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시대의 연애 ㅣ 창비세계문학 64
왕샤오보 지음, 김순진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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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9 저자: 왕샤오보.

문화라는 말이 붙었지만 야만보다 못할 인권 유린이 일어난 시기를 거친 큰 나라가 있었다. 그 시기를 운 좋게 넘어온 사람들 중 심각하고 진지하게 증언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 모든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날들을 그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유머 감각이 있어서 살아남은 것인지, 살았으니 농지거리라도 던져서 과거의 재앙에 침을 뱉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가의 여러 소설에 왕얼이 등장한다고 한다. ‘황금 시대’는 워밍업처럼, 거칠긴 해도 재미있게 읽었다. 천칭양과 왕얼은 서로 사랑한다 소리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깊은 우정 어쩌고 하면서 섹스도 하고 같이 도망도 가고 규탄대회에서 잡도리도 당했다. 그렇지만 지나고 보면 최악의 시절을 두 사람이어서 버티고 지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저자는 같은 장면을 찍은 여러 사진을 보여주듯 같은 때 같은 상황이지만 거듭 다시 불러다가 다르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걸 다 쳐내면 소설책이 1/3로 줄어서 금방 읽었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저렇게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면 글 그따위로 쓰는 거 아니라고 욕을 먹겠지만, 그걸 아예 자기 개성으로 삼는 작가도 있구나 싶었다.

‘혁명시대의 연애’는 서두부터 섹스에 관한 소설! 이렇게 미끼 던져놓고 100쪽 넘게 읽는 동안 아직 그 비슷한 것조차 나오지 않았다. 슬쩍 후반부를 후루룩 넘겨보니 섹스라는 글자가 제법 보인다. 그러니까 지루한 심문 시간을 왕얼처럼 독자도 견디고 나서 옛다 봐라 하는 걸지도. 이 소설은 한 말 또 다시 바꿔하고 또 하고 옛날과 더 옛날을 오락가락 하는 건 앞의 소설과 비슷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3인칭으로 왕얼은- 했다가 1인칭으로 나는- 하고서 그게 자기 실수 아니라 의도한 거라고 그렇게 해야 하는 장면들이 있다고 설명도 해 놨다. 앞의 소설 ‘황금 시대’에서는 왕얼이 반성문으로 야설을 써서 조사관들이 더 구체적으로, 하면서 끝없이 글을 쓰게 했다면 뒤의 소설 ‘혁명시대의 연애’에서는 X하이잉이 보조교육이라는 길고 끝없는 1대1 면담을 하면서 왕얼이 한 잘못을 털어 놓으라고 하는데 왕얼은 자꾸 옛날 이야기를 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문화대혁명 시기를 골고루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기는 너무 근질거렸나보다.
후반부에 성애 장면이 꽤 나오기는 하지만, 그다지 야하진 않고, 왕얼이 거친 ‘혁명시대’에는 뭘하든 그게 밥 먹는 일이든 섹스든 다 이상했다. 제대로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흑마법 같은 혁명이라는 결계가 있었다. 더 나이 들어서 옛 사랑 색깔 성씨 대학생과 옛 정부 X하이잉(직장 동료였던 잔빠와 혼인함)과 다시 마주치고 같은 동네에 아무렇지 않게 살게 되는 건 이삼십년 지나면 뭐 그럴 법도 하다. 아내와 유학 생활을 하고 해외 여행을 다니던 추억을 종종 떠올리는 걸 보면 왕얼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도 같다. 혁명이 왕얼 같은 사람을 만든 건지 혁명시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얼은 자기다움을 지킨 건지 분명하지 않았다.

책표지 홍보 문구를 보면 중국의 카프카는 왜 이렇게 많냐 하다가도 인구 규모로 따지면 뭐 카프카 몇 명 있어도 확률상 이상하지는 않겠다. 중국의 제임스 조이스는 참신하지만 그렇게 갖다 붙이는 건 그다지 납득이 안 되고, 오히려 예전에 얘랑 사랑했는데, 얘랑 잤는데, 지금은 얘랑 사는데, 하는게 허세 빠진 하루키 아닌가 싶었다. 율리시스보다는 이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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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랑을 하고 싶었고, 음식을 먹고 싶었으며, 한순간에 반은 밝고 반은 어둡게 변하는 하늘 위의 구름이 되고 싶었다. 나중에서야 난 삶이란 천천히 망치질을 받는 과정임을 알았다. 사람은 하루하루 늙어가고 욕망도 하루하루 사라져 마지막에는 망치질을 당한 소와 같이 되어버린다. (17, ‘황금 시대’ 중)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 있는 사람의 절반은 중국문학이나 철학 등 문과에서 전공을 바꾼 사람들이다. 그리고 절반은 수학이나 물리 등 이과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줄여서 ‘AI’로 쓴다는 것밖에는 없고, 서로 일치하는 점이 조금도 없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논쟁을 벌였는데, 나는 한쪽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의견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다 맞아요. 듣고 배워야지요. (137,‘혁명시대의 연애‘중. 작가가 1973년 무렵 겪은 생산직 경험으로 1994년에 낸 소설집에 실린 소설에서 이런 이야기를 2026년에 읽는다. 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 문송해야 하는 것이냐…)

-그때는 혁명시대였다. 혁명의 의미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154)

-나에게 혁명시대는 불행복권 시대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큰 복권에 당첨되는 것을 볼 때에만 비로소 마음이 기쁠 수 있었다. (192, 차 전복 사고 및 화재로 완전히 바삭 타버린 세 명의 사람을 본 때를 회상하며)

-나꾸러기(241): 겉으로 보기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나이배기)을 낮게 이르는 말.

-난 지금 random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즉 우리는 왜 이 세상 이 장소에 왔는지 알 수 없고, 왜 현재의 일들을 만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라는 것이다. (302)

-우리는 원래 전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손 안에 있는 진흙 인형이었다. 책상 위에서 진을 치며 전쟁 장면을 구성하다가 갑자기 작은 손에 의해 팔이 떨어지고 다리가 사라지면서 장난감 상자 속에 처박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손 안에 있는 진흙 인형이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난 출생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진흙 인형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내게 너무나 깊은 상처를 주었다. (314)

*제목은 황인찬의 ‘무화과 숲’ 마지막 구절을 뒤집어 빌려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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