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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20261024 저자: 서머싯 몸.
몸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19년 전 딱 내 생일에 91살로 영면했다 한다. 그 정도면 쓰고 싶은 이야기 잔뜩 쓰다 갔지 않았나 싶다. 나의 91살이란...그런 게 있을런가 모르겠고 상상도 잘 안 된다.
소설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너무 교훈적이었다. 대오각성과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너무나 인간다운 인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싶었다.
혼기를 놓쳤다는 다급함에 사랑 없이 결혼한 키티는 홍콩에서 타운센드와 불륜에 빠지고, 남편 월터에게 딱 걸려 콜레라가 창궐한 시골로 끌려간다. 거기서 헌신적인 남편과 수녀들을 보며 눈을 뜨고, 그러면서도 뉘우칠락말락 어리석은 짓을 반복한다.
봐봐. 얼마나 교훈적인 거야… 그래도 이 소설이 다른 불륜 서사들과 다른 점은 여자를 죽여버리거나 병에 걸리게 하는 벌 받는 결말 대신 착하고 참을성 많던 남편을 죽여버린 것이다. 애초에 콜레라 감염 위험 지역에 간 것도 둘다 자포자기 내가 죽든 쟤가 죽든 한 것 같은데 키티가 살고 월터가 죽었다. 뭐 그렇다.
일터에서 소진되거나 험한 꼴 본 사람 대상으로 심리상담 지원해주는 사업을 알게 되어서 목요일엔가 신청했는데 금요일에 상담기관이 배정되었고, 토요일인 오늘 첫 상담을 받고 왔다. 갈 땐 버스로 40분, 올 땐 걸어서 50분, 뭐 그렇게 십 리 길이니 아주 멀지는 않았다.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살자, 했던 것과 달리 내담을 결심하고 신청한 거 보면 나는 가만히 있는 거랑 거리가 먼 인간 같다. 그래도 잘 살고 싶어 그런 거겠지. 주말이어서 그런지 상담을 시작해서 그런지 걸어 와서 그런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아침에 읽던 소설을 마저 읽었다.
키티는 자기 비밀을 어디 털어놓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아는 게 자신과 남편과 전 연인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지역에서 친구도 잘 사귀고 수녀들 일도 돕고 어떻게든 자기 살 궁리를 했다. 본인 입으로 자책하고 어리석다 여기고 스스로와 상대방을 경멸하고 그러던 거 치고는 그렇게까지 쓰레기 인간으로는 안 보였다. 그냥 씩씩하네 싶었다. 제목이 인생의 베일인데, 알록달록 점입가경 가지가지 까도까도 양파껍질, 그런 느낌인 건지, 일단 계속 살고 까 봐야 알아, 하는 건지 원제(The Painted Veil)에 없던 인생이 붙어 버리면서 좀 제목이 무거워졌다. 재미는 있었는데 작가의 ‘달과 6펜스’나 ‘면도날’ 같은 건 또 읽기가 망설여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양파 껍질을 너무 열심히 까서 그런가, 인간을 고귀하게 그리는 것도, 굳이 속물성을 부각하는 것도 내게는 다 너무 무겁네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은 키티가 달았다 뗐다 하는 장신구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세상사 인간관계 다 쉽겠지만 그럴 리가.
+밑줄 긋기
-여덟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열 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는다. (…)산부인과 경험을 옮긴 첫 번째 소설 ‘램버스의 라이저’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자신감을 얻고 의사를 때려치운다. (표지 저자 소개 중. 때려치우는 부분이 뭔가 쾌-하다)
-그녀는 일어나서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양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서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너무나 강렬해서 고통스럽기까지한 환희가 밀려왔다. 그녀는 그가 좋았다. (19, 훌륭한 작가는 둘이 무슨 사이인지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고 간결하게 보여주기로 휙)
-하지만 머리는 어깨 위에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니니까. (23, 다른 곳에서 본 이 표현은 여기가 시작일까? 아니면 관용구 같은 것일가?)
-난 그냥 당신을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됐소. 그렇다고 나를 비난할 순 없어. (109, 이것도 흔한 대사였군)
-내가 싫어지기 시작했죠, 그렇죠? 그래요, 날 싫어하세요. 이제 난 아무래도 좋아요. (119, 저런 권유문은 노래가사에만 있는 줄 알았다.)
-세대박이:돛대를 세 개 세운 배(136)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190, 이너피쓰)
-그들은 함께 있어서 행복한 적이 없었고 헤어짐조차 끔찍하고 어려웠다. (282, 슬픈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