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이주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906 저자: 에이드리언 리치.



식구들과 망고와 초콜릿을 나누어 먹었다. 냉장고가 고장나 녹은 냉동망고와 피비상품인 다크초콜릿이었다. 여기보다 여름이 더 뜨거웠을, 아직 뜨거울 지역에서 주재료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그곳까지 케이팝이나 한국산 반도체가 탑재된 전자기기는 닿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세계는 기우뚱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쁜 놈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이분법을 생각한다. 나쁜 놈이 힘을 잡았을 때는 타도할 권력, 되찾아야 할 민주주의, 항의와 선언이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토록 정의롭다. 문제는 나쁜 놈이 밀려나고 난 뒤이다. 사적 이익을 위한 권력 남용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란 앞에 ‘경제적’이 붙은, 자산가가 되는 꿈이다. 나쁜 놈의 반대편이 힘을 가진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기는 겸연쩍은 모양이다. 이것도 금지된 침묵일까. 나쁜 놈에 반대하는 오롯이 착한 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과 삭제와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는 어느 시대이건 계속되어야 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그렇게 계속 목소리 내길 주저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모성이나 이성애를 강제된 제도, 학습된 것으로 보는 관점은 참신했다. 인종 문제, 유대인 정체성 같은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보였고, 시인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 무엇이 이 미친 세상에 내놓아야 할 시인지도 계속 질문하고 있었다. 자신이 걸쳐져 있는 교차성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동의하는 주장도 있었고, 특정 사람들을 삭제시키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삭제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레즈비언이 찐 사랑, 이성애는 너희들이 속고 있는 거야! 게이 때문에 레즈비언이 그 대칭처럼 오해받는 거야! 하는 건 사랑에 대한 관점이 너무 좁고, 그외의 사람들을 모두 망했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읽게 된 건 ‘자두’라는 소설 안에 이주혜 작가가 자신이 번역한 이 책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에이드리언 리치는 세 아들을 낳았고, 순서는 모르겠지만 레즈비언 정체성을 찾았고 아마도 이혼했고 남편은 자살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산문집이라니까 그냥 막연히 페미니스트 작가로군, 사회운동가로군, 했는데 시작은 시인이었다. 시가 해야 할 일을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시를 가끔 읽지만 현대 시는 해방 세상에 대한 시는 프로파간다라고, 문학계에서 쳐주지 않는 건지, 그런 시가 별로 없는 건지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그런 목소리가 닿은 적은 드물었다. 어쩌면 담겨있는데 그걸 읽어내지 못했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비트는 시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따지기에는 시를 별로 안 읽었다.

초콜릿 조각을 똑같이 나눠먹는 기계적 평등이나 실천하는 나란 인간은 집안 내 권력 구조가 존재하는 것도 대충 알겠고(내가 최상위 포식자, 폭군이다)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가부장 노릇과 모성과 이성애가 비벼져 있어서 그런지(그런데 이성애 동성애로 나누는 자체가 성 정체성을 스펙트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막 읽을 때 사이다 같거나 내가 향해야 할 방향을 이끌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하고 여성주의 책을 오랜만에 펼쳤다가 아 안 되네 나란 놈 설득이 안 되네… 하는 게 반복이다. 동시에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헌법과 판례를 들어 동성애자-주로 게이- 차별 멈춰! 하는 책이다)를 읽다보니 둘다 평등 세상 꿈꾸는 건 같은데 왜 사이는 안 좋은가 싶었다. 사이좋게 지내자, 우적우적.

+밑줄 긋기
-제인이 못마땅하게 느끼는 점은 로체스터의 관능성이 아니라 제인을 자신의 대상이자 창조물로 삼으려고 하고, 아낌없이 보석을 줘가며 제인을 꾸미고 싶어하고, 다른 이미지로 재창조하려고 하는 그의 경향성이다. 제인은 미인이나 요염한 여자로 낭만화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그에게 하렘의 일원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67)

-내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기고, 몸집이 작다고 해서 영혼도 감정도 없는 줄 아세요? 틀렸어요! 나도 당신처럼 영혼이 있고 감정도 풍부해요!(…)나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통해, 또는 육체를 통해 당신에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 정신이 당신의 정신을 향해 말하는 거예요. 마치 우리 둘 다 무덤을 지나 하느님의 발치에 서 있을 때처럼 평등하게, 그리고 지금처럼 평등하게요! (68-69, 초2때 그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 나오는 공포소설로 읽었던 제인에어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안 읽은 폭풍의 언덕도 같이… 리치는 이런 인용된 구절들을 들어 앞의 소설을 더 높게 친다.)

-이 작가에게 인간관계란 ‘고통스러운 수치심이나 풀죽은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사람들 사이의 거래, 그리고 누구도 타인에게 이용 가능한 대상이 되지 않는 거래를 말한다. (75, 그 반대의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예속, 종속, 억압...)

