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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키스패너
프리모 레비 지음, 김운찬 옮김 / 돌베개 / 2013년 10월
평점 :
-20261105 저자:프리모 레비.
나의 일의 상징물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마이크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한때는 말하기보다 노래하는 도구로 쓸 때 더 정이 가는 물건이었다. 그러다 과도한 목 사용으로 생긴 성대 폴립 수술을 받고 난 후에는 생존물품 같은 게 되었다.
후두염, 성대결절, 성대 폴립을 차례로 겪으면서 개인 마이크를 구매해서 10여 년간 두 대 정도 교체하며 사용했다. 그런데 몇 주 전,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큰일났다.
그 사이 학교에는 오디오 장비 공사가 있었고, 새 마이크 대여해 주는 걸 받아왔다. 천장 부착된 360도 스피커에 연결되는 마이크는 음질이 끝내준다. 한 번씩 노래 한 곡 뽑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마이크로 흘러들어가 천장에서 울리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중요한 건 매체가 아닐지도 몰라. 내가 하는 말들이 온통 낯설었다. 그렇지만 아무 말이나 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다. 모두가 엎어져 자도 자장가처럼 혼잣말을 한다. 내 목소리는 톤이 높은 편인데도 다들 잠이 온다고 한다.
나는 내 일을 끝내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프리모 레비의 책을 여러 권 갖춰놨는데, 세 번째 책이 멍키스패너였다. 조립공 파우소네와 도료 화학자인 화자가 만났다. 러시아의 어느 일터에서, 각자 다른 일을 하러 온 이탈리아인들이었다. 파우소네는 철탑, 증류탑, 다리 같은 거대 구조물을 설치하는데, 세계 여러 곳을 떠돌며 일하다 겪은 일들을 화학자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화학자가 글로 쓰도록 허락한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절실함이 있었다. 자기 일이 잘 안 될 때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머리를 쓰고, 영영 망해버리면 괴로워한다. 일을 잘 마무리했을 때는 자부심을 느낀다. 삼십 대의 조립공과 오십 대의 화학자 사이쯤 되는 사십 대의 나란 노동자는 그런 걸 느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도 더디고 버겁게 만드는 중이다. 그런데 일 앞에서는 내가 조금 더 미워진다. 누군가는 지금의 내가 된 게 다 내 선택의 결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선택의 여지라는 게 있었다면 뭐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아니, 과거의 내가 선택한 걸 지금의 내가 왜 감당해야 하는 걸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정말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겪으면서 점점 무언가 쌓여가고 노련해지고 적절한 급료와 일하는 환경에 대해 견딜만해지는 사람들은 자기 일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파우소네는 그런 사람에 가까웠다. 레비는 화학을 공부한 덕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고, 나중에 취업해서 먹고 살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더 사랑한 일은 글쓰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글쓰기의 많은 소재들이 자신의 일에서 나왔다. 일 속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나도 내 일 속에서 만난 일들이 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별로 쓰기 싫다. 그냥 나는 일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고 싫지만 의무감으로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좋아서 하는 노동이란 드물 것이다. 물론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넉넉한 성과급에 이 일을 선택하길 잘했다 하는 사람도 있겠다. 생명체로 삶을 이어가려면 일을 하는 건 숙명이다. 다만 사회가 복잡해지기 전에는 다들 엇비슷한 일을 하던 게 이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그게 또다시 AI로 수렴해서 많은 일들을 빼앗기고 있다. 그런 내용의 시사 프로를 이제 막 시험 마친 아이들이랑 보았다. 일하고 싶어도 AI에 밀려난 사람이 많았다. 먹고 살기는 참 어렵다. 밀려나는 입장이 되면 다들 놀라워하며 사용하는 인공지능이 미워질 것 같다. 갑자기 아이들이 태양도 공전을 하냐고 물었다. 뇌피셜로 생각을 말하다가 야 그냥 찾아보자, 했다. 인공지능까지는 아니고 검색 기능을 활용했다. 태양도 우리은하의 중심부를 축으로 공전하고 자전도 한다! 이렇게 아주 가끔이나마 같이 배워가는 게 내 일의 좋은 점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사랑받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 이곳에서 나는 자주 쓸쓸하다.
