것, 경마표 이런 걸 꽤 제대로 가져다 놨다고 (나보코프가 그렇다고) 한다. 머릿속과 길거리와 다양한 시점과 몇몇 화자를 넘나들며 읽는 사람 정신을 쏙 빼놓고 아주 가끔은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대부분은 아, 어제 오전 10시 몇 분엔가 이 책을 읽다가 쓰러져 잤고, 오늘 오전 11시쯤에도 이 책을 읽다가 졸다가 깨보니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생전 낮잠 안 자는 나를 아침부터 잠들게 만드는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얻어가는 게 “나 율리시스 읽었음”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라니, 그마저도 “그게 뭔데” “오딧세이?“ 할 가능성이 높은데 하여간에 읽었다고 하려고 읽었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요즘 사람들 주의력과 시간을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게 다 빨아 먹고 다니는데, 100년 전 조이스도(이건 좋아서 재미있어서 하는 짓은 아닌 거 같지만) 비슷한 짓을 했다. 활자에 기빨렸다. 블룸이 부인 몰리가 바람난 걸 눈치채고 하루종일 안절부절 싸돌아다니다가 대학생 겸 교사 스티븐이랑 친구돼서 집에서 같이 코코아 마시고 부인 누운 침대에 늦게 누워서 몰리가 주마등 켜게 했어요(죽인 건 아님), 하고 천페이지 넘게 채운 건 확실히 미친 재주다. 그렇게나 많이 먹여놓고 할 말은 별로 없게 만드는 것도 재주다. 그냥 내 깜냥이 여기까지다. 조이스 씨, 블룸 이새끼야, 이제 드디어 우리 헤어져요. 다시 만날 생각은 안 드네요. 살려주세요.
+밑줄 긋기
-가소롭구나! 송사리 킨치가 제 어머니의 개 같은 몸을 죽였으니. 어머니 명줄이 떨어졌단 말이다.(녹은 버터 같은 눈물이 눈에서 스콘으로 떨어진다) (스콘 먹고 싶어지는 묘사)
-그러나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소, 나라가 나를 위해 죽어라. 현재까지 그래왔소. 나라가 죽기를 바란 건 아니오. 죽음이라니, 개뿔. 생명 만세! (생명 만세!)
-스티븐이 받은 청각적인 감흥은 무엇인가?
그는 연륜 있는 남성의 굵직하고 생소한 가락에서 켜켜이 쌓인 과거의 소리를 들었다.
블룸이 받은 시각적 감흥은 무엇인가?
그는 젊은 남성의 생기 있고 친숙한 모습에서 예정된 미래를 보았다. (저 둘이 저렇게 잘 떠들고 어울린 건 스티븐이 술에 쩔었고 군인한테 얻어맞아 뻗은 걸 블룸이 동행이 되어 준 덕분이었다. 스티븐 오래 안 씻었다는데 블룸 후각적 감흥은 없었던가)
-아일랜드에는?
모어 절벽, 바람 센 코네마라 황야, 도시가 침수되어 석화된 네이호湖, 자이언츠 코스웨이, 포트 캠든과 포트 칼라일, 티퍼레리의 골든 베일, 아란군도, 로열 미스의 목장들, 킬데어의 브리지드 느릅나무, 벨파스트의 퀸스 아일랜드 조선소, 새먼 립, 킬라니의 호수들. (상상도 잘 안 되는 아일랜드의 매력들)
-아침식사 준비(태운 제물), 내장의 포화상태와 미리 궁리한 배변(지성소), 목욕(요한의 의식), 장례식(사무엘의 의식), 알렉산더 키스의 광고(빛과 진실), 빈약한 점심(멜기세덱의 의식), 박물관 및 국립도서관의 방문(성소), 베드퍼드 로와 머천츠 아치와 웰링턴 부두(율법 감사), 오먼드호텔의 음악(아가雅歌), 버나드 키어넌 술집에서 일어난 흉악무도한 자와의 논쟁(대학살), 마차를 타고 상가喪家를 방문한 후의 작별(황야), 여성의 노출증에 의해 생겨난 욕정(수음 의식), 미나 퓨어포이 부인의 지연된 분만(사은제謝恩祭), 타이런 스트리트 로어 82번지 벨라 코언 부인의 매음굴 탐방에 이어 비버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말다툼과 난투 사고(아마겟돈), 야간보행으로 버트 브리지의 마부휴게소 다녀오기(속죄). (작가 나름대로 친절한 타임라인)
-* 이 커다란 마침표에 대해서는 인쇄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무의미한 잉크방울이라는 설도 있고,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서 이 장 마지막 부분의 맥락에 비추어 새알, 정액, 지구, 우주, 무(無), 엉덩이, 멜론, 자궁 등을 의미한다는 다양한 해석도 있다.(커다란 점 하나와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