-붕괴는 한순간의 행위가 아니다
근본적인 중단
무너짐의 과정은
조직적인 부패다

영혼에 지은 최초의 거미집이고
먼지의 표피이고
축을 뚫고 들어가는 벌레이고
기본적인 녹이다-

멸망은 형식적인-악마의 작품
연속적이고 느릿한-
한순간의 실패는-어떤 인간도 하지 않는다
미끄러지기는-충돌의 법칙 (115, 에밀리 디킨슨을 리치 선생님이 소개시켜줬는데 나는 여전히 시를 잘 모른다. 뮤리엘 루카이저는 저자가 꼭 읽어보라 해서 검색해보니 번역 시가 없다.)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결혼을 위해 아내와 딸의 곁을 떠나놓고 그들의 이름을 시집의 제목에 가져다 쓰고, 버림받은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써 내려간 전 부인의 편지를 이용해 새 아내에게 바친 시집을 묶어낸 시인에 대해 혹자는 뭐라고 말할까?(…)대체 무슨 목적으로? 시 속에 편지를 삽입한 것은 나로선 전례를 떠올릴 수도 없는, 시의 역사상 가장 앙심으로 무장한 비열한 행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이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한 그 부적절한 에고는 로웰의 시집 세 권 모두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123-124, 로웰의 시집을 무자비하게 까기 위해 강한 어조로 비판을 했는데, 미발표 산문이다. 인용할 때 허락을 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

-‘어머니’에게 아이는 최소한 9개월, 종종 몇 년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어머니 됨은 처음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렬한 통과의례-임신과 출산-를 통해서, 그다음은 양육의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본능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128, 겪지 않으면 잘 모를 배움.)

-가부장제에서 집단 아동 돌봄의 목적은 단 두 가지다. 첫째, 경제개발 중이거나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유입하려는 목적, 둘째, 미래 시민을 세뇌하려는 목적이다. (131, 공교육과 사교육도 두 가지 목적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

-‘이 문제가 다른 여성들에게도 유효한가?’(133)

-모성 제도 아래서 모든 어머니는 어느 정도는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172)

-‘아이 없는 여자’와 ‘어머니’는 잘못된 양극화로, 모성과 이성애 제도에 복무한다. 이렇게 단순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212)

-부모 노릇이라는 말이 사실은 한쪽 부모인 어머니의 역할을 뜻하는 것처럼 특별하고 중요한 현실을 은폐하듯, 게이라는 용어도 페미니즘과 여성 집단의 자유를 위해 중요하게 분별할 필요가 있는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목적에 복무할 수 있다. (263, 이건 좀 너무 갔다 싶었다. 특정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너네 존재 자체가 우리까지 너네 유사품으로 만들어서 문제야, 하는 건 퀴어라는 말로 묶지 마, 니들도 남자니까 하여간에 나빠 하는 걸로 읽힌다.)

-1976년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브뤼셀 국제재판소는 ‘강제적 이성애’를 ‘여성 대상 범죄’ 중 하나로 지정했다. (267, 두 사례가 덧붙는다.)

-그보다 우리는 모든 성애의 삶이 하나의 연속체이며, 남성과의 관계도 포함하는 연속체라는 복잡한 사회적 모델을 가정합니다. (280,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보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거짓 의식을 강요 받은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리치 선생에게 샤론, 크리스, 앤이 반박하는 편지글을 위의 내용을 담아 보냈다. 리치 선생도 자신의 의도와 바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인생에 흥미와 의미가 가득하다고 믿었던 나 역시 어떤 것 때문에 죽은 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운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금기가 되어버린 이름,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정체성 때문에 죽었다. (296, 그런 금기의 존재는 다양하다.)

-아름다운 언어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억압자의 언어가 때로는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음을 아는 시인. (317, 윤리적 예술, 윤리적 미학 이런 말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논란의 영역이었다.)

-그 세계는 뒤집혀
왼족이 항상 오른쪽이고
그림자가 사실은 육체이며
우리는 밤새 깨어 있고,
천국은 바다의 깊이 만큼
얕고,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324,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인용. 마지막 줄 맴찢)

-이들(메리 울스톤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제임스 볼드윈)은 ‘원래 그런 것’처럼 보였던 것들도 사실은 사회적 산물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이로워도 누구에게는 불리할 수도 있으며, 이와 같은 산물도 얼마든지 비판하고 변화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343)

-‘진정한 변화는 원래 알고 있던 세계의 붕괴를, 정체성을 부여했던 모든 것의 상실을, 그리고 안전의 종말을 의미한다.’(344, 제임스 볼드윈을 인용)

-시는 우리 존재의 고통을 풀어줄 수 없다. 그러나 점점 쌓여가는 삶의 다급한 일들, 우리 스스로 등을 떠밀어 우리 것인 양 받아들인 거짓 욕구와 필요 아래 묻힌 욕망과 취향을 드러내줄 수는 있다. (369, 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나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즉 자신으로 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여성들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408)

-성애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 얼마나 예리하고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442, 오드리 로드, ‘성애의 사용: 성애라는 힘’의 글이 각주로 인용되어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개인과 사회 권력의 관계, 개인과 집단적인 인간 경험의 대변동과의 관계는 언제나 가장 풍성하고 복잡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이때 숨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인 역사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무엇을 알게 될까? 당신과 운명을 함께 한다고 믿는 사람은 누구인가? (475)

-그 작가의 사회적 정체성이 무엇이든, 작가는 글쓰기라는 행위의 본질상, 의사소통과 연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 언어를 통해 옥타비오 파즈가 ‘잃어버린 공동체’라고 부른 것과 살아 있는 대화를 유지하고자 탐색하는 사람이다. 때때로 자신의 글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던질 쪽지처럼 느껴지더라도 말이다.(481)

-우리는 왜 파시스트의 통치 방식이, 시민권과 인권의 파괴가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한 국가로서 우리가 독단적인 가짜 순수에 집착하면서 우리나라의 상황, 우리 정치의 내출혈은 모른 척 눈을 감아 왔기 때문이다. (508, 독재자들을 지원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이란성 쌍생아 정당이라고 저자는 일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