+밑줄 긋기
-나는 내 운명에 대해 절대 불평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불평한다면 짐승일 겁니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지요. (42, 여기 슬픈 짐승 한 마리 있어요.)
-그러는 동안 오렌지색 석양빛은 북반구 밤의 빛나는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땅의 기다란 물결이 뚜렷이 보였고, 그 위로 희미하고 검은 구름이 나지막하게 평행으로 펼쳐져 있었다. 마치 화가가 자신의 붓질을 후회하고 조금 위에다 다시 반복해서 그린 것 같았다. 그건 이상한 구름이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토론했고, 결국 파우소네가 나를 설득시켰는데, 멀리 떨어진 동물들 무리가 바람 없는 허공으로 일으킨 흙먼지라는 것이다. (47, 해 질 녘을 쓴 글에 늘 밑줄을 친다. 후회의 붓질이라니.)
-따라서 열광적으로 한 페이지 또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썼는데, 나중에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어설프고, 어리석고, 이미 쓴 것이고, 부족하고, 지나치고,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 슬퍼지고, 바로 그날 저녁 그가 생각했던 것 같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말하자면 직업, 공기, 피부를 바꾸고, 혹시 조립공이 되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어설프고 불필요한 것을 쓰고도(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걸 깨닫지 못하거나, 아니면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이 더 많은데, 종이는 너무나 관용적인 재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종이에다 아주 어리석은 것을 쓸 수 있지만, 종이는 절대 항의하지 않는다. 광산의 보강 목재처럼 하중이 너무 많아 무너지려고 할 때 삐걱거리지 않는다. 글쓰기 직업에서 경종의 신호와 체계는 조잡하고, 삼각자나 추선처럼 믿을 만한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어떤 페이지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읽는 사람이 깨닫는데 그때는 너무 늦고, 그러면 괴로워진다. 그 페이지는 오로지 당신만의 작품이고, 변명의 여지도 없고, 완전히 당신 책임이기 때문이다. (71, 글쓰기의 무게)
-만약 거칠게 다루면, 말하자면 두드리고, 늘리고, 구부리고, 압축하면 구리는 우리처럼 된다. 즉 그 결정이 커지면서 단단해지고, 거칠어지고, 적대적으로 되는데, 파우소네는 아르베르소라고 말했을 것이다. (116, 우리는 구리처럼 된다.)
-많은 직업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관과 증오를 갖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해롭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직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직업의 결실이 일하는 사람의 손에 남아 있도록, 직업 자체가 형벌이 아닌 것이 되도록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사랑 또는 반대로 증오는 내부적이고 선천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그 직업이 이루어지는 생산 구조보다는 개인의 삶에 더 많이 의존한다. (121-122, 내부적이고 선천적인 것)
-그래요, 어느 날 그 얼룩을 따라 틈이 나 있고, 개미들의 행렬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호기심이 생겼고, 돌멩이로 두드렸더니 안이 텅 빈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더 강하게 두드렸고, 겨우 1인치 두께의 시멘트가 무너져 내렸는데, 그 안에 죽은 사람의 머리가 있었어요.
나는 마치 눈에 총을 맞은 것처럼 균형감각을 잃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정말로 거기 있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곧바로 나에게는 이상한 병이 생겼는데, 여기 허리에 딱지들이 생겼고, 나를 갉아먹었고, 딱지가 떨어지면 다른 딱지가 생겼어요. 하지만 나는 만족스러웠어요.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놔둔 채 집으로 돌아갈 구실이 생겼으니까요. 그렇게 나는 수영하는 법을 그때나 그 이후에도 배우지 못했어요. 바다든 강이든 호수든 물에 들어갈 때마다 흉측한 생각들이 떠올랐으니까요. (152, 나도 아직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용어는 악명 높게 많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아마 가장 접근하기 쉽고, 주관적으로 가장 잘 즐기고, 인간 공동체에 가장 유용한 자유의 유형은 자신의 일에 유능하다는 것, 그러니까 자기 일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일치한다는 가설이다. (215, 일하지 않는 자유만 꿈꾼 내가 미처 모른 자유)
-관자노리에->관자놀이에(237, 여기에도 오탈자가)
-작위보다는 부작위로 실수하는 것이 낫다.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불확실한 마당에 다른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낫다. (246, 맞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